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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이용>
1938년 미국의 의학자 조지프 해밀턴(Joseph Gilbert Hamilton, 1907〜1957)은 방사선을 낼 수 있는 원소를 이용하면 그것의 이동경로를 추적하여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화학변화(신진대사) 과정을 조사하거나 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반감기가 8일인 요오드131과 가이거 계수관을 이용하여 요오드가 이동하는 경로와 화학변화를 연구하고 갑상선 암을 치료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았다. 이것은 비행기에 싣는 짐의 짐표라든가 작은 송신기를 부착해둔 동물이나 새의 이동을 뒤쫓는 추적 장치와 비슷하기 때문에 ‘동위원소 추적자(isoptopic tracer)' 또는 추적자라 부른다. 해밀턴은 방사성동위원소를 추적자로 사용하는 진단과 치료 등 의학적 연구에 큰 기여를 했으나 방사성물질을 계속해서 많이 취급한 탓으로 혈액암인 백혈병으로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인체로부터 채취한 혈액 기타 분비물 등을 직접 조사하여 질병을 진단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신생아의 혈액에 함유된 갑상선 자극호르몬의 양을 요드125를 이용해 구레딘증을 발견해 낼 수 있으며 인슐린, 성장호르몬, 부신피질호르몬, 활체호르몬의 이상 여부도 조사할 수 있다. 또 간암에서 나오는 알파페토프로테인이나 대장암에서 나오는 분비물 등을 조사하여 암을 진단하기도 한다.
미국 의학자 조지 휘플(George Whipple, 1878〜1976)은 반감기가 45일인 철의 동위원소(철59)를 이용하여 혈액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혔다. 철59가 포함된 음식을 섭취하면 적혈구의 헤모글로빈 성분으로 참여하므로 이를 추적하여 적혈구의 생성 과정, 이동 경로, 적혈구의 수명, 빈혈과 간과의 관계 등 혈액에 대한 수많은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이런 선구적인 연구는 1934년 노벨생리의학상으로 보상받았다. 이후 비슷한 연구가 급속히 진전되어 ‘방사선의학’이라는 새로운 의학 분야를 탄생시켰다.
인체 구석구석에 어떤 질병들이 있는지를 찾아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인체의 질병진단에 가장 먼저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앞에 설명한 X선이다.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은 인체를 투과할 경우 장기 또는 조직의 밀도에 따라 흡수 또는 흩어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 성질을 이용하여 질병의 증상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X선 기기가 업그레이되어 허파나 뼈의 촬영만이 아니라 황산바륨 등 조영제(造影劑)를 체내에 넣은 다음 여기에 방사선을 투과시켜 체내의 생리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바륨은 X선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황산바륨으로 채워진 소화기관은 하얗게 나타난다. 그러면 검게 보이는 다른 조직과 확연히 구별되므로 의사는 하얀 부분의 영상을 조사하여 암 조직이나 기타 염증이 생긴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이를 조영제라고 부르는 것은 X선 촬영에서 그늘을 만들기 때문이다. 조영제는 검사가 끝난 후 곧바로 체외로 배출되어 인체에 부작용을 미치지 않는다.
추적자는 공사 현장이나 산업체에서도 큰 활약을 한다.
제방에 작은 구멍이나 실금이 생겨 물이 새는 것도 방사성동위원소로 찾을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저수지나 댐의 물에 푼다. 그러면 잉크가 물에 풀려 골고루 섞이듯 방사성동위원소도 댐 가득한 물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아무리 물이 많아도 방사성동위원소의 경우 농도가 낮아질 뿐 방사성동위원소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핵심이다. 댐 관리자들이 물이 고인 댐 반대편 둑의 표면을 방사선스캐너로 스캔하면서 구멍을 찾는데 물에 푼 방사성동위원소가 내뿜는 방사선이 스캐너에 잡히면 그 지점이 바로 물이 새는 곳이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인도네시아의 엔간카르댐, 중국의 나우후댐의 누수를 조기에 발견해 큰 화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방사선 스캐너는 아주 민감해 10억분의 1그램만 있어도 즉시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추적자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많다. 송유관이 낡아 균열이 생긴 곳이나 절도범이 일부러 뚫어놓은 구멍까지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하면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 지하 가스배관 탐지라든가 천연가스를 비롯한 극히 작은 누설만 있어도 큰 화를 불러 일으키는 화학공장 등 대형플랜트에서도 이런 비파괴 추적자는 큰 힘을 발휘한다. 댐이나 송유관, 화학플랜트 등에서 새는 곳을 찾아내는 데 사용하는 방사성동위원소들은 반감기가 아주 짧은 것을 사용한다. 방사성동위원소인 이리듐131의 반감기는 8일, 브롬82는 1.5일, 금198은 2.7일에 지나지 않는다.
<암 치료의 빛이 되는 방사선>
암이란 질병은 현대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이므로 보다 설명한다.
한국도 매우 빠른 시기부터 방사선으로 암을 치료했다. 1930년대에 이미 경성대부속병원, 철도병원, 부산시립대학에서 방사선동위원소인 라듐을 이용하여 자궁암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후 1950년대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학교부석병원 등에서 심부치료기를 도입함으로써 방사선치료의 면모를 갖추었다. 1970년대 전산화단층촬영장치(Computer Tomography)의 개발은 의료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진단 기술의 진화를 갖고 왔고 1990년대에는 2차원적인 방사선 치료 개념에서 벗어나 3차원 입체조영치료(3D- Conformal Radiation Therapy)가 시작되어 암치료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방사선치료는 양적, 질적으로 많은 변화와 성장을 보여 장기의 움직임까지 고려하는 4차원 치료인 호흡동조방사선치료(Respiratory Gated Radiotherapy)가 시행되고 있다. 컴퓨터의 발달과 치료법의 진전에 따라 조사 직후에는 체내 에너지 흡수가 적지만 암 조직에 도달할 무렵에는 에너지가 절정에 달했다가 그 후 다시 낮아지는 특성을 이용한 양성자 가속기는 적은 양의 방사선으로도 인체 깊숙이 있는 암세포를 치료하기 때문에 치료효과 증대와 부작용이 감소되어 방사선에 대한 공포는 이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사실 과거에는 방사선 치료를 받은 암환자의 머리가 완전히 빠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안타까움을 받았는데 현재 방사선 치료를 받은 많은 환자가 더 이상 머리가 빠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방사선 치료에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사선은 암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암을 발견하는 데도 적격이다.
불소18과 같은 물질을 인체에 주사하면 이 물질은 암 조직이 있는 곳에 많이 모이는 성질이 있으므로 이를 파악하면 암이 생긴 부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암세포는 증식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정상 조직에 비해 100배 정도 많은 포도당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즉 뇌암이나 심장근육암 등을 제외한 일반 암을 진단할 때 암이 포도당을 많이 소모한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포도당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물리적으로 붙여 주사한 후 암이 발생한 곳에 다른 정상 조직에 비해 많은 방사성동위원소가 모이는 것을 촬영하여 암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기능을 가진 기기가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이다.
반면에 뇌암의 경우 이런 방법을 사용하기 어렵다. 뇌는 평상시에도 일반 조직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포도당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포도당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이는 방법으로는 암인지 뇌 조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때는 뇌암 세포가 좋아하는 아미노산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인다. 갑상선 암 진단도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한다. 갑상선 호르몬의 주성분은 요오드다. 이 때문에 몸 안에 요오드가 있으면 갑상선은 방사능이 있든 없든 마구 끌어간다. 그러므로 방사선을 내뿜는 요오드 방사성동위원소를 주사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탈륨은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진단에 사용한다. 이 원소는 심장 수축과 이완에 사용되는 칼륨처럼 행세하기 때문에 주사하면 대부분 심장에 모인다. 이를 주사한 뒤 촬영하면 심장의 혈관이 좁아졌는지 막혔는지 알 수 있다.
암에 방사성 치료를 주로 사용하는 것은 방사선이 DNA의 사슬을 끊어 세포를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암 환자들이 항암제 투여와 함께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방사동위원소를 키토산과 섞어 간암 치료에 사용하기도 한다. 주사 당시에는 액체 상태이지만 몸 속에 들어가면 끈적끈적한 점액 상태로 변하면서 방사선을 내뿜는다. 즉 암 덩어리 속에 머물면서 방사선으로 암 세포를 죽이도록 설계된 것이다.
질병에 따라 방사선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므로 질병을 치료하는 기기도 다르다. 방사선으로 암을 치료하는 기기는 ‘양성자 가속기’, ‘사이버나이프’, ‘중입자가속기’ 등이 사용된다. 사이버나이프는 돋보기로 햇빛을 한 곳에 모아 종이를 태우는 것과 원리가 비슷하다. 방사선을 여러 방향에서 암세포를 조준해 약하게 쏘지만 암 세포 입장에서 보면 햇빛이 모이듯 엄청난 양의 방사선을 맞는 셈이다. 중입자가속기는 가장 최근에 등장한 치료기이다. 탄소나 네온 등 무거운 원자의 핵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암 세포를 조준해 쏘아 암세포를 죽이는 기기다. 이 기기의 장점은 방사선이 암세포에 도달해서야 가장 높게 방출되도록 조절된다. 이 때문에 방사선 폭탄이라고 한다.
농산물에 이용
방사능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야는 놀랍게도 인체의 건강에 직결되는 농작물의 품종개량, 재배, 식품보존 등이다. 일반적으로 돌연변이는 거의 생존에 불리한 형질로 태어난다. 그래서 대부분 당대(當代)에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수많은 돌연변이 중에는 과학자들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이 많이 나타나는데 특히 농산물에서 그러하다.
21세기 농산물에서 방사선 조사 기술의 활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식량 자원의 안정적 보존과 유통이다. 식량 자원 손실의 주원인은 미생물에 의한 부패나 해충에 의해 발생한다.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식품들은 생산부터 유통하는 단계에서 30% 가량 상하거나 변질될 정도다. 학자들은 이렇게 버려지는 식량 자원의 5퍼센트만 줄여도 지구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방사선 조사 기술을 이용하면 이러한 미생물이나 해충을 제거하여 식량자원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감자, 고구마, 양파, 마늘 등 농산물은 저장 중에 싹이나 품질이 저하되어 식품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농산물에 방사선을 쪼이면 싹이 나는 것을 방지하며 다음 해 농산물이 나올 때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둘째는 식품의 안정성과 건전성 확보다. 최근의 식중독이나 식품 관련 질병은 집단 급식이나 외식 산업의 확대에 따라 잡종화, 대형화 되는 추세에 있으며 환경오염 물질이나 각종 식품첨가제로부터 전이된 화학독성 물질에 의한 질병 발생의 위험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활용되는 것이 방사선 조사 기술이다. 학자들은 방사선 조사가 현재의 어떤 식품 위생화 처리 방법보다도 효과적이고 미생물학, 독성학, 유전학, 영양학적 안정성이 확보된 유용한 기술로 인식한다.
농산물에 방사선을 사용하는 또 다른 목적은 식품의 맛과 영양성분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유해 미생물에 대해 선택적으로 강력한 살균효과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방사선 살균은 제품을 완전히 포장한 후에 살균을 할 수 있으므로 보존이나 유통에서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방부제나 보존료를 첨가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방사선에 의한 식품저장 연구는 1885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다음해에 시도되었을 정도로 매우 빨리 시작되었다. 밍크 박사는 세균에 미치는 X선의 효과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식품 저장에 눈을 돌렸는데 그 효과가 입증되면서 재빨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방사선에 조사된 식품의 유해성 여부에 대한 논쟁이 아직도 일부 국가에서 일고 있으나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식량농업기구(FAO), 미국농무성(USDA), 미국식품의약국(USFDA),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제식품안전센터(NCFS), 미국의학협회(AMA), 미국영양사협회(ADA) 등의 국제기구도 ‘방사선을 쪼인 식품은 안전하다’고 공표하고 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가능하면 방사선을 쪼인 신선 또는 냉동된 닭고기를 선택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부설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의 변명우 박사는 ‘식품에 방사선을 조사한다고 해서 방사선이 식품이 남아 있거나 식품이 몸에 해롭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해서 말한다.
미국의 경우 일반 식품은 물론 가장 청결해야 할 국립학교의 점심 급식 프로그램에 방사선을 조사한 햄버거 등을 공급한다. 이럴 경우 급식으로 인한 식중독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으로 이는 각국에서 방사선 조사식품이 안전한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산물 품종 개발에도 방사선은 큰 역할을 한다. 수확이 많고 병충에 잘 견디며 재배기간이 짧고 추위에도 잘 견디는 품종을 만드는 것이다.
아주까리의 경우 통상 270일 정도 재배해야 씨를 수확할 수 있는데 방사선을 조사한 종자는 120일 만에 다 자란다. 박하 향을 생산하기 위해 재배하는 경우 곰팡이 병으로 장기간 재배가 불가능한데 중성자를 이용한 돌연변이 품종은 곰팡이 병에 잘 저항하며 자란다. 추위와 병충해에 강하면서 생산량이 많은 밀, 더 맛있고 생산량이 많은 땅콩, 커다란 꽃이 피는 달리아, 더욱 진한 붉은색 꽃을 피우는 장미, 가시가 없는 장미 등도 방사선의 효과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갖고 있어 식량 공급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중국도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위성에 씨앗을 실어 올려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주를 다녀온 종자만 벼·밀·유채·피망·오이·토마토·파·수박 등 800여 종에 달하며 황기, 영지버섯 등 약재로 쓸 수 있는 식물의 씨앗도 우주를 향했다. 우주에 다녀온 벼는 평균 약 20퍼센트, 밀은 9퍼센트씩 생산량 증가를 보였다고 발표되었다. 특히 토마토와 오이는 수확량이 늘어난 것 뿐 아니라 맛도 좋고 오래 두어도 썩지 않는다는 특성을 보였고, 피망은 크기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비타민C 함량까지 10〜25퍼센트 증가했다. 놀라운 것은 메벼가 찰벼로 변하고 벼의 생장 기간이 평균 12일 줄었으며 ‘붉은곰팡이병’에 취약하던 밀의 저항력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더욱 학자들을 고무시키는 것은 이 같은 돌연변이가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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