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73) : 스핑크스(2)

Que sais 2021. 3. 1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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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박사는 스핑크스의 네 면을 정밀히 조사한 결과 매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풍화 작용이 심한 머리 모양의 앞면과 좌우 옆면에 비해 스핑크스의 뒤쪽과 엉덩이 부분은 풍화 작용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도 웨스트 박사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스핑크스의 모자와 장식을 포함한 스핑크스의 머리가 이집트 파라오 시대의 전형적인 이집트 양식인 것은 머리 부분케프렌 시대에 다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스핑크스의 머리가 몸통에 비해서 불균형적으로 작고 머리 부분의 침식 흔적이 훨씬 적은 이유도 후대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풍화된 모습이 스핑크스 곳곳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구전에 따르면 스핑크스쿠프의 피라미드(기원전 2500)보다 오래 되었다는 전설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데, 이들의 주장은 이와 일치하는 것이다.

스핑크스를 건설했던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쇼크 박사는 기존 통설과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근동지역에서 기원전 7천년 경에 농업이 시작되었으며 세계 최초의 도시들이 이미 건설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예리코는 기원전 7000년에 이미 방어벽을 세웠고 나선형 계단이 설치된 거대한 탑도 건설되었다. 그러므로 이들 고대인들이 스핑크스와 같은 대규모 건축물을 건설할 수 있다고 추론했다.

쇼크 박사는 근동지역에서 고대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이 이집트에 와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선진 기술을 사용하여 스핑크스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주장에 대해 정통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했다.

쇼크나 보발의 스핑크스 건립 연대의 수정에 대한 반박도 매우 구체적이다. 톨레도 대학교 지질학과 교수인 제임스 해럴 박사는 쇼크가 강우현상으로 생겼다는 침식은 다른 메커니즘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핑크스는 상당 기간 동안 모래로 덮여 있었다. 투트모세 4 역시 여러 세기 동안 모래 속에 잊혀져 있던 스핑크스를 파내야 했다. 그렇다면 스핑크스가 상당 기간을 젖은 모래에 묻혀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래 속의 습기가 화학적인 침식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해럴 박사는 빗물이 스핑크스 쪽으로 흐르도록 된 고원 지대의 지형과 나일강의 대홍수 등이 그 같은 침식 작용을 가능케 한 증거로 들었다.

더구나 현재도 침식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해럴 박사보다 먼저 쇼크의 가설을 반박했던 가우리 박사가 주장한다.

기자 지역에서 밤에 공기가 차가워지면 암석 표면에 이슬이 맺혀 석회암의 미세한 구멍 속으로 스며들어 암석의 염분과 결합하여 용액이 만들어진다. 해가 뜨면 습기가 증발하는데 염분용액은 결정화되어 미세한 구멍의 벽에 압력을 가한다. 암석 표면에 금이 가고 작은 석회암 조각이 염분 결정체의 압력에 밀려 표면에서 떨어져 나간다.

가우리 박사는 폭우로 인한 홍수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스핑크스 측면의 파도 모양 무늬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즉 스핑크스의 몸통을 이룬 암석은 성분이 약간 다른 세 가지 석회암 띠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무른 석회암층은 내부 구멍의 기포가 더 크며 염분의 결정화로 인해서 더욱 빨리 침식된다. 파도 모양의 무늬는 강도가 다른 석회암층의 침식 속도 차이로 생긴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쇼크 박사는 스핑크스의 담장 내부에 있는 깊은 수로를 폭우의 또 다른 증거로 간주했다. 그러나 가우리 박사는 이 수로들이 스핑크스가 조각되기 수백만 년 전 지질시대에 지하수가 만든 작은 동굴들이라고 지적한다. 스핑크스 주변에 배수로를 팔 때 이 동굴들이 드러난 것이므로 스핑크스의 제작 연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정통 이집트 학자들은 천연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스핑크스는 80톤이 넘는 석회암이 동원돼 머리부터 몸통, 그리고 맨 뒤쪽 순으로 세 단계에 걸쳐 조각됐으며 건설기간도 30 정도라고 추정했다, , 쇼크 박사가 생각하는 만큼 앞·뒤쪽의 제작 시기가 그렇게 많이 차이 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쇼크 박사나 보발 박사가 스핑크스 건립 연대 등을 주장했지만 이는 고고학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조한 가짜뉴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령술사의 예언>

스핑크스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은 그만큼 스핑크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남다른 매력을 주기 때문이다. 1만 년 전이라면 많은 호사가들이 이야기하는 스핑크스가 대서양에 있었다고 하는 전설상의 대륙인 아틀란티스와 멸망한 때와 같다. 그런데 1930년대 미국의 유명한 심령술사였던 에드거 케이시가 다소 놀라운 예언을 했다.

플라톤은 아틀란티스 문명의 멸망 시점9500년 전 경이라고 했다. 그런데 심령술사 케이시는 플라톤이 말한 것보다 약 1000년 전인 기원전 1500년경에 아틀란티스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멸망 직전에 몇몇 아틀란티스인들이 빠져 나와 자신들의 문명에 대한 기록을 스핑크스와 연결된 비밀의 방에 숨겨 놓았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구 소련인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며, 유럽에서 가축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이 만연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다고 했다. 그의 이런 예언이 광우병의 확산으로 해석돼 그의 명성을 더 높여 주었음은 물론이다.

 

에드가 케이시

더불어 미래에 일본이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남극과 북극이 뒤바뀐다는 예언도 남겼다. 또한 1968년에 중국이 기독교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는 완전히 빗나갔음은 물론이다.

여하튼 그는 아틸란티스에 대해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리딩'으로 남겼는데 그에 의하면 기원전 43천년 경에 시작된 지각 변동 이후 기원전 28천년경 하나의 대륙에서 여러 개의 섬으로 쪼개졌으며, 그 중 가장 크고 문명이 발달한 섬이 포세이디아라 불리는 아틀란티스 대륙이었다는 주장이다.

당시 아틀란티스인은 항공기와 전기, 살인 광선 등 지금보다 더 발달된 기술문명을 갖고 있었는데 아틀란티스는 기원전 1500년경 갑자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주장 중 핵심은 1990년대가 되면 누군가에 의해 아틀란티스인이 숨겨둔 기록과 비밀의 방이 발견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아틀란티스의 침몰

그의 예언이 워낙 유명하므로 1978년 이집트에서 1990년 이전임에도 그가 예언한 장소를 조사토록 허가했다. 그런데 지진계로 위치를 추정한 후 7미터나 파고 들어갔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집트 정부는 탐사대가 사용한 드릴이 너무나 진동이 커서 스핑크스 자체를 손상시킬 수 있다며 이들을 철수시켰다. 물론 탐사대는 이집트인들이 무언가를 발견할 것이 두려워 고의적으로 계속 탐사를 방해했다고 말하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가 되자 또 다른 뉴스가 발표되었다. 스핑크스에서 지하 공간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1991년 로버트 쇼크 박사와 지진학자 토마스 도베키 박사가 공동으로 지진탐지술을 이용해 스핑크스 부근을 정밀히 조사했다. 그들이 사용한 지진탐지술은 큰 쇠망치로 철판을 두드려 철판의 진동이 지하의 바위에 닿아서 튀어 나오는 걸 분석하는 방식이다.

탐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스핑크스의 좌우와 발 부분 사이의 지하에 텅 빈 정방형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하 공간의 형태로 보아 인간이 만든 것으로 추정했다.

케이시의 예언대로 방이 발견되었는데 사실 스핑크스 밑에 비밀의 방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매우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15세기경 이집트 맘루크왕조 시대의 아랍 역사가였던 알 마크리지는 스핑크스 지하에 세 피라미드와 연결된 통로를 가진 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 이야기는 부풀려져 그 방과 스핑크스 머리로 통하는 터널이 있으며, 그곳에서 이집트 사제들이 스핑크스가 신탁(神託)을 내리는 것처럼 연출했다고 전해졌다.

더불어 로버트 쇼크 박사의 발견 이후 그동안 고고학자들이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던 비밀의 방에 대한 발견이 잇따랐다. 1995년 스핑크스 부근에서 보수 작업을 하던 작업원이 스핑크스 측면에 지하로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터널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집트 당국이 터널 입구를 봉인해 버려 추후 이에 대한 사실 여부는 더 이상 알려지지 않았다.

1996년에는 조셉 쇼르 박사가 이끄는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탐사팀이 레이더를 이용해 스핑크스 주변 지역을 조사하다가 스핑크스 앞부분 지하에 비어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쇼르 박사는 레이더를 이용해 기자 고원 전체의 지도를 만들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었는데, 뒤이어 쿠푸왕의 피라미드 동쪽 지하에서도 터널 같은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탐사팀은 대피라미드 주변을 한 달간 파헤쳤으나 결국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

그러자 이집트 당국은 지하 공간의 추가 발굴 및 원격 탐지장비사용을 금지시켰다. 이에 대해 양측의 주장은 엇갈리고 있다. 쇼르 박사는 스핑크스 지하에 가로 7.5미터, 세로 12미터, 높이 13.5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방이 있는 걸 확인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집트 당국이 작업을 금지시켜 발굴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집트 유물관리국의 자하이 하와스 박사는 탐사팀에게 대피라미드 주변을 파는 걸 허락했으나 아무 것도 찾지 못했으며, 레이더가 지하에서 발견한 것은 자연적으로 생긴 틈새 공간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서로 헛갈리는 주장이 계속되었는데 일본의 와세다 대학 탐사팀도 스핑크스 지하에서 터널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자 이집트 당국이 스핑크스 지하에 비밀의 방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은폐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계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스핑크스의 역할은 피라미드를 지키는 일이다. 피라미드 안에는 엄청난 보물이 들어 있는데,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고대 이집트인들은 통로를 복잡하게 만들고 출입구를 알 수 없게 건축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피라미드로 통하는 비밀의 문이 있다면 스핑크스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스핑크스 지하에 감춰진 비밀의 방에 대한 호사가들의 주장은 급속히 확산되었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생존자들이 스핑크스를 건설하고 고대 이집트 문명을 창건했다는 사실을 이집트 정부가 숨기려 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국가안전보장국(NSA)스핑크스 지하에 숨겨진 초고대 문명의 비밀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정통 이집트 학자들은 비밀의 방존재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함구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공식적으로 발표된 기존의 연구 내용을 스스로 뒤엎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피라미드 건축에 대해 일가견을 갖고 있는 마크 레너 박사가 이 문제에 도전했다.

스핑크스의 건설 단계 및 고대와 현대에 이루어진 복구 작업까지 염두에 두고 첨단 장비로 상세히 조사한 결과 스핑크스에 3개의 구멍이 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중 하나는 19세기 중반 리처드 바이스 대령이 스핑크스 머리 뒷부분을 뚫은 구멍으로 판명되었다. 나머지 2개의 구멍은 누가 언제 뚫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비문이 들어 있거나 비밀의 방으로 통하는 통로는 없었다.

또한 로버트 쇼크 박사가 발견했다는 스핑크스 지하의 빈 공간도 전자기 조사 결과 자연적으로 생긴 균열로 인한 틈새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마크 레너 박사는 로버트 쇼크 박사가 오랜 기간 동안의 고고학적 연구결과를 무시한 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로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고 비난했다.

스핑크스의 비밀은 계속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스핑크스로부터 200미터 떨어진 지하에서 20022월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고 발표되었다. 2000년까지 물이 차 있었던 지하였는데 물을 퍼내자 기원전 500년 경의 수많은 화강석 석관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지하 수갱은 마치 미로처럼 매우 복잡하게 얽혀져 있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들이 스핑크스와 연결되어 있다고 추정한다. 기원전 600년경에는 특히 오시리스 신앙이 번성했고 대홍수라는 기록이 있는데 학자들은 이때의 영향으로 스핑크스가 물의 침식 현상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