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어린왕자

어린 왕자, 드 생텍쥐페리 동화(4)

Que sais 2020. 11. 18. 13:51

youtu.be/IRGPPBW-11Q

<전투비행사로 복귀>

새 기지에서도 나이가 많아 부대의 주력기인 초현대식 항공기 록히드 P-38 일명 번개인 쌍발기를 조종하는 것을 거절당했으나 그의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과 귀족이라는 연줄을 이용해서 또 다시 출격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두 번째 출격에서 착륙하던 중 활주로에서 벗어나 기체에 심한 손상을 입히자 출격정지 처분을 받아 지상근무 명을 받았다.

계속적인 비행기 사고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겠다는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아 개인적으로 지중해 지역 연합공군사령관 이라 C. 이커 미 육군 중장을 만나 비행을 할 수 있도록 호소하여 19445, 정찰비행만 한다는 조건으로 비행중대에 다시 복귀했다.

비행대로 복귀한 후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조종과 독서 그리고 글씨기를 재개했다. 전쟁 중에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자유프랑스에 합류했음에도 친독일이냐 반독일이냐 하는 정치적 색깔 논쟁(유럽의 나치 부역자 청산:https://nudge-story.tistory.com/6)에 휘말리자 우울증에 걸렸고 이 때문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그가 폭음을 자주하여 정신적, 육체적 건강 상태를 악화일로에 있었다고 평가한다.

629일에는 출동 순번이 아님에도 자신이 잘 아는 지역 정찰이라는 이유를 들어 출동을 자원했고, 엔진 고장으로 적 점령지인 이탈리아 제노아 상공까지 넘어가 격추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19447월 그의 비행대가 코르시카 바스티아 인근 보르고 기지로 이동하여, 남프랑스 상륙작전을 위한 상륙지역 지도제작용 항공사진 촬영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체적인 지장에도 불구하고 계속 출격했고 1944731일 아침 845분에도 록히드 P-38을 타고 코르시카의 포레타 비행장에서 이륙했다. 스위스 국경 근처인 프랑스 동부지방의 그르노블-안시 지역 지도를 작성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그의 마지막이었다. 예정된 기지 귀환 시각은 오후 130분 무렵이지만 드 생텍쥐페리가 조종하는 정찰기는 기지로 돌아오지 않았다.

 

p38_라이트닝 F4비행기

세계적인 저명인사인 그의 실종소식은 국제뉴스에 헤드라인으로 올라갔다.

그 후 60여 년 동안 드 셍텍쥐페리의 실종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난무했. 정찰기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인근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전시 상황이라 추락지역에 대한 조사나 사고원인은 조사되지 못했다. 이후 공식적으로 실종은 사망으로 추정되어 1948년 전쟁 중 사망으로 인정되었다.

그의 사망이 확정적이 되자 그에게 가장 알맞게 부여된 이야기는 자기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싸운 외롭고 용감한 조종사였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프랑스의 50프랑 지폐에 등장하여 그가 얼마나 프랑스인들에게 각인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여하튼 프랑스인들은 그의 실종을 어린 왕자가 동화의 말미에서 한 말과 연관시키고 싶어 했다.

 

프랑스 50프랑 지폐

 

모든 별을 봐. 그 중의 어느 하나에서 내가 웃고 있겠지. 그러면 아저씨에게는 모든 별이 웃는 것같이 보이겠지. 결국 아저씨는 웃는 줄 아는 별을 가진 거야.’

 

<어린왕자 비행기 발견하다>

19989, 트롤 어선 로리종 호의 선장 장 클로드 비앙코프랑스 마르세유 근처 지중해의 바다에 그물을 내렸다. 얼마 후 선원들은 윈치로 그물을 감아올리면서 잡힌 물고기들을 분류하고 쓰레기들을 바다 속에 버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1등항해사 하비브 베나머는 석회화된 검은색의 침전물 덩어리를 바다로 던지려다가 무언가가 은빛으로 반짝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덩어리의 덮개를 해머로 두둘겨 속에 있는 것을 꺼냈다.

 

생텍쥐페리 비행기를 발견한 비앙코(발굴된 파편)

그가 발견한 것은 팔찌였다. 그는 곧바로 선장에 보고했다. 팔찌를 받은 비앙코 선장은 긁히고 시커멓게 변해 있는 팔찌를 세제로 문질러 보았다. 팔찌에는 예상대로 글자가 나타났다. 대문자로 ANTOINE DE SAINT-EXUPERY(앙트완 드 생텍쥐페리)와 그 옆에 CONSUELO(콩수엘로)라고 적혀 있었다. 콩수엘로는 드 생텍쥐페리의 아내 이름이다.

비앙코는 로리종 호의 그물이 20세기 문학의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인 어린 왕자의 작가 드 생텍쥐페리가 실종된 사건을 푸는 큰 열쇠를 건져 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팔찌를 발견한 로리종 호의 비앙코 선장은 다음날 마르세유에 있는 다이빙회사 사장인 앙리 제르멩 드로즈에게 팔찌를 보여주었다. 해저에 가라앉은 파편을 주로 조사하는 드로즈는 드 생텍쥐페리가 탔던 비행기의 잔해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곧바로 탐사선 미니벡스 호를 타고 로리종 호가 그물을 내렸던 해역으로 가서 수중음파탐지기, 케이블로 유도되는 로봇, 2인용 미니잠수함을 이용하여 수색에 착수했다. 그러나 100제곱킬로미터의 해저를 뒤지는 수색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드 생텍쥐페리의 비행기를 찾고 있다는 소문은 언론에서도 눈치 채고 보도에 열을 올렸다.

비행기 탐사가 답보하고 있을 때 마르세유의 전문 잠수부인 뤽 방렐이 등장한다.

그는 비앙코 선장이 팔찌를 발견했던 곳을 잠수하면서 금속 잔해가 널려 있는 것을 발견했던 기억을 떠 올렸다. 그는 자신이 금속을 발견했던 장소로 잠수하여 사진을 찍었고 미국의 전문가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367전투비행단의 P-38조종사는 그것이 P-38의 잔해임을 알려주었다. 커티스의 조언에 힘을 얻은 방렐2년 동안 파편이 널려있는 곳으로 계속 잠수해서 잔해들의 사진을 찍었다. 항공기의 잔해는 충격에 의해 폭발되었음을 증명하는 듯 파편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었다.

작업은 매우 어렵고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그는 계속 자료를 모았고 20005월 마르세유에 있는 <수중유물관리국(DRASSM)>에 자신이 발견한 것을 신고했다. 그는 당시의 자료를 검토하여 당시에 P-38기종 4대가 추락했는데 그중 3대는 이미 잔해가 확인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방렐이 발견한 파편들이야말로 드 생텍쥐페리의 항공기 파편일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 것이다.

그것을 정확하게 증명하는 방법은 파편 중에서 아직 남아있을지 모르는 비행기의 일련번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설을 증명하는 것이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는 아마추어 잠수부들이 바다에 수장된 고대 유물들을 건져서 판매하는 일이 많으므로 해저에서 인공물을 건져 올리는 것을 엄격히 규제했다. 더구나 관리들은 드 생텍쥐페리의 비행기에 대한 수색작업을 반대했다. 보드와 기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드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처럼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은 신성한 신화와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신화를 굳이 깨뜨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드 생텍쥐페리의 비행기가 발견되었다는 것이 워낙 큰 화제를 몰고 오자 <수중유물관리국>3년에 걸쳐 발굴 작업을 허락하지 않다가 2003년에 수색작업을 승인했다. 20039 드로즈는 방렐과 함께 미네벡스호를 몰고 리우섬 근처에서 항공기의 파편을 건져 올렸다. 그들은 계속하여 항공기의 10퍼센트 가량을 건져내었다. 결론은 드 생텍쥐페리가 몰았던 항공기의 고유번호 2734가 뚜렷이 찍힌 숫자를 발견한 것이다. 드 생텍쥐페리는 리우섬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지중해에 추락한 것이다.

비행기가 리오 섬 근처에 추락한 것이 밝혀지자 왜 그곳에 추락했는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많은 가설 중의 하나는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드 생텍쥐페리의 명예를 올리는데 크게 기여하므로 프랑스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답변이었다.

두 번째는 엔진이 고장 나 베테랑 조종사인 드 생텍쥐페리도 불가항력으로 추락했다는 것이고 다음은 당시 최신 비행기이므로 산소 공급 장치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고장을 일으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나 첫째 가설은 당시 독일 공군 기록에 1944731P-38기를 격추시켰다는 주장이 발견되지 않았고 발견된 파편에도 탄환구멍이 나 있지 않았다. 두 번째 가설도 부정되었다. P-38기는 엔진 하나만 온전해도 비행을 계속할 수 있는 첨단 비행기였다. 산소 공급 장치에 이상이 있다는 것도 만약 베테랑 비행사인 드 생텍쥐페리가 낮은 고도로 내려왔을 때는 숨 쉴 공기가 충분히 있었을 것이라고 제외되었다.

이후 잔해를 면밀히 검토한 학자들은 비행기가 엄청난 속도로 바다에 충돌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스테인리스 스틸이 구부러졌고 주름이 잡혀있었다. 이는 드 생텍쥐페리가 마지막 순간에도 엔진을 풀가동한 채 거의 수직강하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증거는 드 생텍쥐페리가 항상 이야기했던 말 즉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씁쓸해 했음은 물론이다.

 

<내가 격추했다>

20083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헤르만 괴링 공군 원수에게서 훈장도 받은 공군 메서슈미트 전투기 조종사였던 호르스트 리페르트(Horst Rippert)가 프랑스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드 생텍쥐페리가 타고 있던 비행기를 격추했다고 고백했다.

드 셍텍쥐페리의 비행기를 저격했다는 호르스트 리페르트는 독일의 전설적인 비행사 중 한 명이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격추한 비행기는 28대이다. 이는 독일 전투기 조종사 중 격추수가 100대가 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독일 전투기 조종사 중에서 영웅급임은 사실이다. 바로 그가 드 셍텍쥐페리의 비행기를 격추한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1944731, 리페르트는 프랑스 남부 해상을 Bf109로 프랑스 남부의 한 비행장을 출발하여 툴롱 부근 상공을 날고 있을 때 마르세유 쪽을 향하고 있는 미국산 P-38 라이트닝을 발견하고 공격했다. 그는 총알이 날개에 명중했으며 기체는 바로 바다에 떨어졌지만 기내에서는 아무도 탈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격추시킨 비행기의 조종사가 생텍쥐페리라는 것은 며칠 후에 알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안 찾아다녀도 된다. 내가 바로 드 생텍쥐페리의 비행기를 격추시킨 사람이다. 나중에야 바다에 떨어진 그 비행기에 드 생텍쥐페리가 타고 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제발 그가 아니길 바랬다. 우리 시대의 모든 젊은이들이 그러했듯이 나도 그의 책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리페르트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는 말도 나돌았고 특히 그의 부인인 콘수엘로는 팔찌가 가짜라고까지 말했다. 그가 추락한 지점이 당시 알려진 곳에서 2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호르스트 리페르트

그러나 추후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리페르트의 주장이 프랑스인으로서는 위안을 받기에 충분했다. P-38의 우측엔진에 피탄으로 인한 윤활유가 빠져나온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리페르트의 말처럼 기습공격을 받아 엔진 하나가 망가진 상태로 그대로 추락해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드 생텍쥐페리4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몰다가 전사했다는 것은 그의 명예도 올리고 프랑스인들의 자존심도 높여주었다 볼 수 있다. 반면에 호르스트 리페르트자신이 좋아하던 작가를 적군으로 만나 쏘아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한평생을 살다가 2013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보다 앞서 드 생텍쥐페리의 명성을 높여 준 일도 있었다.

타마라 미하일로프나 스미르노바1975112일에 소행성대에서 발견한 소행성 ‘1975VW3’‘2578생텍쥐페리로 명명된 것이다. 한편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에서 살고 있다. B-612는 실제로 존재하는 행성으로 소행성 46610베시두즈로 불린다.

 

참고문헌

어린왕자의 마지막 비행, 루돌프 첼민스키, 리더스다이제스트, 20055

어린 왕자 우주적 동경과 인간적 진실의 신화, 우찬제, 지식백과, 2006.05.12.

생텍쥐페리, 표정훈, 네이버캐스트, 지식백과, 2009.04.07.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나무위키

어린왕자, 나무위키

호르스트 리페르트, 나무위키

학자들은 어린 왕자 이야기11 : 뱀의 지혜와 자비심, amrrta, boulebard, 201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