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마무리는 경주 시내에 있는 경주국립박물관 방문이다.
경주국립박물관의 시원은 여타 박물관과는 매우 다르다. 경주가 신라 천년의 고도였던 까닭에 문화재 보호에 일찍 눈을 뜬 경주지역 유지들이 1910년 ‘신라회’를 만들었고 이 모임은 1913년 ‘고적보존회’로 발전하여 1915년 경주 객사에 진열관을 만들었다. 이것이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신이다. 이후 소장품들이 점점 증가했는데 해방 뒤 서울의 총독부박물관이 국립박물관으로 개관하자 국립박물관 경주 분관이 되었고 1975년 현재의 자리에 이전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답사하면서 경주국립박물관을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에밀레 종, 황금보검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적 유물이 보관되어 있음에도 이들은 세계유산에 지정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있기 때문에 지정되지 못한 것으로 신라의 향기와 또 다른 진수를 맛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곳으로 꼭 봐야 할 것이 산재해 있다.
<에밀레종>
국립경주박물관을 들어가면 정면으로 에밀레종이 보인다. 날렵한 모습의 전각 속에 있으며 녹음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밀레종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마치 산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방문객들이 있어 그런 정취를 만끽하지는 못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종을 만들어 여러 가지 사용했다.
① 사람들을 불러 모을 때 ② 시간을 알릴 때 ③ 긴급 사건에 대한 경고 ④ 종교의식 ⑤ 음악
위와 같이 여러 가지 용도로 종을 사용했지만 그중 가장 많이 사용된 곳은 불교의 사찰에서 사용하는 범종이다. 한국에 불교가 들어오면서부터 사찰에서 예불에 사용되는 의기로 법고, 운판, 목어와 더불어 종을 사물(四物)의 하나로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사용하는 종을 범종(梵鍾)이라고 하는데 사찰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종을 말한다. 범종 소리는 부처님의 말씀에 비유되기도 하며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는 이들이 소리를 들으면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 범종에서 간판스타가 한국인의 심금을 울려주는 에밀레종이다.
신라 혜공왕은 봉덕사의 신종 주조를 위해 스님들로 하여금 온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재물을 거둬들이게 하였다. 불심에 가득 차 있는 백성들은 나라에서 큰 종을 만든다는 말에 자기의 힘이 닿는대로 재물을 바쳤다. 그러나 종이 완성되었지만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모두들 종이 울리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던 어느 날, 봉덕사의 주지 스님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백발 노인이 꿈속에 나타나 말했다.
그대들이 시주 다닐 때 어떤 부인이 우리 집은 가난해서 아무 것도 바칠 것이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도 가져가십시오. 라고 말했는데 어째서 그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느냐?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그 어린아이는 몸에 화성(火姓)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아이와 함께 쇠를 녹여서 만들면 좋은 소리를 낼 것이다.
백발 노인의 말이 너무나 신기해서 주지 스님이 이튿날 봉덕사 스님들을 모아놓고 꿈 이야기를 했다.
제가 그런 부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 스님이 마침내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주지 스님은 그 아이를 데려오도록 명했다. 명령을 받은 스님은 곧 길을 떠났지만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주지 스님의 명령대로 아이를 데려 간다면 그 아이는 종을 만들기 위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아이를 시주하겠다는 부인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스님은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집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부인을 다시 만났다. 백발 노인이 말한 아이가 틀림없었다.
저번 소승이 댁에 찾아왔을 때, 부인께서는 바칠 것이 없으니, 이 아이라도 시주하시겠다고 하신 일이 생각나십니까?
예.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만….
그때 하신 말씀대로 그 아이를 시주해 주십시오.
뭐라고요?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그 아이를 시주해 달라는 뜻입니다.
안 됩니다. 그때는 제가 닿는 대로 빈소리를 한 것입니다.
부인이 이렇게 딱 잘라 말하는데는 스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봉덕사의 신종을 반드시 울려야 할 임무를 갖고 있는 스님으로서는 그냥 돌아서서 나올 수도 없었다. 스님은 그 아이만이 종을 울릴 힘을 갖고 있다고 부인을 설득했다. 귀여운 딸이 지금은 죽는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하는 종소리가 된다면 만 백성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라며 간청하였다. 부인은 사람의 힘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큰 힘이 사랑하는 딸을 데리고 가려는 것을 깨닫고 스님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어린아이를 내밀었다.
종은 부처님의 큰 뜻에 따르려는 신앙심, 한 어머니의 피눈물, 어린 여자아이의 생명과 쇳물이 함께 녹여져서 다시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다. 종은 넓은 경주 땅은 물론이고 온 나라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종소리를 들은 왕은 매우 흡족하였고 지켜보던 많은 백성들도 환성을 질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종소리는 마치 어린 딸이 어머니를 부르는 듯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하고 울었다. 즉 에미 때문에, 에미 때문에라고 운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가엾은 어린이를 동정하였다. 이것이 봉덕사의 신종이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전설의 내용이다.
사실 종소리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웅장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고, 같은 소리라도 처량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봉덕사 신종이 에밀레종이라는 속명으로 부르게 된 전설의 유래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이 종에 새겨 있는 명문 내용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효성이 지극하신 경덕왕은 부모에 대한 추원(追遠)의 정이 골수에 사무치심에, 동 12만 근을 희사하여 아버지인 성덕대왕을 위하여 대종(大鐘)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은 경덕왕의 유언을 받들어 유사(有司)에게 분부하여 종을 만들게 하였다.'
이 명문에 의할 경우 이 종을 완성하기까지 약 20년이 걸린 셈인데 이것은 종이 만들어질 때까지 여러 차례의 실패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종소리가 나오기 전까지 수많은 실패가 이어졌으며 실패할 때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던 중에 어린아이가 희생되었다는 슬픈 전설도 생겼다고 추정할 수 있다.
<어린아이의 희생>
어린아이가 종소리를 좋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쇳물과 함께 녹여졌다는 이야기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어 진다.
첫째는 전설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아기가 진짜로 희생됐다는 주장은 에밀레종 속에 인(燐, P)의 성분이 소량이나마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사람의 뼈나 동물의 뼛속에 있는 인의 성분은 물질의 합성이나 합금을 만들 때 신기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도 우리나라의 무쇠와 청동불상에는 인이 소량 들어있으므로 에밀레종 속에서 인이 발견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이 미량의 인을 합금한 청을 인청동이라고 한다. 잘 알려진 ‘본차이나’ 즉 도자기에서 ‘본’이란 말은 뼈를 뜻하는데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만들 때 넣는 뼈는 소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불교가 매우 성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봉덕사의 신종에 포함된 인은 동물의 뼈라기보다는 인신공양(사람의 몸을 바치는 일)으로 사람의 뼈가 녹아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1970년대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정밀 조사에 의하면 에밀레종에서 한 어린아이의 유체(시체)에 해당하는 인이 검출되었다고 발표되었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1970년대에 미국 독립 200주념 기념 선물(우정의 종)로 에밀레종(우정의 종)을 복제하여 보냈는데 이때 에밀레종의 성분을 측정했다. 현재 이 종은 미국의 로스앤젤러스(LA) 산 페드로 항구에 있으며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 배경으로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어린아이의 희생으로 종을 만들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사람의 목숨은 물론 짐승의 생명조차 존중하여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인신공양과 같은 전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502년 신라 지증왕이 사망하자 그동안 살아있는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순장을 폐지시켰던 신라가 거의 3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종을 잘 만들려고 산 사람을 끓는 구리물에 넣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이지영 이화여대 교수 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에밀레종에 대한 가장 오래된 우리 기록은 1935년 간행된 ‘조광(朝光)’ 1호에 민속학자 송석하 선생이 쓴 것이다. 함경도나 평안도 지방의 무당 노래(무가·巫歌)에 에밀레종 전설과 비슷한 구절이 있으며, 한말(韓末) 외국 선교사들이 채집한 설화 채록본에도 에밀레종 전설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만약 에밀레종 전설이 사실이라면, 8세기 후반 에밀레종을 만들면서 정말 사람을 넣었다면, 왜 1100여 년 동안 관련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다가 20세기 초반에 들어서야 이와 관련한 설화나 전설의 형태로 남아있는지 의문이라는 질문도 있다. 특히 『삼국사기』는 물론 불교 이야기를 많이 기록한 『삼국유사』,에도 ‘에밀레종에 여자 아이를 바쳤다’는 기록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교수는 ‘통일신라나 고려 때의 에밀레종 전설 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이 전설을 후대의 창작품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자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은 국립경주박물관의 의뢰로 1998년 8월, 에밀레종을 분석하였더니 뼈의 주성분인 인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하였다. 에밀레종 12군데서 샘플을 채취, 분석 시료 안에 1,000만 분의 1% 이상 들어가 있는 성분은 모두 검출할 수 있는 ‘극미량원소분석기’로 분석한 결과 구리(Cu) 80〜85%, 주석(Sn)이 12〜15%이며 이 외에 납(Pb), 아연(Zn) 등을 확인하였지만 인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똑같은 에밀레종의 검사를 두고 시험 결과가 엇갈리지만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서도 자신들의 분석 때문에 전설이 무조건 근거가 없다는 얘기를 해서는 곤란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사람의 비중이 구리보다 가벼우므로 전설처럼 어린아이를 넣었다면 위로 떠서 타기 때문에 '쇠찌꺼기'처럼 남게 된다. 만약에 에밀레종 제작 당시에 이것을 ‘불순물’로 생각하여 제거했다면 인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견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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