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약>
학자들에 따라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로 사약을 거론한다. 조선사 전체를 통해 사약처럼 많은 이야기를 만든 소재가 없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약처럼 모순적인 것은 없다. 약이란 사람을 치유하는 것인데 사약은 이와 반대로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한 약이다. 그것도 조선조에서 왕이 직접 명령하여 집행한 것이다. 독약은 다른 문명권에서 흔히 암살할 때 사용했는데 조선에서는 독약을 중앙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집행하는 사형에 사용했다는데 특이성이 있다.
조선시대에 중죄인을 처단하기 위한 사형 집행 방법으로는 교형, 참형, 능지처사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교형은 죄인의 목을 매서 죽게 하는 소위 교수형이고 참형은 이보다 무거운 형벌로 목을 베었다. 대역죄인이나 패륜죄인의 경우에는 수레에 팔다리와 목을 매달아 찢어 죽이는 능지처사 등 보다 잔인한 방법을 사용했다.
처형이라는 자체만 생각한다면 어떻게 죽어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대의 상당수 국가에서 죄의 경중에 따라 처형방법을 구분하여 집행하였다.
조선에서 사약을 특별히 중요시한 것은 사약을 받는 사람의 직위와 서열이 남다르므로 이에 걸맞는 처형 방법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원래 처형될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매우 고통스럽게 다루는데 유교를 기본으로하는 조선에서 이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문에게도 그야말로 치욕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사약으로 처형을 집행할 때는 조정의 관계자들만 보므로 이런 껄끄러운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더구나 사약으로 죽는 것은 시체가 온전하게 보존된다는 점이다.
머리카락도 부모가 준 것이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던 유교 국가에서 일반 처형은 인간답게 죽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사약을 받는 사람은 일반 범죄자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처형당하더라도 사약을 받은 경우 그들의 자손들이 시신을 정당하게 수습하여 매장하고 자손봉사 즉 제사까지 가능했다. 유교를 철저하게 시행하는 조선에서 제사가 중요한데 이를 보장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무책이 됨은 물론이다.
왕이 중죄인에게 교형, 참형이 아닌 사약으로 죄를 다스리는 근거는 『예기(禮記)』에 나온다. 여기에 선비는 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선비의 염치와 의리를 존중해주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죽는 것도 등급이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정부 고위 관료나 왕실 가족들의 경우 반란 등 대역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 사약을 받았다. 고을의 수장인 경우 불의의 사고를 막지 못해 큰 인명 피해를 야기했을 때 사약이 내려졌다. 그러나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사화다. 수많은 사화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소위 역모죄에 간접적으로 연루되었다며 사약이 내려졌다. 사실 역모에 직접 가담했다면 사약은 고사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는 게 보통이었다.
다소 놀라운 것은 반드시 사약을 먹고 죽어야 했던 것은 아니며 죽는 방법을 본인이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약과 함께 목을 맬 수 있는 광목이나 비단을 갖고 가 본인이 소지한 칼이나 독으로 자결하기도 했다. 그래서 형벌의 정식 명칭이 사사(賜死) 즉 죽음을 명령한다는 뜻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사는 사형이라기보다 자결 명령에 가깝다. 이런 케이스의 대표가 바로 연산군 시대에 처형된 영의정 윤필상과 폐비 윤씨를 사사한 이세좌다. 윤필상은 연산군이 자신을 죽일 것을 예감하고 미리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연산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스스로 술에 비상을 타서 마셨다. 그런데 독이 변질되었는지 효과가 없어 결국 목매어 죽었다. 이세좌는 그냥 민가에 들어가서 목을 맸다.
여하튼 사약에 대한 정황을 보면 사약은 받는 사람들이 거의 저항을 하지 않았다.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사약을 내려준 왕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고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판결에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점까지 고려해서 왕이 사약으로 성의를 내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반발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인데 실제로 영의정을 지낸 이극균이 갑자사화 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자 연산군이 이를 지적하며 부관참시하고 일가친척 역시 8촌까지 연좌로 변방으로 쫓아냈다. 물론 추후 곧바로 신원되었음은 물론이다.
단종의 경우 상당이 기록이 껄끄럽다. 단종은 사사 대신 교살당한 것으로 기록된 첫 번째 인물이다. 이는 세조 당시에는 단종을 사사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숙종실록』에 비로소 '사약을 가져간 금부도사 왕방연이 말을 못 잇고 있자 영월 관아의 공생이 활줄을 풀어 목 졸라 죽였다.'라는 언급이 등장한다.
이를 약간 비틀어서 만든 것이 단종 처형이다.
단종의 사인은 『세조실록』에 단종의 자살로 적혀있는데 기타 야사나 민담에는 사약이나 사약을 거부한 타살로 기록되어 있다. 단종의 왕위가 무단 찬탈되었다면 단종이 정통이므로 세조로부터 사약을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단종이 사약을 거부하자 결국 단종을 교살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조선의 사약은 당대에 처형자의 명예를 지켜준다는 의미에서 일본의 할복과 비슷하다. 당대의 사형방법 중 신체훼손이 가장 적다는 것도 유사하다.
<사약의 제조>
사약에 대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보내는 것은 대체 어떻게 만드느냐이다.
사약 제조는 <내의원>에서 담당했으나 제조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으므로 그 성분이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현존 한의약서 중에서 사약을 다룬 서적은 없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으로 주성분은 독이 있는 나무에서 추출한 독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사약을 먹으면 온 몸에 열이 나서 죽는다는 말이 있으므로 열을 내는 성질을 가진 부자 계열의 약재인 초오(草烏), 초두, 천남성 등을 넣었을 거라 생각한다. 부자는 투구꽃에서 추출하는 약이며 지금도 한의학에서 매우 흔하게 쓰이는 약이다.
부자, 초오 등에서 독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은 알칼로이드 성분인 ‘아코니틴’이다. 아코니틴은 몸속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저해제로 작용한다. 아세틸콜린은 신경과 근육을 이어주는 곳에서 분비되는 물질로서, 만일 아코니틴의 작용에 의해 이것의 분비가 부족해지면 근육마비가 일어난다. 특히 부자는 독성과 열성이 매우 강하여 많은 양을 쓰면 부정맥, 혈압 강하, 경련, 의식 장애를 일으킨다.
물론 오늘날 약재로 사용하는 부자는 포부자로 독성을 많이 제거한 것인데 연구에 의하면 3시간 이상 달이면 독성이 거의 사라진다고 한다. 초오는 부자 종류에 속하는데 이것을 날것 또는 끓여서 먹으면 위장 안에서 점막출혈증상이 심하게 일어나 토혈을 하면서 생명을 잃게 된다. 천남성은 산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잎이 넓고 키가 작으며 딸기 비슷한 열매가 열린다. 천남성에는 ‘코니인’이라는 맹독성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다.
그런데 성종이 폐비 윤씨를 사사할 때 이세좌가 비소화합물인 비상(砒霜)을 가져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약에 수은이 포함되었다는 주장도 있고 맹독버섯 중 하나인 화경버섯을 달여서 재료로 썼다는 기록도 있지만 학자들은 비상에 주목한다.
비상은 자연상태의 비소를 원료로 제조하는데 비소는 무색무취의 백색 분말로 물에 잘 녹는다. 비소는 몸 속에 들어가면 효소단백질 분자와 결합해 세포의 호흡을 방해해 세포를 죽게 만든다. 비상을 한 번에 치 사량 이상 흡입하면 구토, 설사, 모세혈관 확장, 혈압감소 등이 일어나며, 중추신경기능이 마비돼 1-2시간 내에 사망한다.
사약에 대한 비방은 아니지만 19세기 이규경(李圭景)이 집필한 『오주서종박물고변(五洲書種博物考辨)』에 비상을 제조하는 방법을 적고 있다. 즉, 비소 덩어리(砒石)를 흙 가마에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상태로 태우면 비소 증기가 위로 올라가 솥 안쪽 벽에 붙게 되는데 이것을 떼어내면 비상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비상을 논밭의 농약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당시 비상 제조가 매우 활발했다고 전한다.
또한 이규경은 비상의 강한 독성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비소 덩어리를 태워서 비상을 만드는 동안에 연기에 노출된 초목은 모두 죽어버릴 정도로 독이 강해, 사람들이 연기를 흡입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일을 하는 사람은 2년 안에 전업(轉業)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독에 노출되어 수염이나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린다고도 하였다. 한마디로 비상의 효과와 부작용을 정확하게 적은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범죄 참고서인 『무원록(無寃錄)』에 비상을 먹고 자살한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비상에 중독되어 죽은 자는 만 하루가 지나면 온몸에 작은 포진이 발생하고 몸의 색깔도 청흑색으로 변한다. 게다가 눈동자와 혀가 터져 나오고, 입술이 파열되고, 두 귀가 부어서 커질 뿐만 아니라 복부가 팽창하고 항문이 부어 벌어진다.’
한마디로 맹독으로 인해 온몸이 상한 처참한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묘사로 볼 때 비상으로 만든 사약을 마셨다면 사극에서처럼 우아한 모습으로 죽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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