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지평선>
사람들의 궁금증은 만약 학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사건지평선을 넘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우선 밖에서는 당신이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보지 못한다. 당신은 그저 블랙홀의 가장자리에 영원히 얼어붙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영원히는 아니다. 블랙홀조차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도 이른바 호킹 복사를 통해 질량을 잃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증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시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블랙홀에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현대인의 상식이나 마찬가지다. 일단 블랙홀의 경계선을 넘어가면 중력이 너무 강해서 그 어떤 것도 심지어 빛조차도 블랙홀의 강력한 손아귀를 뿌리치고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몸은 엄청난 힘을 받아 국수가락처럼 길게 늘어난다는 것이 상식인데 물리학자들이 블랙홀 속으로 뛰어든 용감한 우주여행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블랙홀 중심에는 크기는 ‘0’이고 밀도는 무한대인 ‘특이점’이 존재한다고 예측했다. 특이점에서는 시공간의 곡률과 중력이 무한히 크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산산조각 나서 사라진다고 한다.
양자론의 중요 개념 중 하나인 파울리의 베티 원리에 의하면 양자 입자들은 같은 장소에 함께 존재할 수 없다. 양자 차원의 힘들이 입자들을 붙어 있지 못하게 밀어내기 때문이다. 이 원리에 따라 입자들끼리 서로 밀어내는 힘을 축퇴압이라 부르는데 찬드라세카르는 이 원리를 죽어가는 별에 적용해 질량이 태양의 1.4배 미만인 별은 전자 축퇴압 때문에 중력 붕괴를 견뎌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자 축퇴압으로 붕괴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는 별을 백색왜성이라 하는데 이 왜성은 밀도가 매우 커 지구만 한 부피에 별 하나의 질량이 압축돼 들어 있는 것과 같다.
한편 원자폭탄 개발을 총 지휘한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는 중성자들 사이의 축퇴압은 질량이 태양의 3배 미만인 별의 붕괴를 막아준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런 별을 중성자별이라고 하는데 중성자별은 백색왜성보다 밀도가 높아 도시 하나 정도의 지름을 가진 구에 별 하나의 질량이 들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초신성 폭발을 한 별의 질량이 태양보다 3배 이상 크다면 더 이상 중력 붕괴에 대항할 힘은 물리학에서 알려진 것이 없다. 이 별의 운명이 바로 블랙홀이다.
블랙홀 맨 바깥쪽 표면을 ‘사건의 지평선’이라 부른다. 사건의 지평선은 딱딱한 고체 표면이 아니고 중력이 아주 강해 빛이 절대로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의 경계선에 해당한다.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특이점에서 일정 거리만큼 떨어진 구면을 이룬다.
1916년 독일의 카를 슈바르츠실트는 사건의 지평선 반지름을 계산했다. 질량 m'인 블랙홀의 경우 그 반지름은 2Gm/c^2이다. 여기서 G는 중력 상수(6.6742x10-11), c는 빛의 속도이다. 이 계산에 의하면 어떤 물체라도 충분히 작게 짜부라지기만 하면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태양의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약 3킬로미터이다. 만약 지구가 블랙홀이 된다면 사건의 지평선 반지름은 겨우 9mm에 불과하다.
사건의 지평선을 향해 다가가는 우주 비행사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중력장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효과가 나타나는데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강한 중력장 안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이것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 때 일어나는 시간 지연 효과와 비슷하다. 이 효과 때문에 블랙홀 가까이에서 나오는 빛은 스펙트럼상에서 붉은색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중력 적색이동이라 부른다. 이 현상은 빛이 블랙홀의 중력장을 뿌리치고 나오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사건의 지평선에서는 중력이 미치는 효과가 무한대에 이르러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또 중력 적색이동으로 인해 우주비행사에게서 나온 빛은 블랙홀 속으로 더 깊이 떨어져갈수록 점점 더 긴 파장 쪽으로 이동한다. 그러다가 결국 가시 스펙트럼을 벗어나는 순간 우주 비행사의 모습은 사라진다. 하지만 우주 비행사가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이것과 전혀 다르다.
블랙홀에 다가가는 우주비행사에게는 뒤에 있는 별들의 강한 중력장 때문에 왜곡돼 보인다. 정상적으로는 우주 비행사의 눈으로 곧장 향해야 할 별빛들이 강한 중력 때문에 휘므로 우주 비행사의 눈에는 우주의 모습이 마치 어안렌즈로 보는 것처럼 보인다.
블랙홀에 다가갈수록 그 효과는 더 커진다. 블랙홀 중심 기준으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1.5배되는 지점에서 우주 비행사는 ‘광자 구’를 만난다. 이 거리에서는 중력이 매우 강해 빛이 불랙홀 주위에서 원을 그리며 궤도를 돈다. 물리학자들은 광자 구 위에서 잠시 머물며 좌우를 둘러보면 블랙홀 주변의 모든 풍경이 다 보이는데 극적인 것은 심지어 자신의 뒤통수까지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뒤통수에서 나온 빛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블랙홀 주위를 한 바퀴 돌아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블랙홀이 무한정 깊다고 하지만 바닥도 존재하는데 사건의 지평선으로 들어가는 우주비행사를 묘사해보자. 사건의 지평선에 발부터 먼저 들어가는 우주비행사는 머리와 발에 미치는 힘의 차이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발은 머리보다 1.5미터 정도 차이가 날 뿐이지만 중력장이 엄청나게 강하므로 우주 비행사의 몸은 길게 늘어난다. 더불어 중력은 옆 방향으로 몸을 짜브라뜨려 가늘게 만든다. 특이점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나 머리와 몸이 떨어져나가고 몸통은 가느다란 실처럼 늘어난다. 이렇게 되는 시간은 0.1초에 지나지 않는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스파게티화’라고 하는데 보지는 못하지만 잔해는 바닥에 도착한다.
학자들은 특이점이 매우 작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작은 단위가 엄청나게 무겁기도 하다. 그런데 특이점을 수조 배 확대해하더라도 현 인간의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수학적으로 볼 때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특이점에 대해서 아직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특이점은 상당히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로 특이점을 설명하려면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뛰어넘는 이론을 고안해야 한다. 두 이론은 지구상에서 무리없이 적용할 수 없지만 블랙홀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에서는 어느 이론도 적용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흥미있는 것은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고트가 스파케티가 되는 시간을 조금 더 연장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한마디로 우주비행사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인데 그는 여행자가 허리 주위에 거대한 고리 모양의 물질을 두르면 강한 중력의 힘을 약간 상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고리의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야 하는데 무게가 최소한 큰 소행성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고리로 장착하면 무려 0.1초를 더 살 수 있다. 0.1초지만 남은 수명을 무려 2배나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소 찝찝한 상황인데 여기에 묘수가 등장했다. 슈바르츠실트의 해석은 정지된 상태에서 생긴 블랙홀에 대해서만 다루었다.
그런데 뉴질랜드의 수학자 로이 커(Roy Kerr) 박사는 회전하는 질량에서 생겨난 블랙홀에 대해 설명했다. 정지한 블랙홀의 중심에 있는 특이점은 하나의 점이고 일단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면 그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걸 필할 수 없다.
그런데 회전하는 블랙홀의 경우 특이점은 고리 형태를 하고 있다. 만약 블랙홀이 충분히 크고 고트 박사의 구명대를 차고 있다면 여행자가 특이점 고리를 곧장 통과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수많은 SF 감독들을 환호케했다. 여행자가 고리의 반대편 쪽에서 새로운 우주 지역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블랙홀을 다룬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죽지 않고 살아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연출하는 것인데 물론 새로운 우주 지역이 어떤 지역인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블랙홀로 우리 우주와 다른 우주를 여행할수도 있는 장면을 만들 수도 있다.
여하튼 이런 상황을 상정하여 많은 과학자들이 로이 커의 블랙홀을 웜홀 즉 시공간에 뚫린 터널이라고도 말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천체는 회전 운동을 하고 있으며 로이 커의 블랙홀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이라 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물리학자 아모스 오리 박사가 보다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현재까지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이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은 오직 블랙홀을 통과하는 방법이라고 단언해 말한다. 문제는 블랙홀에 일단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통설이다. 그러나 오리 박사는 절묘한 방안을 도출했다. 즉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블랙홀 안에 갇힌 우주선이 엄청난 중력에 의해 으스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심력에 의해 블랙홀 중심부에 공간이 생겨 이 터널을 통해 우주선이 무사히 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알려진 통상적인 블랙홀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블랙홀 안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조직이 심하게 뒤틀리기 때문에 이 조직 자체가 찢어진다. 찢어진 부분은 다시 붙지만 처음과는 다르게 붙는다. 그래서 이 터널을 지나가는 우주선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게 된다. 다른 현실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리 박사는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이유로 블랙홀로 빨려 들어오는 빛이 너무 약해서 우주선을 파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큰 틀에서 태풍의 핵은 주변과는 달리 고요한 것과 일맥상통하다. 블랙홀에 관한 한 현 지구인의 지식은 그야말로 원초적이나 마찬가지다. 이를 현대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부드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두 문명국이 어떤 은하계의 소유권을 놓고 싸운다고 가정하자. 전쟁을 벌이는 대신에 서로 다른 현실로 들어가서 똑같은 은하계를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블랙홀에 관한 한 학자들의 기본적인 견해는 냉철하다.
‘인류 최고의 두뇌들과 수많은 방정식들이 동원되었지만 명백한 사실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