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공양 증거 발견>
이 문제는 2017년 계림월성지구 월성지구 반월성의 발굴 중 서쪽 성벽 기초부분 속에서 1600여 년 전 살았던 50대 남녀 인골 2구가 발견되어 새로운 각도의 검토를 제기했다. 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들 유골이 문헌으로 전해오던 ‘인주 설화’의 증거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인주란 인간 기둥을 의미하는데 사람을 주춧돌 아래에 묻거나 기둥으로 세우면 건물 등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고려사』에도 등장한다. 두 인골 모두 결박이나 저항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튼튼한 성벽을 쌓기 위해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특히 인골들 발치 쪽에서 5세기 전후 만들어진 토기 4점이 나와 성벽 축조 시기 등도 확인됐는데 이는 당대의 인신공양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하튼 에밀레종에 대한 전설은 인의 발견과 관계없이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을 계속 지니지만 종을 만드는 작업이 여러 차례 실패하여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아 모든 사람이 걱정할 때 종에 어린아이를 공양해야만 소리가 날 것이라는 말에 이를 허술하게 듣지 않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에밀레종의 주조에 신라의 모든 염원이 쏟아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음질을 높이기 위해 어린이를 희생한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인의 감각만으로 어린아이의 인신공양에 대한 진위 여부를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뜻으로도 풀이되지만 이번 인골 발견으로 단순한 우연이나 터무니없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 셈이다.
끄새가 잘 알고 있는 외국인에게 에밀레종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하자 매우 애절한 이야기이지만 그러한 예는 전 세계의 고대 사회에서 자주 있었던 일이라고 긍정적인 의사 표시를 하여 오히려 끄새를 놀라게 했다. 더욱이 그런 전설이 담겨있는 에밀레종이 현재도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는 한국인은 문화유산에 대한 정열이 남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고 매우 부러워했음을 첨언한다.
<한국종의 특이성>
종은 금속으로 주조한 일종의 타악기로 범종(梵鐘), 악종(樂鐘), 경종(警鍾), 시종(時鐘) 등 그 범위가 넓지만 우리나라에서 종이라 일컬을 때는 동제(銅製) 범종을 말한다. 범종은 시각을 알려 주는 실용적인 기능도 있지만, 의례용, 특히 불가에서는 중생 제도(衆生濟度)의 종교적 기능도 지니고 있어 사찰용 종을 따로 범종이라 말하며, 독자적인 양식과 의의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범종은 시대에 따라 신라식과 고려식, 조선식으로 약간씩의 양식 변천을 이루었다. 신라 종과 고려 종의 양식은 순수한 우리 선조의 창의력에서 이루어진 형식인데 반하여 불교 배척 시대였던 조선의 범종 양식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이른바, 조·중 혼합 양식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다시 신라 종의 형식이 한국 종의 절대적인 양식으로 널리 유행하여 조성되고 있다.
종은 타종 방법에 따라 종신 표면에 당좌(撞座)를 형성한 후 외부에서 당목(撞木)으로 쳐서 소리를 내는 동양 종과, 종신 내부에 방울을 매달아 종 전체를 움직여 소리를 내게 하는 내타식(內打式)으로 일종의 탁(鐸)과 같이 내부에서 치는 서양 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종의 재질은 한국 종은 청동, 중국 종은 철로 만든다. 중국 종 및 일본 종은 종점에 쌍룡으로 된 종뉴를 갖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종은 종뉴가 단룡(單龍)으로 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종은 다른 나라에 없는 아름다운 모양 즉 상대, 하대, 당좌, 비천상, 명문이 있으며, 소리가 맑고 긴 여운을 가지는 맥놀이를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한국 종이라는 학명으로까지 불리고 있을 만큼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그 양식의 전형은 신라 종에서 완성되었다.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인 신라 종을 보면, 종의 고리는 생동감 있는 하나의 용머리에 두발이 달린 용뉴(龍紐)가 마련되고, 그 옆에는 종의 내부와 관통하는 음관(音管)이 있다. 종신(鐘身)의 어깨와 종구(鐘口)의 둘레에는 당초문이나 보상화무늬를 새긴 상대(上帶)와 하대(下帶)가 마련되어 있다. 상대의 아래쪽에는 종신의 1/4 크기로 네모난 테두리 안에 유곽대(乳廓帶)가 있고, 유곽 안에는 꽃잎받침 위에 도드라진 젖꼭지 모양의 종유(鐘乳)가 3열로 3개씩 배치되었다. 또 유곽과 유곽 사이의 종신부(鐘身部)에는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을 새겨 넣고, 그 반대쪽에는 연화문당좌(撞座 : 종을 치는 자리)를 조각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당좌의 위치는 몸체의 1/4 정도에 해당하는 곳으로 종의 외형상 가장 불룩하게 소사오른 자리에 위치한다. 그 밖의 종신부에는 종의 제작 경위, 주조 연대, 담당자 등을 기록한 글인 명문을 새겼다.
이러한 조각 문양(彫刻文樣)은 장식적인 효과 외에 서로 다른 두께와 질량으로 인해 각기 다른 주파수를 내는데, 이러한 여러 부분음(部分音)들은 합쳐져 합성음(合成音)을 만들어 낸다. 즉, 한국 종 특히 신라 종은 음향학적 원리(音響學的原理)에 맞게 표면의 문양 크기와 배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과학적인 설계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종의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 종신의 설계에 있어서 특수한 수학적 비례(數學的比例)를 사용해 설계했다는 것이다. 이장무(李長茂) 교수에 의하면 오대산 상원사 종의 하단부 외경과 하단부에서 천판까지의 높이의 비는 1 : 1.47인데, 이 비율은 석굴암에도 쓰여진 예술적 조형미의 치수인 황금 분할비(1 : 1.618)와 비슷한 1 : 1.414에 가까운 치수라고 한다. 성덕 대왕 신종의 경우도 그 비율이 1 : 1.36으로 역시 이에 가깝다. 또한 당좌의 높이와 종 크기의 비도 역시 '황금 분할비'에 근접하여 있다. 특히 당좌의 높이와 위치는 이 교수의 공학 계산에 의하면 종의 스위트 스팟(sweet spot)과 일치하며, 타격할 때 종걸이 부분에 최소의 힘이 작용하여 여운이 길어지고 종의 수명이 늘어나는데 적합한 부분에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에밀레종의 특이성>
에밀레종의 명문(銘文)에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라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에밀레종 즉 성덕대왕신종에 적혀있는 명문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보물 제1167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이다. 높이 3.66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불렀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설화로 인해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리운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종 몸체에는 상하에 넓은 띠를 둘러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밑으로는 4곳에 연꽃 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연꽃봉우리를 사각형의 연곽(蓮廓)이 둘러싸고 있다. 유곽 아래로 2쌍의 비천상이 있고, 그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연꽃 모양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몸체 앞,뒷면 두곳에는 종에 대한 내력이 새겨져 있다. 특히 종 입구 부분이 꽃모양으로 굴곡진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문양과 조각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또한, 몸통에 남아있는 1,000여자의 명문은 문장뿐 아니라 당시의 종교와 사상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금석문 자료로 평가된다.‘
에밀레종의 전체 높이는 3.66미터이지만 몸체 높이는 2.91미터, 종걸이의 높이는 0.65미터다. 바닥 면의 직경은 2.2미터이고 종신(鐘身)의 두께는 밑쪽이 21.5센티미터이며 위로 올라감에 따라 10센티미터 정도로 얇아지며 전체의 부피는 약 3세제곱미터 정도가 된다. 에밀레종은 그 동안 구리 12만 근으로 만들어졌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대략 20톤으로 무게를 추정해왔으나 1997년의 정밀측정에 의해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에밀레종은 그동안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종으로 알려졌는데 첫째는 1735년에 주조된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안에 있는 종으로 무게는 약 200톤에 달하며 둘째는 1420년에 주조된 북경 대종사에 있는 영락대종으로 무게는 46.5톤이다.
그런데 18.9톤의 세계 3위 종이라는 기록은 강원도 화천의 평화의 댐 인근에 건설한 평화의 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종에 의해 깨졌다. 2009년 5월, 넓이 2.5m, 높이 4.7m, 무게 37.5t에 달하는 평화의 종을 설치하여 세계 3위가 아니라 세계 4위로 변경된 것이다. 평화의 종은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에티오피아와 콜롬비아의 분쟁현장과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사용했던 탄피 등 모두 30개국에서 모은 것을 녹여 만든 것으로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등이 방문하여 타종식을 했다.
또한 달라이 라마, 시린 에바디, 김대중 전 대통령 등 14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평화메시지와 7명의 핸드프린팅 등을 전시하는 한편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충북 속리산의 정이품송(正二品松)의 장자목(長子木)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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