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펠릭스 유수포프(Felix Yusupov) 왕자의 증언
펠릭스 유수포프는 푸리슈케비치의 제안대로 라스푸틴을 자신의 집인 모이카 궁전으로 유인하여 궁전 지하실에서 살해키로 했다. 지하실의 절반은 식당으로 사용되며 나머지는 계단이 위 층에 있는 유수프의 방으로 이어지며 중간에 안뜰로 열리는 문이 있는 구조다.
유수포프가 라스푸틴을 안내한 장소가 지하실이라는 것에 놀랄지 모르므로 긴급하게 실내장식을 바꾸었다. 즉 방에 가구를 배치하고 사람이 사는 일상 생활의 공간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는 바닥에 페르시아 카페트를 깔고 세 개의 커다란 붉은색 중국 도자기 꽃병, 오크 나무 조각 의자, 고대 자수로 덮인 작은 테이블, 상아 그릇 및 기타 많은 골동품들은 물론 작은 거울, 화강암 벽난로 위에 황금 그릇, 마즐리카, 조각된 상아, 작은 청동 기둥, 비밀 서랍으로 이루어진 상감 흑단으로 된 특정 캐비닛을 준비했다. 그리고 라스푸틴이 마지막 차를 마실 테이블을 중앙에 배치했다. 한마디로 호화로운 고급 실내 공간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유수포프는 하인에게 6인분의 차, 비스킷과 라스푸틴이 좋아하는 케이크, 지하실에 보관된 포도주를 준비하라고 했다. 저녁 11시에 친구들을 만날 예정이며 자신이 벨을 누를 때까지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11시가 되자 모든 것이 지하실에 준비되었다. 드미트리 대공 등 일행이 도착했고 유스수프는 그들을 라스푸틴이 최후를 맞이할 급조한 방을 보여주었다.
유수포프가 캐비닛에서 독이 들어 있는 상자를 꺼내 탁자 위에 놓자 라조베르 박사가 고무장갑을 끼고 청산가리 덩어리를 갈아 가루로 만들었다. 그런 다음 각 케이크의 상단을 들어 올리고 내부에 독극물을 뿌렸다. 그는 여러 명을 즉시 죽일 수 있는 충분한 양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라스푸틴이 그들을 의심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므로 라스푸틴을 데려왔을 때 방금 저녁 식사를 마쳤다는 인상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가 지하실로 라스푸틴을 데려온 것은 가끔 기분 나쁜 손님이 있으면 지하실에서 식사하고 지하실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라조베르 박사가 라스푸틴에게 줄 청산가리가 든 케이크와 포도주가 준비되었다고 하자 유수포프 등 일행은 외투를 입고 모피 모자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후 운전사 복장을 한 라조베르 박사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 라스푸틴의 집에 도착하여 라스푸틴의 이야기대로 뒷계단으로 올라가 라스푸틴을 만나 그를 태우고 모이카 궁전으로 향했다. 유수포프가 라스푸틴을 감시하는 경찰관들이 따라오는가를 확인했는데 경찰은 뒤따르지 않았다.
유수포프는 아내인 이리나 공주가 친구 몇 명을 대접하고 있지만 곧 갈 것으로 그동안 식당에서 차 한 잔 하자고 지하실로 안내했다. 라스푸틴은 지하실의 화려함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그에게 포도주와 차를 주었는데 라스푸틴은 둘 다 거절했다. 라스푸틴이 무언가 낌새를 챈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었지만 테이블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수포프의 생각은 온통 어떻게 하면 라스푸틴에게 포도주와 케이크를 먹게 하느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라스푸틴이 차를 요청했고 독이 들어있지 않은 포도주를 주었다. 그는 포도주를 마시며 지하실에 얼마나 되는 포도주를 갖고 있느냐 질문했고 지하실 전체가 포도주로 차있다는 소리에 놀랐다. 라스푸틴이 또 다시 포도주를 달라고 하여 이번에는 청산가리가 든 포도주를 주었다.
유수포프는 라스푸틴이 포도주 마시는 것을 지켜보며 곧바로 그가 쓰러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라스푸틴은 감정가처럼 천천히 포도주를 홀짝이면서 포도주를 마셨지만 얼굴은 변함이 없었고, 일어났다. 그가 방안을 둘러보며 한 잔 더 달라고 하여 주었음에도 독은 계속 효과가 없었고, 라스푸틴은 조용히 방을 돌아다녔다. 유수포프는 독이 들어있지 않는 포도주를 마셨고 라스푸틴은 계속 독이 있는 포도주를 마셨다.
이때 라스푸틴의 시선이 갑자기 불량해져 유수포프는 라스푸틴이 자신을 개인적으로 집으로 데려온 이유를 눈치 챈 것 같아 두려운 생각이 들어 다시 한 잔 권했더니 목이 마른다며 따라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의자 위에 있는 기타를 보고 유수포프에게 직접 연주하고 노래부르는 것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즐거운 곡을 노래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유수포프가 나름대로 좋아하는 곡을 연주했는데 그의 머리가 처지고 눈이 감겼다. 그런데 그건 독이 퍼져서가 아니라 졸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자정에서 거의 2시간이 지난 2시 30분경이다.
이때 위층에 무슨 소리가 들리자 라스푸틴이 눈을 뜨더니 무슨 소리냐 묻자 유수포프는 손님이 나가는 것 같으므로 직접 올라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유수포프가 위층에 올라가니 드미트리 대공, 푸리쉬케비치 및 수코틴이 다가와 질문했다.
“끝났어?”
“아니. 독이 작용하지 않았어.”
유수코프의 말에 대공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라스푸틴이 청산가리가 든 포도주를 마셨음에도 살아있다고하자 그들 모두 내려가 라스푸틴의 목을 조르자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여러 명이 들어가면 라스푸틴이 의심을 가질 수 있으므로 유수포프가 자신이 단독으로 할 수 있다며 드미트리 대공의 권총을 가지고 지하실로 돌아갔다.
라스푸틴은 처음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는데 호흡이 힘든 것을 보고 아프냐고 물었다. 라스푸틴은 머리가 무겁고 속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포도주 한 잔을 더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그들이 자주 이야기했던 집시들이 있는 곳에 함께 가자고 말했다.
유수포프는 엄청난 양의 독을 삼킨 사람으로부터 한가하게 집시들에게 가자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줄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예언가로 유명한 라스푸틴이 곧이어 닥칠 그의 미래를 예상치 못하다니 오히려 충격을 받았다며 그 후의 진행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 앞에 조용하고 믿음직스럽게 서 있는 희생자를 두려워하며 바라보았다. 그의 두 번째 시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미래를 예언하는 그의 선물은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까? 그가 자신을 위해 놓여진 무서운 덫에 눈이 멀었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데 그의 능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운명이 그의 마음을 흐리게 한 것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번개 같은 기억 속에서 나는 라스푸틴의 악명 높은 삶의 모든 단계를 회상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 양심의 가책이 사라졌고, 내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굳은 결심의 여지가 생겼습니다.’
유스포프는 라스푸틴이 청산가리가 든 포도주와 케이크를 먹었음에도 죽지 않자 자신이 직접 권총으로 사살하겠다며 총을 갖고 라스푸틴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며 당시의 정황을 자세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라스푸틴은 움직이지 않고 머리를 구부리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권총을 들어 올렸습니다. 내가 어디를 조준해야 할까요? 머리를 겨누워야할까요 아니면 심장을 향해야 할까요? 전율이 휩쓸었는데 나는 내 팔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의 심장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라스푸틴은 거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습니다. 잠시 동안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알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불과 1초 전만 해도 살아 숨 쉬는 사람이었던 것이 이제는 부서진 인형처럼 바닥에 누워 있습니다.’
똑같은 정황을 유수포프가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라스푸틴은 벽에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유스포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레고리 예피모비치, 당신은 저 십자가를 보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와 유사한데 라스푸틴이 돌아서자 유스포프가 그의 배에 총을 쏘았다는 것이다. 추후에 유스포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나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와 내 얼굴을 완전히 쳐다보았다. 마치 그가 내 눈에서 마침내 발견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읽은 것 같았습니다.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저에게 이 일을 마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유스포프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총성이 들리자 친구들이 달려들었다. 라스푸틴은 등을 대고 누웠다. 신경 경련을 일으켰고 그의 손은 꽉 쥐고 눈을 감았다. 실크 블라우스에 핏자국이 번졌다. 몇 분 후 모든 움직임이 멈췄을 때 우리는 그의 몸을 구부려 검사했다 의사는 총알이 심장 부위에 맞았다고 선언했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라스푸틴은 사망했고 우리는 불을 끄고 내 방으로 올라갔다. 물론 지하실 문을 잠구었다.’
유스포프는 곧바로 사후 대책을 상의했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드미트리 대공, 수코틴, 라조베르 박사는 비밀 경찰이 따라 붙을수도 있으므로 라스푸틴을 집으로 데려가는 척하기로 했다. 수코틴이 라스푸틴 역할로 외투와 모자를 쓰고 드미트리와 라조베르 박사가 라스푸틴의 시체를 페트로프스키 섬으로 가져가 네바 강에 던지는데 나와 푸리쉬케비치는 모이카 궁에 머물며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당시의 정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모두들 쁘뜻한 표정을 보였다고 말했다.
‘우리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방금 일어난 일이 러시아와 왕조를 파멸과 불명예로부터 구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갑자기 막연한 불안이 갑자기 들어 참을 수 없는 충동으로 지하실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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