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플라스틱

조물주가 빼먹은 물질, 플라스틱(3)

Que sais 2020. 10. 9. 13:21

 

youtu.be/2-Dr8JH5Jj8

<코끼리를 구한 당구공>

페놀이 현대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살균소독약으로 현대 병원 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주었지만 보다 큰 역할을 부여받은 것은 당대에 폭발적으로 유행한 당구 때문이다. 아프리카 코끼리의 상아는 빗, 식기류, 단추, 상자, 체스, 피아노 건반 등인데 사람들이 상아를 선호하자 코끼리 사냥으로 개체수가 줄어들어 상아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그런데 당구 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상아로 만들어야 하는 당구공의 공급이 문제였다.

제대로 잘 굴러가는 당구공을 만들기 위해 최고급 상아를 구해야 했는데 균일한 당구공 한 개를 만들기 위해 평균 50개의 최고급 상아를 깎아야 했다. 상아를 제때 제때에 공급할 수 없게 되자 자연스럽게 상아를 대신할 인조 물질에 대해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최초의 인조 당구궁은 결질수지로 적시거나 경질 수지를 바른 가용선 면화 반죽을 목재 펄프, 뼛가루 등과 혼합 및 압축해서 만들었다. 경질 수지의 주요 성분은 나이트로셀룰로오스였다. 그러나 이들로서는 당구공으로 적합한 경도, 열 저항력, 습도에 견디면서도 매끄러움 등의 성질을 두루 갖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므로 미국 당구협회는 상아를 대체할 수 있는 당구공을 만든 사람에게 1만 달러라는 거금의 상금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하이야트(John Wesley Hyatt)는 파크스의 특허를 사서 그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값비싼 알코올과 에테르를 적게 사용하는 대신 열과 압력만으로도 유사한 물질을 제조하는 개량된 방법을 발견했다. 그는 동생과 함께 상아 대용 당구공을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나무가루와 셀락을 혼합한 후 그것을 콜로디온으로 접착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이 방법으로 현상금의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콜로디온이 마른 후에는 수축하는 등 신축성을 보이는 것은 물론 화재까지 일어났기 때문에 현상금 전부를 받지 못하고 일부만 받았다.

그것은 원료인 니트로셀룰로오스가 면화약으로 쓰일 정도로 폭발성과 발화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화를 보면 환등기가 내뿜는 열에 인화되어 종종 불이 나기도 했는데 그 이유도 필름을 니트로셀룰로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이야트가 니트로셀롤로오스로 인조 상아를 만들었지만 당구공끼리 너무 세게 부딪치면 폭발음을 내며 연소했다. 그래서 때로는 게임하던 사람들이 서로 총격을 가해오는 것으로 오해하여 당구장에서 총격전이 자주 일어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그 후 하이야트는 당시 신경통, 타박상 등에 바르는 약으로 쓰이던 캠퍼정기(장뇌를 알코올에 녹인 것)가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한 적당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니트로셀룰로오스와 장뇌를 알코올에 혼합하여 가열한 결과 당초 예상한 물질을 얻었는데 이것이 인류 최초의 플라스틱(그리스어로 성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이어트는 자신이 만든 새로운 물질의 이름을 셀룰로이드라고 불렀고 회사를 차렸다. 셀룰로이드는 최초의 열가소성 물질이다. 열가소성 물질이란 제조 공정 중에 몇 번이고 녹여서 재성형할 수 있는 물질을 말한다.

셀룰로이드는 물이 끊는 100도에 쉽게 유연해지므로 원하는 대로 성형할 수 있는데다가 식은 후에도 계속 강도를 유지했다. 또한 금형을 만들면 똑 같은 제품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자르고 구멍을 뚫을 수도 있었으며 톱질이 가능했다. 게다가 셀룰로이드는 강하고 딱딱하지만 얇고 굽힘성이 있는 필름 형태로 만들 수 있으므로 아기의 장난감, 책받침, 틀니, 나이프의 자루, 만년필, 단추, 상자는 물론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류의 물품을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제조 공정에 현대적인 사출 성형 기계가 사용되면서 비숙련 노동력으로도 제품을 저렴하게 반복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당시 최고의 멋쟁이라면 깨끗하게 닦을 수 있는셀룰로이드 칼라, 커프스 단추, 셔츠 앞깃을 착용한 채 셀룰로이드 당구공으로 당구를 치는 사람이었다. 여자들은 셀룰로이드 빗, 손거울, 그리고 보석을 자랑스럽게 과시했다. 아이들은 세계 최초의 셀룰로이드로 만든 장난감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셀룰로이드가 세계를 석권하기 시작한 것이다.

셀룰로이드는 행운도 따랐다. 굽힘성이 매우 많은 필름의 형태는 실용적인 사진 필름으로도 적합했다. 이를 간파한 이스트먼(George Eastman)1889년에 자신의 코닥 카메라에 셀룰로이드 필름을 채택하였고,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 영화 필름으로 셀룰로이드를 사용하자 폭발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근래는 셀룰로이드로 만드는 물건이 거의 없지만 탁구공의 경우 지금도 셀룰로이드로 만든다. 20세기 초의 탁구채에 부딪히는 셀룰로이드 공소리 때문에 탁구를 핑퐁이라 불렀다. 셀룰로이드는 열가소성 물질이므로 열을 가하면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탁구공이 들어가거나 찌그러지면 탁구공을 재빨리 뜨거운 물에 담가 내부 기압을 높이면 어느 정도 다시 모양을 되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조심해야 한다. 너무 뜨거우면 물과 접촉한 부분에 옹이가 생기는데 탁구장을 오래 한 사람들은 이 노하우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셀룰로이드의 단점은 니트로셀룰로오스를 원료로 하기 때문에 매우 빠른 속도로 탄다는 점이다. 셀룰로이드가 수많은 화재의 원인이 되자 아세트산셀룰로오스라는 수정된 다른 종류의 셀룰로오스가 발명되며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사진 필름 등 많은 물건의 제조에 아세트산셀룰로오스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정도에서 끝내려고 하지 않았다. 플라스틱의 기본인 셀룰로오스를 사용하지 않고도 동일한 효과를 얻는 물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결국 학자들의 연구는 헛되지 않아 페놀수지, 요소수지, 멜라민수지, 염화비닐수지, 질산비닐수지, 염화비닐텐수지, 폴리에스터수지, 폴리스티롤수지, 메타크릴수지, 폴리에틸렌수지 등 매우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수지들은 모두 고분자화합물로서 그 대부분이 석유나 석탄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베이클랜드 등장>

이때 천부적인 사업적 재능을 지닌 벨기에 태생의 미국인 화학자 베이클랜드(Leo Hendrik Baekeland)가 등장한다. 그는 미국이 기회의 땅임을 입증한 사람 중의 하나로 햇빛을 쬐어야 하는 종래의 사진감광지 대신 인공 빛만 쬐어도 인화가 되는 벨록스를 발명했다. 그는 자신의 발명에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1893년 파산 위기에 처하자 코닥사를 운용하고 있는 조이 이스트먼을 찾아가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인화지를 팔겠다고 제안했다. 그의 인화지를 사용하면 아마추어 사진사들이라도 집에서 쉽고 빠르게 현상할 수 있었으므로 전국적으로 막 생기기 시작한 현상소에 필름을 맡길 수도 있었다. 더구나 그의 인화지는 당시 코닥사가 사용하던 셀룰로이드 제품에 비해 화재 위험성도 적었다.

베이클랜드는 이스트먼을 만나러 가기 전 5만 달러를 예상하고 최하 25천 달러면 아이디어를 양보하겠다고 생각했다. 25천 달러라도 그 당시로서는 매우 큰 액수이지만 이스트먼의 제안은 베이클랜드를 놀라게 했다. 그는 베이클랜드의 설명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75만 달러를 제시했다. 베이클랜드가 곧바로 제안을 수락했으며 이 사실로 이민자의 우상이 되었다.

재정 문제가 해결되자 베이클랜드는 천연 물질인 셀락(shellac)을 대체할 합성 물질 제조에 관심을 가졌다. 셀락은 그 전부터 래커나 나무 방부제로 사용되어 온 물질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셀락은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랙깍지진디(Laccifer lacca) 암컷의 분비물에서 얻는데 1파운드(423그램)을 얻으려면 무려 15,000마리의 랙깍지진디가 필요하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베이클랜드가 이 물질에 주목한 것은 셀락이 도료로 처음 사용될 때만해도 가격이 저렴했는데 전기 산업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셀각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전기 산업의 성장성을 감안하고 인공 셀락을 전기전연재로 개발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의 위대한 화학자로 1905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폰 바이어(Adolf von Baeyer)1872년에 페놀과 알데히드를 반응시키면 수지와 같은 것이 생긴다고 발표한 논문을 찾아냈다. 그는 30년 동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이 논문에 주목했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그는 포름알데히드와 페놀을 가지고 실험하던 중 어떤 반응 조건 아래에서 수지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압력을 주면서 계속 가열했더니 처음에는 부드러운 고체로 되었다가 나중에는 딱딱한 불용성의 물질이 생겼다. 이 수지도 부드러울 때 성형한 후 식히면 딱딱하게 되어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형태일지라도 빨리 만들 수 있었다.

베이클랜드는 이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베이클라이트라고 불렀다. 이것은 최초의 열경화성 플라스틱으로 사실상 오늘날 플라스틱 산업의 선두 주자이기도 하다. 열경화성 물질이란 셀룰로이드 같은 열가소성 물질과는 정반대로 일단 성형되면 녹여서 재성형할 수 없는 물질을 말한다. 페놀 수지)베이클라이트)의 독특한 열경화성은 화학 구조에 기인한다. 베이클라이트가 강도를 지니는 이유는 벤젠 고리 자체가 튼튼한 평면 구조인 데다 이것들이 매우 짧은 교차 결합들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이클라이트는 완전한 부도체이므로 전기 절연체나 플러그 제작에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접착제, 박판제 등에 지금까지도 널리 쓰이며 토스터, 주전자 손잡이, 자동차 배전 캡, 라디오 솔레노이드, 캐비넷, 거울테, 머리빗 등 안 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로 효용도가 높다.

오늘날 플라스틱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합성수지를 뜻하므로 베이클라이트를 최초의 플라스틱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한편 베이클랜드가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베이클라이트는 당구공의 이상적인 재료임이 밝혀졌다. 베이클라이트의 탄성은 상아의 탄성과 비슷했고 두 공이 맞부딪치면 상아로 만든 당구공처럼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반면에 셀룰로이드로 만든 당구공은 소리가 별로 좋지 않았다. 1912년 거의 모든 당구공은 베이클라이트로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페놀 수지들도 나와 베이클라이트를 대체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베이클라이트는 천의 용도롤 지닌 물질로 명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