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아무리 완벽한 보안조치를 취하더라도 원자력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인간에게 방사능으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려하던 원자력사고로 다량의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그중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원전 사고는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 1986년에 일어난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2011년 3월에 일어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이다.
국제에너지기구(IAEA)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고 있는 고장, 사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국제 원자력 고장·사고 등급(INES : International Nuclear Event Scale)’을 도입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0〜7등급까지 8개 단계로 나눈 다음 0〜3등급까지는 ‘고장(Incident)’, 4〜7등급까지는 사고(Accident)로 구분하고 있다. 또 안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고장(Incident)에 대해서는 등급외 사건(out of scale)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동차 사고를 생각하면 이 등급에 대한 이해가 쉬워진다. 도로에서 갑자기 자동차가 멈춰 섰다고 한다면 그것은 ‘고장’이다. 주변에 큰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장으로 인해 다른 차나 건물 등을 치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고’다. 한국의 원자력발전소에서도 가끔 고장이 생겨 운전을 멈추는 경우가 있는데 발전소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경우가 없으므로 이는 사고가 아니다. 원전 측에서 고장은 있어도 사고는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현재까지 알려진 최악의 사례는 구소련 체르노빌 사고가 7등급이며 6등급은 1957년 9월29일 러시아 키시팀(Kyshtym) 사고다. 이 사고는 마야크(Mayak) 재처리 공장 근처의 한 폐쇄된 도시에서 발생했다. 이곳에 있는 군용 방사능폐기물재처리 시설 냉각시스템 고장으로 방사성 증기 70〜80톤이 누출됐는데, 당시 소련 당국이 이 사실을 밝히지 않는 사이에 방사능이 확산되었다. 세계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원전 사고는 미국의 스리마일원전 사고이지만 사고 등급 자체로만 보면 5등급이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데다가 마침 원전 반대 운동이 한창일 때이므로 파급효과가 매우 높았다. 한마디로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미국으로 하여금 더 이상 원전을 건설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타가 되었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 가동의 문제점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인근 해상에서 일어난 지진의 여파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원전 사고와 원천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파급 효과는 그 어느 원전 사고보다 한국인에게 크게 다가왔다. 여하튼 일본 정부는 원전사고 직후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에 한정해 4등급으로 평가했다가 곧바로 1∼3호기를 5등급으로 재평가했고, 한 달 후인 2011년 4월 후쿠시마 제1원전 전체를 7등급으로 상향조정했다. 발생 순서로 사고 정황을 설명한다.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geulmoe.quesais
<스리마일 원전 사고>
1979년 개봉된 제임스 브리지스 감독, 잭 레몬과 제인 폰다 주연의 「차이나 신드럼」은 특이하게 원전의 사고를 다룬 영화다. 영화 자체는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를 배경으로 하였지만 내용 자체는 스릴러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다.
‘원전의 원자로 속에 있는 핵연료가 뜨거워지고 이 열에 견디다 못해 녹아버렸다. 이때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들이 방출되는데 이런 상황이 오래 계속되면서 핵연료들이 녹아 원자불덩이를 만든다. 이 원자불덩이가 원전 밑바닥과 기초 콘크리트들을 녹여버리면서 지하의 암석층을 녹여 땅속 반대편에 있는 중국까지 뚫고 들어간다.’
원전 사고를 과대 포장한 허구이지만 이 영화가 개봉된 후 몇 주 뒤 실제로 스리마일 원전 사고가 일어나 미래를 예측한 영화로 화제가 되었다.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인간이 원자력을 핵폭이 아닌 용도로 활용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일어난 원자력사고는 1957년 10월 영국의 윈드 스케일 원자력 사고이다. 이 원자로는 군사용으로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것인데 이 원자로에서 나온 방사성물질로 근무자 중 14명이 3렘 정도의 방사선을 받았다. 또 이 사고로 2만5큐리의 요오드131. 600큐리의 세슘137이 대기 중으로 누출되었다.
세슘137은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핵분열 핵실험 등 결과로 발생하는 인공 원소다. 방사능 낙진의 영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며 반감기(방사선량이 절반으로 주는 기간)는 약 30년에 이른다.
1958년 유고슬라비아의 원자력연구소 연구용 원자로에서 피폭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원자로의 작동 조건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용 원자로인데 갑자기 노가 임계가 되더니 중성자 증식이 시작되어 다량의 방사선을 발생하기 시작했다. 경보기조차 작동하지 않아 당시 연구에 종사하던 4명의 연구원 모두 치사량에 가까운 방사선을 받았다. 다행하게도 긴급 후송조치 등을 받아 한 명만 숨지고 다른 연구원들은 골수이식으로 살았다.
1961년 1월에는 미국의 아이다호 주에 있던 군사용 실험로인 SLI 원자로 사고로 3명이 사망했으며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강력한 방사능이 검출되었다고 알려졌다. 사고의 원인이 엉뚱한데 공식 보고서에 의하면 한 운전원이 자살하기 위해 고의로 제어봉을 손으로 뽑아내었기 때문이다. 원자로 가동에 따른 사고가 아니라 인재였다는 설명이다.
1975년 앨러배마 주 브라운즈 페리에서도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다소 코미디와 같은 일이지만 원전측은 공기유출을 점검하기 위해 양초를 이용했는데 밀봉제로 사용된 연소성이 높은 폴리우레탄폼에 불이 붙은 것이다. 불은 순식간에 원자로와 비상노심냉각장치과 접합한 플라스틱으로 둘러싼 조절 케이블 등으로 번져 7시간 반 동안 발전소의 상당부분을 무력화시켰다.
핵분열은 중지되었어도 붕괴열은 계속 생성되므로 노심을 냉각시켜야 했지만 화재로 인해 비상 냉각장치도 작동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로 인해 원자로 내부의 물이 증발하여 연료봉 상부가 물 밖으로 노출되었다. 다행하게도 운전원의 적절한 대응조치에 의해 큰 사고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원전 안전 기준을 강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노심냉각계통의 각종 기자재가 일단 화재가 나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설계팀들이 새로운 원전을 건설할 때 기자재의 물리적 분리 및 격리에 관한 설계기준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인들로 하여금 방사능 누출에 경각심을 일으킨 것은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Three mile)섬의 원전에서 원자로 내부가 파괴되어 방사능물질이 누출된 사고이다. 이 섬에는 2개의 90MW 원전이 있었는데 이중 1979년 1월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간 2호기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원자로에 공급되던 냉각수의 급수계통 이상이었다. 또 1차 급수계통에 고장이 나면 보조 급수계통에서 냉각수를 공급하게 되어 있었으나 보조 밸브도 작동하지 않았다. 원래 2차계통의 물이 줄어들면 자동계기가 이를 측정하여 줄어든 만큼의 물을 자동으로 공급하도록 설치되어 있었는데 점검수리원이 실수로 보조급수기의 밸브를 잠궈 버린 것이다. 따라서 2차계통의 물이 줄어들자 1차계통의 물이 계속 가열되어 핵연료봉이 녹아내리고 원자로 용기까지도 파괴되었다. 「차이나 신드럼」처럼 핵연료가 녹아버리는 사고였다.
다행한 것은 이때 누출된 방사성물질이 다섯 단계의 보호막 중에서 네 번째의 방호벽까지 뚫었지만 마지막 보루인 방호 건물 안에 갇히게 되어 방사성 물질이 조금도 외부로 빠져 나가지 못한 것이다. 추후의 조사에 의하면 점검수리원이 실수한 이유는 수면 부족으로 인한 판단 착오였다고 한다.
사고가 일어난 후 5일 동안 발전소에서 방사능 물질이 계속 방출되었다고 알려지자 우선 임산부와 아이들에게 피난 권고가 내려지고 23개 학교가 폐쇄되었다. 또 인근 주민에 대해서도 긴급 대피명령이 내려져 아기들은 담요로 싸고 어린이들은 목도리로 얼굴을 둘러 감아 방사선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토록 했다. 이 사고로 사고 지점에서 반경 80km 내에 거주하던 주민 200만 명이 이 방사능 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여러 연구기관에서 정확한 사고원인 분석과 현장 검증 등을 한 결과 스리마일원전 사고의 방사선 영향에 대한 조사보고서는 다음으로 귀결되었다.
‘원자로 속의 핵연료가 녹아 방사성물질이 많이 방출되었으나 외부로는 누출되지 않고 격납용기 속의 밀폐용기에 안전하게 갇혔다. 따라서 인명피해는 없지만 10∼18억 달러에 상당하는 물질적 손해가 발생하였다. 인명피해 상황에 대한 내역은 다음과 같다.
① 사고 당시 일부 보조기기에서 흘러나온 약간의 방사능 때문에 인근 80마일 이내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받은 최대 방사선량은 85밀리램, 주민 한 사람당 평균 1.65밀리램이다. 발전소 부근의 공기나 지하수 등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전혀 방사선에 오염되지 않았다.
② 사고발생일인 3월 28일부터 6월 30일가지 발전소 내에서 가장 많은 방사선을 받은 사람은 3명으로 이들이 받은 방사선량은 각 3천∼4천 밀리램이다. 이 수치는 발전소 방사선 작업자가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허용방사선량이 5천밀리램인 점을 감안하면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
1990년에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한 컬럼비아 대학이 <역학저널>에 발표한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스리마일 원전 주변 10마일 이내에 거주하는 사람 10만 명을 대상으로 4년간에 걸쳐 시행한 역학 조사 결과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선과 백혈병 및 다른 암과의 인과관계를 발견할 수 없었다.’
사고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이 때 누출된 방사능으로 인하여 지역 주민의 암 발생이 크게 높아져 암 발생률이 1만 명당 110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피츠버그대학 연구팀도 1979년에 발생한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1992년까지 13년 동안 인근 주민 3만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암 발생률을 조사한 결과를 2000년 4월에 발표했는데 그들의 결론 역시 당시 유출된 방사능과 주민 암 발생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사고가 난 지 수년 후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노심의 3분의 2가 물 밖으로 드러났고 온도는 2,200도까지 도달했다. 물론 핵연료가 녹기도 했다. 비상 냉각장치는 4시간 30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는데 노심이 다시 몰로 완전히 덮히는데 2시간이 소요되었다. 7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지르코늄과 물의 반응으로 생성된 수소가 폭발하여 원자로 내부의 압력이 일시에 높아졌지만 방호벽에 손상을 입힐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고 사고가 시작된 지 16시간이 지난 후에야 완전히 제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노심이 얼마나 손상되었는가는 1985년 2월 원자로 용기 속에 TV카메라가 투입되어 밝혀졌다. 결과는 노심의 70퍼센트가 손상되었고 35〜45퍼센트가 녹아내렸다.
스리마일의 손상된 원자로의 용해된 노심은 철거되었다. 용해 후 파편이 된 핵연료을 청소하고 정화하는데 11년이 걸렸으며 이들은 워싱턴 주에 있는 핸퍼트 인디언보호구역과 아이다호플스에 있는 아이다호국립공학연구소로 운송되었다.
스리마일 원전 사고 때문에 전 세계는 원전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한창 원전 건설의 열풍이 불고 있었는데 당시에 일어난 반핵운동과 연계되어 그동안 계획되거나 추진 중이던 세계의 거의 모든 원전 건설이 중단되었다.
반면에 스리마일 원전은 원전의 안전성을 알려주는 좋은 예로도 인용된다. 원자로가 녹는 사고가 일어났지만 방사능이 거의 누출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안전하게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주변 주민이나 환경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온천하에 보여주었다. 여하튼 원전 건설은 이 사건으로 상당한 치명상을 입어 원전 건설이 거의 중단될 정도였지만 예외적으로 한국과 일본 등은 이후에도 원전을 계속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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