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의 메카니즘>
과학자들은 두 가지 연구 주제를 갖게 되었다. 첫째는 세포에서 이루어지는 에너지와 물질대사를 파악하여 유전의 메커니즘을 알고자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유전자의 화학적 본질’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부모의 형질이 자손에게 전달되는 유전의 메커니즘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가져 온 궁금증의 하나였다. 사실 우리들은 모두 부모와 어딘가를 닮았다. 아주 빼다 박은 얼굴도 있기 때문에 부모와 닮은 점이 많지 않으면 돌연변이라는 말도 한다. 오죽하면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신과 발가락이 닮았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자신의 자식이 틀림없다고 만족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부모의 형질이 자식에게 유전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실 예이다.
과거의 학자들은 개인의 유전적 특성이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전달되는 피나 다른 유체(fluid)에 의해서 유전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혈족(blood relative)같은 용어가 쓰이는 이유이다. 물론 이렇게 믿게 된 요인은 당시에는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학자들이 세포핵에서 염색체를 발견하고 이 염색체가 유전에 관계된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되었다. 또한 세포핵이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유전에 관계되는 물질이 단백질이라는 추측하였다. 더구나 매우 복잡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전 정보를 포함하는 분자라면 분자량이 아주 큰 거대 분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1920년대에 영국의 세균학자 프레데릭 그리피스(Frederick Griffith, 1877~1941)는 폐렴의 원인이 되는 폐렴균에 병원성 폐렴쌍구균(Streptoccocus pneumoniae) S형과 비병원성 폐렴쌍구균 R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생쥐를 대상으로 두 세균을 투여한 결과 그 중에서 S형만이 폐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S형 균주의 병원성은 숙주의 면역 방어 메커니즘으로부터 세균을 보호하는 다당류 협막이 그 원인이 된다. R형 균주 세포는 이러한 협막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쥐의 면역반응에 의해 불활성화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매우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죽은 S형 세균과 살아 있는 R형 세균을 한꺼번에 쥐에게 주사했더니 쥐가 폐렴에 걸린 것이다. 그는 인체에 해가 되지 않던 R형 세균이 죽은 S형 세균으로부터 무언가 희한한 물질을 넘겨받아서 갑자기 공격형 세균으로 돌변했다고 추정했다. 즉 죽은 폐렴쌍구균의 유전 특성이 살아 있는 세균의 후손에 전달된다는 놀라운 내용이다. 그러므로 그리피스는 죽은 S형이 있는 상태에서 어떤 살아 있는 R형이 병원성 S형 균주 생명체로 형질 전환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피스의 발견은 생물학사에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는데 미국 록펠러인스티튜트(현 록펠러 대학)의 오스왈드 에브리(Oswald Theodor Avery, 1877~1955)가 1944년 그리피스의 연구에 주목했다. 그는 병원성 세균의 형질이 전이되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었다.
당시에 많은 학자들이 그리피스의 이상한 현상은 낯선 단백질이 흘러들어 온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핵산의 존재는 당시에도 알려져 있었지만 단백질에 부수적으로 딸린 중요하지 않은 물질로 여겼다. 에브리가 밝힌 것은 핵산, 즉 DNA가 죽은 폐렴균에서 무해한 다른 세균으로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즉 단백질이 유전자가 아니고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연구는 그리피스와 유사했다. 폐렴균에는 표면이 협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데 에브리는 표면에 협막이 있는 폐렴균에서 순수한 DNA를 추출해서 이것을 협막이 없는 폐렴균에게 주입했다. 그 결과 협막이 없던 폐렴균에 협막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현상을 DNA가 협막을 만드는 유전정보를 협막이 없는 R형 폐렴균에게 전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연구는 세균 같은 원시적인 생물도 유전자를 가지며 이 유전자의 본체는 DNA라는 것을 보여준다. 에브리의 연구에 의해 유전 물질이 무엇인가하는 논쟁은 드디어 종지부를 찍지만 에브리의 엄밀한 실험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곧바로 유전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이와 같이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DNA가 유전물질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복잡하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특히 단백질이 화학적으로 대단히 복잡하다고 알려진 상태에서는 더욱 그랬다. 두 번째 이유는 당대에는 세균도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가 아직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에브리로 보아서 안타까운 것은 추후에 그의 연구 결과로 많은 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그가 1955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으로 한 마디로 그의 연구가 너무나 빨랐던 것이다.
학자들이 에브리의 발견을 모두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DNA를 연구하면 적어도 유전에 대한 기초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백만 개의 원자를 지닌 이 분자가 세포를 통제하는 지시를 포함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청사진인 이 명령은 번식 순간에 살아있는 새로운 모든 것에 전달되었다. 이 명령이 인간이든, 코끼리든, 고래든 모든 생명체를 있는 그대로 만들었다. 누군가 이 특징의 구조를 알 수 있다면 생명의 암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의 상상력은 자극되어 DNA의 특성을 파악한다면 유전병 치료나 새로운 생명체 창조 등 공상 과학의 영역에만 존재했던 온갖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흥분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52년 허시(Alfred Day Hershey, 1908〜1969) 등이 다시 DNA가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고 발표하자 에브리와는 달리 즉각적인 반향을 보였다. 허시는 T2박테리오파지라고 불리는 바이러스를 실험했는데 이 바이러스는 단백질 외투 안에 포장된 DNA핵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바이러스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인(P)을 포함한 DNA만이 세포 내로 침입해서 바이러스 증식에 참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사실은 핵산인 DNA가 유전물질임을 입증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핵산인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연구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었음에도 일부 과학자들은 여전히 DNA처럼 단순한 물질이 어떻게 복잡한 유전형질을 전할 수 있겠느냐며 반신반의했다.
<유전자의 화학적 조성>
1938년 에스트버리(Willium Thomas Astbury, 1898〜1961)는 X선 회절법으로 DNA를 분석한 결과 섬유축을 따라 0.334나노미터의 규칙적인 간격이 있음을 발견했다. 애스터버리는 DNA 사슬이 방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DNA 사슬에 일정한 규칙이 있음을 발견하고 퓨린과 피리미딘 염기는 DNA 골경을 따라 동전 다발처럼 배열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실험에 이용한 DNA의 순도가 낮아 그의 발견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그가 분자생물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제안하였다.
DNA의 화학적 기본 개념을 밝히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은 토드(Alexander Robertus Todd, 1907〜1997)과 어윈 샤가프(Erwin Chargaff, 1905〜2002)이다.
토드는 핵산을 형성하는 뉴클레오티드를 연구하여 대표적인 뉴클레오티드인 아데노신삼인산(Adenosing triphosphate, ATP)을 1949년 합성했다. 이것은 생체 내 에너지원으로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화합물이다. 또한 핵산의 기본 단위가 인(phosphate), 당(ribose), 염기로 구성된 뉴클레오티드이며 DNA는 각각의 뉴클레오티드가 포스포다이에스터(phosphodiester) 결합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토드는 1955년 비타민 B12의 구조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들 연구로 1957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생화학자 어윈 샤가프(Erwin Chargaff, 1905〜2002)는 ‘생물은 그 종에 따라 각기 독특한 형질을 갖고 있다. 만약 그 형질의 차이가 DNA의 차이에 의존한다면 DNA 사이에도 화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샤가프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 닭, 연어, 메뚜기, 효모, 세균, 소, 돼지 등의 DNA를 분석하여 아데닌, 구아닌, 티민, 시토신의 비율을 측정하였다. 그의 측정으로 ‘모든 생물의 DNA 내 아데닌, 구아닌, 티민, 시토신의 비율은 똑 같다’라는 가설이 무너졌다. 그는 또한 같은 종류의 생물, 예를 들어 소는 어떤 조직을 채취해도 DNA 속의 아데닌, 구아닌, 티민, 시토신의 분자수 비율은 일정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즉 구아닌의 양은 시토신, 그리고 아데닌의 양은 티민과 정확하게 똑같다. 따라서 구아닌과 아데닌을 합친 양은 시토신과 티민을 합친 양과 같다. 이를 샤가프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이 물질들을 염기라고 부르는 것은 산과 반응하면 염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그의 발견은 그 후 DNA의 구조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DNA을 통한 유전현상을 분자 차원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DNA 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DNA 염기 조성은 종에 따라 다르다.
② 같은 종에서는 조직이 다르더라도 DNA의 염기 조성은 같다.
③ 종에서 DNA의 염기 조성은 나이, 영양 상태, 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④ 실험적으로 분석한 거의 모든 DNA에서 아데닌기의 수와 티민기의 수는 항상 같고 구아닌기와 시토신기의 수도 항상 같다. 즉 퓨린(아데닌과 구아닌)기의 합은 피리미딘(티민과 시토신)기의 합과 같다(샤가프 법칙).
⑤ 가까운 종에서 추출된 DNA는 비슷한 염기 조성을 갖고 있는 반면 멀리 떨어진 종에서는 상당히 다른 염기 조성을 보인다. 따라서 DNA의 염기 조성 결과는 생물체를 분류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
샤가프는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는데 그 점이 바로 노벨상의 미스터리 중의 하나로 인식된다. 일부 학자들은 1962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크릭과 왓슨은 당연한 수상대상자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샤가프가 윌킨스를 제치고 수상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샤가프 자신도 자신의 업적을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이용당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세계의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이례적인 수상자 발표에 대한 진상은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샤가프의 탈락에 대한 그럴듯한 변명은 그가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었음에 반하여 왓슨과 크릭은 윌킨스와 밀접한 교류를 가지면서 서로 왕래했기 때문에 세 사람이 보다 더 심사위원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라는 것 뿐이다.
노벨상 수상자 대열에서 탈락한 샤가프는 처음에 매우 낙담했다. 그러나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샤가프는 그 후 자기 지도 하에 모여드는 숱한 연구자를 거느리고 DNA염기배열의 연구를 추진했다. 또한 그가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동정과 여론의 비판으로 그는 수많은 국제적 과학상을 수상했다.
유전자 사냥에 대한 연구를 보면 과학의 발전에는 일관성이 있고 조직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 유전자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① 핵산은 미생물, 식물, 동물의 어느 세포에도 들어 있다.
② 핵산은 DNA와 RNA로 되어 있으며 셋째 DNA는 주로 핵 부분에, RNA는 주로 세포질 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③ 박테리아의 경우에는 핵과 세포질이 뚜렷이 구별돼 있지 않지만 DNA와 RNA는 반드시 들어있다.
학자들은 핵산의 일반적인 구조와 단백질과 유사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고, 핵산에 유전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학자들은 핵산이 어디에 위치하는 가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했다.
다행히도 이미 개발된 세포 염색 기술을 이용하여 DNA가 핵 속에 있고 특히 염색체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이것은 동물 세포뿐만 아니라 식물 세포에서도 동일했다. 말하자면 핵산은 모든 살아 있는 세포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물질이라는 뜻이며 RNA와 DNA 중에서 DNA가 유전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최근의 연구로 DNA 일부는 미토콘드리아 또는 엽록체 등 세포질성분에도 들어 있으며 핵소체(nucleolus) 속에도 RNA가 들어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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