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57) : 쿠프의 대피라미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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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미라 이동>

데이르엘바하리의 남쪽 낭떠러지에서 구멍 뚫린 샤프트 묘에서 놀라운 대발견이 있었다. 금속기나 석제 그릇, 샤프트상 등을 비롯하여 5,900점의 부장품과 50구가 넘는 미라가 발견된 것이다. 원래 이 묘는 제21왕조의 파누젬 2세(DB320)와 그 가족을 매장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학자들은 무덤의 훼손을 우려하여 제 22왕조 세숑크 1세 파라오 때 신왕국 시대의 왕과 왕비들의 미라를 비밀리에 운반했다고 추정한다.

데이르엘바하리의 묘는 한 도굴범의 정보 제공에 의한 것이다. 그는 1870년대 초에 이곳을 발견하여 비밀리에 골동품을 빼내 판매하였는데 그가 판매한 유물의 양이 증가하자 이를 의심한 경찰에 체포되어 모든 것을 실토한 것이다.

왕가의 계곡에서도 1896년 프랑스의 빅토르 로레가 파라오들의 다수 매장된 묘를 발견했다. 이 무덤에서는 무덤 주인 아멘호테프 2세(KV35), 아멘호테프 3세를 비롯해 15구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 8개가 파라오의 미라였다. 물론 미라들은 이미 도굴당한 무덤이라 상태는 좋지 않았다.

예를 들면 DNA 검사로 아멘호테프 3세와 티이의 딸이자 아케나텐의 여동생이며 투탕카문의 어머니인 것으로 확인된 여자 미라는 입이 찢어지고 오른팔이 없어지고 흉벽이 무너져 내부가 드러나 있다. 이것은 도굴꾼들이 보물을 찾으려고 마구잡이로 유린한 흔적이다.

데이르엘바하리와 왕가의 계곡에서 파라오의 미라가 발견된 이유는 간단하다.

도굴이 얼마나 성행했는지는 람세스2세로부터 200년 후 체포된 도굴꾼의 재판 기록에도 알 수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초승달 밤, 왕가의 계곡에 망을 보는 사람이 몇 사람에게 다가가자 그들은 망꾼에게 작은 자루를 전해주었다. 망꾼은 자루를 들고 곧바로 자리를 떴고 그들은 살금살금 한 무덤에 접근했다.

그들은 원래 도둑은 아니다. 모두 정직한 수공장인인데 급히 돈이 필요했다. 한 사람은 직공인데 부모가 죽어 미라 값을 지불해야했는데 미라 제작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쌌다. 그들은 살아가면서 그야말로 부득이한 상황에 처한 것으로 딱 하루 한건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얼마 전 자신들이 시공한 곳이므로 무덤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안되어 그들은 문을 열었고 긴 복도를 들어갔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벽을 더듬어 묘혈에 도착한 후 횃불을 밝혔다. 그들은 곧바로 작으면서 손에 넣기 쉬운 물건들을 재빨리 챙겼다. 그들이 서두르는 것은 간단하다. 곧 태양신 레의 첫 광선이 지평선을 밝게 비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때까지 오두막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금붙이다. 단순한 금붙이는 어느 누구도 거꾸로 추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의 하루 작업은 다음과 같은 취조 기록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파라오의 숭고한 미라를 발견했다. 그 미라는 부적을 여러 개 지니고 있었고 목에는 금으로 된 장신구를 둘렀고 얼굴에는 금으로 된 가면을 쓰고 있었다. 미라는 온통 금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우리는 미라에 장식되어 있는 금을 벗겼다. 그리고 부적과 장신구를 떼어냈고 그것들을 안에서 싸고 있는 피복도 벗겨냈다. 우리는 안쪽에 있는 관들을 나머지 부장품과 함께 아메노피스 섬으로 운송했고 관에 불을 질러 우리가 찾아낸 금붙이를 챙겼다.’

 

딱 하루의 일한 대가로 금 1.25온스였다. 이것은 네크로폴리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1년치 수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상당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도굴에 대안을 강구했지만 무덤은 계속 약탈되었고 가장 심각한 것은 미라가 훼손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성행하는 도굴꾼에 대항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도굴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도굴꾼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숨겨진 보물이 도굴꾼들을 무덤으로 유인하므로 그 보물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하면 무덤을 도굴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덕에 파라오의 미라는 편안히 쉴 수 있을 것이며 파라오들의 영혼은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를 시행하는 파라오로서도 매력적인 요소가 있었다. 파라오들의 묘에서 거둬들인 귀중품들이 형편없이 고갈된 국가의 국고를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파라오의 명을 받은 대신관들이 곧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람세스 2세의 미라

그들은 이름이 알려진 모든 파라오의 묘를 열어 그안의 부장품을 수집하고 미라들을 수습해서 임시 작업실로 옮기게 했다. 그들은 파라오의 미라들을 감싼 붕대를 벗기고 새 붕대로 감아준 뒤 표찰을 붙이고 평범한 나무 관에 넣었다.

그동안 각자의 무덤에 안장된 파라오의 소박한 새 미라들은 경비원들이 잘 지킬 수 있는 장소에 안치되었다. 경비원들은 이따금 한번씩 미라를 살펴보았고 필요하면 다른 곳으로 옮기곤 하였다. 그런 과정에 의해 데르엘바하리의 파누젬 2세의 무덤에 가장 많은 파라오의 미라, 그리고 왕가의 계곡의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에 두 번째로 많은 파라오의 미라가 안치된 것이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자신이 매장한 황금보화들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미라는 계속 사라지지않고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 데르엘바하리는 1881년, 왕가의 계곡에서는 1889년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결국 왕가의 계곡도 안전하지 않음을 절감한 20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람세스 11세는 왕가의 계곡에 무덤을 만들었으나, 정작 그는 이곳에 묻히지 않았다. 람세스 11세가 만들고 사용하지 않은 무덤은 KV4 무덤인데 이후 그의 무덤은 파라오의 미라를 새로 염습하고 남은 부장품을 국가 재정으로 활용하기 위한 작업장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공식적으로 왕가의 계곡에 묻힌 파라오는 없었지만 일부 무덤에 침입매장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여기서 '침입매장'이란 남의 무덤을 자기 무덤으로 쓰는 것을 말한다.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왕들의 미라는 모두 30여구다. 이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파라오의 미라가 10여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제18왕조 말기에서 제19왕조 초기의 파라오들의 미라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들 역시 어디엔가 남아있을 확률이 높다. 이집트에서 세기의 발굴은 계속된다는 뜻이다.

파라오의 묘역이라고 하지만 왕비, 왕자, 공주를 비롯한 왕족들과 왕이 총애하던 신하들은 물론 심지어 왕들의 애완동물들도 묻혔다. 동물까지 묻힌 이유는 이집트 신화에서 소, 악어, 매, 원숭이, 개, 고양이 등 동물은 신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제19왕조 이후로는 파라오를 제외하면 왕비, 왕자, 공주들은 인근 왕비들의 계곡에 묻히기도 했다.

 

왕가의 계곡에 파라오들이 묻히지 않았다면 곧바로 질문이 나온다. 수많은 파라오들은 어디에 매장되느냐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왕가의 계곡, 왕비의 계곡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 파라오들이 새로운 전략을 강구했다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그들의 매장지를 신전 신관들이 보호하는 신전 경내에 설치하는 것이다. 새로운 매장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귀족들도 찬성했다. 과거처럼 호사스럽게 꾸민 무덤 대신 가족 납골당에 유해를 안치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매장 시스템은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타니스에 마련된 왕묘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상당히 약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그들을 발굴했을 때 상당한 분량의 부장품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황금장신구, 황금과 은으로 된 그릇, 샤웁티, 수센네스 파라오와 쇼셍크-헤카케레페 파라오의 화려한 은관 등이 있었는데 현재 이들은 카이로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학자들이 가장 흥미를 보이는 것은 사이스에 마련된 제26왕조의 파라오 무덤들이다.

놀랍게도 이들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헤로도토스가 이들 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이스인들은 자기 지방 출신의 모든 파라오의 유해를 그 신전 경내에 안치했으므로 아마시스 파라오, 파르리에스 파라오와 그의 가족들의 묘 역시 그곳에 자리잡고 있다. 아마시스 파라오의 묘는 아프리에스 파라오의 묘보다 훨씬 더 후미진 곳에 있으나 그것 역시 경내에 자리잡고 있음은 마찬가지다. 그것은 화려하게 장식된 거대한 석조 주랑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그 기둥들은 종려나무 형태로 조각되었다. 이 주랑 안에 접는 방식의 문들이 달린 방이 하나 있고 그 문들 뒤에 관이 안치되어 있다.’

 

이들 무덤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앞으로 이집트에서 수많은 파라오의 무덤들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들은 도굴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집트가 지구인들을 놀라게 할만한 것이 수많이 대기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