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청동 거상

로도스섬의 청동거상(2)

Que sais 2021. 1. 2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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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되지 않은 청동거상

로도스 섬의 청동상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거상이 실제로 어디에 설치되었는가 조차 확실하지 않아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이 거상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는 것은 우선 거상이 건설된 지 겨우 66년 후에 무릎 부분이 파괴되어 전복됐기 때문이다.

동상의 제작은 약 기원전 292부터 착수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로도스 항구의 입구 부근에 높이 15미터, 지름 18미터의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조 받침대를 설치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받침대가 항구의 방파제에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여하튼 신상의 크기는 약 33m, 외장은 드미트리오스가 버리고 간 군수품을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신상의 하부공사에 드미트리오스가 갖고 온 공성탑을 이용하였으며 12년 후 거상이 완성되자 다음과 같은 헌정시를 헌정했다.

 

오 태양이시여, 로도스의 사람들이 당신에게 이 신상을 바칩니다. 올림포스의 신들께서는 전쟁의 파도를 가라앉혀 주셨고, 적들을 물리쳐 주셨으며, 우리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안겨주셨나이다. 바다 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자유와 독립의 횃불이 타오르나이다. 위대한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이 바다와 땅을 통합했나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신상은 기원전 224 로도스에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났고, 수많은 관공서, 주택, 신전들이 파괴되었다. 이 당시 거상의 양 무릎 부분이 무너지며 땅 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이집트의 파라오인 프톨레마이오스 3는 로도스의 거상이 파괴되었다고하자 신상을 복구토록했다. 그러자 당사자인 로도스인들이 곧바로 청동상을 재건하기 위해 델피의 신전청동상을 재건해야 하는가라는 질의를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델포이 신전에서의 신탁은 로도스인들이 헬리오스를 진노케 했다'라며 청동상 복원에 대해 부정적인 답을 주었다. 델피 신탁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답변에 로도스인들은 신탁의 말을 존중하여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현장에 부셔진 그대로 방치했다.

 

<짜고치는 고스톱 신탁>

잠시 서양 고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신탁에 대해 알아본다.

고대사를 읽어보면 중요한 사건 때마다 신전에서 신의 뜻을 물어보는 신탁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을 전쟁은 물론 공적이든 사적인 일이든 간에 어떤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할 경우에는 꼭 신탁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신탁이 자신들의 뜻과 다르게 나왔을 경우 거의 모두 신탁의 의견을 존중하여 자신의 뜻을 철회했다. 신탁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주장을 폈다가 실패하면 이를 당연한 결과라고 여겼다.

로도스 섬의 경우 엄청난 노력과 자금을 들여 거상을 건립하였는데도 신탁에서 거상을 재건하지 말라는 단 한 마디에 재건을 포기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러한 사건들은 신탁이 고대 세계의 정신적인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신탁은 이집트에 있는 아몬 신전을 비롯하여 여러 국가에서 성행하였지만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나라는 그리스였다. 신탁이 고대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건을 예로 알아보자.

기원전 480,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가 15만 명의 병력과 400500척의 함선을 동원하여 그리스를 침략했다. 반면에 헤로도토스는 보병 170, 기병 8, 함선 1,200척 및 근로인원을 포함하여 500만이라고 기록했다. 여하튼 페르시아 대군이 파죽지세로 그리스 본토를 휩쓸면서 들어왔을 때 아테네인들은 델피 신전의 신탁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신탁은 놀랍게도 강력한 적과 싸우지 말고 도망가라는 대답을 주었다. 신탁의 대답은 아테네로 하여금 자신들이 지켜온 도시를 포기하라는 것을 뜻하므로 아테네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결국 아테네인들은 또다시 델피 신전으로 가서 보다 더 믿음직한 신탁을 내려달라고 한다. 아테네인들의 간청을 받아들인 델피 신탁소는 이번에는 무조건 도망가라는 말을 철회하고 나무로 된 성벽에 의존하라고 했다. 아테네인들은 상반된 두 가지 신탁 중에서 후자를 택했고 데미스토클레스의 주장대로 해군에 그리스의 운명을 걸고 결국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한다.

이렇게 똑같은 사안에 대해 상반된 신탁이 나오게 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신탁은 페르시아에서 사주한 것이고 두 번째 신탁은 아테네의 데미스토클레스가 비밀리에 신탁소와 교섭하여 일을 꾸민 것이다. 이것은 신탁이 외부의 압력에 의해 왜곡될 수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강력한 국가의 왕일수록 신탁을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스 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는 스파르타의 경우 자신의 경쟁자들에게 불리한 신탁을 계속 퍼뜨려 기세를 꺾었던 것이 그 좋은 예다. 그러므로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델피 신전이 각 도시들 간의 심리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유명한 로마의 키케로는 다음과 같이 혹평했다.

 

신탁이란 신탁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뢰자와 이들의 구미에 맞추어 주려는 승려들이 짜고서 벌이는 사기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신탁이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가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포키스의 예에서 알 수 있다.

기원전 357년 델피 국경의 작은 도시국가 포키스는 짧은 기간 동안 정치적 모험에 뛰어 든다. 포키스인들은 델피의 승려들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신탁을 내려주지 않자 신탁소를 점령한다. 델피 신전을 점령한 포키스가 신탁을 조작하기 시작하자 포키스를 상대로 전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연합하여 성전(sacred war)을 선포했다. 그러나 포키스인들은 델피의 금고를 이용해 많은 용병들을 고용하여 오히려 도시국가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이것이 그리스를 호시탐탐 노리던 마케도니아의 필립 2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필립 2세는 종교전쟁이라는 명분으로 포키스를 점령하는데 필립 2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로 이후 알렉산더가 세계를 제패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로도스 거상이 무너지자 델피의 신탁소를 찾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델피 신전의 신탁은 거상의 복원에 냉담하였다. 어떤 이유로 로도스 섬의 거상을 복원하지 말라고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거상에 너무 많은 예산이 투입된 것에 불만을 가진 로도스인들이 델피 신전에 뇌물을 주고 파괴된 신상을 재건하지 말라는 신탁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거상의 모습>

학자들이 가장 놀라는 것은 거상의 형태가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기록도 전혀 없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이 현재 익히 알고 있는, 두 발을 항만에 걸치고 있고 그 사이로 배가 지나가는 모습은 중세시대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1395년에 한 이탈리아 방문자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신상의 오른쪽 발이 위치하던 곳에 현재 교회가 있고, 당시 신상은 땅과 바다 위에 존재했다.'

 

이 글을 근거로 거상이 두 발을 벌리고 그 사이로 배가 드나들었다고 상상했다는 뜻인데 여하튼 이런 이미지가 굳어져 수없이 많은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였고,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셰익스피어가 쓴 글이다.

 

사람아, 왜 세계를 이렇게 좁게 보느냐,

마치 거상 아래에서, 우리와 같은 사소한 사람들은,

그의 거대한 다리 밑을 지나며,

불명예스러운 무덤에 누운 우리를 발견할 뿐이다.‘

 

이런 신화적인 이미지가 사람들의 인식 속에 각인되었으나,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동상은 이러한 형태를 띠지 않았다고 단언해서 말한다.

우선 만약 동상이 실제로 항구 입구의 한쪽 끝과 한쪽 끝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면, 동상을 세우는 동안 항구의 입구는 완전히 통제되어야하는데 무역을 위주로 하는 로도스에서 항구를 폐쇄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로도스인들이 이런 피해를 감수했을리 없다는 것이다.

가장 큰 지적은 동상의 두 다리 사이로 배가 지나갈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거상의 높이가 90120미터는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각종 기록에 의하면 거상의 높이33미터에서 34미터다.

그러므로 거상의 두 다리 사이로 배가 다닌다는 것은 모두 상상의 작품일 뿐이다. 하지만 로도스 섬의 거상이 배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다는 환상을 줄만큼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준 것만은 사실이다.

더불어 이런 형태의 거상을 제작하기 위해 청동판을 쌓아 올리는 것은 당시의 기술로는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우선 이런 형태로 청동 거상이 만들어졌다는 동안에 이미 거상의 다리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이 거상이 횃불을 들고 있었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 이 역시 당대의 기술이 이를 뒷받침하기 어려운데다 그런 언급이 아예 없다. 반면에 로도스의 기록에는 마치 사람이 태양으로부터 눈을 가리는 듯한 자세가 있다는 것을 볼 때 이런 형태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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