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41) : 피라미드 건설(2)

Que sais 2021. 3. 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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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건축>

피라미드를 세우는 장소로 예외 없이 나일 강 서쪽을 선택한 것은 해가 지는 곳이므로 사후의 왕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피라미드들을 왜 그렇게 서로 멀리 떨어지게 건설했느냐이다. 고왕국과 중왕국 시대의 무덤들은 북부의 아부 로아슈에서 파이윰에 이르는 지역에 건설되었다. 특히 파라오들은 선조들의 매장지를 의식적으로 피해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다. 이는 피라미드 건설 후에도 제사나 관리를 감안하면 매우 불편한 일이다.

이유는 어떻든 파라오에 등극하면 곧바로 자신의 피라미드 건설에 착수했다. 이는 새로운 부지를 찾아야 하는데 때때로 이념적 기준에 따라 결정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새로운 자신의 피라미드를 위해 선조의 목 좋은 무덤을 파괴하거나 아니면 그 위에 증축하는 것이다.

우선 건축부지는 높은 곳이어야 했는데 이는 건축물의 숭고함과 웅대함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동시에 부지가 경작지에서 너무 멀리 있어도 안 되었다. 건설하기 위한 자재를 운반해야하고 생필품도 수월하게 공급되어야 하는데 이는 나일강의 인근이어야했다.

특히 이미 세워진 피라미드나 중요 장소에 대한 시야를 확보해야하므로 부지 선택과 건축물 방향은 더욱 제한을 받았다. 이 덕분에 현대인들이 피라미드를 방문하여 다른 피라미드를 바라볼 수 있다.

이런 조건에 가장 적합한 곳이 지금의 카이로 북동쪽에 있던 헬리오폴리스. 한마디로 이곳에 피라미드들이 집중적으로 건설된 이유다. 헬리오폴리스는 태양 숭배를 위한 고대 성전으로 고왕국 시대에 이곳에 피라미드 류의 벤벤 암석을 세웠는데 이는 아침에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장소를 표시한 것이다. 5왕조부터는 태양신전 또한 서쪽의 일몰 지점을 상징했으며 이를 통해 죽은 통치자가 태양의 영원한 회귀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이집트의 수많은 피라미드 중 가장 유명한 피라미드들만 선별하여 설명한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학자들이 말하는 진정한 피라미드의 시작은 조세르의 피라미드(기원전 2630~2611)부터다. 조세르 피라미드는 수도인 멤피스 교외 사카라에 위치해 있는데 조세르 이전 왕들의 전통적인 마스타바를 여섯 단 연속해서 쌓은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멀리서보면 피라미드 형상으로 보이므로 계단식 피라미드라 불린다.

이집트를 방문한 사람들은 4600년 전의 건축물이 현재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매우 놀란다. 그의 복합 장례 건축물 즉 피라미드에는 20쿠데 높이의 성곽이 직사각형으로 둘려 있고 거의 중앙에 계단식 피라미드와 파라오의 묘가 있다. 이집트의 1쿠데는 10.48미터. 계단식 피라미드는 바닥면의 가로 세로가 121×109미터이며 높이는 60미터로서 당시에 일반적으로 건설되었던 마스타파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성곽과 피라미드 사이에는 여러 가지 용도의 건축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의 건물은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지는 실제로 들어갈 수 없는 건축물인 위장건물로 이는 상징적 기능만 가진다. 들어갈 수 없는 신의 예배당을 건설함으로써 제식이 행해질 때마다 예배당에 머무는 신이 언제나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 가지 건축 형태는 사제들이 제식을 치르는 동안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들은 제식을 치를 때마다 실제로 사용했는데, 이것은 조세르 왕의 왕궁단순화시킨 석조건물이다.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는 모두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는데 처음에는 정사각형 평면의 마스타바로 설계되어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건축 도중에 피라미드의 개념이 설정되어 두 번이나 설계가 변경되었고 현재와 같은 대형 피라미드로 건축되었다.

그러나 조세르 왕의 시신 안치소는 파라오의 돌인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28미터 깊이의 구덩이 안에 있으며 같은 높이의 지하 갤러리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에는 여러 개의 방으로 된 아파트가 있고 서쪽에는 장례 가구들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 기다란 회랑에는 왕족들의 석관이 안치된 소규모 방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무려 4만여 개의 병, 돌로 된 식기들이 부장되어 있었다. 조세르 왕이 자신의 복합 장례 건축물을 짓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꿈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신이 파라오에게 주는 제2의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높은 산꼭대기에 혼자 올라가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긴 계단이 내려왔다. 나는 단숨에 그 계단을 뛰어 올라가려고 했다.’

 

꿈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조세르는 재상인 임호에게 자신의 이야기했고, 임호텝이 그 꿈을 현실화시켰다고 한다. 임호 재상이자 헬리오폴리스의 대사제이며 건축가로서 훗날 신으로 숭배된다.

전설에 따르면 임호텝은 원래 항아리를 다듬는 장인이었다. 그런데 재능이 너무도 뛰어나 궁전의 행정가로 발탁되었다가 재상의 지위까지 오른 인물이다. 임호텝은 매우 다재다능하여 위대한 예언자이자 의사이며 천문학자에다 주술사였다. 때문에 후손들에게 의술의 신이라고 불렸으며, 그는 그리스인들이 숭상하는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동일시되었다.

 

조세르 피라미드

이 웅대한 장례 건물을 피라미드 복합 건축물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유는 이 건축물이 묘지는 물론 신전, 부속 건물 등 장례와 생활에 관련되는 모든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피라미드라고 부르는 것은 삼각형 단면의 피라미드를 뜻하고는 있으나, 이집트의 경우 대체로 복합 건축물로 생각하면 무난하다.

조세르의 복합 건축물은 우선 높은 석조벽으로 둘러쌓여 있다. 이 벽에 규칙적으로 벽감을 배치했으며 불규칙하게 14개의 가짜 문을 두었다.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는 동쪽 벽의 남쪽 끝에 있으며 이곳에 도열된 주랑을 통해 넓은 마당으로 들어간다.

처음에 조세르 묘석은 정방형의 평평하고 육중한 석조건물로 건축되었다. 그러나 계획을 변경하여 규모가 커졌다. 이 변형 단계에서 동쪽 무덤 측면을 따라 11개의 깊은 갱도를 팠다. 여기서부터 서쪽을 향해 뚫은 통로는 무덤 건축물의 지하로 연결되어 왕비와 왕실 가족은 이 갱도 시설에 매장되었다.

다음단계에서 높이 42미터의 4단계 건축물 즉 첫 번째 피라미드가 축조되었다. 마스터파가 확장되어 피라미드가 된 첫 번째 사례다. 그러나 곧이어 42미터의 피라미드는 60미터의 6단계 피라미드로 확장되었다. 결국 조세르의 계단식 마스터파는 개축을 거듭하면서 피라미드형이 되었으며 묘역도 544x277미터의 거대한 넓이로 변한다.

계단식 피라미드 지하시설 역시 공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쳤다. 매장실은 위쪽에서 원형의 입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데 시신의 매장 후에는 대략 3톤 무게의 화강석 덩어리로 입구를 막았다. 화강석 묘실은 사면이 모두 통로로 이어졌는데 이 통로들도 서로 연결되었다.

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들 통로가 정교하게 장식되었다는 것이다. 동쪽 통로 일부에 청록색의 도기 타일을 붙였는데 이 타일은 갈대돗자리의 규칙적인 무늬를 보여준다. 동쪽 통로의 서쪽 벽에는 세 개의 벽감을 파서 그곳에 부조를 조각했는데 제례복을 입은 왕의 모습을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묘사했다. 청록색의 벽과 벽감축약된 파라오의 궁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진화한 스네푸르 피라미드

4왕조의 시조 스네푸르(기원전 2575~2551)는 고왕조의 가장 위대한 건축자로서 피라미드를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완성한 사람이다. 하늘로 향하는 강력한 이미지를 더욱 구체화해 계단식 피라미드의 높은 계단을 삼각형의 전면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스네푸르는 생전에 3기 또는 5기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

그가 건설한 피라미드들의 부피는 약 380만 세제곱미터로 피라미드 군 중 가장 거대한데 쿠프의 대피라미드도 240만 세제곱미터에 불과하다. 메이둠과 다슈르에 있는 세 개의 거대한 피라미드는 4왕조 초기 피라미드 건설의 발전과정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이들 묘역의 특징은 방향이 제3왕조의 남북향이 아니라 동서방향이라는 것이다. 이는 내세의 파라오를 태양의 영원한 회귀와 연결시켰다는 것을 뜻한다.

메이둠의 첫 번째 피라미드는 스네프루는 영원불멸하다라는 뜻의 제드 스네푸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 피라미드는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정통 피라미드로 변화하는 과정을 세 단계의 건축공정으로 보여준다. 서로 분명히 구분되는 3단계는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3왕조의 건축 방식대로 착수한 스네푸르의 피라미드는 당초에 7층으로 계획했으나 완공하기 전 대략 5층까지 올렸을 때 한 층을 더 확장하기로 하여 8층이 되었다.

한편 다슈르에 또 다른 피라미드를 별도로 건설했다. 처음에는 92미터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계획했는데 결국 피라미드 형태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 피라미드는 제3왕조와 상당히 다른 특징을 갖고 있는데 피라미드의 입구가 바닥이 아니라 피라미드 북쪽 측면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는 피라미드를 관통하여 암반까지 다다르며 이후 수평통로가 이어지다가 좁은 갱도에 도달한다. 이 갱도는 다시 수직으로 위를 향해 피라미드를 관통하고 묘실이 있는 지점까지 연결된다. 그런데 이 묘실은 이전의 피라미드처럼 암반 안 깊숙이 있는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 본체 바닥에 마련되어 있다.

스네푸르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다슈르에 두 번째 피라미드를 건설한다. 이 피라미드는 이집트 피라미드사에서 특별한 형태를 보이는데 이는 굴절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경사각에 변화가 생겨 상층부가 눈에 띄게 굽어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이 피라미드는 정통 피라미드로 계획하고 공사에 착수했는데 균일하지 않은 바닥 상태 때문에 공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제3왕조 때보다 큰 석회석 덩어리를 사용했으므로 피라미드 본체의 압력으로 건축물이 내려앉았다.

그러므로 당초 5428분의 경사각에 바닥면이 가로세로 각각 184미터, 높이 128미터로 설계되었는데 석재의 무게 때문에 균형을 잃자 공사 도중 경사각을 조절하였다. 그래서 최종적인 상부의 경사각도는 4322, 높이도 상당히 줄어든 105미터로 유명한 굴절 피라미드가 되었다. 이 단계에서 파라오의 매장 시설로 사용하려던 계획도 포기했다.

굴절 피라미드의 또 다른 특징은 두 가지 상이한 경사각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묘실로 이어지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통로 체계를 갖추었다는 점이다. 한쪽 통로는 북쪽에서 시작하는데 이는 메이둠 피라미드 통로와 유사한 구조다. 그런데 서쪽에서 시작하는 두 번째 통로는 전체가 피라미드 본체 안에 있다. 이것은 두 개의 피라미드와 매장시설을 하나의 건축물로 통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스네푸르의 피라미드 건설은 이에 끝나지 않고 재위 29년째 되던 해 굽은 피라미드에서 북쪽으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붉은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스네푸르의 설계사들은 굴절 피라미드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으므로 더 이상 실패는 없었다. 가로세로 각각 220미터이며 높이는 104미터, 각도는 4322분이다. 스네푸르 파라오는 이 피라미드에 매장되었다.

이를 보면 기존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시대에 맞게 기하학을 고려하여 정통 피라미드로 변형시킨 것이다. 이후 새로운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건축물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건축부지를 세심하게 선택했다. 통로와 묘실 구조도 이전 피라미드에 비해 단순화했다. 지하에 두었던 시설들도 땅 밑에 있지 않고 피라미드 주벽 안쪽에 지었다. 이는 건설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기록에 따르면 스네푸르 왕은 관대한 지배자이자 정복자로 제드 스네프루스네푸르는 영원불멸하다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리비아와 누비아를 정복하여 이집트에 번영을 가져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