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놓친 비운의 천재들/에디슨과 테슬라

발명왕 에디슨과 테슬라의 혈투(2)

Que sais 2020. 10. 19. 16:09

youtu.be/jJLgOgSuWJ0

<전등 개발, 최후의 승자는 에디슨>

레오나르도 다 빈치으로 사물을 보는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은 세상의 아름다움이 반영되는 곳이며 눈을 잃는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그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은 그만큼 탁월한 것이다. 을 통하여 자연현상이 정신에게 전달되며 정신은 이러한 눈이 있기 때문에 육체라는 감옥에 만족한다. 눈을 잃은 사람은 영원히 빛을 볼 수 없는 감옥에 갇힌 것과 같다. 밤이라는 짦은 기간 동안의 암흑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사람이 만약 평생을 암흑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 빈치의 글눈의 중요성에 대해 극찬하는 것이지만 반면에 밤의 어두움이 얼마나 불편한가강조하는 뜻도 된다. 에디슨전등을 발명하여 태양이 아닌 새로운 빛으로 밤을 낮으로 바꾸어 주었다. 전등의 탄생으로 비로소 인간의 눈은 보다 새로운 환경 즉 24시간을 모두 낮과 같이 사용하는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 전기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악몽이 된 것이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인간의 삶을 원천적으로 바꾸게 한 에디슨이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문명의 이기를 갖다 주었으며 세계를 바꾼 사람이라고 칭해도 별 무리가 없다. 그에게 발명왕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것도 인류가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다. 독일의 역사학자에밀 루트비히(Emil Ludwig)는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미국인의 영웅이며 인류의 위대한 은인에디슨이 배처럼 생긴 작은 유리전구 속에서 프로메테우스의 불빛을 만들어낸 것은 인류의 역사상 두 번째불을 발견한 것이며 인류 밤의 두려움으로부터 또 다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의 최대의 발명인 백열전등은 그야말로 전설적이다. 그는 유리관진공 상태의 원형으로 만들어 주면 필라멘트산화되지 않고 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무려 9,000여 개의 물질을 실험한 끝에 그의 집념은 성공을 거두어 필라멘트로 사용될 수 있는 물질을 찾았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불에 그을린 무명실이었다. 필라멘트를 사용한 전등은 45시간 동안 계속 켤 수 있었다.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에디슨과 함께 전등을 개발한 프랜시스 젤(Francis Jhel)의 기록은 이 당시 얼마나 어렵게 전등의 필라멘트를 발견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길고도 지루한 사냥이었다. 처음에는 가능성이 있어보였던 많은 재료들이 결국은 실험에서 탈락했다. 모든 실험의 결과는 체계적으로 기록되었지만 단순히 재료의 이름과 그 뒤에 다시 해볼 것(try again)'이라는 뜻의 T.A'라는 약자만 써넣은 것도 많았다. 마치 모든 종류의 실을 다 써버리려는 듯 수많은 종류의 실을 이용한 말 그대로 수백 번의 실험이 반복되었다. 무명실, 아마, 황마, 코르덴실, 마닐라 삼 그리고 심지어 나무까지 실험에 동원되었다. (중략) 이 실험에서 사용되었던 재료들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멋들어진 턱수염이었다. 한 번은 존 크루시와 맥켄지의 수염 중 어느 것이 전구 속에서 오래 버티는 지 맞추는 내기가 벌어졌다. 사람들은 열띤 분위기 속에서 돈을 걸었고 자기가 돈을 건 턱수염의 장점에 관해 많은 논란을 벌였다. (중략) 어찌 되었건 둘 다 전류를 흘리자마자 곧바로 타 없어져버리긴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18791021 타 없어지지 않는 필라멘트를 발견했다. 무명실의 효과를 발견한 두 사람은 전구에서 나오는 빛을 쳐다보면서 밤을 지새웠다고 당시의 상황을 에디슨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는 진공상태0.000001 기압이 될 때까지 전구에서 공기를 뺀 후 그 전구에 실을 끼웠다. 그리고 나서 공기 펌프를 제거하고 전등밀폐한 다음 전류를 흐르게 했다. 불이 들어왔다. 처음 몇 분 동안 숨막히는 긴장 속에서 우리는 매 속도마다 저항력을 측정했다. 저항력275에 달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앉아서 전등을 관찰했다. 전등이 얼마나 오랫동안 빛을 내는가 보고 싶었다. 불빛이 점점 더 오래 타오를수록 우리는 점점 더 거기에 흘렸다. 아무도 잠을 잘 수 없었고 우리는 40시간 동안 눈을 붙이지 않았다. 전등45시간 동안 빛을 발했고 나는 실제로 사용 가능한 백열등이 탄생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원시적 실험 전등이 45시간이 아니라 100시간, 1,000시간 동안 빛을 내는 전등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확신했다. 그때까지 나는 4만 달러 이상을 이 전등을 만들기 위해 지출했다.’

 

에디슨이 수십 개의 전구를 대로변에 나란히 점등시켜 가스등 업자들을 놀라게 했는데 문제는 내구성을 높이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가 발견한 것은 대나무 필라멘트. 그가 대나무를 생각하게 된 것은 내구성이 섬유의 강도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면보다 훨씬 섬유질이 강한 대나무를 탄화시킨 것이다.

그는 세계 각지의 대나무수입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적당한 것이 일본 교토의 이와시미즈 야와타 궁 경내의 대나무 숲에서 얻은 대나무였다. 대나무를 끓이고 태워서 얻은 필라멘트1,000시간 이상 점화되었다. 이것이 세계 최초실용화된 전등이었으며 이후 10년 이상 이 대나무에디슨 전구의 공식 필라멘트로 사용되었다. 일본 교토의 야와타 시에 있는 에디슨 거리야와타의 대나무세계 최고의 전구용 필라멘트의 원료를 공급했다는 것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것이다.

그의 장담대로 상용화된 전구탄화된 종이의 편자형(U자 모양) 필라멘트. 에디슨의 실험실을 방문한 <뉴욕헤럴드>의 기자인 마셜 팍스18791231자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의심 많은 사람들은 하찮은 촛불에도 종이가 즉시 타버리는데 어떻게 전류를 흘려보낼 때 생기는 심한 열에도 견딜 수 있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중략) 그는 종이의 탄소 성분만 남기고 나머지 것들은 모두 날아가도록 종이조각오븐에서 구운 뒤 그 탄소의 잔해유리로 된 전구의 전선에 연결하고 전구 안의 공기를 빼냈다. 그리고 전구의 밖으로 연결된 전선을 발전기에 연결하자 나쁜 가스나 연기, 혹은 지독한 냄새가 전혀 없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중략) 이것은 작은 태양 빛과 같고, 진정 알라딘의 램프와도 같았다. 발명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전등 빛은 가장 싼 기름을 쓰는 램프 불빛보다도 더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에디슨최대 역작백열전등은 에디슨이 처음 아이디어를 생각한 사람은 아니다. 그가 전등을 발명하는 데 사용한 핵심재료인 탄소에디슨보다 50년 전에 이미 실험용 전등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에디슨의 백열전구 발명에 대해 지적할 것은 당시에 전기 조명생소한 개념이 아니었다. 전기을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두 탄소막대를 서로 가까이 접근시키고 그것들 사이로 전류부하를 보내면 전호(電弧, electric arc)가 창출된다. 그러면 그 간극 사에로 크고 눈부신 백색 스파크가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4천 촉광에 해당하는 빛이 창출된다. 전호조명이 얼마나 밝은지는 전쟁 영화에서 하늘을 쏘아 올리는 탐조등을 생각하면 된다.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를 비추는데도 사용하는데 이런 강력한 빛을 가정에서 활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두 번째백열 혹은 열에 의해 생성되는 빛이다. 어떤 물질에 충분한 양의 전기를 통과시키면 그 물질은 빛을 발할 정도로 뜨거워진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그 물질은 녹거나 타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30년 동안 전등을 개발하려는 무수한 시도가 이루어졌으며 학자들은 적어도 12명의 발명가전등을 발명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용적인 전구에디슨발명했다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에디슨이 전구의 유일한 발명자는 아니다. 그의 발명고유한 점을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좋은 의미로는 단순히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개선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에디슨의 특허법정공방으로 이어진다. 영국의 발명가 조셉 스완의 혈투. 에디슨보다 20년 연장자인 스완20세부터 탄소/진공 전구를 실험했을 정도로 발명에 일가견이 있었다.

스완은 영국에서 독자적으로 전구를 발명하여 유명한 윌리엄 톰슨 경의 집에 150개의 전구를 설치했다. 이후 영국왕립연구소에도 수백 개의 전구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에디슨의 주목을 끌었다. 한마디로 스완이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영국으로 가서 고소했다.

그런데 스완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영국의 에디슨이 아니라 에디슨이 미국의 스완일 정도로 탄탄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결국 에디슨스완에게 항복 아닌 항복을 하고 그에게 동업을 제시했다. 에디슨-스완 유나이티드라는 새로운 회사가 탄생했고 에디스완이라는 상표명으로 전구를 팔았고 당대 전구 업계를 평정했다.

영국에서는 스완전등의 발명가로 인정하지만 에디슨이야말로 진정한 전등의 발명가로 인정하는 것은 발명과 아이디어실행에 옮길 수 있는 방법론을 갖고 전등 보급성공했기 때문이다. 어떤 발명이라도 실험실이라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면 쓸모없는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에디슨을 제외한 발명가들이 작동하는 전등생산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것은 소규모로만 가능했다. 반면에디슨은 처음부터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발전기와 그것을 분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전선퓨즈를 갖춘 종합시스템으로 설계했다. 오직 에디슨만이 램프와 전력계단일한 구성단위로 작동하고 서로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디슨은 전등을 실험실이 아닌 밖에서도 작동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부속기자재필요하다고 인식했고 이를 위해 수많은 발명을 유도했다. 송전을 위한 설비가 필요해지자 배전판과 적산전력계가 개발됐고 케이블, 스위치, 소켓, 안전용 퓨즈가 부산물로 탄생한 것이다. 에디슨이 실험실에서 처음부터 전등을 위한 전체시스템을 구상하고 자신의 전등으로 뉴욕 시를 밝히기 위해 발전소를 세웠으며 자신의 전등이 다른 발명가보다 더 탁월하다는 것을 대중이 믿도록 만드는 언론을 다룰 줄도 알았다. 에디슨의 이와 같은 처신은 그의 발명으로 모은 거대한 부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발명이 실제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어떤 시스템을 채택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탱크와 같이 밀고 나갔기 때문이다. 그가 과학사에 미친 중요성은 발명과 실용성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진공관의 발명백열전등을 발명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백열전등의 내부는 진공이다. 여기에 필라멘를 하나의 전극이라 생각하고 또 하나의 전극을 추가하면 이극 진공관이 된다. 두 개를 덧붙이면 삼극 진공관이 된다.

 

<또 다른 천재 테슬라>

에디슨을 거론할 때 반드시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인데, 그 역시 700여 건특허를 가진 발명가다. 테슬라는 현 크로아티아의 스밀리안(Smilijan)에서 그리스 정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몇몇 가정용구와 농장용 기구발명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발명가적 기질을 갖고 태어난 테슬라는 다섯 살 때 이미 나름대로 발명을 시작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발명가이셨다. 만약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셨다면 이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기셨을 것이다.’

 

테슬라1875오스트리아 그라츠 공과대학에 입학해 그곳에서 처음 그람 다이너모(Gramme Dynamo)라는 직류 기계장치를 보았다. 발전기와 모터의 기능을 겸비한 최신 기계였던 이 전동기를 반대로 작동시키면 심한 불꽃이 튀었지만 전기모터로는 쓸 만했다. 테슬라는 좀 더 향상된 모터를 개발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장학금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어 중퇴했고 다시 들어간 프라하 대학도 역시 졸업하지 못했다. 1881년 테슬라는 부다페스트에서 국영 전화국의 기술자로 일했는데 어느 날 공원을 산책하던 중 직감적으로 교류를 이용하면 자기장을 회전시켜 모터를 돌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시 교류는 매우 높은 전압을 발생시키므로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천부적인 기계제작 능력과 튼튼한 과학적 지식을 가진 그는 다양한 교류이용시스템을 고안했다. 다음해 그는 스트라스부르크(Strasbourg)로 옮겨 유도전동기를 만들었다. 이것이 교류 장치의 효시로 주파수를 교대로 변화시키지 않고 전압을 변환하는 발전기, 전동기 및 변압기 등에 사용된다.

다음해인 1884년 그는 뛰어난 어학 능력과 에디슨에게 보내는 추천장, 그리고 동전 몇 푼만을 쥔 채 뉴욕으로 건너갔다. 에디슨에게 보낸 추천장에는 테슬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내가 지금까지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두 명인데, 한 명은 당신이고 다른 한 명은 바로 이 젊은이(테슬라)입니다.’

 

그의 어학 능력은 전설적이어서 18에 이미 6개국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암기력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젊은 시절 이상한 질병에 걸렸다가 치유된 후 갑자기 눈앞에서 빛이 번쩍이면서 환각이 나타나곤 했다. 환각 현상으로 어떤 단어를 들으면 그 순간 그 사물이 사진처럼 눈앞에 나타났는데, 이를 사진기식 기억력이라고 한다. 그는 어떤 아이디어가 도출되면 먼저 머릿속에서 수없이 실험하여 해답을 얻은 경우 발명에 임했다고 한다.

에디슨연구 보조원 테슬라에게 직류발전기를 설계하는 임무를 주면서 성과급으로 5만 달러의 포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작 테슬라가 성공적으로 작업을 끝내자 에디슨테슬라에게 당신은 미국식 유머를 모른다면서 포상금을 주지 않고 주급을 25달러로 올려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에 화가 난 테슬라가 회사를 떠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테슬라에디슨에게 받은 모욕감을 고스란히 돌려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에디슨 밑에서 직류를 연구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직류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1840대에 제임스 줄(James P. Joule)전력 손실전류의 제곱에 비례하지만 전압과 전류는 반비례한다는 것을 발표했다. 간단히 말해 전압두 배로 높이면 전류반으로 줄어들고 전력 손실4분의 1로 줄어든다. 장기적으로 보면 높은 전압이 경제적이지만 처음 전등에 직류를 이용했으므로 전압을 바꾸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테슬라변압기가 다양한 전류에 작동하지만 정상일 때에는 교류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직류를 교류로 변환시키는 변압기가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곧바로 전압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는 변압기 및 교류전동기를 발명했다. 에디슨 연구소에서 직류를 연구했으므로 교류변압기를 만드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 그가 발명한 교류변압기가 에디슨이 보급하는 직류를 격파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하자 1886 테슬라전등회사를 설립했다.

테슬라에디슨을 꺾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사실 그는 누가 에디슨에 대항하려고 도전장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철도용 에어브레이크의 발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 18461914)웨스팅하우스테슬라의 기대대로 그의 특허권을 구입했다. 테슬라의 생각은 간단하다. 자신은 직류에 대항할 수 있는 교류 기술을 전담할 테니 당대의 슈퍼스타 에디슨웨스팅하우스격파해 달라는 것이다. 당대의 최고 발명가이자 재벌인 두 사람이 직류와 교류를 놓고 세기의 혈투를 벌이게 된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