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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9) : 루시와 아르디(2)

Que sais 2021. 2. 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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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인류 연구>

고인류학자들의 발견은 계속 이어졌다.

미국 피츠버그의 앨리게니병원 캐럴 갈릭 박사2000년 케냐의 루케이노 지층에서 발견된 원시인류 화석오로린 투게넨시스의 X선 단층 촬영 분석으로 루시보다 무려 300만 년이나 오랜 시기부터 두발로 걸었다고 발표했다.

갈릭 박사는 원시 인류의 대퇴골 화석에 온전한 채로 남아있는 엉치뼈와의 접합부 부분을 컴퓨터 단층 촬영한 결과 구형으로 생긴 이 접합부를 지탱하는 연결 부위의 상단이 하단보다 가는 것을 발견하는 등 인류의 직립보행이 루시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의 로버트 에카트 교수행동의 변화가 구조의 변화에 앞서 나타난다면서 오로린 투게넨시스가 지금까지의 추정보다 훨씬 일찍 직립 보행을 한 매우 확고한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발표는 후속 자료 부족으로 학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 했지만, 학자들을 흥분시키는 발견은 2002에 이루어졌다.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조상으로 추정되는 700만 년 전 고인류의 화석이 아프리카 중부의 차드 공화국에서 발견된 것이다.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 일명 현지어로 삶의 희망으로 불리는 투마이(Toumai)로 이 원인의 두개골은 침팬지와 크기가 비슷하다. 성인 남자와 유사한 얼굴을 지녔는데 프랑스 푸아티에 대학 미셸 브뤼네 교수가 투마이의 두개골 화석X선과 CT로 단층 촬영해 컴퓨터로 재생했다.

그런데 브뤼네 교수의 발표는 곧바로 인류 선조라는 주장과 원시 침팬지의 일종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나뉘어졌다. 그러자 브뤼네 교수는 컴퓨터 3차원 촬영으로 재구성된 투마이 화석을 침팬지와 고릴라 등과 비교하여 투마이는 침팬지나 고릴라가 아닌 원시인류(호미니드, Hominid)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머리뼈의 방향으로 추정할 때 투마이 화석의 주인공은 직립보행도 가능했던 것 같다고 발표했다.

스위스 인류학자 크리스토퍼 졸릭코퍼 박사는 투마이 화석의 두개골 각도와 뇌 용량 등을 근거로 유인원이 아니라 분명한 호미니드라고 확신했다.

반면 미국 미시간대 밀포드 울포프 교수는 키가 120센티미터 정도로 지나치게 작고 척추와 머리 연결 상태를 보여주는 목근육 흔적을 살펴볼 때 직립보행을 했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투마이 역시 직립 보행했다는 확실한 증거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투마이의 중요성투마이가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진화 과정인 잃어버린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투마이의 발견으로 일반적으로 500700만 년 전에 인류가 원숭이에서 분화했다는 기존 학설과는 달리 인류와 원숭이의 분화 시기최소한 700만 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성과다.

프랑스 프와티에 대학의 미셀 브뤼네 교수에 의하면 투마이가 발견된 지역은 인류가 기원했을 것이라고 추정돼 온 동남부 아프리카에서 1,6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과거의 학설로는 인류의 조상인 고인류동부 아프리카의 초원에서만 살았는데 투마이의 발견으로 기존 의 학설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출되기도 했다. 고인류학은 앞으로도 계속 보완되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속되는 인류 연구>

1994년과 199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워터스란드대학의 연구팀은 요하네스버그 북서쪽의 스터크폰테인 동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남아공 유인원1.22미터의 키를 갖고 있는데 두개골은 물론 정강이 뼈전신 뼈가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이번에 발견된 유인원이 직립 보행능력을 가졌으며 나무를 기어오를 수 있는 큰 앞발가락을 갖고 있어 오늘날의 침팬지와 매우 유사한 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지금까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과일과 나뭇잎을 주로 따먹고 살았다고 생각해왔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숲 속 환경에 적응하면서 오늘날의 침팬지와 매우 유사한 채식주의자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럿거스대 연구팀은 이들의 치아방사성동위원소로 조사한 결과 이 인류의 조상이 식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어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학자들은 루시가 곧바로 현대인류로 진화한 것은 아니라고 추정한다. 이들은 대략 300만 년 전 여러 종으로 갈라진 후 한 동안 경쟁하며 살았다고 한다. 여하튼 이들 중 몇 차례의 진화 가지치기 끝에 살아남아 현대 인류의 중간 조상의 역할을 한 것이 약 180만 년 전경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

2001에티오피아 사막지역에서도 고인류의 뼈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뼈에 섞여 있던 화산재 속에 갇혀 있던 아르곤 가스연대 측정한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초기의 인류보다 약 100만 년가량 앞선 52058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었다. 연구팀은 어금니가 발달하고 앞니가 작은 것으로 미뤄 이 화석의 주인공들이 침팬지와 달리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섭취했으며 발 뼈의 형태로 보아 직립 보행을 했음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계통도>

화석 발견과 DNA 연구잃어버린 연결고리를 포함하는 인간의 계통도는 계속 수정되었다. 이는 인간류가 생각보다 다양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아프리카에서 고인류 화석 발굴에 치중하고 있는데 같은 아프리카지역임에도 영장류의 분포서식지가 다르다는데 상당한 의문점을 품었다.

196070년대까지 20년 동안 동아프리카에서 2,000점이 넘는 호미니드 화석과 수십만 점의 동물 화석이 발견됐다. 그러나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침팬지나 고릴라 화석은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침팬지와 고릴라가 인간과 유사한 DNA를 갖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는 큰 수수께끼였다.

1985루시의 공동 발견자인 프랑스의 이브 코팡 박사가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가설을 제시했다. 8001000만 년 전, 대서양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아프리카 적도 지역은 열대우림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곳은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이 살던 보금자리였으나 지각판의 운동으로 화산들이 폭발하면서 지형이 바뀌고, 띠 모양의 낮은 땅인 동아프리카지구대(地溝帶)가 만들어지면서 아프리카 동부가 둘로 쪼개졌다. 서쪽 테두리와 경계를 이루는 땅의 어깨 부분이 밀려 올라가 높은 산맥이 생겨났다. 높은 산맥과 낮은 계곡 바닥이 기류의 순환을 방해하면서, 서부 열곡 서쪽 사면에 비구름이 갇혔다. 이로 인해 기후가 바뀌어 열곡 서쪽 사면은 비가 많고 습한 지역이 됐지만, 동쪽 사면의 땅은 덥고 건조해졌다는 것이다.

침팬지를 비롯한 유인원의 조상들은 열곡대 서쪽의 숲에 머물렀다. 이에 반해 인간의 조상들은 동쪽 열곡의 건조하고 개방된 환경으로 진출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인간의 조상은 더욱 넓은 범위의 서식지에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이 더 높았으며, 후대 호미니드들의 적응능력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코팡 박사의 가설침팬지와 인간이 유전학적으로 그렇게 가까우면서도조상들의 화석이 결코 같은 장소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물론 이들 차이성에 대한 약간의 이론이 제시된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의 미셸 브뤼네 박사동아프리카지구대의 서쪽인 차드의 주라브 사막에서 300350만 년 전 호숫가에 살았던 초기 인류의 턱뼈를 발견했다. 이것을 아벨의 턱뼈라 하는데 이곳은 아르디가 발견된 곳으로부터 2,500떨어진 곳이다.

이 작은 턱뼈 하나는 350만 년 전에 호미니드가 아프리카 동부에서 서부에 걸쳐 존재했음이 입증됐다. 그러나 코팡의 가설이 잘못됐다는 증거가 아니라는데 묘미가 있다. 아벨아르디보다 100만 년이나 젊기 때문이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요람이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마디로 고인류를 아프리카의 상당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가성성을 보여준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계통도가 앞으로 크게 변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