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한국인과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34) : 다지역과 아프리카 기원설의 충돌(5)

Que sais 2021. 2. 8. 13:36

youtu.be/XKX5E9SfcHw

<고고학 증거로 반격>

다지역기원설의 지지자들도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고고학적인 증거. 아프리카 가설에 대해 가장 큰 반론을 제기하며 다지역기원설을 강력히 지지하는 측은 화석인류학자들이다. 특히 중국과 북한을 포함한 동양에서는 다지역기원설기본으로 삼는다.

우선 북경원인의 후두골에는 작은 화산형 돌기가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황색인종(몽골로이드)의 특징과 같다. 또 숟가락 모양의 상문치(上門齒)를 갖고 있는데 이 점도 몽골로이드의 특징 중 하나로 북경원인이 몽골로이드의 선조라는 생각이다. 물론 북경원인 등이 몽골로이드의 직접 선조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설명도 많이 있지만 중국인들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양보하지 않는다.

1989년과 1990중국의 운현 청곡에서 운현인이라 불리는 100만 년 전의 고인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북경원인보다 무려 40만 년을 더 올라간다. 1990년에 또 다른 완전한 두개골이 발견되자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현대 인간의 조상이 근래에 아프리카에서 출발했다는 아프리카가설의 이론이 위태로워졌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또한 최근 남부 중국에서 200만 년 전 초기 인류의 석기를 발견했고 그 조상들이 원인(猿人)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다지역기원설을 지지해주는 자료로 제시한다.

20067일본의 국립과학박물관연구팀은 아시아인이 종전의 학설에 비해 45만년 전인 180만 년 전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과거 발견된 자바원인의 치아와 턱 화석 100여개의 특징을 아프리카 원인(原人)의 화석비교한 결과 이같이 분석됐다고 주장했다.

이들 자바원인의 화석은 치아가 크고 턱이 단단해 180만 년 전 아프리카원인에서 나타난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원인은 진화하면서 치아가 작아졌는데 연구팀은 180만 년 경 아프리카를 떠나 최초의 여행길에 오르면서 이때 벌써 아시아 동부지역에 당도했다는 것으로 또 한 번 다지역기원설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1986요동(遼東) 반도 영구(營口) 서남쪽, 발해만에서 30떨어진 작은 섬 같은 산에서 발굴한 금우산인(金牛山人)28만 년 전 2022살의 젊은 여인으로 추정되었는데 중국금오산인호모에렉투스와 호모사피엔스의 사이, 초기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는 과도기적 단계의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중국인들이 아프리카 가설을 반박하는 것은 동양에 호모에렉투스 이래 살고 있던 북경원인 등의 후손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네안데르탈인 또는 크로마뇽인유럽인의 시조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아프리카를 나와 현재의 동양인 선조가 되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한 동부아시아와 북부, 북미의 복합적인 석기 제작 기술 등을 분석해볼 때, 수 만 또는 수십만 년 동안 복합적인 기술이 고대 베링해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베링기아(Beringia) 인류발생설도 제시되었다. 가장 오래된 인류 공동체베링해를 사이에 두고 아메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하나로 묶는 문화공동체로 이루었다는 가설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고고학적으로 한 지역의 석기문화지속적으로 발달 전개되었다는 증거가 제시된다. 한국에서는 중기 구석기시대에 석영을 석재로 사용한 자갈 돌석기 전통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자갈 돌석기 전통은 하나의 계통성을 가지고 후기 구석기시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베링해 문화권, 알타이 지역, 우리나라의 문화권적 계통성을 통해서 볼 때 다지역기원설이 힘을 받는다.

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전곡리유적에 살았던 사람들의 연대가 35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전곡리 유적의 연대는 그동안 구석기 중에서도 후기에 해당하는 몇 만 년 전으로 설명되었지만 일본의 단원철(檀原撤) 박사피션트랙과 포타슘-르곤법을 사용하여 전곡리에서 가장 오래된 석기출토층의 연대30만 년 전으로 추정했다. 전곡에서 살던 구석기시대인들이 특별히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아프리카에서 100여만 년 전에 출발호모에렉투스가 각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진화해 나갔다는 다지역기원설을 증명해주는 증거로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가설이든 다지역기원설이든 100만 년보다 훨씬 전에 호모에렉투스아프리카를 떠났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가설20여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뒤늦게 태어난 소위 이브의 후손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기존에 각 지역에 정착했던 호모에렉투스의 후손들을 대체 즉 멸종시키새로운 인종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에 다지역기원설은 어느 지역에 새로운 다른 집단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이동해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기존에 살고 있던 호모에렉투스의 후손들을 모두 몰아내고 새로운 강자로 군림한 것이 아니라, 기존 집단에 포함되어 그 지역의 특성에 알맞은 인종으로 계속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첨단 유전자 기법으로 무장한 아프리카 가설에도 불구하고 다지역기원설이 힘을 받는 이유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인구 밀도와 조직성이 부족하여 기존 세력을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 내내 인구밀도는 놀라울 정도로 낮았는데 일반적으로 1제곱킬로미터 당 1인 이하로 추정한다. 또한 각 집단들은 서로 하루 이상의 거리를 두고 생활한데다가 구성원은 최대한 50100 정도였다. 한 집단에서 50100명이 넘으면 그들 중 일부가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러므로 정착된 한 집단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란 소수인에 불과하다. 이들이 한 집단에 들어와서 생활할 수는 있지만 다수의 집단이 현대 개념처럼 쳐들어와 과거의 집단을 완전히 절멸시키고 자신들의 영역으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침몰하는 아프리카 가설>

아프리카가설이 일부 유전자를 신봉하는 학자들을 제외하고 생각보다 큰 반향을 얻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점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가설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중국이 준비했다. 우선 알타이 지역 여러 곳에서 2820만 년 전 유럽의 중기 구석기 석기 제작 기법인 르발루아 기법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 기술은 새로운 기술의 유입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현지에 살고 있던 구석기인들의 지능이 현지에서 발전하여 기존의 석기 문화에 기술적 변화를 갖고 온 것으로 추정한다. 한마디로 아프리카 이브의 후손이 아니라 보다 오래된 시기의 누군가가 발명했다는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 왕웨이아프리카가설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결함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서양의 구석기 문화를 보면 약 10만여 년 전 어떤 곳에서 기하형의 세석기들, 예를 들면 삼각형기신월형기제형기 등이 출현하며, 2만 년 전에는 더욱 정밀한 기하형의 세석기가 출현했다. 그 당시에 이런 석기를 제작하려면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구석기 문화 중에서는 이런 기하형의 세석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이런 세석기 제작 기술의 흔적도 없다. 이런 차이점은 중국의 구석기 문화와 서양의 구석기 문화서로 다른 문화 계통에 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왕 교수는 아프리카가설에 의하면 아프리카 이브의 후예들이 중국으로 옮겨왔을 때 분명히 그들이 갖고 있던 선진 석기 제작 기술일상에서 사용하는 석기들을 가져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새로운 기술을 갖고 왔다면 전혀 다른 집단에서 수월하게 받아드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소 비약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근래의 역사를 보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여 포로가 되었다하더라도 특정 기술을 가진 사람은 살려두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될 수 있다.

이 논리에 의하면 중국의 구석기 문화는 서쪽으로부터의 신기술에 의해 격변을 맞이해야 하는데도 중국의 3만여 년 전 신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에게 어떠한 변화의 징조가 없으며 중국 구석기 문화가 중단된 적도 없다. 적어도 외래 문화에 의해 대체되는 현상도 없는 것을 볼 때 서양의 구석기 문화와 중국 구석기 문화는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200212중국의 삼협(三陜)댐 건설 현장 인근인 사천(四川)성 봉절(奉節)에서 세계 최고의 악기가 발견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악기가 무려 약 14만 년 전 인류가 사용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황만파(黃萬波) 교수봉절인(奉節人)으로 불리는 고인(古人)은 약 1225만 년 전의 인류로서 이들이 악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