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셍크 탈출>
프랭크 다라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1994년에 출시된 「쇼생크 탈출」은 여러 가지 기록을 세운 영화로 유명하다. 우선 영화 자체는 처음 개봉될 때 흥행에서 별로 성공을 하지 못했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개봉 초기에 벌어들인 1,800만 달러는 제작비도 건지지 못했다. 다행히 1995년 작품상을 포함한 아카데미 7개 부분(작품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작곡상, 음향상)의 후보가 되었고 1995년 골든 글로브 2개 부문(남우주연상, 각색상)의 후보가 되었지만 수상하지 못했고 1995년 제 19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을 뿐이지만 이와 같이 후보작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어 다소 적자를 만회할 수 있었다.
헐리우드 스타일을 보면 「쇼생크 탈출」이 흥행에 성공한다는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제목 자체가 교도소를 탈출한다는 내용인데다 여성들이 좋아할 내용이 거의 없다. 출연 배우가 연기력 자체는 인정받지만 대스타는 아닌데다 액션도 없고 러닝타임이 142분에 달하므로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자명하다는 시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 소문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자 홈비디오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 터졌다. 「쇼생크 탈출」은 비디오테이프와 DVD, TV 방영을 통해 대규모 관객을 만나 비디오 대여점에서 가장 많이 대여된 영화라는 신화를 쌓았다. 인테넷 ‘무비데이터베이스’가 1999년 전세계 영화 관객을 대상으로 벌인 투표에서 250편의 위대한 영화 중 1위를 차지했다. 이후에도 「쇼생크 탈출」은 항상 5위권 안을 맴돌았다. 우여곡절을 겪고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영화의 한 편이 된 「쇼생크 탈출」은 기본적으로 교도소의 생활이다.
이곳에서 「쇼생크 탈출」를 설명하는 것은 몇몇 장면이 노벨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누명을 쓴 주인공 앤디가 동료 죄수들과 쇼생크 교도소에 들어가자 죄수들을 벌거벗긴 채 호스로 물을 뿌려 목욕을 시키고 소독약 DDT를 뿌린 다음 죄수복을 입도록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당대 즉 1947년대의 한 세태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과학적 결실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20세기를 대표하는 기적의 약 DDT 즉 하얀가루다.
DDT는 한국인에게도 직결된다. 1945년 8월15일 한국이 해방되자 1945년 11월에 이미 미군정 당국자는 ‘한국인들은 잘 씻지 않고 옷도 자주 갈아입지 않으니 적어도 열흘에 한 번은 DDT를 살포해야 한다’고 기록할 정도로 DDT를 전방위로 사용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더욱 DDT가 맹위를 떨쳤다. 피란민들은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DDT가루를 뒤집어썼다. 군사적 관점에서 그들은 사람이기 이전에 전염병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는 ‘숙주’들이었다. 피난민들도 굳이 마다할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 전쟁 중 DDT 세례를 받지 않은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DDT의 위용을 사라지지 않았다. 1960년대 말까지 군에서 근무했던 사람의 필수품은 DDT봉지로 여러 개의 조그마한 섬유 봉투에다 DDT를 집어 넣고 내복에 달고 다녔다. 이를 ‘이(蝨) 주머니’라고 불렀는데 당시 전방에 워낙 기생충이 많았으므로 오래간만에 휴가를 나가면 일단 집밖에서 옷을 모두 벗고 들어가야 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1960년대 말 전방에서 군생활 할 때 DDT살포 대열에 들었음은 물론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경험한 내용은 여러 가지이지만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하얀가루 즉 DDT를 생활화 했다는 것이다. DDT는 미군이 남한에 진주할 때 가지고 들어왔는데 DDT는 사람 몸에 기생하는 해충을 전멸시키는 ‘기적의 약’으로 그 성과가 대단했다.
<살충제의 원리>
해충을 죽이는 살충제의 종류는 다양하며 사용되는 용도도 제각기 다른데 최승일의 글에서 인용한다.
살충제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화학 약품은 곤충의 정상적인 신경 작용을 방해한다. 신경세포(뉴런)들 사이에는 시냅스가 있으며, 시냅스에서는 신경의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 전달 물질이 작용한다.
대표적인 신경 전달 물질은 ‘아세틸콜린’ 으로서 근육을 수축시키는 역할도 한다. 자신의 임무를 다 한 아세틸콜린은 콜린에스터라아제라는 효소에 의해 분해된다. 만일 이 효소의 작용이 멈춘다면 아세틸콜린이 분해되지 않고 누적된 탓에 근육은 계속 수축된다.
살충제는 바로 이점을 이용한 것이다. 곤충의 날개 부위에 살충제가 침투하면 날개 근육은 계속 수축되어 더 이상 날지 못하게 된다. 특히 호흡을 담당하는 근육이 마비된다면 곤충에게 치명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살충제의 목적은 반드시 곤충을 완전히 치사 상태에 이르도록 만드는 것은 아니다. 파리와 모기처럼 날아다니는 곤충은 날개가 마비되어 땅에 떨어지는 정도면 충분하다. 이후의 처리는 사람이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바퀴벌레처럼 주로 기어다니는 곤충은 좀 더 강력한 약을 사용한다.
살충제는 화학구조에 따라 천연살충제, 유기인제, 유기염소제, 무기살충제 등으로 구분한다. 천연살충제는 식물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하여 얻어진 식물성 살충제와 광물에서 얻어진 광물성 살충제로 대별된다. 천연살충제로는 브라질과 케냐 지방에서 자생하는 국화의 일종으로 만들어진 제충국(Anacyclus pyrethrum), 동남아시아 지역에 자생하는 데리스(Deris)라는 덩굴식물의 뿌리에서 추출한 로테논, 남아메리카에서 들여온 담배로 만든 니코틴 등이 있었다. 천연살충제는 효과는 있었지만 값이 비쌌고 일단 뿌리고 나면 금방 분해되어 자주 뿌려주어야 했으므로 전면 사용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무기살충제는 수은(Hg), 불소(F), 비소(As) 등을 함유하는 살충제로서 제2차 세계대전 초까지 사용되었으나 독성 문제 때문에 사용이 금지되었다.
유기인제는 유기인 화합물 살충제로서 유효 성분이 신속하게 분해되어 잔류 문제가 없으며, 곤충의 신경계를 침해하여 좋은 효과를 보이는 신경독제이다. 유기염소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종 해충방제에 사용하였으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저항성 해충의 유발, 유용한 천적의 살해, 생물농축 현상에 따른 잔류 독성 때문에 문제점이 많이 제기되었는데 이 장의 주제인 DDT와 BHC 등도 포함된다.
무기살충제는 과거에 천연살충제를 대신하여 사용하던 것으로 수은(Hg), 불소(F), 비소(As) 등을 함유하는 살충제이다. 특히 비소를 사용하는 비산납은 당시만 해도 가장 대중적인 살충제이다. 그러나 비산납은 비소를 기본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해충뿐 아니라 가축과 사람에게도 유독한 물질이므로 비소 중독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현재 비산납은 잔류성 농약으로 지정되어 사용이 제한된다.
요즈음에는 환경 오염과 인체의 건강 문제로 인해 살충제 대신에 천적을 이용한 해충 퇴치법이 확산되고 있다. 천적자원은 해충을 잡아먹는 포식성 곤충과 해충의 몸 속에 알을 낳아 기생하는 기생성 천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당벌레와 풀잠자리 무리는 식물의 즙액을 빨아먹는 진딧물과 깍지벌레를 잡아먹는 대표적인 포식성 천적이다. 반면에 고치벌과 좀벌 등은 기생성 천적의 대표종으로서 식물에게 피해를 주는 나방과 같은 해충의 알이나 애벌레의 몸에 자신의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깨어난 고치벌과 좀벌 등은 그 해충의 몸을 양분 창고로 이용하면서 최종적으로는 해충을 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한 농경지와 목초지의 해로운 잡초를 선택적으로 제거해 주는 곤충도 역시 천적 자원의 일부로서 잡초 방제용 곤충으로 볼 수 있다.
주로 이용되는 천적 자원으로는 진딧물의 천적인 진디혹파리, 총채벌레의 포식성 천적인 나팔이리응애, 딸기의 수확기에 주로 발생하는 점박이응애의 천적인 칠레이리응애, 과일과 채소류에 발생하는 진딧물과 온실가루이의 천적인 콜레마니진디벌과 온실가루이좀벌 등이 있다. 오리를 이용하여 벼에 해를 끼치는 해충을 퇴치하는 오리 농법도 일종의 천적을 이용한 해충 퇴치법이다.
천적을 이용한 해충 퇴치법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해충을 방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충에게는 그들의 천적이 있으므로 천적이 해충을 잡아먹도록 하거나 해충에 기생하게 하여 해충을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 특히 미생물 살충제의 이용은 화학 살충제에 대한 대안 중의 하나로 주목을 받고 있다. 미생물 살충제의 장점은 숙주에 대해 높은 특이성을 갖고 있어 포유동물 또는 제거 대상이 아닌 생물에 대해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광범위한 곤충의 저항이 발생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형태로의 제조가 가능하다. 이러한 미생물 살충제로서 딱정벌레목이나 모기 및 파리목, 나비목 해충 등에 유효한 제품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한편 미생물 살충제는 감염에서부터 발병까지 10여 일의 잠복기간이 필요하므로, 재배기간이 짧아 속효성 농약을 필요로 하는 농작물보다 긴 시간 동안 해충의 밀도를 낮추어야 하는 산림 해충의 방제에 더욱 효과적이다.
소리와 냄새를 이용하여 곤충을 쫓거나 죽일 수도 있다. 해충 자체의 호르몬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곤충은 애벌레, 번데기, 성충 등으로 구분되는 2∼3단계를 거치는데 이 때 곤충이 갖고 있는 호르몬에 의해 성장이 조절된다. 그러므로 적절한 시기까지 성충이 되는 것을 막는 유충 호르몬을 추출하여 적절하게 조작함으로써 성충이 되는 시기가 늦춰주면 해충은 유충 시기에 죽게 되는 것이다. 또한 특정 유충 호르몬은 특정한 곤충만 공격하므로 살충제에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들 수 있다.
근래 가장 각광받는 방법으로는 박테리아에서 얻은 유전자(식물이 스스로 살충제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가 들어있는 작물을 경작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유전자는 땅속에서 살면서 나비와 나방을 공격하는 바실루스 투링기엔시스(Bacillus thuringtiensts, 약어로 Bt)라는 박테리아에서 온 것인데 숙주에게 기생하기 위해 이 박테리아는 곤충의 내장세포를 파괴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므로 곤충은 Bt를 먹고 죽는 셈이다. 이 박테리아는 1960년대부터 배양되어 현재 미국에서 800만 헥타르에서 경작되고 있는데 이 단백질은 포유류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며 햇빛 속에서 쉽게 분해된다.
그러나 이제 학자들은 Bt가 있는 식물만 재배하면 곤충들이 Bt에 대한 면역을 가질 수 있으므로 적어도 20퍼센트는 Bt를 갖지 않는 작물을 동시에 심도록 유도하고 있다. 내성을 갖춘 곤충들이 20퍼센트의 작물로 몰려갈 경우 내성을 가질 시간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뮐러가 DDT를 개발할 때나 노벨상을 받을 때 어느 누구도 DDT의 부작용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나라에서 DDT의 사용이 전면 금지되어 있으나 현재도 많은 나라에서 DDT를 사용하고 있다. 살충제를 사용하여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에 DDT의 부작용으로 생기는 인체에 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문제는 살충제를 개발한 뮐러가 책임질 문제는 아니다.
살충제가 필요한 곳에서는 살충제를 살포하고 필요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살충제를 살포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를 가려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결국 과학적 진보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고 하여 과학적 진보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진보적인 대체물을 만드는 등 조심성 있는 처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악몽으로 바뀐 DDT>
DDT의 성과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DDT는 당시 가장 좋은 살충제보다 효과 지속 시간이 두 배나 길면서 가격은 4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마침 <세계보건기구>는 효과적인 DDT가 개발되자 1955년 ‘세계말라리아퇴치계획’이라는 거대한 말라리아퇴치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목표는 10년 안에 말라리아를 지구상에서 퇴치하는 것으로 10억 달러라는 거금을 확보했다.
유엔은 야심만만하게 DDT 투입작전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말라리아에 시달려온 인도는 15만 명을 고용해 집집마다 DDT를 뿌렸다. 또한 말라리아 환자에게는 치료제인 콜로로킨을 보급했다. 사실상 세계 보건을 위해 유엔이 이처럼 치밀한 조치들이 취해지기는 처음이었다.
세계보건기구가 대대적인 모기 박멸에 나선 것은 브라질과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수백만 건의 말라리아가 발생했다. 대부분 남부지역이었는데 수백만 헥타르에 이르는 습지를 말리고 수십만 가정에 DDT를 뿌리자 말라리아는 획기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1950년이 되자 말라리아가 미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사실 미국에서 말라리아가 퇴치된 것은 운이 좋았던 점도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두 종류의 얼룩날개모기는 사람보다 가축의 피를 좋아했다. 더구나 미국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창문에 방충망을 설치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사람은 거의 없었고 모기의 은신처인 습지를 밀어버릴 장비와 자원도 충분했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전 세계의 노력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카리브 해와 남태평양 지역, 발칸반도와 대만에서는 대부분 말라리아가 거의 퇴치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62년을 ‘말라리아 박멸의 해’로 선포했을 정도였다. 이는 스리랑카에서 1946년만 해도 매년 280만 명에 달하던 말라리아 환자가 1963년 단 17명으로 줄었고 인도에서도 매년 80만 명에 이르던 말라리아 사망자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라리아모기는 DDT 등의 공격에 일보 후퇴하고 있을 뿐이다. 유엔의 자금이 고갈되어 지원이 시들해지자 그동안 말라리아가 거의 뿌리 뽑혔던 지역에서 무서운 기세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유엔의 말라리아퇴치 운동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예산 지원이 적어 본격적으로 실행되지도 못했다.
여하튼 DDT가 살포되기 시작한 초창기 DDT를 사용함으로써 질병을 사라지게 하여 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농작물의 증산도 병행되었다. 말라리아가 퇴치된 곳이면 어디서나 농산물이 15∼50퍼센트나 증가한 것이다.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부족 상태가 만성인 지구상에서 살충제의 공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DDT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었지만 부작용이 없었으므로 농부는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DDT를 사용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는 DDT를 술에 타먹으면 취기를 돋운다고 알려져 DDT를 소량 함유한 술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DDT를 사용한 곳에서 어류, 조류 및 포유류들이 죽어간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DDT에 대한 경각심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모기의 일종인 커다란 각다귀를 퇴치하기 위해 DDT를 살포한 후에 발견되었다. 예상대로 각다귀가 박멸되었는데 물새가 이상하게 대량으로 죽은 것이다. 곧바로 물새가 사망한 원인을 추적하기 위한 정밀 조사를 했지만 물새들이 전염병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학자들이 죽은 새를 해부해보니 DDT가 놀랍게도 6,000ppm이 축적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당시 물새가 살고 있는 호수에 0.02ppm의 DDT가 함유된 사실을 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이것이 먹이 사슬에 의한 것임이 판명되었다. 이 호수의 플랑크톤에는 25ppm이 축적되어 있고, 이 플랑크톤을 먹은 물고기에는 300ppm이 축적되어 있었으며 이 물고기를 먹은 보다 큰 물고기는 10배의 DDT가 축적되었다. 당연히 물고기를 먹은 새에 더 많은 DDT가 축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DDT가 지방 조직에 축적되어 새와 같은 큰 조류가 사망하였지만 물고기를 잡아먹은 어부가 중독되었다는 소문은 없었다. 이것은 그 지역 주민 중에서 중독 된 물고기를 상식(常食)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은 북아메리카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송골매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DDT가 체내에 쌓인 새들이 낳은 알들은 껍질이 부드러워 쉽게 깨졌기 때문이다. 결국 부화율이 현저하게 떨어진 송골매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와 같은 충격적인 보고는 영국에서도 발견됐다. 영국에서는 매의 수가 정상적인 숫자보다 갑자기 감소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약 650쌍에서 220쌍으로 줄어든 것이다. 학자들이 죽은 새와 알을 조사한 결과 상당량의 DDT와 기타 살충제가 체내에 함유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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