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61) : 피라미드의 보물(3)

Que sais 2021. 3. 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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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라미드의 비밀>

대피라미드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는 것은 쿠프 파라오가 사망했을 때 부장되었을 엄청난 보물들이 과연 현재에도 대피라미드 안에 보관되어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대피라미드에서 파라오의 현실로 추정되는 방 즉 현재 비어있는 석관이 있는 공간은 진짜 파라오의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 말은 대피라미드 내에 비밀의 방, 즉 진실한 쿠프의 현실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이러한 가정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아보자.

현재 파라오의 현실이라고 알려진 왕의 방이 진짜 현실이 아니라고 학자들이 추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현실이 정중앙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신이자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런 신의 안식처를 정중앙이 아닌 곳에 안치시켰다는 것은 고대인의 믿음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진실한 파라오의 무덤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설계 미스라는 말도 있으나 대피라미드의 각 변이 동서남북에 정확히 일치하고 그 높은 곳에서도 한치의 빈틈도 없이 거대한 돌들을 정확하게 맞추어 끼운 기술들을 감안할 때 정중앙을 정확하게 찾지 못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두 번 째는 현재 파라오의 방으로 알려진 현실 상부에 있는 다섯 개의 하중 분산용 공간이 하부에 있는 현실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된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 즉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방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이 지적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구조학자들이 가능한 가정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정중앙에서 벗어난 파라오의 현실

세 번째는 파라오의 현실에는 쿠프의 빈 석관만 남아 있는데 820칼리프 알 마문이 석관을 열었을 때에도 아무런 부장품이 없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현실이 진정한 쿠프의 현실이 아닐지 모른다는 점이야말로 대피라미드를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직도 대피라미드 안에 수많은 보물들이 남아 있으며 언젠가 세상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와 같은 전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대피라미드 전체를 보다 정확하게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피라미드를 무작정 훼손하면서 연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대 유산의 연구가 어려운 이유다.

대피라미드의 비밀을 찾아내기 위한 지금까지의 작업과 연구는 대피라미드의 수난사와도 직결된다.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정복자인 아랍인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것은 대피라미드가 아직도 보물을 보관하고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피라미드가 도굴되었다 하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형태를 갖고 있으며 도굴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대피라미드의 도굴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는 아라비아의 유명한 칼리프 아룬 알 라시드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의 작업을 956년에 사망한 여행가이자 학자인 알 마수디가 기록했다. 쿠프의 현실까지 진입하기 위한 작업은 다음과 같다.

 

왕의 방까지 도달하는 통로를 찾기 위해 우선 외부의 석회석들을 제거해야 했다. 그들은 석회석을 녹이기 위해 수많은 식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이 작업이 다소 성공을 거두자 성벽을 파괴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거중기와 기계들이 투입되었다.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들인 끝에 노동자들은 수천 개의 금화가 있는 한 4각형의 방에 도착하였다. 그 금화는 각자가 1디나르의 무게를 가졌다. 이때 발견된 금화가 대피라미드를 조사하는데 투입한 예산과 거의 비슷했다. 그 후에도 계속하여 발굴하려고 했으나 워낙 작업이 어렵고 입구 부분이 붕괴될 우려가 있자 쿠프의 무덤을 찾는 일을 포기했다.’

 

아버지 아룬 알 라시드의 아들인 칼리프 압둘라 알 마문(812833 재위) 역시 대피라미드에 관심을 가지고 820년에 이집트에 도착했다. 그는 과학 특히 천문학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지구와 천체의 지도를 만들기 위해 자료들을 모으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발굴하다가 포기한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 안에 고대의 아주 정확한 지도들과 피라미드 건축가들이 건설할 때 사용한 자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더욱이 아버지가 발굴할 때 수많은 보물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왕의 방에서 발견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므로 더불어 보물까지 자신이 찾겠다고 열의를 보였다.

 

칼리프 알마문의 쿠프 현실로진입

수많은 인원을 바그다드에서 대피라미드로 직접 파견한 것은 물론 자신도 현장에 도착하여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대피라미드 탐사도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방법론도 알 라시드가 사용한 것과 같았다. 장애물로 나타난 돌이 깨질 때까지 불로 가열한 다음 차가운 식초를 뿌렸다.

그가 아버지인 알 라시드와 다른 점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 라시드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커다란 돌들 때문에 결국 작업을 포기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무작정으로 외부로부터 돌을 깨면서 들어갔다. 무려 300미터 두께의 벽을 파 들어간 후에 그들은 마침내 1.2미터 높이의 급경사로 된 비좁은 회랑에 도착했다. 그 회랑의 상부 쪽 끝에서 그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만든 입구를 발견했는데 그 입구는 지상으로부터 15미터 높이에 있었고 돌로 차단된 문에 의해 막혀 있었다.

그들은 이 돌들도 제거하고 회랑을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제일 처음에 건설되었다가 포기되었던 방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쿠프의 대피라미드가 전설처럼 막대한 보화를 감추고 있다면 다른 곳을 찾아야만 했었다.

알 마문은 회랑으로 다시 돌아와 위로 향하는 또 다른 회랑을 찾았다.

다행하게도 곧 상부로 연결되는 회랑을 발견했다. 그러나 굴착 작업은 더욱 더 어려웠다. 회랑을 막고 있는 커다란 화강암 돌덩이가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착같은 작업으로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갔다. 상상할 수 없는 희생과 고통스러운 작업 끝에 위로 향하는 아주 낮은 회랑에 도착했다. 수평으로 된 통로가 교차되어 있었다.

이 수평 통로는 각 변이 5.5미터인 정사각형 방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천장은 6미터 높이에 이중경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곳이 바로 왕비의 방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이는 이집트에서 여자들은 주로 이런 곳에 매장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도 역시 왕비의 흔적과 보물은 없었다. 그들의 실망은 대단했다.

그러나 작업은 계속되었고 인부 중에 한 명이 조그마한 방을 찾아냈다. 그곳에는 푸른색의 돌로 조각된 남자 조각상이 있었다. 이 조각상은 여러 가지 보석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된 칼이 있었고 그의 머리에는 달걀만한 루비가 있었다. 이 조각상은 알 마문이 자신의 궁전으로 갖고 갔는데 1117년에도 궁전에서 볼 수 있었다고 아랍의 역사학자 캐시는 적었다.

이에 고무되어 계속 다른 방을 찾던 그들은 수평 통로와 하향 회랑에 연결되는 부분에서 또 다른 회랑과 연결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8.5미터 높이의 반들반들한 석회암으로 마감 처리가 되어 있는 대회랑이었다. 이 회랑은 계속해서 오르막길로 되어 있었는데 그 끝에는 일종의 대기실이 있었다. 이 방을 통하여 피라미드의 가장 큰 벽에 도달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현재 쿠프의 현실로 불리는 곳이다.

알 마문은 손에 횃불을 든 채, 그들은 서둘러서 내부를 보기 위해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 역시 비어 있었다. 붉은 색의 화강암 벽을 따라 적갈색의 돌로 된 다소 파괴된 석관과 몇몇의 파손된 잔해만이 있을 뿐이었다. 석관은 통로보다 크기 때문에 이 방을 만들기 전에 이미 놓여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당혹한 그들은 보물이 은닉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하에 벽과 바닥의 일부를 부수었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따로 있는 진짜 현실>

일부 학자들은 결국 알 마문이 대피라미드의 현실에서 보물을 찾지 못했다는 역사적인 사실구조적으로 여러 부분에서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은 쿠프의 진짜 현실이 또 다른 곳에 있다는 것 즉 대피라미드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꿈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철저하게 도굴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선 알 라시드와 알 마문이 쿠프의 대피라미드의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정황도 목격자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한 증인은 쿠프의 석관 안에서 황금으로 덮이고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미라를 발견했고 머리 근처에서 달걀만한 루비를 발견했다고 했다. 반면에 어떤 증인은 쿠프의 현실에서 아무런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였고 단지 미라만 있었다고 했다.

피라미드에 정통한 학자들은 두 번 째 증인의 말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알 마문이 피라미드를 뚫고 현실에 들어갔을 때 이미 도굴이 되었다는 것이다. 쿠프의 현실 안에서 커다란 루비 등 보물을 발견했다는 것도 알 마문이 발견한 조각상의 보물이 와전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약 4600년 전에 건설되었다. 이집트에 있는 모든 피라미드는 도굴되었으며 신왕조가 건설한 왕가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의 무덤들도 모두 약탈당했다. 카터가 발견하여 사상 최고의 발견이라 불리는 유명한 투탕카문의 무덤도 사실은 2번이나 도굴 당했었다.

특히 이집트 역사에는 왕조가 중단되는 등 몇 번의 극심한 혼란기가 있었는데 이 당시의 무법자들로부터 쿠프의 대피라미드가 온전할 수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뜻이다. 오히려 가장 큰 피라미드이므로 어느 지배자라 하더라도 약탈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쿠프의 대피라미드가 도굴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유력한 근거는 또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현재 쿠프의 현실이라고 알려진 공간이 사실은 미끼라는 것이다. 도굴범들의 약탈을 막기 위해 현재의 현실을 파라오의 현실처럼 꾸몄지만 그것은 가짜고 진짜 현실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동조하는 학자들은 생각보다 많이 있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에서 가짜 무덤을 만드는 것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왕은 자신의 무덤을 34개 만들어 진짜 무덤이 어느 것인지를 알 수 없도록 만들었다.

대피라미드를 건설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쿠프라면 여러 개의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이 무리한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대피라미드 안에 진짜 현실을 비밀로 만들었다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대다수의 정통 학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다른 피라미드와는 달리 3개의 방과 3개의 회랑이 있지만 가장 하부의 회랑은 바위를 뚫고 만든 것이다. 또한 왕비와 파라오의 현실이라 불리는 공간과 회랑은 매우 정성 들여 건축했다. 다른 곳은 석회석으로 되었는데 이곳은 가공하기 매우 힘든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다.

화강석은 파라오의 돌900킬로미터 멀리 떨어진 아스완에서 갖고 온 것이며 지표면에서 42미터 높이에 있다. 하중을 경감시킨다는 목적을 가진 5개의 상부 공간을 합하면 65미터나 되며 이중 가장 작은 화강석이 5톤이며 어떤 돌은 70톤이나 되는데 70톤짜리는 약 100개가 사용되었다. 이것들이 채석장에서 채취되어 피라미드 장소까지 배와 썰매로 운반되어 또 현 장소까지 올려졌는데 이 모든 작업이 미끼라는 목적을 위해 건설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쿠프의 대피라미드가 수많은 도굴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스의 스트라보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에 도굴되었다고 적었다.

반면에 도굴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강력한 주장 중에 하나는 도굴꾼들이 침입하여 보물들을 약탈해 갔다면 어떻게 장애물인 화강암 돌들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일부 학자들은 도굴할 때 만들어 논 통로가 세월이 흘러서 자연 붕괴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가설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피라미드의 외형을 볼 때 전혀 그런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도굴범들이 도굴을 완료한 후 피라미드를 원상대로 복구해 놓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아직도 엄청난 재화가 대피라미드 속 어디엔가 감추어져 있을 것이라는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