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42) : 피라미드 건설(3)

Que sais 2021. 3. 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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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건축물, 쿠프의 대피라미드

피라미드 건축술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발전 즉 진화과정을 거치는데 피라미드 건축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스네푸르 파라오를 뒤이은 쿠프 파라오(기원전 2551~2528) 때부터다. 이른바 기자의 3대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쿠프케프렌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가 세워졌는데 이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기자에 피라미드가 많은 것은 지리적인 조건 탓이 크다. 피라미드 건축의 재료인 석회암이 그 지역에 풍부하기 때문이다. 카이로란 이름은 기자에서 따온 것이다.

3대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쿠프의 피라미드. 케프렌 왕과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 동남쪽에는 채석장이 있으며, 쿠프의 피라미드 주위에는 그의 왕비와 왕자, 공주, 당시 고관들의 소형 피라미드와 개인 마스타파가 있다.

쿠프의 피라미드는 보통 기자의 대피라미드라 불리는데 세계 7대 불가사의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이다. 중세 시대에 카이로와 기자의 건물을 짓기 위해 주민들이 무분별하게 석회암으로 된 외피를 벗겨내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 피라미드 내부의 파라오의 현실(玄室)’이라 불리는 방에는 반암으로 된 대형 석관이 비어 있는 채로 놓여 있다. 그래서 원래 보물이 가득했던 것을 누군가 도굴해갔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쿠프의 대피라미드 안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비밀 공간이 있으, 그곳에는 많은 보물들이 부장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대피라미드의 계곡의 신전은 나스레 엘 시만 마을 아래에 묻혀 있으며 대대적인 발굴이 계획되고 있다. 계곡의 신전이란 각 피라미드의 장례를 비롯한 제례를 집전하는 곳이다.

대피라미드 동쪽에는 네 개의 작은 위성 피라미드가 건설되었는데, 그중 세 개는 왕비용이며 한 개는 숭배용 카 피라미드. 왕비용 피라미드는 평균 46미터로 경사각은 대피라미드와 같지만 높이는 5분의 1정도다. 쿠프 왕에게는 수많은 왕비가 있었는데 누가 이 피라미드들에 매장되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학자들은 셋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피라미드에 쿠프 왕의 어머니인 헤테페레스가 묻혔다고 추정한다.

대피라미드 동쪽에 있던 피라미드 신전은 현재 거의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넓은 마당과 화강암 기둥의 잔재가 있어 과거의 웅장한 건축물을 연상할 수 있다. 마당 서쪽에는 길게 뻗은 성소가 있어 그곳에 입상들을 보관했다.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뒤에서 별도로 설명한다.

 

스핑크스와 케프렌 피라미드

쿠프의 아들 또는 이복동생인 케프렌 왕(기원전 2520~2494)은 쿠프와 비슷한 규모의 피라미드를 바로 인근에 건설했다. 214.5제곱미터의 정사각형 바닥면적에 높이는 143.5미터, 경사각은 53748초다. 이 경사각은 직삼각형의 3:4:5 비율을 사용한 것이다.

케프렌의 피라미드는 쿠프의 것보다 높이가 3미터 정도 더 낮다. 하지만 지대가 더 높기 때문에 그냥 보기에는 쿠프의 대피라미드보다 더 높게 보인다. 일반적으로 두 번째 피라미드라고 불리며 아직도 상부에는 반들반들한 외피가 남아있는데, 현존하는 피라미드 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원래 피라미드는 겉면이 반들반들한 돌로 덮여있고 아름다운 채색 그림이 그려져 있었을 거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1356년 이집트를 지배했던 술탄 하산이 외피를 뜯어내 카이로의 이슬람 지구에 자기 이름을 딴 술탄 하산 모스크를 지었다고 한다.

케프렌 피라미드의 통로와 묘실은 쿠프 피라미드에 비해 매우 간소하다. 그래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방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아직 발견된 것은 없다. 학자들은 현재의 통로 구조만으로도 그 시대 피라미드 내부의 필수 구성요소를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그 밖의 방들을 찾아야 할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

 

기자 대피라미드군 배치도

케프렌 피라미드의 특이성은 북쪽에 두 개의 입구가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북쪽 모퉁이에서 조금 떨어진 앞쪽 바닥에 있고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두 번째 입구는 북쪽 측면에 있다. 이는 피라미드를 보다 크게 축조할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본다. 이 계획이 실제로 진행되었다면 쿠프의 피라미드보다 더 웅장한 규모가 되었을 것이다.

케프렌 피라미드의 내부구조는 간단하지만 피라미드에 딸린 제식 건물들은 웅장하고 복잡하다. 피라미드 동쪽에 따로 벌어져 있는 피라미드 신전은 무게가 400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회석 돌을 사용했고 바닥재는 대체로 설화석고 판으로 만들었다. 열주 마당과 성소를 갖춘 쿠프의 피라미드 신전이 단순해 보이는데 반해 케프렌의 피라미드는 건물의 수가 더 많아졌고 전체적으로 규모도 더 커졌다.

피라미드 신전과 계곡 신전 사이를 이어주는 참배로는 무려 500미터나 되는데 천장이 있고 다채롭게 장식되었다. 계곡 신전 내부의 벽과 천장, 바닥은 조각없는 화강암 판으로 건설했다. 학자들은 계곡신전디오리트 석재로 된 케프렌의 좌상이 적어도 23개 세워져 있었다고 추정한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조상 중 하나로 그중 몇 개가 19세기 중반에 발견되어 현재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케프렌의 피라미드는 1000년 전 아랍인들에게 약탈당했는데 그들이 침입했었다는 낙서가 아직도 남아 있다.

한편, 케프렌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것이 유명한 스핑크스.

근래 쿠프 파라오가 만들었다는 주장도 제시되었는데 현재 스핑크스는 코와 턱수염이 떨어져나가 있는 상태다. 일설에 의하면 오스만 터키와 나폴레옹 군의 이집트침략 당시 포 사격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스핑크스는 별도의 장으로 설명한다.

 

멘카우레의 붉은색 피라미드

멘카우레(기원전 2494~2472) 또는 미케노리스로 불리는 피라미드 건설에는 특이한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멘카우레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운 쿠프, 케프렌와 달리 작은 피라미드를 건설하겠다하였는데 이것이 신들에게는 모욕이었다.

신들은 신탁을 통하여 멘카우레가 6년의 치세 후에 죽고, 뒤에는 다시 억압적인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 선포하였다. 멘카우레는 이에 대항하기로 결심하고, 밤에 불을 밝혀 낮과 밤을 모두 살았다고 한다. 한편 멘카우레의 실제 치세 기간은 28이다.

그러므로 피터 클레이턴 박사는 이 전설의 진의는 쿠프와 케프렌 시대의 거대 공사 때문에 멘카우레가 28년씩이나 다스렸음에도 그만한 규모의 피라미드를 지을 수 없었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멘카우레의 피라미드는 케프렌 피라미드에서 약 450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규모는 쿠프와 케프렌의 피라미드에 비하여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작으며 높이는 65.5미터, 경사각은 512025초다.

멘카우레 피라미드의 외면 3분의 1 높이까지 시공하기 매우 어려운 양질의 붉은색 화강암과 검은 화강암으로 덮여있지만 정상 부분은 하얀 석회암으로 시공되어 있다. 또 내부의 하향 경사로와 시신이 있는 현실도 화강암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석재들이 다듬어져 있지 않고 난잡한 것이 많아 학자들은 졸속하게 완성된 것으로 파악한다.

세 번째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는 멘카우레의 피라미드는 지금부터 2500년 전인 26왕조(기원전 664~525) 시대에 화려한 내부가 공개되어 일반인들이 참관할 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 당시에도 기자에 묻힌 파라오에 대한 경배가 영광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많은 순례객이 있었다고 한.

멘카우레 피라미드의 남쪽에는 세 개의 왕비용 위성 피라미드가 있으며 그중 동쪽 것은 전형적인 피라미드 형태를 띠고 있다. 처음에 이들 피라미드는 숭배용으로 파라오에게 제사지내기 위해 건설되었는데, 후대에 그 기능을 변경해서 묘실에 화강암 석관을 두었다.

셉세스카프

멘카우레의 후계자이자 제4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셉세스카프는 자신의 무덤을 기자에서 사카라로 옮겼다. 한마디로 기자를 떠난 것이다.

그런데 그의 무덤은 피라미드 형태가 아닌 거대한 마스터파로 밑변이 99.6×74.4미터다. 사실상 대피라미드의 건축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셉세스카프 파라오의 거대한 마스타파는 파라오의 거처라는 뜻으로 마스타파 엘파라운이라 불렀다. 형태로만 보자면 확실히 셉세스카프 왕의 무덤은 과거로 회귀했고 규모도 축소되었다. 하지만 건축적인 측면에서 이 무덤은 최초의 상하 이집트 왕조가 건설했던 고대풍의 호화무덤을 모방했고, 지하 통로와 묘실 체계는 건축 당대의 내세관에 부응하여 피라미드의 내부구조를 채택했다.

피라미드와 달리 마스타파에는 신전 복합건물이 건설되지 않고 간소한 사당이 세워졌다. 그리고 이 사당 건물은 선왕들의 예와 달리 무덤과 직접 연결되었다. 웅장한 무덤과 제식시설이 하나로 통합되기 시작한 예다. 또한 사당에는 왕에게 제물을 바치는 공간이 있는데 이것은 초기 피라미드 신전에서는 볼 수 없는 형식이다.

후대의 파라오들은 피라미드 건축으로 회귀했지만 서쪽 벽에 가짜 문이 있는 이 공간은 그때부터 묘역의 필수 구성요소가 되었다. 과거의 파라오들은 자신의 입지와 지위를 이용하여 신으로 간주되었지만 셉세스카프로부터 비로소 모든 인간의 일상적인 제사 형식으로 사자 숭배를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