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호는 침몰하지 않았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이 사상 최고의 흥행에 성공하였지만 타이타닉호의 처녀 항해는 남다른 구설수에 올라간 것으로도 유명하다. 「타이타닉」의 실존 인물인 로즈와 약혼자 칼 헉슬리, 그녀의 어머니 루스(프란세스 피셔)가 사용한 방은 실제 미국의 유명한 재벌 J.P. 모건(Morgan)에 의해 예약되었다.
모건은 타이타닉호를 건설한 화이트스타사의 실질적인 대주주로도 볼 수 있는데 타이타닉호가 출항 직전 예약을 취소하였다. 타이타닉호는 당대에 누구라도 타보고 싶어했고 특히 처녀 항해에 동승하는 것은 대단한 기회인데도 막상 화이트스타사 이스메이 사장의 부인과 아이들도 엉뚱한 곳에서 여행하고 있었다.
당대의 관념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타이타닉이 침몰되자마자부터 구설수를 타기도 했는데 근래에 강력히 주장되는 것은 타이타닉호의 참사가 의도된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이 내용은 타이타닉호가 침몰되자마자 부터 나왔던 내용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가드너는 1996년 『타이타닉, 절대로 침몰하지 않은 배』라는 책에서 타이타닉의 참사는 이 배를 만든 화이트스타사의 최고 경영진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꾸민 사기극이라는 음모론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아일랜드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당시에 이 황금의 대서양 횡단 노선을 놓고 화이트스타와 기너드라는 두 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화이트스타사는 기선을 잡기 위해 3대의 대형선박을 계획했다. 올림픽호, 타이타닉호, 브리타닉호다.
이들 세 선박은 규모와 크기가 똑같아 전문가들도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인데 올림픽호가 1911년 6월 먼저 진수했다. 그런데 진수된 지 3개월 후인 1911년 9월, 영국 군함인 호크호가 올림픽호의 측면을 들이받아 커다란 피해를 입혔다. 다행하게도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승객들은 다른 배로 옮겨 타야 했고 올림픽호는 2주 동안 잠수부들이 수면 밑에서 긴급 수리를 마친 끝에 영국의 벨파스트 항 즉 타이타닉호가 건설 중인 곳으로 예인될 수 있었다.
사고 진상은 해군 조타수가 방향키를 잘못 돌려 발생한 사고였지만 군 당국은 모든 책임을 화이트스타에 돌렸다. 법원도 대영제국이 자랑하는 군의 실수를 덮고 사고 책임을 올림픽호에게 돌려 화이트스타사는 군함 수리비까지 배상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화이트스타라인 최대주주이자 미국 금융 사업가 J.P 모건은 문제를 빨리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화이트스타사에서는 긴급 조치를 취해 사고 5개월 만에 다시 출항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문제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올림픽호의 파손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이다. 갑판의 철판이 모두 파손된 것은 물론 크랭크도 파손이 되었다. 문제는 용골이 휘어져 올림픽호가 항해할 때 좌현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갑판의 철판이나 크랭크는 수선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용골이 휘어진 것은 문제였다. 한마디로 용골이 휘어진 것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올림픽호를 새로 건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시간과 자금이 들어간다고 지적되었다.
둘째는 이유야 어떻든 보험회사로부터 올림픽호 파손에 대한 보험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당장 자금에 문제가 생겼다. 올릭픽호를 수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타이타닉호를 계속 건조할 재원도 부족해진 것이다.
당대에 해상보험은 매우 중요한 무기였는데 때때로 보험만 잘 들면 배가 침몰할 때 모든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거의 완파나 마찬가지임에도 충돌의 책임이 올림픽호로 돌아갔기 때문에 보험 자체도 취소된 상황이었다.
이 때 화이트스타의 이스메이 사장이 묘안을 짜냈다. 타이타닉과 올림픽호를 바꿔치기 하자는 것이다. 즉 타이타닉호로 위장한 올림픽호를 침몰시키면 타이타닉호가 가입했던 보험으로부터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는 묘안이다.
이와 같이 무보험 상태였던 올림픽호를 처리하려는 방법은 간단하다.
올림픽호가 용골이 휘어져 있으므로 한 두 번의 항해는 그럭저럭 가능하므로 일단 올림픽호를 타이타닉호로 둔갑시킨 뒤 일부러 침몰사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실무적인 계획도 수립되었다. 다소 어지러운 이야기지만 올림픽호와 타이타닉은 자매선이므로 두 배는 외형, 크기, 구조, 인테리어 등은 물론 집기들도 기본적으로 같았다. 그러므로 올림픽호를 타이타닉호와 같은 색으로 도색작업을 했다. 또한 내부 수리로 들어가 일부 인테리어에서 올림픽호를 타이타닉호보다 화려하게 만들었다.
다소 비상적인 이야기에 곧바로 질문이 나온다.
화이트스타사에서 이런 음모를 꾸미더라도 실제 선박을 바꿔치기 하기 위해서는 많은 현장 인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전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뇌물을 제공한다면 현대와 같이 정보 노출이 심하지 않은 1900년대 초이므로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설명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타닉호와 올림픽호는 똑같은 구조를 갖고 있으므로 도색작업을 한 후 올림픽호 대신 타이타닉호라는 명찰만 붙이면 전문가가 아니면 이를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커다란 선박인데다 모든 노동자들이 용골이 휘었다는 것을 알 수 없으므로 몇몇 담당자의 입만 봉쇄하면 된다는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올림픽호의 용골이 휘어져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타이타닉호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준공허가를 받을 수 있느냐이다. 이 문제가 추후에 거론되었지만 당대에 타이타닉호의 출항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었으므로 예상외로 빨리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조사원들이 타이타닉호를 철저하게 검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 당대에 이런 음모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여하튼 화이트스타사는 건조 중이던 타이타닉호가 완성되었다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지만 실제로는 타이타닉호로 처녀 출항한 배는 타이타닉이 아니라 대형 손상을 입은 올림픽호라는 것이 음모론의 핵심이다. 타이타닉호의 음모설의 배경에는 스미스 선장이 등장한다.
스미스 선장은 그의 많은 경력 중에서 두 번의 사고를 내어 눈총을 받고 있었는데 영국의 순양함 호크호와 해상에서 충돌한 올림픽호 선장도 스미스였다. 당시의 관례로 보면 스미스 선장은 해임되거나 적어도 대기 발령을 받아야 했지만 스미스 선장은 은퇴라는 명분을 포장하여 타이타닉 첫 출항의 키를 잡도록 했다는 것이다.
타이타닉호가 첫 출항할 때 승선하기로 했던 J. P. 모건은 출항 몇 시간 전에 취소했고 그의 지인들인 50여명 역시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 문제에 관한 J. P. 모건이 사전이 이 음모를 알았다는 정황은 없다.
단지 화이트스타사의 일부 간부진들이 침몰 사고가 날 것을 미리 알고 회사의 최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조취를 취했다는 것이다. 특히 처녀 항해하는 타이타닉호의 표를 경쟁적으로 구하려고 혈안이었는데 막상 출항할 때의 승객은 정원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일부러 인원을 늘리지 않으려는 묵언의 약속이 있었다는 뜻이다.
또 타이타닉호가 출발하기 전부터 다소 문제가 있었다. 배가 출발하기 전에 화물 창고에서 화재가 일어났는데 이를 제어하기 어렵자 400톤의 석탄으로 덮었다. 이것은 타이타닉호를 언제든지 침몰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었다.
타이타닉이 항해도중 안전한 길을 두고 위험한 지름길을 선택해 항해했다는 것도 지적사항이다. 빙산과의 충돌사고가 잦아 선박들이 우회하던 뉴 펀들랜드 해역을 반드시 거쳐 갈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또한 빙산이 있다는 보고가 있음에도 전속력으로 달렸다고 지적한다. 무리하게 출항을 강행한 이유가 바로 빙산에라도 부딛혀 침몰한다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스미스 선장과 동승한 이스메이 사장 등 극소수인만이 알고 있으므로 고의적으로 빙산에 부딪힌지에 대해서는 미궁으로 빠질 수 있지만 스미스 선장이 빙산이 있는데도 전속력으로 항해를 지시한 자체는 옳았다고 판단한다. 선박이 빙산 구역으로 들어간다면 오히려 전속을 다해 빠져나오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스미스 선장이 사전에 타이타닉을 침몰시킬 생각은 있었다하더라도 적어도 빙산과 고의적으로 충돌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참고적으로 이스메이는 구명보트를 타고 살아남았다.
그런데 막상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하자 스미스 선장의 행동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는 타이타닉호로 하여금 전속력으로 항진을 명령한 후 숙소로 들어간다고 하면서 숙소로 가지 않고 운항지휘실로 갔다.
이 사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운항지휘실에서는 빙산이 지근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타이타닉이 빙산과 충돌하기 10분 전에도 안개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당시의 당직은 안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정작 타이타닉호가 충돌한 이후의 스미스 선장이 보인 태도다. 그는 타이타닉호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40분 동안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설이 있는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내용은 스미스 선장이 지근거리에 있다고 생각한 캘리포니아호의 로드 선장이 곧바로 구조에 나설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로드 선장과 스미스 선장이 서로 내락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문제는 서로의 사인이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타이타닉은 빙산과 충돌한 후 조난 신호를 하늘로 18〜22발을 발사했다. 이 신호를 캘리포니아호에서 포착했는데 로드 선장은 신호탄의 색깔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현장 직원은 번번히 하얀색이라고 대답했다. 알려지기로는 로드 선장과 스미스 선장 간에 약속된 비상사태 신호는 노란색과 붉은색 등 유색이었다.
그러므로 로드 선장은 신호탄의 색깔이 흰색이므로 비상사태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곧바로 출동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두 선장이 철떡같이 맺은 약정이지만 타이타닉의 선원이 이런 내용을 모르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유색신호탄을 발사하지 않은 것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스미스 선장은 캘리포니아 호에서 신호탄만 발사하면 곧바로 구조하러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캘리포니아는 그가 생각하기보다 먼 곳에 있었고 또 신호도 정확하지 않았다. 당초 생각한 것에서 차질이 나자 곧바로 비상탈출 작전에 들어갔는데 결론은 타이타닉의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타이타닉의 결론은 비극적이지만 음모설의 주인공인 이스메이 사장과 스미스 선장 등의 커다란 계획은 큰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선장을 포함하여 음모설에 가담했을 상당수의 사람들이 타이타닉호 침몰로 사망했지만 그들이 꿈꾸던 보험료는 차질없이 지급되었다. 당시 타이타닉호의 건설비는 총 1,000만 달러였는데 이럴 경우 정상적인 보험료는 약 750만 달러다. 그런데 로이드보험회사에서 타이타닉이 침몰한 5일 후에 지불한 보험금은 1,250만 달러였다.
이와 같이 보험료가 높아진 것은 화이트스타사가 당대로서는 다소 예외적으로 승객에 대한 보험을 사전에 들어두었기 때문이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고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타이타닉 침몰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진상위원회위원장인 머지 경은 타이타닉호의 불찰을 덮는데 일관했다. 당시에도 음모론이 제기되었는데 머지 경은 아예 관심도 주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별로 주목하지 않았는데 타이타닉호와 올림픽호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데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의 극적인 장면들이 큰 화제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추후에 머지 경에게 왜 그렇게 진상규명에 소극적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에 영국의 자랑인 화이트스타사의 파산을 막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당시에도 화이트스타사의 대주주는 미국의 재벌인 J. P. 모건이었지만 화이트스타사가 파산한다면 모건이 화이트스타사를 완전하게 인수할 수 있었다. 그런 사태는 대영제국으로서 당연히 막아야 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화이트스타사가 파산하면 20,000 명의 실업자가 생길 수 있다는 말에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했다. 화이트스타사가 파산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집권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100여 년 전에 일어난 이와 같은 음모론은 진상이 규명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근래 매우 놀라운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주장이다.
심해에 수장되어 있는 타이타닉호를 발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밸러드가 바다 속에 수장된 타이타닉호를 탐색하면서 수중에 있는 우현 프로텔라 401번에 강철리벳으로 새긴 글자 중에 ‘M, P’가 보인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글자는 ’Olympic'을 의미한다.
타이타닉(Titanic)호라면 'M'자와 ‘P'자가 새겨질리는 없는 일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타이타닉호 선미 부분에 세로축 격벽이 있는데 이는 원래 타이타닉호와 올림픽호를 건조할 때에 모두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격벽은 용골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임시방편으로 수리한 것을 의미한다. 올림픽호는 군함 요크호와의 충돌로 용골이 파괴되어 수리가 필요했지만 타이타닉호는 신조된 선박이므로 덧댐이 필요하지 않았다. 타이타닉호와 올림피아호가 바뀌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를 찾아내었다는 설명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후 용골이 파괴되어 운항조차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이 판단했던 올림픽호는 23년간 바다를 누비며 세계1차 대전 당시 해상수송선으로도 활약했다. 이것이야말로 올림픽호와 타이타닉호가 뒤바뀌었다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라는 주장이다. 용골이 파손된 상태에서 23년간 바다를 누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타이타닉(S. S. Titanic)호의 마지막 비밀」, 로버트 개넌, 리더스다이제스트, 1995년 10월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비극」, 김정흠, 뉴턴, 2001년 7월
「타이타닉 러브스토리 진짜… 침몰 당시 생존한 칸디씨 일기 발견」, 주성하, 동아일보, 2006.4.17.
「타이타닉 의도된 참사」, 스포츠조선, 2006.5.29.
「타이타닉 침몰, 빙산이 아닌 조타수 실수 탓」, 전병근, 조선일보, 2010.09.25.
「타이타닉호 아닌 올림픽호 침몰 주장…진실은?」, 박귀임, TV Report, 2013.01.13.
「충격진실 타이타닉 침몰의 진실」, HD다큐스페셜, 2013.
『바다의 공학』, 이종화, 현대과학신서, 1980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1)』, 찰스 패너티, 자작나무, 1997
『생각 1g만으로도 유쾌한 화학 이야기』, 레프 G. 블라소프외, 도솔, 2002
『위대한 패배자』, 볼프 슈나이더, 을유문화사, 2005
『세계 역사의 미스터리』, 양지에, 북공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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