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을 그리스로부터 태어났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과학이 헬레나 시대부터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헬레나 과학은 다른 고대 문명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과학적 이론 즉 ‘자연철학’의 발명이다. 우주에 관한 초기 그리스인들의 생각과 헬레나 시대의 다소 비실용적이라고도 보일 수 있는 추상적인 지식 탐구에서 그리스인들의 과학의 정의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요소를 추가했다. 사실상 자연철학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인류가 현재 누리고 있는 과학시대 즉 과학의 진로를 바꾸어놓은 계기라 볼 수 있다.
기원전 640년경 밀레투스에서 탈레스(Thales, 기원전 640?~546?)라는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과학사가들은 탈레스를 최초의 과학자 또는 수학자로 거명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동시대인이자 입법가인 솔론(Solon)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7대 현자’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탈레스의 중요성은 이집트인들이 경험적으로 발견한 사실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탈레스는 실용적인 적용으로부터 추상적인 원리를 도출하는 방법을 창안했다. 이것은 한 문제의 해답으로부터 다른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탈레스 이후 하나의 기하학적 기술로부터 다른 기술을 도출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 기법을 도입한 그리스인들이 모든 사물에 대해 질문과 연상을 생활화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인간의 사고를 한 차원 높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탈레스와 함께 대표적인 자연철학자는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 546)로 그는 공기, 흙, 물에 불을 더하여 4원소설을 주장했다. 이는 후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더욱 가다듬어진다. 4원소설은 18세기에 이르러 공기 중에서 많은 기체를 분리하기 전까지 거의 정설로 인식되었다.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기원전 550〜475)는 만물은 공기로 되어 있다며 그것에서 다른 원소를 이끌어 내려고 했다. 그는 공기가 농축되면 처음에는 물이 되고 보다 더 농축하면 흙이 된다고 설명했다.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기원전 460?〜 370?)는 고대 원자론을 확립하여 충만과 진공(眞空)을 구별하였다. 충만은 무수한 원자로 이루어지고, 이들 원자는 모양·위치·크기로 다만 기하학적으로 구별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이것을 자를 수 없다는 뜻의 아톰(atom, 원자)이라고 불렀다.
그리스인들은 공기나 물이 어떻게 작은 입자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계속하여 생각했는데 이때 고대의 슈퍼스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 기원전 384〜322)가 등장한다. 그는 세계가 단지 흙, 물, 공기, 불의 네 가지 기본 원소로 이뤄졌다고 했다. 현재 많은 과학자들은 물질이 고체, 액체, 기체, 플라스마의 네 가지 상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데 이는 어떤 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에 해당한다.
에피크로스(Epikouros, 기원전 342? ~ 271)는 데모크리토스가 공허 가운데에서 운동하는 원자로부터 만물이 생긴다고 하였지만, 원자는 '직선운동에서 빗나간' 자의성을 갖는다고 보고, 데모크리토스의 기계적 결정론에 새로운 견해를 가했다. 그러나 그리스 과학은 서로 다른 다양한 현상들을 연관 짓는 원리나 법칙을 갖추지 못한 경험과학에 불과했기 때문에 과학시대로 진입하자 그들의 설명은 더 이상 설자리를 잃어 버렸다.
그런데 이들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그야말로 현대인들을 놀라게 하는 중세시대의 광란이다. 바로 마녀 사냥이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고 마법의 파티에 참가했다는 죄목으로 화형을 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중세 시대에 화형 당한 마녀들이 연금술사였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은 마녀들과 무관했다. 오히려 연금술을 법으로 금지한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 마녀 사냥이 가장 극심할 때에도 만병통치약이라는 고약한 물질을 만든 사람들은 학자로서 존경받았다.
물론 연금술사들의 당초 목적인 황금을 만들고자 한 시도는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더구나 현대과학으로 되살려보면 연금술 자체는 틀린 이론으로 시종일관했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의 잘못된 생각은 헛되지 않아 결국 현대인들에게 화학이라는 학문을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 우리의 물질문명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근본부터 틀린 생각으로 점철된 연금술이 주체를 이룬 기간 동안 화학이 같은 시기의 물리와 생물학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연금술은 금을 만들거나 불로장생약을 만드는 데만 주력했으므로 새로운 이론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즉 당대의 철옹성과 같은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4원소설(흙, 공기, 불, 물)에 대체할 만한 새로운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으므로 학문적 토대 위에서 다루는 것도 불가능했다.
또한 중세나 르네상스기의 대학들은 화학은 손을 더럽혀야 한다는 이유로 귀족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시험관을 만지는 자체를 거부하여 그러한 일들은 아예 하인(匠人)들에게 맡겨 놓았으며 제자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4원소는 상호 변환 가능>
연금술의 기본 원리는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4원소설에 근거한다. 연금술사들은 액체 성분을 물과 동등한 것으로, 기체를 공기, 연소물을 불, 나머지 재를 흙과 동등한 것으로 보았고 4원소 각각이 갖는 성질을 교체하면 4원소도 상호 변환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4원소의 구성비만 알면 일반 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14세기의 연금술서인 『완성대전Summa perfectionis』에는 “자연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야 완성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기술에 의해서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당시 연금술사들은 금속의 성장을 동물의 태생학에 비교하여 알에서 부화하는 병아리처럼 어떤 금속이라도 대지의 태내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자연 현상에 의해 결국 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들은 자연계의 금속을 7가지(금, 은, 구리, 수은, 주석, 철 그리고 납)로 구분하고 이중에서 금을 가장 완벽한 금속으로 보았다. 또 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속은 금처럼 완벽에 도달하고자 애쓰는 물질이라고 보았다. 즉 다른 모든 금속들은 금으로 변화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연금술사들은 그런 과정을 당겨주는 기술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금은 비중이 19.3으로 매우 무겁다. 황색의 광택이 나며 공기 중이나 물 속에서 잘 산화되지 않고 황과도 작용하지 않는다. 보통의 산에는 녹지 않지만 셀렌산에는 녹는다. 이외에 금을 녹일 수 있는 것으로는 시안화알칼리의 수용액이나 진한 염산3과 진한 질산 1의 비율로 된 왕수(王水)가 있을 뿐이다. 녹는점은 1,063℃, 끓는점은 2,970℃로 높다. 금속 중에서는 은, 구리 다음으로 전기와 열의 전도율이 높고 전성과 연성이 풍부하여 두께 1만 분의 1mm의 금박도 만들 수 있다. 원자의 지름을 1억 분의 1센티미터라고 할 때 이것은 원자 1,000개 분에 해당한다.
고대인들로 보아 몇 천 년이 지난 유물들이 땅속에서 발견되었을 때 다른 모든 물건들은 부식되거나 사라졌는데 금만은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모두들 경탄의 눈으로 금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금이 갖고 있는 이런 경외심은 곧 재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여준다. 금이야말로 고대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귀금속이 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투탕카멘 파라오의 황금관, 미케네에서 발굴된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 스키타이의 황금 장식물, 한국의 금관, 잉카제국이나 마야문명의 황금 전설 등이 인간들의 금에 대한 마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장식품과 재산 가치로만 금이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는 공업 분야에서 금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금은 적외선이나 자외선을 거의 반사하기 때문에 우주 비행사의 헬멧이나 정밀하게 공기 조절이 필요한 건물의 창유리에 붙이기도 한다. 전기 전도율이 높고 부식성이 없기 때문에 전기 접점, 프린터 회로, 반도체 부품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며 의치를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현재 일 년에 약 1,000톤 정도가 생산되는데 그중 공업, 산업, 치과용으로 사용되는 양이 20~30%나 된다.
비록 금의 효용도가 고대부터 인간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지만 유럽에서는 금 생산이 많지 않았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에서 금이 나오지만 대단한 양이 아니었다. 이것이 금 자원이 빈약한 유럽인들로 하여금 비금속을 금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근본 요인이 되었다.
연금술사들은 자연계의 모든 물체, 즉 생명체는 물론 광물에도 완전하고 본질적인 정령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 정령을 시금석, 투사 분말 또는 현자의 돌이라고 불렀으며, 정령은 다른 물질들을 자신의 성질로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겼다.
예를 들면 어떤 연금술사가 장미꽃 속에 숨어있는 정령을 얻는다면 들꽃이나 나무, 개나 말 심지어는 사람까지도 정령을 사용하여 장미로 변하도록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금의 정령을 가진 ‘현자의 돌’을 발견한다면 전 세계의 모든 사물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마이더스의 손에 닿는 것은 사람을 포함하여 모두 금으로 변하는데, 바로 이 마이더스의 손을 찾는 것이 연금술사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현자의 돌은 반짝이는 루비 색이며 단단하면서도 유리처럼 부서지기도 쉽고 가루로 만들 수도 있다고 믿어졌다.
연금술사들이 금을 만드는 데 사용한 일반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구리, 주석, 납, 철의 네 가지 비금속의 합금을 만든 후 여기에 비소나 수은의 증기를 씌워 백색을 띤 ‘은의 형상’을 만든다. 다음에 황금으로 만드는 씨의 역할을 하도록 소량의 황금을 촉매제로 첨가한다. 마지막으로 변성을 마무리하기 위해 또 한 번 표면 처리를 하면 황금색으로 보이는데 이것을 황금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짜여 진 변성의 순서에 따라 비금속이 합금으로 되어 각자의 개성을 잃었을 때, 다시 말해서 그 특수한 형상 또는 넋을 잃었을 때 비금속은 죽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표면의 착색에 따라 처음에는 은으로, 다음에는 황금색으로 새로운 형상을 갖게 되는 것은 부활의 과정이라 여겨졌다.
<성공한 연금술사>
연금술이라고 해도 순수한 금을 만들려는 작업은 주로 중세 유럽에서 이루어 졌다. 그렇지만 중세 시대의 교회는 오히려 연금술을 터부시하여 연금술사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순수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신앙을 기초로 하는데 반하여 연금술사들은 추리에 의해 진리에 도달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교회는 연금술사의 저서를 인쇄하는 것조차 금지하였으므로 연금술의 발달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은 교회의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연구에 열중하였고 결국 교회도 연금술사에 대한 제재를 철회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금에 대한 욕구가 교회의 재정을 위해서도 유익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영국의회를 통과한 법률 중에서 가장 짧은 것은 1405년에 제정된 ‘금 또는 은을 만드는 것을 중범죄로 간주한다’는 법이다. 이 법은 금을 캐거나 제련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며 가짜 금 제조를 근절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사실은 연금술사들이 정말로 비금속을 금으로 바꾸는데 성공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의원들이 비상 조치를 강구한 것이다.
만약에 연금술사들이 국왕 헨리 4세를 위해 싼값으로 금을 만들어 준다면 헨리 4세는 의회에 머리를 숙여 국고의 자금을 타 쓰는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 왕으로서는 국고 예산의 심의권을 갖고 있는 골치 아픈 의회와 더 이상 타협하지 않고 마음대로 군림하는 전제군주로 변신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의원들 자신에 대한 탄압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서둘러 이 법률을 통과시킨 것이다. 물론 의원들의 우려와는 달리 어느 누구도 금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금술의 역사 중에서 현대인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것은 연금술사들이 고대하던 변성에 성공하였다는 기록이다.
프랑스의 니콜라 플라멜은 이성스러운 붉은 돌과 수은을 사용하는 연금술을 익혀 1382년부터 대량의 순금을 제조해서 그 황금으로 파리에 14개의 병원과 3개의 예배당, 7개의 교회를 세워 기부하였고 더욱이 고아들을 위해 30년 동안이나 황금을 제공했다. 일설에는 그가 연금술로 재산을 모은 것이 아니라 아내의 지참금과 부동산에 투자해서 번 돈의 일부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가 연금술로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는 것을 당시의 대다수 사람들은 사실로 받아들였다.
플라멜은 영화 「해리포터 Harryporter」에서 전설적인 마술사로 나온다.
또한 30년 전쟁(1618~1648년) 당시의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는 금으로 변성된 금속으로 금화를 주조했다. 이 금화 한 쪽 면에는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다른 쪽에는 수성과 금성을 나타내는 기호가 그려져 있다.
에드워드 2세는 연금술로 만든 22톤의 금으로 장미 금화를 주조하게 명령하였고, 페르디난드 3세는 리히트하우젠이라는 연금술사로부터 받은 가루로 자신이 직접 변성 작업을 주도했다. 페르디난드 3세는 낟알 크기만한 기적의 가루를 3파운드의 수은에 넣어 금속을 금으로 변성시켰다. 이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기념 메달은 당시 쓰이던 금화 300개에 해당하는 값어치였다.
오스트리아 빈의 역사 박물관에는 크기 40센티, 무게 7킬로그램의 기묘한 메달이 있다. 메달의 위 부분의 1/3은 은이며 그 아랫부분은 황금으로 되어 있는데 1677년에 수도사 웬체르가 연금술을 써서 은을 금으로 변화시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연금술사들은 금속과 광석은 그렇게 빠르지는 않지만 식물처럼 땅에서 자란다고 믿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리슐리외 추기경은 한 연금술사에게 30년 전쟁의 비용 지불을 위해 금을 생산해 달라고 촉구했고, 루이 14세 때 한 관리가 부하들에게 금광이 스스로 다시 소생할 수 있도록 고갈된 금광의 입구를 봉하도록 한 명령서가 지금도 남아있다.
연금술사들의 성공 이야기와 연금술사들이 금속이 자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이 궁극적으로 단기간 동안이나마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목적이 순수한 금을 만드는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금술사들의 목적은 빛깔이 금과 비슷한 물질을 찾는 것이지 자연산 금과 똑같은 성질의 금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귀금속 시장의 요구에 영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만든 인조금이 자연산 금보다 가치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변성으로 만들어진 금은 여러 가지 다양한 화학적 성분들의 정령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의 금보다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순수한 금을 만드는데 후대의 연금술사들이 모두 실패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원자의 분해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상태에서 비금속을 금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결국 과학 기술 정보의 부족과 무지에 의해서 과장과 실패로 점철되어 간 것이다. 몇몇 연금술사들이 비금속을 금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는 것은 실제로 금으로 보이는 합금을 만든 것이다.
연금술에 과학적인 면은 존재하지 않으며, 연금술의 비결은 정신적인 진보를 위한 상징이나 은유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있다. 그러나 연금술로 얻은 지식에 의해 여러 가지 물질이 섞여 있는 물질을 정제하여 순수한 물질을 추출해 내는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 연금술의 이러한 정제기술은 채광, 야금, 약을 제조하는 데 쓰였다.
그러나 화학의 발전은 같은 시기의 물리와 생물학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 져 있었다. 이것은 스토아학파의 4원소설에 대체할 만한 새로운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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