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원자력

원자의 모형 찾기(2)

Que sais 2020. 10. 14. 13:13

youtu.be/Y-ic-sKlHns

<양자론의 혜성 등장>

러더퍼드가 제시한 원자모형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보어(Niels Hendrik David Bohr)가 양자론의 입장을 적용한 새로운 원자모형을 제안했다. 그는 원자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의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방사되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양으로 방출되어 선스펙트럼을 이루는 데 착안했다.

보어는 원자에는 어떤 안정된 궤도가 존재해서 전자가 이 궤도에서는 에너지를 잃지 않고 운동할 수 있으며,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뛰어 옮길 때만 전자기파를 방출해 에너지를 잃게 된다고 가정했다. 이것은 물리량이 양자화되어 있다는 양자론에 근거한 것이다.

보어는 에너지가 연속된 양이 아니라 최소 단위의 정수배로만 존재하면서 주고받을 수 있다면, 원자내의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도 마찬가지로 연속적인 양이 아니며 원자가 방출하거나 흡수하는 에너지도 양자화 된 에너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원자 내의 전자가 제멋대로가 아니라 어떤 길(궤도)을 따라 핵 주위를 운동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전자는 이 궤도 위에서 빛을 방사하지 않고 원자 속에서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는 전자는 어떤 궤도 위를 운동하고 있다가 보다 전자 에너지가 작은 다른 궤도 위로 갑자기 이동하는 것이 가능한데 그때 남는 에너지가 무언가 다른 형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이 광자로 불렀던 원자로부터 방출되는 빛 에너지라고 했다. 전자는 광자를 내고서 다른 궤도로 옮기면 다시 빛을 내지 않는다. 전자가 빛을 방출하는 것은 전자가 어떤 궤도로부터 다른 궤도로 이동하는 짧은 순간뿐이다. 즉 전자가 안정된 궤도에서 다른 안정된 궤도로 건너뛰게 되면 두 궤도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되는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것이다.

보어의 설명은 정해진 궤도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인데 당시의 많은 학자들이 그의 이론을 납득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어는 수소에서 방출되는 빛의 스펙트럼을 정확히 설명함으로써 그의 이론을 증명했다. 분광기를 사용하면 각 원소가 지닌 특유의 스펙트럼 즉 빛이나 복사를 이루고 있는 파장들의 계열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각 원소가 왜 이런 분광 지문을 가지고 있을까.

 

보어의 이론에 의하면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이 도출된다. 전자가 더 높은 궤도로 도약하면 스펙트럼에는 암선(暗線)이 나타난다. 반대로, 전자가 높은 궤도에서 낮은 궤도로 떨어지면 스펙트럼에는 밝은 선이 나타난다. 소위 양자 도약은 모든 원소의 원자 구조의 특징과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들의 수와 간격을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보어는 1922년에 37세의 나이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보어는 노벨상 가족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아들 오게 닐스 보어 역시 물리학자의 길을 나서 197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여하튼 보어는 자신이 원자 모형의 아이디어를 학생 때 꾸었던 꿈에서 얻었다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태양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 중심은 부글부글 끊는 가스로 되어 있었다. 여러 개의 별들이 얇은 끈에 묶여 태양에 연결된 채 태양 주위를 돌고 있었다. 그 별들은 휙휙 소리를 내면서 나의 곁을 스쳐 지나가곤 했다. 얼마 후 타오르던 가스가 식으면서 태양이 굳어졌고 별들이 사방으로 떨어져 나갔다.”

 

과학자들은 꿈을 잘 꾸어야 하는 모양이다. 케쿨레(August Kekule, 18291896)도 꿈에서 우로보로스(Ouroboros)'로 알려진 연금술의 상징이기도 한 원형의 뱀을 보았고 그것을 토대로 벤젠 고리의 구조를 발견했는데 그는 이것은 두 번의 꿈에서 기원한다고 적었다. 그가 직접 쓴 글을 보자.

 

나의 친구 유고 뮐러(Hugo Miller)와 함께 저녁을 보내는 일이 잦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화학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어느 맑은 여름날 저녁 나는 보통 땐 사람으로 가득했던 도심의 텅빈 거리를 지나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이때 원자들이 내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이 작은 것들이 내 눈앞에 나타날 때는 언제나 그들은 심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고 나는 오랫동안 이들의 운동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두 개의 작은 원자들이 얼마나 자주 하나로 합쳐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더 큰 원자가 두 개의 작은 원자를 붙잡는지 그리고 보다 더 큰 원자는 어떻게 이들 세 개 혹은 네 개의 원자를 잡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그 동안에도 전체 분자는 현기증 나는 회전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원자들이 고리를 만드는 것을 보았고 고리의 끝에만 작은 원자들이 매달려 끌려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중략) 차장이 큰 소리로 크레팜 가입니다라고 외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그날 밤 이 꿈에 나타난 것들을 종이에 그려놓았는데 이것이 내 분자구조론의 기원이었다.

(중략) 나는 의자를 돌려 불가에서 졸고 있었다. 이때 또다시 원자들이 내 눈앞에서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작은 원자군들이 배경을 가득이 메우고 있었지만 반복되는 이런 종류의 환상에 길들여져서 더욱 예리해진 나의 마음속 눈은 이제 여러 겹으로 겹쳐진 큰 구조의 분자들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속에서 긴 줄들이 가끔 가까이 접근하여 뱀처럼 꼬이고 비틀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 봐라. 그 뱀 중의 하나가 자기의 꼬리를 물고 내 눈앞에서 조롱하는 듯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번갯불에 놀란 것처럼 나는 잠에서 깨어나고 이번에는 이 가설의 결과를 조사하면서 그 밤을 꼬박 샜다..’

 

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예프도 꿈에서 원소 주기율표를 보았다고 했는데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1936년에 신경 자극의 화학적 전달에 관한 여러 발견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뢰비(Otto Löwi), 식물의 광합성을 설명하여 1961년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캘빈(Melvin Calvin), 1964년에 메이저, 레이저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타운스(Charles Hard Townes) 등도 꿈에서 영감을 얻어 위대한 연구 업적을 이루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줄거리가 전혀 연결되지 않더라도 꿈을 기록하는 것이 좋다고 추천하는 것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 창출에서 꿈은 물론 직관적인 통찰도 중요하다. 분명하게 짚어내기 어려운 통찰, 직관 등의 정신적인 도약을 통해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과학자들도 많이 있다. 다윈과 진화론을 공동으로 창출한 러셀 윌리스는 말라리아를 앓는 동안 자연선택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번쩍 떠올랐다고 말했다.

과학자에게만 꿈이 효용 있는 것은 아니다. 196470타 벽을 넘지 못하면서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던 골프 황제 잭 니클라우스도 잘 풀리지 않았던 스윙의 문제점을 꿈이 해결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후 슬럼프에서 벗어나는데 꿈이 도와주었음을 수 없이 이야기하면서 선수들에게 잠을 잘 자야한다고 버릇처럼 이야기했다.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원자모형>

보어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1885년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유대계 은행 가문의 외할머니가 소유하고 있는 웅장한 대저택에서 태어났다. 보어의 아버지는 덴마크 최고의 코펜하겐대학교 생리학 교수였으며 어머니는 엘런 아들러 보어이다. 그는 유복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을 키웠는데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발휘했다. 1904년 학생 시절 그의 친구는 이렇게 적었다.

 

천재를 안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천재 한 명을 알고 있다. 나는 매일 그와 함께 다닌다. 내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닐스 보어인데 더욱이 그는 아주 훌륭하고 겸손하다.’

 

그러나 그의 학교 성적은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았는데 대체로 20명 중 34등을 했다. 코펜하겐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이곳에 물리학 실험실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생리학 실험실에서 연구하며 물리학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살 때는 덴마크 학술원이 해마다 대학교 재학생을 상대로 실시하는 현상 공모에서 여러 가지 액체의 표면장력 측정이라는 제목으로 덴마크왕립학술원이 수여하는 금상을 받기도 했다.

1911년 박사학위를 받자 맥주회사 칼스버그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캐번디시 연구소의 J. J. 톰슨과 함께 연구를 원했으나 두 사람의 잘 맞지 않아 맨체스터 대학에서 어네스트 러더퍼드와 함께 연구를 시작한다. 이때 러더퍼드는 원자핵을 발견하고 양전하를 갖는 원자핵과 음전하를 갖고 있는 전자가 결합해서 원자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것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때 보어는 소위 태양계 모형 이론을 제시했다. 이 모형이 양자론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추후에 보어의 이론이야말로 양자론을 활짝 꽃피우게 만든 엄청난 업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러더퍼드-보어의 원자모형은 이제까지 신비하고 임의적이던 화학법칙을 설명하는 데 적절했다. 학자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다양한 원자들이 고유의 특성을 갖는가, 어떤 것은 금속이 되고 어떤 것은 비금속, 불활성 기체가 되는가 등인데 이들을 원자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일정한 전자수를 가진 배열은 특별히 안정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각 조에 허용된 것보다 전자의 수가 많으면 나머지 전자는 훨씬 느슨하게 구속된다. 이런 원자로 된 물질에서 빛은 전자를 쉽게 진동시킬 수 있고 강하게 반사된다. 이것이 바로 금속의 특성이다. 반면에 각 조에 필요한 것보다 전자가 적으면 가장 효과적으로 전자를 공유하도록 다른 원자의 전자와 결합한다. 그 결과 가스나 유기분자 같은 비금속 중성 분자가 된다.

만약 비금속 원자와 금속 원자가 결합되면 금속원자는 남는 전자를 비금속원자에 주고 양전기를 띤 이온(ion)이 되며 음전기를 띤 비금속 이온과 단순한 전기 인력으로 결합하여 염(salt)을 만든다. 이로서 멘델레예프가 논리적으로 만든 원소 주기율표 전체가 비로소 물리적정량적으로 설명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보어의 원자모형도 기본적으로 옳았지만 완전하지 않았다. 그의 원자모형은 수소원자가 내는 스펙트럼의 종류를 설명하는 데는 적합했지만 아직 설명할 수 없는 점이 많이 남아 있었다. 원자에서 나오는 스펙트럼들은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보였지만 전기장이나 자기장 안에서는 여러 개의 스펙트럼으로 갈라지는 것이 관측되었고 또 각 스펙트럼의 세기가 모두 일정한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에 따라 매우 복잡한 형태의 크기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성 때문에 ()양자수라는 두 번째 양자수가 도입되었다. 전자 궤도의 기하학적 모양은 전자의 에너지에 대응하는 주양자수와 전자의 각운동량(회전운동)에 대응하는 부양자수의 결합에 의존하며 두 정수들의 모임에 의해 전자의 동역학적인 성질이 규정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것으로도 자기장 속의 원자행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돌기 때문에 원자는 회전하는 자석과 같이 행동하므로 세 번째 양자수인 자기양자수가 도입되었다.

원자의 스펙트럼에 나타나는 밝은 선들은 전자의 주양자수와 부양자수로 이해될 수 있지만 원자가 자기장에 놓여 있을 때는 더 많은 선들이 나타난다. ‘제만 효과(Zeeman effect)'로 알려진 이 현상은 네덜란드의 제만(Pieter Zeeman)에 의해 발견되었다. 원자는 자전하는 자석처럼 행동하며 마치 수평면에서 자전하는 팽이가 중력장의 영향으로 세차운동(歲差運動, 회전체의 회전축이 움직이지 않는 어떤 축의 둘레를 도는 현상)을 하는 것처럼 전자도 자기장에서 세차운동을 하기 때문에 세 번째 양자수를 도입했다. 자기장에서 원자가 세차운동을 하는 과정은 회전축의 위치가 불연속적인 값에 의해 제한을 받기 때문에 공간양자화라고 불린다.

그런데 세 개의 양자수를 결합한 이론으로도 원자의 스펙트럼에 나타나는 선들의 수는 실제로 관찰된 것의 약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보어이론의 결함은 전자의 스핀과 관련된 네 번째 양자수를 도입함으로써 제거되었다.

1925년 구트스미트(Samuel Goudsmit)와 울렌베크(George Uhlenbeck)는 전자가 스스로 회전한다면 스펙트럼의 선과 연관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전자가 네 번째 양자수인 스핀양자수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다른 세 개의 양자수와는 달리 스핀양자수는 오직 둘 중 하나의 값만 갖는다. 자기장에서 전자의 회전축은 단지 두 방향, 즉 자기장과 같은 방향이든지 반대 방향이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