<방사능 발견 100주년이 주는 세상>
퀴리 부부와 베크렐의 발견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 방사능에 따른 제반 정황 및 추후의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방사능 발견 100주년’인 1998년 9월 30일 자크 시락 프랑스 대통령의 연설문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다소 내용이 길지만 과학자의 길을 비롯하여 방사능에 따르는 수많은 문제점과 해결책을 도모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므로 이를 전재한다.
‘한 나라의 과학계가 중요시하는 기념일을 보면 그 학계가 표방하는 이미지를 잘 알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새롭게 발견하고 현상을 이해하는 어려운 학문의 길을 걸을 때 필요한 대범함과 끈기를 가진 과학자의 이미지, 또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자꾸만 제기되는 새로운 문제에 답을 찾아가는, 참신하고 젊은 학문인 과학의 이미지 등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프랑스 과학의 이미지는 결국 각 프랑스 국민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과학계가 무엇보다도 새로운 연구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런 이미지는 우선 젊은이들,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호소할 수 있으며, 저도 이들을 대상으로 오늘 축사를 할까 합니다. 방사능의 발견이 인류의 역사에 끼친 막대한 영향을 생각하면서, 과학자 마리 퀴리의 명성만을 알고 존경하던 저는 이 기회에 몇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우선 끄새주(Que sais-je?)문고의 『방사능』이라는 책과 피에르와 마리퀴리의 전기를 읽었습니다. 그 책들은 기초적이지만 마치 아주 흥미있는 과학사 강의를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기회에 프랑스에 과학사 수업이 거의 없다는 점이 다소 유감스럽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도 좋겠군요.
무구한 과학사에 대한 강의는 아니더라도 몇가지 중요한 과학적 사실을 중심으로 역사 강의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강의를 듣는 젊은이들은 과학의 소명의식을 더욱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앙리 베크렐(Henri Becquerel), 피에르와 마리 퀴리(Pierre & Marie Curie)등은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습니다.
베크렐의 방사능 방사성 포착에 이어 퀴리 부부가 발견한, 강한 방사성원소인 라듐과 폴로늄은 거대하고 체계적인 과학의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그 성과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당시까지 모호했던 원자 개념이 부상했고, 원자핵 구조를 단계적으로 이해했으며, 최종적으로는 당시에 발전한 양자 역학에 힘입어 핵 주변 전자의 유동성을 이해하는 기념비적인 개념 연구 체제를 구축해냈습니다.
이런 섬세한 지적 발견은 참신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의 적용 또한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로베르 도트레(Robert Dautray) 교수와 끄새주 문고의 『방사능』을 공저한 물리학자, 모리스 투비아나(Maurice Tubiana) 교수는 오늘날 방사성 원소가 의학과 생물학에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도구인지 자세히 설명해 놓았습니다. 또 방사성 원소 속에 존재하는, 수명이 다른 동위 원소는 지질학에서 언급하는 지구의 역사나 고고학 분야에서 언급하는 인류의 역사를 추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주 간략하나마 과학 업적을 언급하면서, 저는 열정과 집요함, 엄정함으로 그 업적에 참여한 모든 남녀 과학자들을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과학의 고귀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이해 욕구는 오늘날도 계속해서 많은 새로운 주제에 도전하고 있고, 그 주제는 뇌에서부터 배아 연구, 난류현상에서 천체 물리학까지 다양한 분야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리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의 이런 낙관론은 사실 마리 퀴리 여사의 낙관론과 같은 것입니다. 퀴리 부인은 “나는 과학이 대단히 아름다운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위에서 가장 생동감이 있는 무엇은 바로 모험정신으로, 그것은 뿌리 뽑을 수 없으며, 바로 호기심과 연관된다.”라고 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피에르 퀴리라는 훌륭한 인물의 궤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의 기억 속에는 이 위대한 과학자가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과학자들은 여전히 그를 높이 사고 있습니다.
1995년 4월, 위대한 프랑스인들이 안장되는 팡테옹에 퀴리 부부의 이장이 거행되던 식장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피에르 질 드 젠느(Pierre Gilles de Gennes)가 피에르 퀴리에 대해 연설했던 내용을 환기해본다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피에르 질 드 젠느에 따르면 피에르 퀴리는 가지고 있던 3개의 재능 중에서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피에르 퀴리는 면밀하게 관찰하고 실험하는 학자였습니다. 갓 2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이미 크리스탈의 한 면을 누르면서 다른 면의 전하를 관찰합니다.
결정학(結晶學) 분야에 대한 호기심으로, 피에조 전기를 가지고 여러 가지 응용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는 또 당시로서는 놀라운 정확도를 가진 측량 기계를 제작한 공학기사이기도 했습니다. 자성(磁性)의 기본 법칙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피에르 퀴리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 전위계를 사용하게 됩니다. 아주 미약한 전하도 감지하는 이 전위계는 훗날 마리 퀴리가 베크렐이 밝힌 방사 현상을 양적으로 연구하는데 기여합니다. 피에르 퀴리는, 또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비전에 근거하여, 기초 입자에서부터 우주 생성에 이르기까지 현상에 존재하는 물리 법칙의 대칭성에 대해 선구적 이론서를 저술한 이론가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과학의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감히, 과학적 발견이 아주 인간적으로 보인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적이나 강의 등을 통해 소개되는 과학은 가차 없이 논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후대에 재구성되어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1896년 2월에서 6월까지 베크렐이 프랑스 과학학사원에 정기적으로 발표한 연구 현황을 살펴보면 그의 연구 방식이 자세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 위대한 학자도 착오, 불발의 연구, 해석의 오류를 겪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든 종류의 가정을 상정하고 실험하는, 노련하고 역량있는 학자였기 때문에, 결국 그는 우라늄염의 방사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과학 연구가 항상 완벽한 논리를 따라 진행되지 않고 오히려 직관과 의심과 착오의 여정이라는 점이 저는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며 사실 그래서 더 믿음이 갑니다. 1892년에 피에르 퀴리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연구를 하는데 정말 많은 애를 먹고 있다네. 지금 진행 중인 연구는 그 어떤 연구보다도 힘들다네. 그러나 다행히 이제 몇 가지는 좀 더 명확하게 생각이 정리되었지.”
과학자들이 남긴 이런 기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보기 위해 당시 마리 퀴리의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사실 마리 퀴리에 관해서는 과학사가 역사에 자리를 양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여성 과학자는 수 톤의 역청우라늄광석을 실험해서 극히 소량의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승리의 표본이며, 그래서 그녀의 화학적 성과는 이미 신화입니다.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이들은 아주 어려운 여건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그들을 방문했던 독일의 화학자 오스트발트(Ostwald)는 퀴리 부부의 실험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퀴리 부부의 실험실은 축사와 감자 저장 창고로 이용되는 장소였고, 화학 실험 기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나는 퀴리 부부가 나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역사는 과학적 성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며, 마리 퀴리가 겪었던 어려움은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마리 퀴리가 두 번째 노벨상을 수상하는 해인 1911년은 프랑스에서 부정적인 반유태주의와 외국인 배척주의, 여성 차별적 편견, 반과학적인 정서가 표면화되던 시기로, 레옹 도데가 주축이 된 신문인 악시용 프랑세즈는 두 차례에 걸쳐 마리 퀴리를 공격합니다.
또 1911년 1월에는 마리 퀴리가 프랑스 과학 학사원 위원 후보로 올랐지만, 결국 저명한 학자였던 에두아르 브랑리 후보에게 두표차로 패하였고, 선출된 브랑리 역시 마리 퀴리와 겨뤘다는 점 때문에 패배한 퀴리부인만큼이나 그 명성이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게 됩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동료인 폴 랑주벵과의 관계 등 마리 퀴리의 사생활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신문들이 그녀의 사생활을 문제삼아 소르본느 대학의 교수직에서 사임할 것을 대대적으로 요구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심지어 대학 동료 중 몇몇은 마리 퀴리에게 프랑스를 떠나 줄 것을 종용해야 한다고 성토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192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된 동료학자 장 페렝 (Jean Perrin)에게서 밝혀졌습니다.
“당시 우리 다섯 명의 교수들이 이런 비열한 공격으로부터 마리 퀴리를 보호하기로 자청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마리는 폴란드로 돌아갈 버렸을 것이고 그러면 프랑스는 영원히 그 오욕을 씻을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마리 퀴리는 의연하고 용기있게 대처했습니다. 1차대전 중에는 200여 개의 병원 시설과 20개의 야전치료시설에 X-레이를 설치하여 파편 조각을 발견하는데 기여했습니다. 딸인 이렌느 퀴리와 직접 부상자의 X선 촬영을 돕기도 했습니다. 훗날, 이 두 여성 과학자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전쟁터의 열악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많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리 퀴리의 고통스러웠던 삶의 단편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남에게 귀감이 되는 연구 생활, 소명 의식을 불러일으킨 혁혁한 연구 능력이 모두 당시 사회적 조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마리 퀴리의 경우처럼, 과학자는 자신의 합리성만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도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과학계의 중요한 기념 행사에 시민들 앞에서 정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과학자의 업적을 조명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또 세계에서 과학자들의 맡은 바 역할과 위치를 끊임없이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는 것입니다.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는 것은 사실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시대에 따라 그 역할은 변할 수 있습니다. 계몽시대와 백과사전을 저술하던 과학자들의 시대에는 과학, 기술, 사회, 도덕의 진보에 대해 맹목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실증주의가 주류를 이룬 19세기 후반에 이어 20세기 초에도 신뢰는 지속되었지만, 과학의 혜택과 그 이면에 과학으로 초래될 수 있는 비극에 대한 성찰도 이미 시작됩니다. 피에르 퀴리가 노벨상을 수상할 때 했던 말을 상기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혹시 라듐이 범죄 집단의 손에 들어간다면 아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과연 인류가 자연의 비밀을 알아가는 것이 과연 유익한지 고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신발견이 인류에게 주는 이익은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낭만주의가 주류를 이룬 19세기 초에는 과학과 기술주의가 세계에 대한 환멸을 초래한다는 생각이 팽배했습니다. 20세기 후반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식의 발전이 인류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회의적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지식과 인류, 이 두가지 진보를 화해시킬 시간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 두 가지 진보를 맹목적 신념 속에 가두어 화해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3단계에 거쳐 결속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합의와 학제간의 감정 및 평가, 양심에 의거한 윤리 분석, 그리고 교육을 통한 보급이 그것입니다.
전문 평가는 정치인들에게 특히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이들이 때로는 관련 분야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하는데, 아직 약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결정을 내리다 보면 장기적으로 중요한 여파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학제간의 비평적 사고를 거쳐, 서로 격리되어있고 흩어진 지식을 조직적인 해답으로 바꾸어주어야 합니다. 정책이 예방의 원칙에 지나치게 의거하여, “우산” 역할을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더 깊이, 더 멀리 가야 합니다.
전문평가팀의 의견 역시 전문 평가를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들의 의견은 과학의 입장을 담고 있으면서도 분명히 나름대로 주관성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작업을 두 방향으로 더 정교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외부에서 급히 주도하는 방식을 기다리지 말고 과학계 자체에서 몇가지 주요 주제에 대한 전문 분석을 실시하고 정기적으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과학계의 전문가 모임이, 물론 부분적으로는 자체적 제어를 하겠지만, 내부 전문가들과 몇몇 외부 과학자들의 만남도 주선하여 혹시라도 가능한 일탈을 배제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윤리적인 사고는 과학자들에게도 소중하여, 일부 첨단 과학 분야에서는 과학의 책임을 잘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입법자는 복잡하고도 서로 비슷한 과학 분야에서 몇 개의 지표라도 찾고 싶어 합니다.
프랑스에는 생명과학과 보건에 관한 국립윤리자문위원회(Comité Consultatif National d'Ethique)가 과학계와 다른 단체들과의 대화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입법권이나 행정적 권위는 없지만, 각 기관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식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중하는 도덕적 권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국가윤리자문위원회의가 제시하는 의견이 정당성을 확보하고, 별다른 제약 없이도 설득력을 얻었다는 점은 바로 우리가 사고에 근거한 윤리를 구상할 역량이 있으며, 책임감있는 문화 창달이 결코 헛된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모든 프랑스 국민이 현재 우리 눈 앞에서 진행되는 지식의 진보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 사회에는 과학계와 일반 시민들 사이에 격차가 있어서, 시민들은 과학의 세계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격차는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불안해하는지, 왜 잘못 생각하는지, 쉽게 반대하는지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격차를 줄이는 것이 우리의 중점적인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 목표가 달성된다면 우리 사회는 과학이 성취할 수 있는 진보와, 함께 동반되는 위험을 인지하고 전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방사능 발견 백주년을 기념해 국가윤리자문위가 주최하고, 프랑스 물리학회와 물리학연구자학회가 공동 제안하며 교육연구부가 지원하여, 중, 고등학교에서 「방사능과 그 응용」이라는 주제로 1000여 회가 넘는 특강을 마련한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강의들은 대학과 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이 담당해 주셨습니다. 파견된 교사가 인내심과 관대함을 가지고 과학의 지식을 나누는 이런 기회가 더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저와 같은 생각을 품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계기로 과학계와 일반 시민들 사이에 과학 지식과 문화의 공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공존은 또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고 행동의 방식이기도 한 과학이 과학 외 다른 활동을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산업 분야 활동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생산을 지속한다면, 또 지금과 같은 방식의 조직을 활용하여 생산 활동을 진행한다면, 여러 가지 종류의 환경오염이 증가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생산 방식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학이 변화에 필요한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생태계, 생물계, 환경 내에는 놀라운 다양성을 가진 수많은 종이 적응력, 에너지에 대한 경제적인 관리, 화학물질의 효율적 활용, 먹이사슬의 정교한 조직 등에서 상호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특성들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생산 체제를 새롭게 조직하고 경영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아주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일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또 이 분야가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폐기물 처리 문제와 연결되면 더욱 그렇습니다. 현대산업은 재화의 대량생산을 통해서 생산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재화가 축적되면서 이제 우리가 치러야 하는 값은 바로 폐기물 문제입니다. 활용되고 버려진 쓰레기들은 여기저기 쌓이거나 이리저리 사용되었고, 우리 생활에 방해가 되거나 심지어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연은 그 반대입니다. 자연에는 낭비 현상이 없습니다. 자연은 진보를 통해, 공존하는 생물체들을 사슬에 체계적으로 참여시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에너지나 활용 가능한 자원을 버려지지 않도록 점진적으로 유기체 조직으로 유입하는 체제를 구축합니다.
저는 환경 측면에서 봤을 때 훨씬 더 경제적인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과학은 오늘날에도 그렇고, 미래에는 더욱 더 발전된 도구로서 지금보다 더 적은 노력으로도 동량, 또는 더 소량의 오염된 폐기물을 배출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내외귀빈 여러분,
제 축사의 결론 부분에 온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경제 전쟁에서 기술력은 무기와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우리를 나누고 서로 대립하게 합니다. 우리 과학자들은 이런 새로운 면을 잘 이해했고, 국익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번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의 연대 역할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과학은 국가 내의 연대와 세계의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항상 세계와의 관계에서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지구촌화와 세계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요즘, 이 두번째 측면은 더욱 더 중요합니다. 이런 연대감은 또 과학계 내부에서도 당연히 요구됩니다. 왜냐하면 과학계의 광범위한 문제들은 사실 지구 차원의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번째 예로 지구 연구는, 상호 작용하는 대기, 대양, 생태계에 관한 논리적인 연구 체제를 정비하고 전세계적인 정밀 자료를 수집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전염병에 관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정말 다양한 종의 박테리아가 발견되고, 그들의 서식, 기생 방식, 변형 가능성에 대해 깊이 있고 지속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학과 정치가 동반될 때 이 연대감은 더욱 필요합니다. 저는 특히 UN이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강력한 기준을 발표한 교토협약(1997년, 일본 교토에서 채택된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을 제안했으며, 이제 우리 모두가 항상 새겨야 할 세 가지 연대감을 환기해보고 싶습니다. 특별히 오늘 자리를 같이한 젊은 세대들을 염두해 두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우선 미래 세대들과의 연대감입니다. 이제 우리는 후세의 삶에 피해를 입히지 않고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다음은 남-북반구간의 연대감입니다. 개발도상국들은 교토의정서의 제약을 즉각 받지는 않을 것이며 자국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인정받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온실가스 배출 국가들간의 연대감으로 합리적이며 공평한 책임 분담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뒷부분에 말씀드린 것들은 앙리 베크렐, 피에르와 마리 퀴리의 이야기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듯한 느낌을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 분의 과학자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지식의 체계에서, 모두 진실을 향해 집요하게 노력함으로써 과학자들에게 귀감이 된 분들입니다. 이 세 분은 모두 과학이 얼마나 인류에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1926년 마리 퀴리가 썼던 구절을 하나 읽으면서 기념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인류에게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열망을 위해 다가가는 인간의 노력이, 인간이 하는 것이 다 그렇듯 불완전했기 때문이며, 국가적 이기주의와 사회적 퇴행으로 궤도에서 종종 이탈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더욱 실현하고자 하는 일상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인류는 현재 지구에서 가장 우위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는 과학과 평화가 무지와 전쟁을 물리치고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었던, 파스퇴르 같은 사람들 편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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