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가 알려준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양은 천양지차이다. 미국의 지질학자 클라크는 지구의 지각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양을 비교했다. 클라크가 말하는 지각은 지구의 표층과 대기를 포함하는 것으로 지구 전체 질량의 0.7퍼센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지각에 존재하는 원소의 양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산소로 약 49.3%이다. 그 다음으로 규소 25.8%, 알루미늄 7.56%, 철 4.7%, 칼슘이 3.39%이다. 따라서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을 포함하여 지각에 가장 풍부하게 존재하는 원소 8가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97.91%이며 가장 풍부한 11개 원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99.43%이다. 물론 이들 숫자는 계속된 연구로 각 원소의 존재비가 다소 수정되고 있음을 첨언한다.
멘델레예프가 발표한 주기율표와 오늘날의 주기율표를 비교하면 다소 다르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는 주기가 7개밖에 없고 헬륨, 네온 등의 비활성기체가 빠져있다. 그 당시 비활성 기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는 ‘원자량’의 크기 순서대로 원소가 배열되어 있어 성질이 맞지 않은 것도 나타난다. 그러나 현재의 주기율표는 원자량에 의해 배열하지 않고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 수의 차례 즉 원자번호의 순서대로 배열한다. 이 새로운 주기율표는 원소의 성질과 그 사이의 관계를 명시할 수 있다. 현대의 주기율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을 곧바로 알 수 있다.
① 같은 족에서는 원자번호가 증가할수록 원자 반지름이 증가한다.
② 같은 주기에서는 원자번호가 증가함에 따라 원자 반지름이 감소한다.
③ 같은 주기에서 이온화한 에너지는 우측으로 갈수록 대체로 증가하고 같은 족에서는 위로 갈수록 증가한다. 이온화 에너지가 증가한다는 것은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주기율표에서 좌측으로 갈수록 그리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원소들이 전자를 잘 내놓으며 따라서 금속성이 증가한다.
④ 같은 주기에서 전자 친화도는 우측으로 갈수록 증가하며 7족의 할로겐 원소에서 최대가 된다. 그러므로 0족의 비활성 기체를 제외하면 주기율표에서 우측으로 갈수록 원소가 전자를 받아 음이온이 되는 경향이 커진다.
멘델레예프의 업적은 화학 원소들 사이의 내부 관계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화학을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학문 분야로 바꿔 놓은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한편 수많은 기행으로 자신의 일을 위해 살았고 그것 때문에 성공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에서 평화와 평정을 찾을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찾지 못할 것이다. 즐거움은 빨리 지나간다. 그것은 너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일은 오래 지속되는 기쁨의 흔적을 남기며 남을 위한 것이다.’
<화학을 업그레이드시키다>
과학자들은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야말로 화학 발전 역사에서 새로운 시기를 열어놓았고 오늘날의 과학문명이 태어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샐츠버그는 화학을 다른 학문과 구별할 수 있는 특징으로 화학은 물질을 취급하는 기술이 기반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자체는 물리학에서 빌려 온 경우가 많지만 그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복잡한 문제를 해명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거의 화학의 힘이라는 것이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바로 화학의 토대를 만들어 주었고 화학에 기여한 공로가 크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과학계를 벗어나면 그는 러시아 당대의 골칫거리 중의 한 명이었다. 그의 견해가 워낙 혁신적이며 사회개혁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에서 그를 위험인물로 분류할 정도였는데 1890년에는 부당한 조건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을 옹호하기까지 했다. 근엄하고 도도하기 짝이 없는 교수가 시국사건에까지 관여하자 교육부 장관은 교수가 정치에 물들었다며 그의 지위를 박탈까지 했다.
물론 그의 명성이 워낙 높았으므로 그를 그의 연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도량국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멘델레예프는 제발 가만히만 있어달라는 요청도 무시하고 화학 이외의 현실 시국에 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1907년 1월 고향인 피터스버그에서 73세의 나이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성대히 치러졌고 장례식 날 학생들은 거대한 주기율표를 들고 운구 행렬을 뒤따랐다. 그는 자신을 위해 끝까지 뒷바라지한 어머니의 묘지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어머니와 함께 나란히 묻혔다. 그 뒤 과학자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55년에 발견된 101번째 원소에 ‘멘델레븀(원소기호 Md)'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기율표라는 아이디어가 워낙 매력적이므로 주기율표에 매달린 학자들은 뉴런즈만은 아니다.
1870년 독일의 화학자 율리우스 로터 마이어(Julius Lother Meyer, 1830~1895)도 멘델레예프와 거의 동일한 주기율표를 발표했다. 두 명의 과학자가 독립된 연구를 통해 동일한 발견을 한 경우가 종종 일어나는데 역사는 멘델레예프에게는 영광을 마이어에게는 무명이라는 결과를 안겨 주었다.
멘델레예프가 마이어보다 한 발 앞서 주기율표를 발표했다는 잇점도 있지만 멘델레예프가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마이어와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멘델레예프는 원소의 ‘화학적 성질’을 바탕으로 주기율의 개념을 확립한데 반해 마이어는 원소의 ‘물리적 특성’에 기초하여 주기율표를 만들었다.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든 방법은 다른 과학자들이 시도한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다른 과학자들은 그때까지 발견된 원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멘델레예프는 그런 고정 관념을 버렸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더욱 그가 예언한 원소가 실제로 그의 예상대로 발견되자 다른 학자들의 공로는 모두 묻힐 수밖에 없었다. 어느 분야에서든 승리한 사람 한 명에게만 모든 공이 돌아가는 것이 기본인데 화학을 이끈 주기율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멘델레예프의 업적은 화학 원소들 사이의 내부 관계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화학을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학문 분야로 바꿔 놓은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위해 살았고 그것 때문에 성공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에서 평화와 평정을 찾을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찾지 못할 것이다. 즐거움은 빨리 지나간다. 그것은 너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일은 오래 지속되는 기쁨의 흔적을 남기며 남을 위한 것이다.’
멘델레예프에 의해 원소의 성격들이 규명되기 시작하자 원소에 대한 연구는 보다 업그레이드된다. 크룩스(Sir William Crookes)는 원소가 갖고 있는 고유한 스펙트럼을 측정할 수 있는 분광장치를 개발했다. 원소의 특정 스펙트럼은 마치 원소의 지문과 같아서 원소의 종류를 구별하거나 새로운 원소를 규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일련의 연구가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서 뢴트겐의 X선 발견은 학계에 강타를 던졌다. 라우에(Max Theodor Felix von Laue)는 실험에 의해 꽉 짜인 기하학적 모양의 고체로서 결정의 면은 특정한 영에 이루고 대칭 구조를 지니고 있는 수정을 통과하는 X선은 회절되고 파동의 성질을 갖기 때문에 사진 건판에 어떤 형태를 나타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영국의 물리학자 헨리 브래그(Sir William Henry Bragg)와 로렌스 브래그(Sir William Lawrence Bragg)는 이 회절 패턴으로부터 X선의 특별한 형태의 파장 계산법을 개발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X선은 결정의 원자구조를 이해하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X선에 관한 그들의 연구로 라우에는 1914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브래그 부자는 191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14년에 영국의 젊은 물리학자 모즐리(Henry Moseley)는 여러 가지 금속에 의해 생성된 특정 X선의 파장을 결정하고 파장은 주기율표의 차례에 따라 규칙적으로 감소한다는 중요한 발견을 했다. 모즐리는 각종 원소에 대해 특성 X선의 스펙트럼을 조사해 본 결과 X선 파장의 역수의 제곱근이 원자핵의 전하(원자번호)와 비례한다는 중요한 발견을 했다. 즉 특성 X선의 파장을 측정하면 원소의 원자번호가 결정되는 것으로 원소들이 주기율표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방법으로 원소들이 주기율표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원소들에게 원자번호를 확실히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화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X선 분석을 통해 수소에서 우라늄까지의 92개 원소가 있는데, 희토류 금속 14개와 우라늄보다 가벼운 원소 7개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또한 원자량의 순서로 나열한 주기율표가 원자 번호의 순서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었다. 아르곤과 칼륨, 코발트와 니켈, 테를리움과 인(I)이 그런 원소들이다. 한마디로 모즐리에 의해 이런 원소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모즐리가 이러한 대 발견을 할 당시에는 원자가 더 이상 물질을 이루는 궁극의 입자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원자의 구조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을 때라 더욱 각광을 받았다. 모즐리의 발견으로 원자의 하부구조를 밝히는데 큰 진전을 예견하기 때문이다.
모즐리는 불행하게도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28세의 나이로 전사했지만, 바클라(Charles Glover Barkla)가 그의 연구를 계속한다. 바클라는 원자가 무거울수록 더 많은 전자들을 포함한다고 추론했는데 이는 원자수라는 개념을 향한 움직임이었다. 바클라는 X선이 물질에 의해 흡수될 때 두 종류의 2차 복사(K와 L복사선)가 있다는 것을 보인 최초의 사람이었다. 하나는 질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서 산란되는 X선이고 다른 하나는 산란물질의 형광복사의 성질로 원래 광선의 선택적 흡수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빛의 세기에 대해 그가 유도한 방정식과 실험 자료를 비교하여 그는 X선이 실제로 전자기 복사선이고 맥스웰-로렌츠 이론과도 일치하며 물질과 상호 작용한다고 결론지었다. 바클라는 1917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상이 제정된 이래 가장 아까운 인재로 모즐리를 꼽고 있는 이유는 그가 사망하자마자 그의 이론이 노벨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모즐리가 남긴 업적을 바클라만이 이어받은 것은 아니다.
스웨덴 물리학자 시그반(Karl Manne Georg Siegbahn)은 X선 분광기를 발명하여 1초/arc의 정확성을 이룩했다. 이것은 파장을 1/100,000의 정확성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바클라의 연구를 계속하여 M복사선도 발견했고 모즐리에 의해 발견된 K선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밝혔다. 그는 1924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현재 주기율표에는 103개의 원소가 실려 있는데 이 중에서 11가지의 원소는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으로 만들어낸 원소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의 양을 정확히 분석한 결과 원소 간에 심각한 편중현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각에 가장 풍부하게 존재하는 11개의 원소가 차지하는 비율이 99.43%나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속해 있는 우주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원소의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지구에서 흔히 발견되는 원소들이 우주 전체로는 매우 미미하다는 것은 지구에 그런 원소들이 어떻게 많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는가에 의문을 품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학자들이 하여금 천문학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화학공업이 발전하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원소의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화학공업은 광업, 제련, 정유, 직물, 고무, 건축 등은 물론 비료 등에서도 폭발적인 적응을 보여 현대문명의 핵심 산업이 되었다. 비료를 만드는 곳에 화학공업을 이용함으로써 증가하는 인구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비료는 질산소다나 인산염 같은 영양물을 제공하는 것들뿐 아니라 토양구조를 안정시키고 거친 토양을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기도 한다.
물리학의 도입으로 19세기 초 뒤떨어진 화학 산업은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전통적인 화학조작들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규모의 증가에 의존하던 구태의연한 화학실험실은 예측된 결과를 기본으로 의식적으로 설계된 화학공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예전의 화학자들처럼 경험과 눈대중으로가 아니라 실험도구를 사용하여 절제된 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이 역시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정착되지 않았다면 단숨에 화학공업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데 공감한다.
참고적으로 원래 노벨에 의해 새로 제정된 <노벨상위원회>에서는 멘델레예프를 제1회 노벨상 수상자로 거론했다. 그러나 그의 주기율표는 당시에 이미 교과서에 게재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였으므로 노벨상을 수여하겠다는 것이 대 과학자에 대한 결례라고 하여 취소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그만큼 멘델레예프가 인류에게 한 수 가르쳐 준 것이 인간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멘델레예프의 어머니 만세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자연 현상을 원자의 규명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자의 변환이다. 원자가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궁극적인 입자라면 원자는 분해되거나 변하지 말아야 하는데 한 원소가 다른 원소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이어 세계를 놀라게하는 원자폭탄 개발로 이어진다.
연금술사들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원소를 변하게 하는 바로 그 작업이 꿈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시험관만으로 원소를 변환시키는 것이 불가능했을 뿐이었다.
참고문헌 :
「멘델레예프와 주기율표 이야기」, 과학분과, 고교독서평설, 1994년 3월
『원자보다 작은 세계 이야기』, 곽영직, 사민서각, 1992
『화학의 발자취』, 휴 W. 샐츠버그, 범양사출판부, 1993
『입체로 읽는 화학(2)』, 이인호, 자작나무, 1994
『청소년을 위한 과학자 이야기』, 송성수, 신원문화사, 2002
『유레카』, 레슬리 앨런 호비츠, 생각의 나무, 2003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까치, 2005
『천재 과학자들의 숨겨진 이야기』, 야마다 히로타카, 사람과책, 2005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제임스 E. 매클렐란 3세 외, 모티브, 2006
『오류와 우연의 과학사』, 페터 크뢰닝, 이마고, 2006
『지식의 원전』, 존 캐리, 바다출판사, 2006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세상』, 정갑수, 양문, 2007
『열정의 과학자들』, 존 판던 외, 아이세움, 2010
『100 디스커버리』, 피터 매니시스, 생각의날개, 2011
『내가 가장 닮고 싶은 과학자』, 이세용, 유아이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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