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만든 유전물질은 DNA
1800년대 초 과학자들은 모든 생명체가 기본적으로 세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1827년 과학자들은 개에서 난자를 찾아냈다. 1879년에는 독일의 동물학자 오스카르 헤르트비히(Oskar Hertwig)가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수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식물학자들 역시 식물들이 성적으로 번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생식 세포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여하튼 생명의 기본 단위는 세포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든 생물은 세포로 되어 있다. 이 속에서 수천 가지의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면서 생명이 유지된다. 세포는 대체로 원형 또는 타원 모양으로 생겼고 광학 현미경으로 천 배 정도 확대하면 그 구조가 보인다. 세포의 중심부에는 세포 크기의 몇 분의 1정도인 진한 덩어리가 있고 이것을 세포핵이라고 부른다.
프리드리히 미셔(Johann Friedrich Miescher, 1844〜1895)는 화학적 방법과 현미경 관찰을 병행하면서 부패한 수술 상처의 고름에서 얻은 백혈 세포의 단백질을 펩신으로 분해하던 중 펩신이 세포핵을 분해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핵은 약간 작아지기는 했지만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세포들은 끈적거렸는데 미셔는 이 점액질이 세포핵을 둘러 싼 세포질이 아니라 세포핵 내에 존재하는 것임을 발견했고 그것은 인을 함유하고 있었다.
미셔는 이를 핵(nucleus)에서 추출한 물질이란 뜻에서 뉴클레인(nuclein)이라 불렀고 뉴클레인이 산성과 염기성 복합체임을 밝혔다. 20년 후에 뉴클레인 중에서 강산성을 띠는 것은 미셔의 제자인 리처든 알트만에 의해 ‘핵산, 핵 속에 들어있는 산성 물질이란 뜻’으로, 염기성 단백질은 프로타민으로 이름이 바뀐다.
미셔가 뉴클레인을 발견한 것은 그의 나이 25세인데 84년 뒤 1953년 DNA 나선구조를 밝혀낸 왓슨의 나이도 공교롭게도 당시 25세였다. 유전 물질을 처음 분리한 의사 미셔와 유전 물질의 구조를 해명한 왓슨의 나이가 25세라는 사실은 우연치고는 너무 흥미롭다.
미셔에 대한 일화는 유전자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결혼식장에 예정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백방으로 찾아본 결과 연구실에서 혼자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생체에서 물질을 추출하는 일은 중노동 중에 중노동에 속한다.
그런데 그가 사망한 것도 사실 유전자 분야를 연구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생체 내에는 유기물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으므로 모든 조작을 저온 상태에서 진행시키지 않으면 추출하려는 물질이 파괴된다. 미셔는 난방이 안 되는 방에서 아침 일직부터 밤늦게까지 일했으므로 결핵에 걸려 한창 일할 나이인 51세에 생애를 마쳤다. 아쉬운 것은 그가 노벨상이 탄생하기 전에 사망했다는 점으로 그가 보다 오래 살았다면 반드시 노벨상을 수상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독일의 생화학자 알브레히트 코셀(Albrecht Kossel, 1853~1927)은 핵산 분자를 분해하여 일련의 질소 함유 혼합물을 얻었다. 그곳에는 5가지 혼합물이 있었는데 각각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우리실(U)'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또한 두 개의 고리를 갖고 있는 ‘아데닌’, ‘구아닌’을 ‘퓨린’, 한 개의 고리를 갖고 있는 뒤의 두 화합물은 ‘피리미딘’이라 불렀다. 따라서 아데닌, 구아닌은 퓨린 계열이고 시토신과 티민은 피리미딘 계열이 된다. 이 연구로 코셀은 1910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참고적으로 이들 4가지 물질은 염기성(鹽基性)이라는 공통된 성질을 갖고 있다. 식초가 신 것은 초산이란 산성 물질이 함유되었기 때문이다. 염기성은 산성과 반대되는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이들을 혼합하면 산성을 소멸시킨다. 즉 초 속에 염기성 물질을 혼합하면 신 맛을 소멸시키므로 인간의 여러 분야에서 이들 원리를 사용한다.
코셀은 진실을 존중하는 과학자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그는 독일의 관리들로부터 국민들에게 배급되는 식량의 양이 과학적으로 보아 충분하다고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한 마디로 거절했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코셀의 용기 있는 거절은 국가의 명이라 하여 진리를 왜곡하는데 서슴지 않는 과학자들이나 정치가들에게 좋은 모범으로 자주 인용된다. 한편 독일의 피셔(Hermann Emil Fischer, 1852〜1919)는 이미 알려진 화학 물질로부터 퓨린 유도체를 합성해 냄으로써 퓨린 유도체의 구조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는 1902년 「탄수화물과 퓨린 유도체들의 합성」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피셔와 코셀이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부터 유전물질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곧바로 노벨상의 독무대가 된다.
1908년 토머스 헌트 모건(Thomas Hunt Morgan, 1866〜1945)은 초파리를 통해 염색체가 항구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처음으로 유전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또한 각 염색체가 ‘철사에 꿴 구슬처럼 일렬로 늘어선’ 유전자 집단을 운반한다는 서턴의 이론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의 발견이 유전자 분야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염색체가 짝을 이루고 수축하는 단계에서 양쪽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의 유전물질을 교환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명했다는 점이다. 재조합된 염색체가 새로운 난세포와 정세포 속으로 분리돼갈 때 이 새 세포들은 유전자 교환의 결과로 자신의 염색체에 독특한 유전자 배열을 갖게 된다.
재조합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난세포와 정세포가 자손의 완전한 유전적 조성을 결정하는 유일한 세포이기 때문이다. 특히 재조합된 유전 물질은 그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친자를 확인할 때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각 세대마다 상당한 돌연변이가 발생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전자 재조합 때문에 변이 과정이 일어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모건이 다윈과 멘델의 연결 관계를 밝혔으며 멘델의 유전 인자가 염색체 구조에서 물리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를 ‘멘델모건 유전자설’이라 부르며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① 유전자들은 염색체 위에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다.
② 연결된 한 군의 유전자는 함께 유전된다.
③ 염색체의 어떤 부분이든지 같은 확률로 교차(crossing over)가 일어날 수 있으며 교차가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유전자 간의 거리에 비례한다.
이 업적으로 모건은 193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의 중요성은 서로 연관된 것처럼 보이는 유전자 군을 발견하여 현대적 게놈 지도 제작의 첫 단계를 밟았다는 점이다. 모건은 다음과 같이 유전자에 대해 논의했다.
‘유전인자가 염색체 속에 전달되고 염색체의 구조가 일정하다면 염색체의 종류만큼 다양한 형질이 있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단 한 번 유전 형질군의 숫자와 염색체의 숫자 사이에 관련이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충분한 개수의 형질을 연구했다. 초파리에서는 일정한 방식으로 유전되는 형질이 약 125가지나 발견되었다. 이러한 형질 인자가 염색체로 전달된다면 염색체가 세포 속에서 일정한 구조일 경우 동일한 염색체로 전달되는 인자도 같이 유전된다고 예상할 수 있다. 초파리의 염색체 군에는 네 쌍의 염색체가 있는데 그 중 세 쌍은 크기가 거의 같고 한 쌍은 훨씬 작다. 유전자 군의 숫자와 염색체의 숫자가 일치할 뿐 아니라 크기 관계도 똑같다. 세 개의 큰 형질군과 세 쌍의 큰 염색체, 그리고 하나의 작은 형질군과 한 쌍의 작은 염색체가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요한센(Wilheim Ludvig Johansen, 1857〜1927)은 1909년 염색체의 각 부분에 그 개체의 표현형을 조절하는 인자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 부분을 유전자(gene)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또한 그는 실제 유전의 결과로 나타나는 표현형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유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인자형의 개념을 구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코셀의 제자인 레빈(Phoebus Aaron Theodor Levene, 1869〜1940)은 핵산에는 수산기가 있는 디옥시리보스와 수소원자가 붙어 있는 리보스의 두 종류가 있음을 밝혔고 각각 DNA와 RNA라고 이름 붙였다. 또한 그는 핵산이 퓨린이나 피리미딘 염기 중 하나, 리보스나 디옥시리보스 하나, 그리고 인산 하나를 포함하는 작은 조각으로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 조합을 ‘뉴클레오티드’라 하며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것처럼 DNA 분자는 뉴클레오티드가 연속적으로 결합된 고분자화합물이다.
그러나 레벤은 세포핵 속에 핵산과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로부터 DNA가 아니라 단백질 분자들에 염색체의 모든 유전 정보가 담겨 있다고 확신했다. 불행하게도 이 잘못된 가정을 믿은 과학자들이 단백질 속에서 유전자 복제 메커니즘을 찾아내느라고 수십 년 동안 헛수고 했다. 레벤은 DNA의 존재 목적은 단지 단백질 분자들을 붙들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가정했는데 이것은 크나큰 잘못으로 드러났다.
과학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유명세를 갖고 있는 학자들의 논문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을 보여주는 실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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