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토리노의수의(예수의수의)

토리노의 수의(예수의 수의)를 둘러싼 진짜ㆍ가짜 공방(5)

Que sais 2020. 11. 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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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수의의 미스터리>

<요한복음> 20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는 기록을 놓고 앞에서 독일 작가 쿠르트 베르나는 수의가 진짜임을 전제로 매우 놀랄만한 견해를 밝혔다는 것을 앞에서 설명했다.

그는 수의가 예수의 수의가 틀림없다면 피의 얼룩으로 보아 그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후에도 심장이 아직 뛰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예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사망한 후 내려졌다면 상처에서 흐르던 피는 이미 멈춰 있었기 때문에 체외의 피는 수의에 싸기 전에 말라붙어 있어야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숨졌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곧바로 신성모독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베르나의 주장케레스텐 박사에 의해 더욱 구체화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결론도 예수가 십자가에서 사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은 그야말로 놀랍다.

케레스텐 박사아리마데 요셉이 아무도 묻히지 않은 무덤을 미리 구입했다는 점부터 지적했다. 또한 예수가 십자가에 묶인 시간이 3시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십자가에서 내려졌다는 점도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당시의 법으로는 십자가형에 처해진 사람은 사망이 확인되어야 내려질 수 있는데 그는 십자가에 묶인 사람이 5일이나 묶여도 살아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즉 어떤 밀약에 의해 예수가 처형된 지 3시간 만에 십자가에서 내려졌는데 케레스텐 박사는 이와 같이 예외적인 조치는 아리마데 요셉빌라도와 협상을 벌렸고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는데 승낙했다는 것이다.

요셉이 시신들이 묻히지 않은 무덤을 새로 구입한 것도 사전에 예수를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추정했다. 성경에는 예수에게 몰약과 침향을 발랐다고 하는데 당대에 몰약지혈제로 사용되고 침향상처를 치료하는데 사용했다. 세마포로 예수의 시신을 싼 것은 오염과 벌레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예수는 상처가 심했기 때문에 세마포에 쌓여 상당 기간 동안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이때 몰약이 세마포에 작용하여 수의에서 보이는 갈색 자국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예수의 처형 전후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수의의 자국을 기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은 성경에서 설명하는 예수의 부활에도 치명타를 날렸다.

예수가 사망하지 않고 3일 후에 일어나 무덤을 나갔기 때문에 수의만 남은 것은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이와 같은 사건은 예수가 꾸민 일이 아니라 요셉이 준비한 것이지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후 3일 후에 깨어나자 현실로 받아드리고 곧바로 현장을 떠났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기는 했지만 사망하지 않았다는 이슬람교의 전승과도 일치한다고 역설했다.

케레스텐의 주장은 신성모독에 겹쳐 유대교와 기독교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으나 토리노의 수의가 가짜라고 판명되자 설자리를 잃어버렸다. 그의 주장은 토리노의 수의가 진실임을 토대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사실 토리노 수의를 과학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종교계의 주장은 수의가 가짜임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동안 알려진 예수의 얼굴에 대한 문제로 토리노 수의의 남자는 변발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변발이라는 것은 성경 등 그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는 예수 시대에 십자가형에 처형되는 죄수는 옷을 입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당대의 유대인 장례법에 의하면 죽은 사람을 모두 씻긴 후 수의로 감쌌기 때문에 수의에 피가 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셋째는 토리노 수의에 찍힌 남자의 얼굴로 볼 때 그는 50여 세의 장년 남자라는 것이다. 예수의 얼굴이 30대인 것을 보면 아무리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하더라도 50세의 얼굴로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년 아닌 노인의 모습

마지막으로 수의가 사람을 덮었던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제작 시기는 십자군 시대가 분명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것은 십자군 시대에 예수가 받았던 고통을 체험하기 위해 예수의 고난 과정을 모방하는 것이 유행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채찍으로 맞고 창에 찔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수의에 싸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광신도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시기는 십자군 시대유력하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2011년 이탈리아 문화재 복원 전문가인 루치아노 부소 박사는 토리노 수의가 14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거장인 지오토 디 본도네가 제작한 작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이탈리아의 교회사학자인 안토니오 롬바티 교수2012년 토리노 수의가 중세 때 터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여하튼 이러한 결정적인 이유 때문에 일부 기독교계에서 성물로 알려진 유물을 굳이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진상을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리노 수의는 진본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학자들과 일부 종교계들의 열화에 의해 과학적 심사를 받았는데 결국 가짜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성경과 유대교>

토리노 수의가 가짜라는 것은 성경과 유대교 교리를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수의유대인들의 장례풍습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예수도 유대인으로서 유대인 장례풍습에 의해 매장되었을 것임은 틀림없다. <요한복음> 19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 두 사람은 함께 예수의 시체를 모셔다가 유대인의 장례 풍습대로 방부제를 바르고 길고 고운 배로 감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가까이에는 동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전에 한 번도 사용한 일이 없는 새 모덤이 있었다. 그래서 안식일 전에 빨리 서둘러야 할 필요도 있고 또 무덤도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거기에 모셨다.’

 

이는 예수의 장례 절차유대인 풍습대로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당시 유대의 장례풍습은 얼굴과 머리의 털을 제거하고 시신을 정성스럽게 닦아낸 뒤 전신에 기름을 바르고 시신을 천으로 감싼 뒤 매장했다는 점이다. 유대의 율법에 따르면 매장은 일반적으로 사망 직후부터 24시간 이내에 시행된다.

 

엘그레코 그림

그런데 토리노 수의에서 발견되는 혈흔들이 정말 예수의 몸을 감쌌을 때 생겨난 것이라면 예수의 몸은 장례식에서 깨끗하게 닦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것은 유대인의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현재도 유대인은 자신들의 율법과 풍습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데 예수를 유대인의 율법에 의해 장례절차를 했음이 틀림없다. 이는 예수의 몸은 분명 수의로 감싸기 이전에 그 몸을 깨끗이 한 뒤라는 것이다.

또한 성경을 보면 시신을 감쌌던 수의는 한 장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몸과 얼굴 부위를 다른 천으로 감쌌다는 점이다. <요한복음> 20에도 예수의 몸과 얼굴 부위를 각각 다른 천을 사용하여 감싼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곧 뒤따라 달려온 시몬 베드로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고운 수의가 놓여 있었고 예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을 잘 개켜져 그 옆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성경의 묘사는 당시 유대인들의 장례풍습과 정확하게 일치하는데 토리노의 수의는 이들 설명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황도 가짜라고 교시>

학자들이 토리노 수의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성경에 언급한 예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에 예수의 형상이 수의에 나타났다면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것이고 이러한 내용이 기록에 남지 않았을 리 없다. 즉 당시에 토리노의 수의에 새겨진 형상이란 없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앞에도 설명했지만 토리노 수의가 가짜라는 교황청의 분명한 공식적인 발표가 수의가 발견된 직후에 있었다는 점이다. 1357년 예수의 수의를 보관하고 있다고 발표한 리레 교회1353년에 준공된 신규 교회이다. 그런데 납골당에 예수의 진품 수의를 소장하고 있다고 선전하기 시작하였고 곧바로 순례자들과 신도들에게 돈을 받고 수의를 관람시켰다. 이 뿐만 아니라 교회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가짜 환자들과 불구자들이 수의를 보는 순간 기적으로 치유되는 사기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수의의 모양이 새겨진 기념품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클레멘스7세(라파엘로 그림)

리레 교회에서 신도를 속인다고 생각한 헨리 프와티에(Henri de Poitiers) 주교는 수의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고 1359년 그 결과가 교황에게 보고되었는데 결론적으로 이 수의는 리레 교회가 돈을 목적으로 만든 가짜라는 것이다. 이 사기극에 동참하였던 화가는 수의에 새겨진 형상이 기교있게 그려진 조작된 그림이며 기적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고백했다. 불행하게도 주교와 위조범의 이름은 남기지 않았는데 이는 수의의 여파가 워낙 크므로 굳이 수의가 가짜라는 것을 공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일으켰다.

또한 토리노 수의를 토리노 대성당으로 옮겨오던 시기와 비슷한 무렵에 재위했던 교황 클레멘스 7(1523~1534 재위)이 수의를 성유물이 아니며 물감으로 그려낸 그림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클레멘스 7는 토리노 대성당 측에 수의를 전시하는 것은 허락하되 수의 앞에 촛불을 켜지 않고 향을 피우지 않는다는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다. 특히 귀중한 유물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지키는 사람 없이 운반하였으며 전시 도중 이 유물이 진품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만든 가짜라는 고백도 있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적어도 클레멘스 7세 시대에는 토리노 수의는 성유물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리레 교회는 이러한 내용을 부인하면서 순례자들과 신도들을 계속 끌어들였고 결국 토리노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토리노 수의가 가짜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를 속인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속았다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