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원천 다이너마이트>
다이너마이트의 개발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노벨이 나이트로글리세린의 안전한 사용 방법을 연구할 당시에는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할 때 그것을 담은 통을 나무 상자 속에 빈틈없이 꽉 차게 놓아 움직이지 않게 한 후 그것도 불안하여 그 틈 사이에 톱밥을 채운 후 운반토록 했다. 그런데 노벨의 공장 옆에는 마침 커다란 규조토 광산이 있었으므로 노벨의 종업원들은 상자에 톱밥 대신에 규조토를 채웠다. 규조토란 주로 규조라는 한 개의 세포로 된 유기물질의 작은 조직이 바다에서 축적된 후 지각 변동에 의해 육지가 된 곳에서 채취되는 것이다. 그런데 금속성 용기에 구멍이 뚫려 나이트로글리세린이 새어나와 규조토와 밀가루 반죽처럼 혼합되어 있는 것을 노벨이 우연히 보았다.
그가 실험 삼아 조사해 본 결과 이것을 압축하면 나이트로글리세린의 폭발력을 유지한 작은 덩어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떨어트리거나 태워도 폭발하지 않는 대신에 뇌관을 사용하여 기폭(起爆)시킬 때에 한하여 맹렬히 폭발했다. 이것이 바로 다이너마이트이다.
이와 같이 노벨이 우연하게 다이너마이트를 발견했다는 전설은 거의 모든 노벨의 전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노벨 자신은 이런 전설을 부인했다. 그는 나이트로글리세린을 흡수할 만한 물질을 발견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톱밥, 숯, 벽돌, 도기는 물론 그 밖의 다공성 물질 등 수많은 물질을 실험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는데 그런 중에서도 목탄 가루를 섞었을 때에 폭발력과 안정성이 가장 뛰어났다고 적었다.
그 후 규조토를 시험해 본 노벨은 규조토의 액체 흡수능력에 놀랐다. 규조토는 자신보다 3배가 되는 양의 나이트로글리세린을 흡수하여 점토세공에 쓰이는 점토와 같은 딱딱한 덩어리가 되었다. 드디어 안전한 폭탄인 다이너마이트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노벨의 발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이너마이트는 안전한 폭약이지만 군사용 무기로 쓰기에는 매우 부적절했다. 다이너마이트는 연기가 많이 났고 폭발력도 액체 나이트로글리세린에 비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1875년에 노벨은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실험하고 있던 도중, 실수로 손가락을 베어서 일종의 액체 반창고인 콜로디온 용액을 바르고 실험을 계속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나이트로글리세린이 콜로디온에 묻었고, 콜로디온은 나이트로글리세린을 흡수하면서 모양이 변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노벨은 나이트로글리세린과 콜로디온을 섞은 후 가열해서 투명한 젤리 상태의 물질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다이너마이트보다 훨씬 위력이 큰 ‘젤라틴 폭탄’이다.
여하튼 다이너마이트류는 기찻길, 탄광, 고속도로, 댐 등의 건설을 촉진시켰다. 특히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 등은 그가 발견한 젤라틴 폭탄의 강력한 폭발력 없이는 도저히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계속하여 ‘발리스타이트’로 불리는 연기가 나지 않는 무연화약(無煙火藥)을 개발하여 소총, 대포, 기뢰, 폭탄 등에 널리 쓰일 수 있도록 했다. 이 새로운 군사용 폭약도 각 국에 수출되어 노벨은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 후 1896년에 노벨이 사망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노벨상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비록 노벨이 노벨상을 직접 받은 수상자는 아니지만 그에 의해 노벨상이 제정되었으므로 그를 노벨상 수상자와 동등한 대열에 올려놓는 것에 이론은 없을 것이다. 한편 노벨이 간단한 화합물로 엄청난 재산을 모으자 수많은 학자들이 자신들도 그런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화학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화약이 폭발한 뒤에 추진력이 생기는 것은 화학 반응에서 생성된 기체가 화학 반응에서 생기는 열로 인해 빠르게 팽창하기 때문이다. 무게가 같을 경우 기체의 부피는 고채나 액체보다 훨씬 큰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러므로 폭발의 파괴력은 기체의 부피가 급격하게 팽창하는 데서 오는 충격파(shock wave) 때문이다. 화학 충격파는 초속 약 100미터의 속도로 퍼져나가는데 TNT, 나이트로글리세린과 같은 고성능 폭약의 경우 충격파는 최고 초속 6,000미터의 속도로 퍼져나간다.
폭발할 때 엄청난 양의 열을 발산한다. 즉 모든 폭발반응은 발열반응으로 기체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는데 온도가 높을수록 기체의 부피는 더욱 커진다. 나이트로 화합물의 폭발 반응에서 매우 안정적인 질소분자 N2가 형성되는데 질소는 삼중결합으로 매우 안정적이다. 이를 역으로 말한다면 삼중 결합을 끊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폭발반응은 매우 빠르게 일어난다.
일반화약은 1,000분의 1초에 6,000기압을 생성하지만 같은 양의 나이트로글리세린은 100만분의 1초에 27만 기압을 발생시킨다. 이것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으면서도 필요할 때 폭발시키는 방법이 필요한데 바로 노벨이 이에 도전하여 성공한 것이다. 노벨이 당대 최고의 부자 중의 한 명이 된 것도 바로 이 엄청난 폭발력 때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약스러운 플라스틱 원료>
많은 사람들이 페놀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는 한국을 뒤흔든 낙동강의 페놀 유출사건 여파이기도 하다. 1991년 3월 14일 밤 10시경 경북 구미시 구포동에 위치한 두산전자의 페놀 원액 저장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연결된 파이프가 파열되어 15일 아침 6시까지 30톤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으로 흘러들었다.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대구시민들의 신고로 조사결과 두산전자는 90년 10월부터 페놀이 다량 함유된 악성폐수 325톤을 옥계천에 무단방류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분노한 시민들이 두산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국회가 진상조사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부산할 때 환경처는 수출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4월 8일 두산전자의 조업재개를 허용했는데 2주일 후 또 다시 사고가 재발되어 페놀 원액 2톤이 유출되었다. 이 사건으로 환경처장관이 경질된 것은 물론 대구시민들이 두산 측에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명목으로 배상을 청구한 결과 두산은 10억 1,800만원을 배상했다.
페놀오염 사건이 큰 파급을 가져온 것은 마시는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환경문제가 곧 인간의 생존권 문제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이후 정부는 고의로 유해물질을 배출한 경우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비롯해 <환경개선비용부담금법> <자연환경보전법> 등을 제정하는 등 상수원 수질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그후 경제성장의 논리에 밀려 그중 단 한 건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한마디로 페놀사건은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현재도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오염 사건으로 그 끝이 어디인지 미결의 문제로 남았고 페놀은 악당 물질이라는 이미지만 높아졌다. 문제는 페놀이 현대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절대적인 물질이라는 점이다.
페놀은 히드록시기(水酸基, -OH)가 결합한 화합물의 총칭. 일반 화학식은 ‘C6H5OH’이며 특유한 냄새를 지니는 무색결정이다. 좁은 뜻으로는 가장 간단한 화합물인 히드록시벤젠, 즉 벤젠의 수소원자 1개가 히드록시기로 치환된 화합물을 가리킨다. 페놀은 페놀수지를 비롯하여 폴리탄산에 스테르수지, 에폭시수지 등 각종 합성수지나, 의약품 공업의 원료, 노닐페놀과 같은 세제 등의 원료로 이용된다. 의학용으로 1〜5%의 용액을 살균소독약으로 사용되는데 부식작용이 있어 피부에 바르면 하얗게 된다. 소독용 외에 보존제로서도 사용하며, 약한 지각(知覺) 마비작용이 있어 통증이나 가려움을 멎게 할 목적으로 배합하기도 하는 등 활용 분야가 매우 넓다.
쉔바인, 샤르도네, 노벨 등이 중합체에 대한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을 때 독일의 화학자 오스트발트(Friedrich Wilhelm Ostwald)도 쉔바인이 연구한 셀룰로오스를 주 테마로 삼았다. 그는 폭약보다는 화학 이론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주로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속도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수학의 원리를 물리학에 결합시킨 후 이를 화학에 적용시켜 물리화학 분야를 기초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 중에서도 그가 핵심적으로 연구한 것은 순간적으로 화학적 변화를 갖고 오는 촉매 작용이다.
높은 산을 오르려면 숨이 턱에 닿도록 헐떡거리며 고갯길을 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산을 관통하면 힘들이지 않고 산을 통과할 수 있다. 터널은 또한 산을 넘는데 드는 시간을 단축시켜 주기도 한다. 화학 반응에서 이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이 촉매이다. 촉매를 사용하지 않으면 힘들게 고갯길을 넘어야 하고 촉매를 사용하면 터널을 통과해서 산을 넘는 효과를 얻는다. 화학자들이 촉매를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유이다.
오스트발트도 암모니아를 산화시켜 질산을 만드는 데 가열된 철사를 촉매로 사용했는데 그것은 상업적으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오스트발트는 촉매는 반응을 가속시킬 수는 있지만 반응의 방향은 변화시킬 수 없다는 명쾌한 이론을 전개하여 1909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여기에서 다시 쉔바인의 연구로 돌아간다.
쉔바인의 발견이 중요한 것은 폭탄으로서의 가능성보다도 플라스틱의 성질을 처음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닥을 닦은 면의 왕수가 닿았던 부분이 조금 녹으면서 투명하고 끈적끈적한 물체가 생겨난 것을 발견했다. 그가 면을 집어든 이 물체는 마치 바닥에 붙은 껌을 떼어내듯 실처럼 길게 늘어졌고, 얼마 뒤에는 그 형태대로 굳어졌다.
이러한 장면은 오늘날 껌이나 본드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흔한 장면이지만 쉔바인이 살던 시대에는 어떤 물질이 길게 늘어진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장면이었다. 쉔바인은 연구 끝에 ‘면에 있던 셀룰로오스 성분이 질산과 결합해서 질산셀룰로오스라는 새로운 물질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셀룰로오스에 질산기를 첨가시키면 쉔바인이 발견한 것처럼 특이한 성질을 보인다. 부분적으로 질산화 된 셀롤로오스는 전혀 폭발성이 없는데 이것을 피록실린이라고 한다. 그러나 피록실린은 쉽게 부서지는 단점이 있었다.
영국의 화학자 파크스(Alexander Parkes)가 피록실린을 알코올과 에테르에 녹이고 장뇌 같은 물질과 함께 섞으면 용매가 증발한 다음 딱딱한 고체가 남는데 이것을 가열하면 부드러워져 약간 두들기기만 해도 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만들고 싶은 모양으로 성형한 다음 이를 냉각시키면 딱딱하게 되어 그 모습이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소 딱딱한 이야기로 잠시 옮긴다.
1850년대만 해도 병원이란 그야말로 악몽의 장소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수술이라도 해야 한다면 고통은 차치하더라도 죽음을 담보로 해야 했다. 수술 병동에서 괴저와 패혈증으로 지독한 냄새가 났고 세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을 그야말로 상상을 초과했다. 절단 수술을 받은 사람의 40퍼센트 이상이 소위 병원병으로 사망했는데 군병원의 경우 괴저나 패혈증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이 무려 70퍼센트에 육박했으니 그럴만 했다. 다행하게도 1864년 마취제가 도입되었지만 환자들이 수술한다는 것은 최후 수단으로 억지로 동의했다.
수술 받은 부위는 항상 감염되었으므로 의사는 고름이 상처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수술 부위를 모두 봉합하지 않았다. 수술 부위를 봉합하지 않는다는 것 즉 고름이 나오도록 한 것은 감염이 다른 부위로 퍼져나갈 확률이 낮아지므로 긍정적인 조처 중 하나였다. 이와 같은 조처는 병원균에 의한 감염이 기본이었기 때문인데 현대의 병원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분야로 나뉘어 철저하게 소독 등 방역에 힘을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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