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한국유산)/경주역사지구 답사

경주역사유적지구 답사 (51) 석굴암(1)

Que sais 2021. 12. 3. 13:08

https://youtu.be/NTmgJK3JzX4

유네스코는 광범위한 경주 영역을 <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했지만 경주에 있는 한국의 유네스코세계유산의 간판석굴암과 불국사라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이들은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에서 가장 먼저 등재되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경주역사유적지구> 안에 석굴암과 불국사가 있으므로 석굴암과 불국사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두 번 지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석굴암과 불국사를 별도로 설명하지 않고 경주역사유적지구의 틀에서 설명하는 이유다.

그런데 석굴암불국사와 함께 국내 최초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한국 사람들도 다소 어리둥절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석굴암이 한국의 간판이 되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상당히 근거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동안 한국은 상당 부분 세계와 꽁꽁 단절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1970년대 말 세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자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외국을 방문하여 한마디로 세계의 유명 관광지에는 한국인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한국세계 10위권의 국가로 진입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지자, 이탈리아 로마의 경우 관광 안내책자한글로 되어 있을 정도이다.

특히 끄새가 있었던 프랑스 남부의 소피아안티폴리스라는 과학단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인 니스(Nice)와 칸느(Canne), 모나코(Monaco)가 인접한 지역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오는 방문객이 많았다. 그리고 대다수의 방문객들은 이미 여러 국가를 여행한 터라 자신들이 들른 국가를 평하면서 한국의 유산에 대해서도 솔직한 비평을 남기며 돌아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우리의 유산에 대해 다소 폄하하는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에서 배운 우리 것에 대한 지식들이 외국을 다니면서 다소 과장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 여행객들은,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이라고 귀가 따갑도록 들은 석굴암조차 정말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인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우선 규모에 대해 불평을 한다. 외국의 유물들과 비교하여 너무나 왜소하다는 것이다. 파리나 로마 시내의 일반 건물에 있는 평범한 조각들조차 석굴암에 있는 불상보다 더 정교하다는 사실에 눈길이 간다. 더구나 한국은 천 년 전에 지어진 건물조차 변변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이집트의 피라미드 4500,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2000이 넘었고 로마의 고대 유적 상당수가 한국에서 삼국이 세워지기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이르면 우리나라세계에서 최고라고 했던 유산들이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석굴암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우리나라 정부가 심의위원들을 매수해서 억지로 승낙을 받은 것이라는 불신까지 있다. ‘88서울올림픽이 끝나자 정부에서 한국 유산을 보다 홍보하기 위해 편법을 썼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석굴암이나 종묘가 유럽에 있었다면 세계 문화유산으로 신청이라도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석굴암(국보제24호)

<세계문화유산의 당위성>

세계문화유산은 각 유적이 있는 지역과 특수성, 독창성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 선정된다. 따라서 이집트의 기자에 있는 쿠프의 대피라미드 4500년 전에 건설되어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인정받았고, 우리 눈에 익은 외국의 대형 유적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첫 번째인 1996에 지정된 석굴암이나 종묘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에 의혹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석굴암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것은 외국에 있는 대형 건축물이나 문화유산들과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독창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석굴암에 대해 주목해야하는 것은 석굴암 조각들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석굴암은 세계 어떤 문화재에 비견할 수 있는 독창적인 차별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석굴암의 설계와 시공이 특출할 뿐만 아니라 건축 상의 특수성도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바로 재료다. 석굴암화강석으로 만들어졌다.

전세계인들로부터 그 정교함과 화려함으로 찬사받고 있는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에 있는 조각품들의 재료는 놀랍게도 석고. 석고판을 정교하게 찍어내어 천장이나 벽에 붙인 것으로 시공 기간도 고작 34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은 손재주 있는 사람의 디자인에 따라 얼마든지 손쉽게 제작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영국의 캔터베리 대성당이나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의 정교한 조각상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경탄한다. 그러나 세계인들이 찬탄하는 그 조각들의 원재료석회석이다. 석회석은 경도에 있어 활석으로 무른 돌이다. 실제로 끄새캔터베리 대성당을 방문하였을 때 조각가들이 조그마한 조각 연장을 갖고 큰 석회석으로 커다란 인물상을 제작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조각칼비누를 조각하는 것처럼 쉽게 정교한 인물상들을 재현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를 방문한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수많은 조각상들의 아름다움과 반들반들한 표면 처리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마치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고 옷의 주름이 실제의 옷을 입은 것과 같다고 한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다비드상도 재료가 대리석이라는 데 비밀이 있다. 대리석석회석과 같은 성분으로 다소 경도가 높은 돌이다. 물론 대리석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조각상의 예술적인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제작의 난이도에 있어 화강석에 비해 상당히 쉽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동남아에 있는 수많은 불상과 불탑에 정교한 인물상들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겉보기에는 매우 단단한 돌처럼 보이므로 그것들을 조각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였으리라고 단언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부분 진흙과 같은 재료로 만든 것이다. 미술시간에 석고로 모형을 만들듯이 진흙으로 조각상들을 정교하게 만든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것일 뿐이다.

중국 돈황, 운강, 용문석굴들을 보면 어마어마한 동굴과 수많은 석상들의 숫자를 보고 놀란다. 천불동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 말은 불상천 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천 개의 불상이 있는 석굴이 천 개나 있다는 뜻이다. 스케일과 숫자만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수 없지만 이들은 사암으로 된 굴을 파서 만든 것이다. 사암은 간단하게 말해 모래가 보다 단단해 진 것으로 거대한 굴을 뚫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들에 비하면 석굴암화강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화강암 경도가 7이나 되어 단단한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장석, 석영, 운모로 조성되어 있으므로 결도 있다. 노련한 석공은 원석의 결을 보고 힘들이지 않고 잘라낼 수 있는데 이것은 섬세하게 조각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굴암의 모든 불상은 그야말로 완벽할 정도로 섬세하고 우아하다. 화강석으로 조각할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설사 마무리 단계의 조그만 실수로 조각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면 어김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본존불을 자세히 보면 손금과 발바닥 금이 있는 것은 물론 연화문의 꽃무늬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섬세하게 조각된 연화문 무늬하나만 떨어져도 다시 조각해야 하는 것을 감안할 때 조각가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루기 매우 어려운 화강암으로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제작 과정을 거쳐서 완벽한 배율과 아름다움을 갖도록 만들었으므로 석굴암이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세계 어느 문화재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불상 중에서 발바닥 금이 있는 것을 아직 다른 곳에서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런 불상이 있는지 주목해주기 바란다.

강우방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면서 석굴암의 조각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위대하다고 말하면서 아름답다는 것과 위대하다는 것은 차원이 다름을 지적했다. 그는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위대한 것은 세계에 드문데 석굴암이 바로 그렇다고 칭찬했다. 사실 아름다우면서 위대하려면 드높은 정신이 깃들어야 한다. 즉 세상에 아름답지만 위대하지 않은 것, 위대하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이 많은데 석굴암장인위대한 정신을 잘 나타내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음을 뜻한다. 석굴암을 만든 장인의 정신 또한 고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석굴암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될 당시의 심사위원들이 석굴암을 직접 보고 나서 극찬한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1909년경 소네 아라스케 통감의 지시로 석굴암을 탐사한 일본의 미술사학자 세키노 타다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석굴암은 동양 무비 최고의 걸작품이다.'

 

동양에서는 그것에 견줄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석굴암 5세기 중엽에 건설된 중국의 운강 석굴, 7세기 초 고구려 승려 담징일본에 건너가 법륭사(法隆寺)에 남긴 불화와 더불어 동양 3대 문화재의 하나로도 꼽힌다. 그러므로 외국에서 본 거대한 건축물과 정교한 조각품들을 보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