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악당/세계의 악당 라스푸틴 복권

킹스맨, 라스푸틴 복권(4)

미스테리002 2022. 1. 4. 09:21

https://youtu.be/Mk0gGXINE14

<러시아 참전을 적극 반대한 라스푸틴>

1914년 러시아 제국세르비아를 돕기 위해 전쟁에 개입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했다.

당시 러시아 내부 사정은 매우 복잡한데 그동안 라스푸틴의 반대파들은 라스푸틴에 의해 러시아니콜라이 2의 구렁텅이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실제로 밝혀진 내용은 이와 정반대이다.

 

 

라스푸틴종교적, 도덕적 그리고 현실적인 면에서 러시아의 참전에 반대했다. 박광작 박사니꼴라이라스푸틴에게 자문을 구하자 라스푸틴은 단호히 전쟁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고 충언했다고 적었다. 라스푸틴의 전쟁 반대 논리는 농민의 아들로서 아주 간단명료했다.

 

독일 사람들은 힘이 있고, 체력도 단단합니다. 발칸의 슬라브 형제들은 돼지같이 천한 인간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러시아 사람들은 한 명도 죽을 가치가 없습니다.’

 

현실적인 면에서 라스푸틴러시아와 독일 제국과의 전쟁은 승산이 없으므로 중립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뜻이다. 라스푸틴은 자신의 주장을 계속했다.

 

모든 신민이 (애국주의적 환호 속에) 황제에게 전쟁을 요구하지만 신의 형벌은 무서울 것입니다. 만사가 거대한 살육으로 끝날 것입니다.’

 

러시아의 전쟁 참여에 대해 당대의 고위 인사인 세르게이 비테(Sergei Witte)와 표트르 두르노보(Pyotr Durnovo)도 극력 반대했다. 두르노보황제에게 독일과의 전쟁은 누가 승리하든 두 나라 모두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것으로 말했다. 이는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전쟁에 반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Nikolai Bikolajewitsch) 대공

알려지기는 1914729니콜라이 2가 처음 라스푸틴의 조언대전군 동원령을 전 부대에 하달하는 것을 중지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2시간 30분 후 니콜라이 2세는 이 결정을 번복했다.

이는 황제의 당숙(堂叔)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Nikolai Bikolajewitsch)전군 동원령을 하달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대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손자로 당시 황실 근위대 대장이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 사령관6군 사령관으로 실제로 황실과 군부 내의 막강한 실세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라스푸틴과 앙숙이었다. 그는 만약 라스푸틴이 전선 가까이 오면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말 할 정도였다.

 

이 부분에서 황제의 역할이 중요한데 막강한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군 사령관의 의견을 무시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니콜라이 장군은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그는 반 독일제국의 중심인물러시아프랑스와 동맹을 체결하면 독일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독일에 승리한다면 발칸반도의 지배권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 부터 러시아가 갖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원대한 범 러시아 제국주의자라 볼 수 있다.

문제는 1차 세계대전니꼴라이 사령관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집결하는 러시아 예비군들.

러시아729일 전군 동원령을 내리자 독일은 이를 빌미로 바로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하였다. 1914년 독일-러시아 전쟁의 개시(開始)와 동시에 니콜라이 대공총사령관에 임명되었지만 그는 실질적인 전투 사령관이 아니었다. 전투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 전략도 없는 무능한 장군이라는 것이 곧바로 알려졌다.

전쟁이 발발할 때 러시아16000만 명의 인구를 갖고 있으므로 1,200만 명 이상의 대군을 동원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농업 국가최강 독일에 맞서 싸울 준비가 전혀 없었다. 군대는 독일에 비해 약체였고 군사력을 뒷받침할 무기는 물론 보급을 위한 수송 체계도 준비되지 않았다.

전쟁이 발생한 1914 바로 당해 말, 러시아군의 병력은 6,553,000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4,652,000개의 소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개인 소총도 지급되지 않은데다가 훈련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군대가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년 말까지 12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알렉세이 부루시로프 장군은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다.

 

최근 전투에서 병사3분의 1소총이 없었습니다. 불쌍한 악마는 동료들이 눈앞에서 쓰러지고 무기를 집을 수 있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군대 자신의 피익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러시아군에는 10,000명당 1외과 의사 밖에 없었으므로 서부 전선이라면 치료되었을 많은 병사들이 부상으로 사망했다.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1915년 초, 러시아 병사 세 명 중 두 명총도 탄약, 군화도 없이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들이 독일 정예병과 대적한다는 것은 사실 억지나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러시아독일과 전쟁을 벌이고 2년 동안 네 명의 수상과 여섯 명의 내무장관이 경질되었지만 아무런 대안도 없이 전투에 투입된 러시아의 피해는 엄청나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함락되었으며 1915년 말 기준으로 제정 러시아 영토의 4분의 1 가량이 독일 및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니콜라이2세의 친정>

19159월 니콜라이 2는 당숙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총사령관해임하고 직접 전쟁 지휘를 맡았는데 이것이 로마노프 왕조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몰락시키는 계기였다.

코사크 기병대를 사열하는 니콜라이2세

니꼴라이의 결정은 많은 러시아인들로부터 좋지 않은 반응을 얻었는데 이는 황제이런 조치라스푸틴과 황후가 깊게 관련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니꼴라이 황제가 전쟁에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는 점이다. 러시아 장군들은 황제군사 문제에서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불만을 드러내었고 라스푸틴이 배후라고 공격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라스푸틴알렉산드라 황후를 통해 차르에게 남부 전선에서 공세를 펼치면 승리하리라고 신께서 계시를 내려주셨습니다.’라고 상신하자, 니콜라이 2는 주변 장군들과 참모들이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정말로 계시를 따랐다고 한다.

 

러시아의 신 니꼴라이 2세

당시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에게 황제신비주의적 인물이었고 신과 같았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모든 것을 볼 수 있었고 교회의 판결보다 더 권위가 높았다. 러시아2,240만 제곱킬로미터(한반도는 남북한 합하여 약 2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지역에 16,000만 명의 인구가 있었는데 황제는 이들을 일일이 이끌어 줄 수 있는 신과 같았다.

그러나 군사령관으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투 상황에서 수많은 일들을 직접 결정해야 되는 상황이 되자 황제의 유약한 성격과 완고함, 그리고 비효율적인 결정 등이 곧바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선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황제가 직접 지휘했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500만 명이라는 많은 병사들이 사망하자 백성들은 그제서야 황제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니콜라이 2에 대한 비난은 러시아군이 허망하게 패배하고 많은 사상자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황제가 직접 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전장으로 출정할 때, 니콜라이러시아의 내부 정치알렉산드리아 황후에게 전적으로 일임했다. 그런데 이 결정이 더욱 상황을 악화시켰다.

라스푸틴알렉산드라의 고문으로 봉사하는 동안 알렉산드라장관 등 최고위 정책 추진자들을 재빠르게 해임했다. 알렉산더 케렌스키 당대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라스푸틴에 대한 황후의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해 그녀는 개인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니콜라스 2에게 높이 평가받은 알렉세예프 장군라스푸틴에 대해 황후에게 말하려 했다. 그러나 알렉세예프 장군은 나중에 나에게 군사 작전의 비밀 지도황후의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었습니다.’

 

두마의 위원장미카엘 로드지안코(Michael Rodzianko)황제에게 말했다.

 

나는 이것이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폐하에게 말해야 합니다. 아무도 이 사람(라스푸틴)이 수행하는 진정한 역할에 눈을 뜨지 않습니다. 폐하의 궁정에 그의 존재는 최고 권력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왕조의 운명을 결정하고 백성의 마음황제에게서 돌이키게 하소서.’

 

문제는 러시아인들이 알렉산드리아 황후독일과 결탁하여 러시아의 비밀을 넘겨주었으며 그 배후라스푸틴이 있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왼쪽)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1913년)

특히 일부 라스푸틴에 대한 공격자들은 그녀가 러시아에 대한 반역자로서 빌헬름 카이저와 동맹을 맺고 있으며 라스푸틴음모의 배후라고 주장했다. 또한 니콜라이 2베를린 정부로부터 10억 루블이나 받고 보다 많은 병사들을 죽도록 방임했다는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루머가 나돌기 시작한 것은 황후독일태생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대공과 몇몇 귀족, 장군들이 황후수녀원으로 강제로 보내는 공작을 꾸몄지만 실패했다. 여하튼 많은 상류층 인사들이 황제와 황후에게 라스푸틴의 위험성경고했는데 황후의 답변은 항상 같았다.

 

이것은 모두 비방이다. 성도들은 항상 비방을 받았다.’

 

더구나 이들이 황제에게 라스푸틴의 국정 간섭을 금지해달라고 청원했는데 이를 모두 황후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전했다는 것이다. 황후의 대안은 그야말로 총알 같았다. 황제에게 청원 사람들 한마디로 황후비난하는 사람들과 모든 관계를 끊었다. 한마디로 황실로부터의 퇴출이다.

 

러시아의 처참한 상태는 모든 것을 새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의 국내 정세전쟁 초기범 슬라브족 기치의 환호 속에 전쟁으로 달려 나가자는 주전론적 여론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기아, 가난, 무정부적 혼란이 이어졌다. 한마디로 제정 러시아종말적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데 여론은 그야말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전쟁에 대한 책임이 대안도 없이 독일과 싸우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던 주전론자(主戰論者)들에게 돌아가야 했지만 그들은 독일제국의 황제 빌헬름 2와 사촌 간인 알렉산드라 황후, 라스푸틴러시아 제국을 패배로 이끌어갈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특히 라스푸틴독일 간첩이라고 몰아 붙였다. 그런데 간첩 혐의만으로 부족하자 라스푸틴섹스광, 황후와 관계를 갖은 악마 승려, 비리와 국정 농단의 주범 등등 가능한 모든 주홍글씨라스푸틴에게 붙였다. 한마디로 라스푸틴 제정 러시아몰락시키는 결정적 인물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