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의 코는 정말로 컸나요? (IV)

Que sais 2020. 8. 29. 10:37

https://www.youtube.com/watch?v=kzWFkPc_urw&t=1s 

클레오파트라는 당대의 시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삶 자체보다는 로마로부터 조국 이집트를 지키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위정자의 모습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당대의 로마정복자들을 오가면서 이집트를 살리려 노력하여 시저, 안토니우스의 벽은 넘었지만 옥타비아누스의 벽은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초대황제가 되는 길목에 클레오파트라가 있었다는 것이 클레오파트라에게 불행이었고 결국 그녀가 자살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인류사를 보면 자살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다. 어떤 연유로든 자살은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가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독사의 독으로 자살했다고 알려지는데 바로 그 점이 클레오파트라를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인물로 부각시키는데 크게 작용한다. 한마디로 클레오파트라하면 독사를 연상할 정도이다.

학자들은 클레오파트라가 과연 어떤 독으로 자살했느냐를 조사했다. 자살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독약을 먹는 방법인데 가장 잘 알려진 식물이 벨라도나 추출물이나 사리풀이다. 그러나 이들은 효과가 빠르지만 죽기까지 매우 심한 고통을 느낀다. 스트리키닌도 효과가 빠른데 죽은 사람의 얼굴을 뒤틀리게 만든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가 매우 아름다운 모습으로 죽었다는 것을 보면 이들 독약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으로 거론되는 대타가 바로 독사의 독이다. 알려지기는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현장에는 여왕과 함께 몸종이라스와 샤르미온이 죽어 있었는데 이들도 여왕이 물린 독사에 물려 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독사의 독은 신속하면서도 조용히 죽음에 이르게 하므로 자살을 원하는 여왕에게는 이처럼 이상적인 독약은 없다는 설명이다. 학자들은 좀 더 나아가 클레오파트라가 아마도 성질이 고약하면서 신경독액을 내뿜는 레반트산 코브라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도 이집트에서 피리로 뱀을 일으켜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독사가 레반트산 코브라이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의 독으로 자살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지 않는다. 알려지기는 클레오파트라와 두 명의 몸종들 모두 여왕이 물린 독사에 물려 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독사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알려진다.

독사는 처음 한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지만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치명상을 입히는 것은 어렵다는 점이다. 코브라의 독이 저하되어 2, 3차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몸종 2명이 함께 죽으려면 최소한 독사가 3마리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여러 가지 정황상 독사 3마리를 사용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당시 여왕의 시신을 부검했던 의원이 여왕의 팔꿈치 부근에서 두 개의 선명한 상처를 발견했다고 증언한 것을 볼 때 독사 사망설은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몸종도 독사로 함께 죽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으므로 독사의 죽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근래의 과학은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에 물려 죽지 않았을 것으로 설명한다. 학자들은 여왕의 방문이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일산화탄소 소위 연탄가스에 의한 자살로 단정하기도 한다. 여왕이 석탄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유독가스의 효능을 알고 있었고 안토니우스의 장례를 이유로 석탄과 태울 수 있는 도구들을 쉽게 방에 놓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볼 때 독사설이나 독액설은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과학이 클레오파트라의 전설 중 가장 잘 알려진 독사의 죽음마저 엄밀함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과학이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설과는 달리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옥타비아누스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가 독사나 연탄가스 등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되었다는 주장은 우선 이집트에서 자살은 금기인데 더구나 파라오가 자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당시 상황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죽기를 가장 바란 사람은 옥타비아누스이기 때문이다. 클레오파트라를 신으로 믿고 있던 이집트인의 동요를 막기 위해 왕실의 상징인 뱀을 동원해 자살한 것처럼 조작했다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를 제거한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클레오파트라가 요부라는 것을 부각시키면서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데 앞장섰다. 옥타비아누스는 승전행진을 할 때 팔에 독사가 매달려 있는 클레오파트라의 그림을 들고 나오게 했을 정도이다. 홍보에는 옥타비아누스가 한창 앞서는데 역사의 아이러니는 옥타비아누스가 철저하게 손상시키려한 클레오파트라가 그보다 역사적 지명도나 인기도면에서는 훨씬 앞섰다는 점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지난 2,000년 간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연극, 영화, 역사 이야기(史話), 오페레타, 뮤지컬 등을 통해 대단히 선정적이고 요염한 여자로서 남자를 파멸로 몰아가는 요부(妖婦)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안토니우스에 의해 졸지에 이혼된 옥타비아와의 관계는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졌다. 사실 이 부분에는 옥타비아누스 즉 추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정책적인 정치 선전 때문이기도 하다. 안토니우스가 정략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누이인 옥타비아와 일방적으로 이혼하고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자 아우구스투스 역시 정략적으로 이들 결혼을 이용했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신뢰할 수 없는 인간으로 매도한 것이다.

로마인의 입장에서 보면 클레오파트라는 오만하고 도도한 여자임이 틀림없다. 로마의 영웅 시저를 유혹하고 안토니우스로 하여금 조국 로마에 창끝을 돌리게 만든 장본인이며 결국 그를 파멸로 몰아 자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로마 역사가들은 한결같이 클레오파트라를 평가절하 했고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이집트측의 기록이나 자료들을 없애 버렸고 악녀로 지칭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 역사는 이집트 상황을 철저히 분석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클레오파트라를 설명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클레오파트라상당 부분이 교정되고 있다는 뜻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시저나 안토니우스를 끌어드리는데 이집트의 엄청난 재보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학자들은 개인적인 면에서 그녀가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남다른 노력으로 매력을 유지하였다고 설명한다.

우선 그녀는 선천척으로 목소리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다. 역사학자 플루타르크클레오파트라의 목소리현이 많은 악기와 같다고 적었을 정도다.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은 그녀가 자신의 선천적인 미모만 자랑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미모를 가꾸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소위 당시의 최고 미용 기술을 총동원했는데 주름살을 방지하기 위해 당나귀의 젖으로 목욕했다는 기록도 있다. 뺨과 입술붉은 황토로 칠했으며 손톱에도 을 입혔다고 한다.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해너라는 식물즙을 발랐다고 전하는데 그녀의 미용에 대한 비법이 책으로 전해질 정도이다.

머리 모양그리스 스타일의 곱슬머리를 했으며 아몬드 모양의 눈매를 유지하기 위해 납에서 추출한 먹으로 눈 주위를 칠했다고 알려진다. 이것은 근래에 클레오파트라 시대의 화장품을 분석하여 밝혀졌는데 놀랍게도 당대에 사용한 화장품이 나노화장품이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애인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재주를 갖고 있다고 알려지지만 클레오파트라처럼 이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한 사람은 없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녀는 향수 사용법도 완벽하게 터득하고 있었으며 피임약과 임신중절약을 만들고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알려진다. 심지어 불에 태운 쥐와 말 이빨, 곰의 기름, 사슴의 골수 등을 이용해서 대머리 치료제까지 개발한 장본인이라고 설명된다. 여기에 78개국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하니 로마 여인보다도 한층 더 매력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학자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이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하는 점이다. 세계 정치사를 좌우했던 여인이라면 당연히 몹시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더구나 당대 최고의 부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녀가 사망한지 1300여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보카치오(Boccaccio, 13131375)아름다움이야말로 클레오파트라의 가장 탁월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클레오파트라가 사망한 이후에도 계속 클레오파트라가 천하의 미인이었다고 알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모라는 것이 워낙 주관적인 취향에 따라 다르므로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근래에 발견된 많은 자료에 의하면 생전에 클레오파트라가 반드시 절세(絶世)의 미녀라는 평판을 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는 의견도 있다. 깐깐한 역사학자 플루타르크는 클레오파트라가 절대적인 미인은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미모의 고혹(蠱惑)적인 여왕이기는 해도 깜짝 놀랄 정도거나 유례가 없는 미인은 아니었다. 물론 좀 더 가깝게 접촉하다 보면 그녀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남자는 없었을 것이다. 매력적인 화술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예의범절이 밴 그녀의 자태는 항상 깊은 인상을 주었다.’

 

플루타크는 여왕의 미모가 그녀의 매력을 반감시키지 않았다고 표현했는데 이 말은 실제로 클레오파트라가 천하의 미인이 아니라는 해석과 다름없다.

학자들의 엄밀한 고증에 의하면 그녀는 어느 시대의 기준으로 보아도 천하의 미인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상 최고의 미녀로 인식하는 것은 우선 그녀가 당대 최고의 부자인데다 클레오파트라의 지성과 재치 등이 그녀를 역사상 가장 특별한 존재로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를 미인으로 부르지 않는다면 누구를 미인으로 부르냐는 뜻과 다름없다.

근래 클레오파트라절세의 미인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되기도 했다.

동전이나 화폐는 그 시대 지배자의 얼굴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므로 역사학자들은 동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20072, 영국 뉴캐슬대학의 린제이 앨러슨 죤스 박사2000년 전 로마 시대 은화 동전을 연구한 결과 클레오파트라는 좁은 이마에 뾰족한 턱, 얇은 입술, 날카로운 코로 미인형과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고 발표했다. 클레오파트라와 세기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안토니우스 역시 소문처럼 미남은 아니었는데 그는 툭 튀어나온 눈에 비뚤어진 코, 굵은 목의 소유자였다는 설명이다.

클레오파트라를 거론할 때마다 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왕의 코가 유난히 높았다는 것은 사실로 인식한다. 기원전 32,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위해 만든 동전에 새겨진 초상화 부조에 의하면 클레오파트라는 매부리코. 매부리코라면 일반사람보다 코가 큰 것은 사실이므로 은화로 보아도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인치만 낮았다면 세계사가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것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클레오파트라처럼 강한 개성의 소유자가 남다른 콧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대 세계 최고의 부자인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개성을 죽이면서 살았을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로마 제국의 시저, 안토니우스와 자부심을 갖고 맞장 뜬 강골이 미인이 아니라면 누가 미인이겠느냐는 질문과 다름없다. 한 치도 앞을 볼 수 없는 비정한 세계의 역사 속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던 특출하고 매력적인 여성의 코가 높다고 한 것은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