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어린왕자

어린 왕자, 드 생텍쥐페리 동화(2)

Que sais 2020. 11. 1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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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요소로 등장하는 뱀>

학자들은 어린왕자에서 드 셍텍쥐베리가 소설의 중요 등장인물로 을 등장시켰다는 점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어린왕자가 방문한 여섯 째 별을 방문했을 때 어느 별로 가야 친구도 찾고 지혜도 얻을 수 있을지 묻는 어린 왕자에게 지리학자는 지구의 평판이 좋다며 지구 방문을 권유한다.

지리학자의 말을 믿고 지구를 찾은 어린 왕자는 사람 하나 없는 지구 모습에 적잖이 실망하지만 달빛 고리처럼 모래 속에서 꿈틀거리는 을 보고 엉겁결에 뱀과 인사를 나눈다. 뱀과 다정히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지구의 아프리카 사막에 떨어진 것을 알게 된 어린 왕자는 아무도 없는 사막의 돌 위에 홀로 앉아 하늘을 올려 보며 말한다.

 

별들이 환히 빛나는 건 언젠가 저마다 자기별을 다시 찾아낼 수 있게 하려는 건 아닌지 궁금해. 내 별을 바라봐. 바로 우리 위에 있어……그런데 참 머네.’

 

으로부터 아무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고 여기는데 어린 왕자의 이런 생각을 간파한 뱀은 어린 왕자 발목을 금팔찌처럼 휘감으며 날카로운 지혜와 무한한 능력을 암시하는 선문 선답 같은 자비심을 베푼다. 뱀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왕의 손가락보다 강하고 지혜롭기에 어린 왕자를 누구보다 더 멀리 데려갈 수 있다. 하지만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가 나온 땅으로 되돌려 보낸다.’

 

한마디로 순진하고 다른 별에서 온 어린 왕자이므로 고향이 그리우면 언제든지 그를 귀환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천하의 지혜를 갖고 있다는 뱀은 역설적으로 기독교 사회에서 일상적인 혐오의 대상이자 악의 상징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드 생텍쥐페리지혜와 자비의 화신으로 제시한다.

 

학자들은 어린 왕자의 서두에서 생텍쥐페리가 처음으로 모사한 모자 속 코끼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거대한 폭력 독일 나치를 그린 것이며, 자기보다 덩치가 큰 포악한 코끼리를 통째로 삼키는 은 순수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는 지혜로운 현인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어린 왕자에 나오는 뱀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의 선한 독침으로 어린 왕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여 육신의 허물을 벗고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처음 지구에 도착하여 뱀을 만난 순진한 어린 왕자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뱀의 지혜로운 말 속에는 죽음의 경험을 통해서만 진정한 변화와 새로운 생명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뱀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뱀을 다시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후였다. 여우를 만나 장미가 투정을 부리고 자신을 성가시게 한 것이 사랑 때문이었음을 깨닫고 장미에게 돌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뱀이 자신을 멀리 데려가 줄 수 있다고 한 말을 떠올린 것이다.

학자들의 노력은 정말로 놀랍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뱀이 무엇이냐이다. 어린 왕자서 뱀은 노란색이며 독성이 강한 뱀으로 나온다. 이런 뱀에는 이집트 코브라케이프 코브라 두 종류가 있다. 하지만 이집트 코브라는 삽화에 보이는 코브라처럼 완전히 노란색을 띠지 않는다. 그런데 케이프 코브라는 남아프리카에만 서식한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어린 왕자에 나오는 뱀은 두 종류 코브라를 합성한 드 생텍쥐페리 상상의 코브라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가 1935년 북아프리카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하여 사흘간 죽음과 사투를 벌인 조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조난 당시 사막에서 보았던 코브라에 노란색을 입혀 태양과 신성, 지혜와 풍요의 상징으로 노란 코브라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노란색은 이집트, 인도, 중국, 아즈텍 등 고대 문명사회에서는 상당히 긍정적 의미를 표현된다. 초기 불교 승려들 역시 노란 가사를 입었다고 알려진다. 반면에 그리스에서는 사랑과 조화를 의미하면서도 질투를 유발하는 색으로 이중성을 띠고 있으며,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문명에서는 배반을 암시하는 유다의 색으로 통한다.

그런데 노란색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은 자의 영혼을 환생시키는 무덤의 색이기도 하다. 수호신으로서의 뱀은 영혼을 환생시키는 노란색을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뱀은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상징한다. 기독교의 경우 뱀은 유혹과 죄악의 상징이었지만 서구 문화에서 뱀은 결코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처의 수행과 관련하여 코브라의 역할은 매우 각별하다. 깨달음 직전 깊은 명상에 든 붓다를 숲의 정령인 죽음의 신 코브라독충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냈다. 광배에 코브라를 새기는 것은 이러한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고대 문명에 보이는 이 대부분 지혜와 변화, 재생과 탈피를 상징하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뱀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그 허물을 벗어 거듭나며, 새로운 생명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인간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매 순간 죽음을 통해 지금의 나를 버리지 않으면 원래의 청정함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과 다름없다.

은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돌아갈 수 있는 지혜를 선물한다. 반면에 어른인 화자는 아직도 사회적 통념에 빠져 뱀을 경계의 대상으로만 인식하여 뱀과 대화하는 어린 왕자를 떼어내려고 한다.

그러므로 어린 왕자은 인간의 무명을 밝혀 불필요한 악을 물리치는 진실의 빛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시각도 있다. 여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왕자는 사람들이 경계의 대상으로 삼은 여우를 찾아가 친구로 맞이하는데 드 생텍쥐페리우정과 죽음의 지혜를 전하는 여우와 뱀을 통해 우리의 변화를 호소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뜻으로 니체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허물을 벗지 않은 뱀은 죽은 뱀이다.’

 

어린왕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고 하지만 만만하게 읽힐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사전에 이해하고 읽을 것을 추천한다.

 

<어린왕자 드 생텍쥐페리>

드 생텍쥐페리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성주의 아들()에서 자랐다.

귀족의 후손이었던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으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12살 때 리옹 근처에 있는 앙베리외의 시골비행장에서 작은 비행기를 졸라 탈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교 성적은 좋지 않아서 1917년에 보쉬에 고등학교와 생루이 고등학교에서 해군 사관학교에 지원하였으나 1차 필기에 불합격 했다. 그 후 파리에 있는 국립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Arts) 건축학과에 비학위과정 청강생으로 입학했으나 공부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생텍쥐페리 

19214월 프랑스 육군 이등병으로 징집되어 프랑스 육군 제2항공연대 항공정비병으로 근무했는데 자비로 민간항공기 조종훈련을 받고 민간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19221월 육군 상등병으로 진급과 동시에 군용기 조종 면허장도 취득했다. 19224월 파리에 있는 육군 사관후보생 EOS 과정에 입교하여 예비군 소위로 임관했다.

19228월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있는 육군 37항공연대 배치되었으나, 프랑스 본토 근무를 희망하여 192210월 프랑스 파리 르 부르제에 있는 육군 34항공연대로 배속되었다.

1923년 후일 유명 소설가, 시인, 언론인이 된 루이스 드 빌모린과 약혼했지만 파혼했고 이후 항공기 추락사고로 두개골이 골절되어 소위로 의병 전역했다.

전역 이후 사무원과 트럭 외판원 생활을 했고, 본격적으로 작가 수업을 한 것은 1923년부터이다. 1926년 툴루즈의 라테코에르사()에 들어가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대서양 및 남아메리카를 통과하는 우편비행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생애와 문학에 결정적인 전기로 작용한다. 당시의 비행기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으므로 많은 비행사들이 추락했다. 그의 업무는 우편비행과 함께 추락한 조종사들을 찾는 것이다.

1926<르 나비르 다르장>지에 단편 비행사(L'aviateur)를 발표했고 같은 해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취업하여,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지배 하에 있었던 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와 현 세네갈의 다카르간의 정기 항공우편 조종사로 근무했다. 1927남방우편기를 출간하여 작가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29년에는 아에로포스탈 아르헨티나 영업부장이 되었으며 과테말라 출신 문인 엔리케 고메즈 카리요의 미망인 콩수엘로와 만나 1931412일에 결혼했다. 이 해 모로코의 경험을 토대로 한 야간비행을 발표하여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그로 인해 유명인사가 되었다.

1934년에는 에어프랑스사에 입사해 사이공에서 활약했고 이듬해에는 파리-사이공 비행기록을 세우기 위해 개인 전용기를 제작하여 이집트로 출발했지만, 1230일 카이로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해 5일간 걸어가다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비행사로서의 생텍쥐페리

1938년에도 뉴욕에서 이륙해 비행하다가 과테말라에서 추락하여 두개골과 좌측 쇄골이 파열되는 등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이듬해 1939년에는 인간의 대지가 출간됐고 같은 해 6월 미국에서 바람과 모래와 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고 프랑스 아카데미프랑세즈의 소설 대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인간의 대지가 출간되는데는 친구인 앙리 기요메(Henri Guillaumet)의 사건이 계기가 됐다. 기요메도 남미 횡단 비행기를 몰다가 비행기가 추락했으나 놀랍게도 안데스 산맥에서 엿새 밤낮을 걸어와서 구조되었다. 당시 드 생텍쥐페리와 다른 친구들이 손수 비행기를 몰며 5일 동안 안데스 곳곳을 수색해 찾지 못하여 더 이상 수색을 중지했는데 다음 날, 당당하게 스스로 살아서 걸어 온 것이다.

이 일은 드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에 큰 영향을 주었고 1995년에 아이맥스 영화 사랑의 날개(Wings of Courage)로 제작되었으나 흥행은 참패였다. 이 영화의 감독은 연인, 에너미 앳 더 게이트로 알려진 장 자크 아노이며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연기한 톰 헐스가 드 생텍쥐페리로 나온다.

 

사랑의 열매

앙리 기요메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공군 조종사로 참전하여 1940년 이탈리아군에게 격추당해 38세로 전사했다. 기요메의 죽음에 생텍쥐페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기운이 감돌자 19399, 예비군 동원령으로 민항기 조종 경력을 인정받아 공군 대위로 복귀한다.

그러나 신체검사에서 예전 비행에서 당한 사고로 좌반신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전투기 조종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비행기 조종이므로 프랑스의 귀족 중에서 귀족이라는 배경을 활용, 공군 장성과 장관 등에게 청을 넣은 것이 주효하여 1939년 말부터 2/33 전투비행 중대 소속으로 위험한 고공 정찰, 촬영 임무를 수행했다. 인기 작가였고 연령도 동료 비행사들보다 높았지만, 그는 스스럼없이 동료들과 어울리며 악조건을 견뎌냈다고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