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라스푸틴 복권(5)

https://youtu.be/Mk0gGXINE14

〈라스푸틴의 죽음〉

러시아가 계속 독일에 패배하자 로마노프 왕조로서는 더 이상 독일과 싸워 승산이 없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결국 모든 책임은 라스푸틴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는데 황제와 황후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라스푸틴을 계속 옹호했다. 두마의 지도자가 마지못해 황제에게 라스푸틴을 제거하라고 간청하면서 라스푸틴에 대한 나쁜 소문도 알렸다. 당시 돌아다니던 팜프렛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그레고리 신부는 새롭게 탄생한 악마의 성인이고, 기독교의 가르침을 매도한 자이고 러시아를 폐허로 만든 자이며, 부인과 하녀의 순결을 빼앗은 자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사람은 황제와 황후가 아니라 라스푸틴 본인이었다. 라스푸틴은 시시각각 자신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1916년 부활절 날, 황제 일가와 함께 교회에서 미사를 드리던 라스푸틴이 갑자기 새파랗게 질리면서 쓰러졌다. 옆에 앉아있던 딸이 놀라 그를 부축하자 라스푸틴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운 환각을 보았어. 내 시체가 이 교회에 누워 있고, 나는 그 순간 죽음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꼈어. 그건 끔찍한 일이야. 나를 위해 기도해 다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라스푸틴의 필적

라스푸틴이 비교적 예지 능력이 있다는 것은 그의 사후 여러 면에서 증명되었다. 특히 살해되는 당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황제에게 보냈다고 알려진다.

 

‘저는 내년 1월 1일 이전에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저는 러시아 제국의 국민들과 러시아의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만일 제가 제 형제와도 같은 러시아 국민들의 손에 죽게 된다면, 러시아 황제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왕조는 앞으로도 수백 년을 더 지속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제가 만일 특권층, 귀족들의 손에 죽어 그들이 내 피를 솟구치게 만든다면, 그들의 손은 앞으로 25년간 피에 젖은 상태로 유지될 것이며 그들은 조국을 버릴 겁니다. 그들은 형제끼리 죽고 죽이며 싸움을 벌이며, 러시아에는 더 이상 귀족이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에 저의 죽음을 가져온 사람이 황제와 친척관계라면 채 2년도 되지 않아서 황제의 자녀들과 친척들은 모두 살해당할 것입니다. 러시아 백성이 황제를 죽일 겁니다.

저는 죽겠지만 제가 죽은 이후 황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할 책무를 느낍니다. 반성하고 신중하게 행동하시며 안전을 생각하고, 황가의 일족들에게 제 피의 앙갚음이 있을 것임을 알려주십시오. 저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자들과 함께 하지 못할 겁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며 마음을 굳게 가지며 황제의 가족을 생각하십시오.’

 

<라스푸틴 살해>

라스푸틴이 러시아의 장애물이라며 황제에게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진언했는데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자 라스푸틴을 살해하는 것이 러시아를 구하는 것이라며 각지에서 그를 살해할 계획이 세워졌다. 특히 그들은 라스푸틴이 물러나면 대중이 다시 황실 가족을 포용하고 혁명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두마의 위원장인 로지안코(Rodzianko)는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장관과 폐하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스푸틴의 도구라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유일한 해결책은 악당을 죽이는 것뿐이다. 하지만 러시아에는 그것을 행동에 옮길 배짱이 있는 남자가 없다. 내가 그렇게 늙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그렇게 할 것이다.’

이 말에 유수포프가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데 우익 정치인이자 반유대주의자인 블라디미르 푸리슈케비치(Vladimir Purishkevich)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파였다. 그는 두마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특히 공개적으로 라스푸틴을 제거해야한다고 주장했으며 1916년 11월 21일 펠릭스 유수포프(Felix Yusupov) 왕자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나는 라스푸틴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진행하느라 매우 바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완료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간단합니다. 당신도 참여해야 합니다.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로마노프(Dmitri Pavlovich) 대공은 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드미트리가 전선에서 돌아올 때인 12월 중순에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쓴 것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 바랍니다.’

 

푸리슈케비치의 편지에 유수포프 왕자는 다음과 같이 답장했다.

 

‘당신의 편지에 대해 대단히 감사합니다. 절반은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신이 과격한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략) 나의 주된 반대는 당신이 나와 상의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중략) 당신의 편지를 보면 당신이 몹시 열성적이며 벽을 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략) 나 없이는 감히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전혀 오지 않을 것입니다.’

 

Felix Yusupov, Grand Duke Dimitri Pavlovich, Duma Vladimir Purishkevich

결론은 푸리슈케비치의 의도대로 진행된다. 푸리슈케비치, 드미트리 대공은 이미 라스푸틴 제거에 동의했고 유수포프 왕자가 친구인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수코틴(Sergei Mikhailovich Sukhotin) 대위에게 라스푸틴 제거 이야기하자 그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했다. 푸리슈케비치는 독약을 다룰 사람이 필요하므로 친구인 군의관 스타니슬라우스 드 라조베르(Stanislaus de Lazovert) 박사를 포섭했다. 5명이지만 그야말로 러시아 최상위층 인사들이다.

 

 

그 중에서도 30세의 젊은 공작 펠릭스 유수포프 왕자는 자신이 라스푸틴을 살해하는 임무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유수포프 가문은 흑해-카스피해 스텝에 있던 노가이 칸국의 혈통을 이어받았고, 이반 4세 때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 펠릭스는 188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이카 궁전(Moika Palace)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부모가 딸을 기대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여장을 하고 종종 어머니의 옷과 장신구를 입고 행진하고, 여자로 분장한 무도회와 클럽에 참석하였다고 한다. 학자들은 그가 실제로 양성애자였으며 젊었을 때 남성과 여성 모두 다양한 성적 파트너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결혼 후 그의 양성애자 성향은 사라졌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계속되었다.

 

상트페테스부르크 유수포프 왕자의 모이카 궁전

그러나 펠릭스의 형이 1908년 젊었을 때 결투하다가 사망하여 펠릭스가 유수포프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다. 한마디로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는데 이 중에는 모이카 궁전 등 7개의 궁전, 37개의 영지, 다양한 석탄 및 철 광산, 공장, 제분소 및 유전을 소유하여 황제인 니콜라이 2세보다 더 부유했다고 알려진다. 유수포프는 많은 자선 사업을 벌였는데 심지어는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재산을 주겠다고도 말했다 한다. 물론 어머니의 설득으로 그런 행동을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자료에 의하면 그는 무모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자선에 투입했다.

유수포프는 1909년부터 1912년까지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에 유학했고 옥스퍼드대학교러시아협회(Oxford University Russian Society)를 설립했다. 유수포프는 러시아의 귀족답게 영국에서 러시아의 플레이보이로서의 기질을 여김없이 보여주었다. 혹자는 유럽 사회의 엘리트들과 온갖 난잡한 파티를 벌림으로써 그의 자선 행위가 중단되었다고 주장한다.

 

유수포프 왕자와 이리나 공주

그는 러시아 황제의 조카딸인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Irina Alexandrovna)와 1914년 결혼했다. 이리나는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 크세니아의 딸이므로, 펠릭스는 니콜라이 2세의 조카사위가 된다. 펠릭스의 장인 알렉산드로 미하일로비치는 니콜라이 1세의 막내아들 미하일의 4남으로, 펠릭스의 장모이자 산드로 본인의 아내인 크세니아와는 5촌 숙질간이다.

유수포프 왕자와 이리나의 결혼은 그야말로 전설적이다.

이리나의 웨딩드레스는 은으로 수놓은 흰색 새틴이었고 면사포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트와네트(Marie Antoinette)가 소유했던 것으로 크리스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었다. 그가 입는 옷에 대해서도 많은 격론을 거쳐 금으로 수 놓은 깃과 옷깃이 달린 검은색 프록 코트, 흰색 넓은 바지를 입었다고 적었다.

그런데 그는 당시 러시아 황실의 결혼 규범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왕가의 혈통이 아닌 사람과 결혼한 왕조의 모든 구성원은 왕위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문서에 서명해야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리나 공주가 니콜라이 2세의 후계자가 되는데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이리나가 선뜻 이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또한 러시아 결혼식에서는 신부 중 한 명이 신부 앞에 분홍색 비단 카펫을 깔고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걸어야 하는 관습이 있는데 양탄자를 처음 밟는 사람이 집안을 다스린다는 전통이 있으며 이리나가 이를 무난하게 마쳤다고 했다.

니콜라이 2세 황제는 부부에게 결혼 선물로 29개의 가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한 봉지를 선물했다. 한마디로 그들의 결혼식은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이라 할 정도로 초호화였다고 알려진다.

 

1915년 전쟁이 격화되자 그는 장교 훈련 과정에 등록했고 장교복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참전하지는 않았고 모이카 궁전 안에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한 병원을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