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없는 논문 조작>
황 박사의 논문이 조작으로 판명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과학적 부정행위는 과학계에서 종종 일어난다.
가장 최근의 사건은 연구결과를 꾸며낸 미국의 MIT대학 루크 반 파레이스 교수의 파면사건이다. 2005년 10월 MIT는 파레이스 생물학과 부교수가 논문 하나와 몇몇 글, 연구제안서에 쓰인 결과를 조작하거나 꾸며냈다고 자백한 후 파면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는 면역체계의 기능과 리보핵산 간섭(RNAi)에 관련한 논문을 20편 가량 출판했다.
<네이처 제네틱스>에 실린 2003년 논문은 247번, 1998년 주저자로 발표한 <사이언스> 논문은 461번이나 인용됐을 정도로 학계에서 비중 있게 평가했다. 특히 공저자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인 필립 샤프 MIT 석좌교수와 데이비드 볼티모어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총장이 포함됐지만 MIT는 엄격하게 논문을 심사하여 파면한 것이다.
과학적 사기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은 8일마다 한 편 꼴로 논문을 발표한 벨연구소의 헨드리크 쇤 박사 사건이다.
벨연구소의 얀 헨드리크 쇤은 2001년부터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응집물질물리와 나노기술 분야 연구논문을 8일에 하나 꼴로 발표했다. 분자규모의 유기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는 <네이처> 논문은 그를 일약 세계적 과학자로 만들었고 세계 물리학계의 신성(新星)으로 떠오르며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물리학계에는 그의 데이터가 너무 완벽해 오히려 이상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급기야 온도가 다른 조건에서 실시한 두 가지 실험이 정확히 같은 노이즈 데이터를 갖고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벨연구소는 2002년 5월, 맬컴 비즐리 스탠퍼드대 교수에게 사건 조사를 맡겼다. 조사위원회는 4개월간의 검증을 통해 조사 결과 공동저자로 논문에 이름이 올랐던 20명은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모든 실험은 쇤 박사 혼자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험노트도 없었다. 시료는 부서지거나 손상됐고, 컴퓨터에 있어야 할 데이터 원본도 찾을 수 없었다. 조사위원회는 24개의 의심 사례 중 최소한 16개의 부정이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벨연구소는 보고서를 받은 날 쇤을 해고했고 <사이언스>는 2002년 10월 쇤의 8개 논문을 취소했다. <네이처>도 2003년 3월 그의 논문 7개를 취소했으며 콘스탄츠대학은 2004년 6월 그의 박사학위를 박탈했다.
물론 쇤은 아직도 자신의 데이터가 부정확한 것은 사실이지만 분자규모의 트랜지스터는 실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델프트공과대학과 토머스 왓슨 연구소는 쇤의 방법으로 실험을 계속했지만, 재현에 실패했다며 그의 주장을 일축했다.
논문의 진위성 여부를 판단할 때 재현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미국 퍼듀대의 루지 탈레야칸 교수는 2002년 3월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사이언스>에 아세톤 용액이 담긴 비커를 진동시키며 고속의 중성자를 쏘면 기체방울이 생성됐다가 터지면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 섬광과 함께 온도가 수백 만 도로 올라간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음파발광(sonoluminescence)으로 알려진 이 현상은 오래 전부터 관찰됐으나, 탈레야칸 교수팀이 처음 실현했다고 발표하여 크게 각광을 받았다.
<사이언스>는 그의 논문을 받고 당시에도 논란이 있음을 알고 연구결과를 비평하는 글을 동시에 게재했다. 그러나 탈레야칸과 같은 연구소에 있던 단 샤피로 박사는 재현 실험을 했으나 실패하자, <사이언스> 발행인에게 여러 차례 논문 게재 유예를 요청했다. 이 문제는 아직도 검증 중이므로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계속 재현성이 반복되지 않는다면 조작사건이 틀림없다고 단언한다.
일본 도쿄대의 다이라 교수는 1998부터 2004년까지 <네이처> 등 저명 학술지에 12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다이라 교수는 '암의 전이를 좌우하는 분자는 리보자임'이라는 논문을 계속 발표했고 노벨상 수상 0순위로 꼽혔다. 다이라 교수가 지금까지 각종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600여 편에 이른다.
그러나 다이라 교수 논문대로 다른 연구자들이 실험해 봤지만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도쿄대가 조사에 나섰고, 다이라 교수는 실험노트나 실험결과를 보관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도쿄대는 2005년 9월 다이라 교수에게 연말까지 검증하기 쉬운 4편의 논문에 대해 재실험을 하도록 명령했다. 이 역시 재검증에 통과하지 못하면 세계를 속인 조작사건으로 분류될 것으로 추정한다.
논문의 진실성 검증으로 가장 유명한 사건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복제양 돌리다.
돌리가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것은 영국 로슬린연구소 이언 윌머트 박사팀이 돌리가 태어났다고 발표한 지 11개월이 지났지만 돌리 복제 방법을 사용한 제2의 복제 동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과학의 재연성이 입증되지 않아 돌리 복제가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의혹을 제기한 과학자들은 돌리가 복제양임을 입증하려면 돌리와 체세포를 제공한 암양의 DNA 지문을 대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복제양 돌리를 만든 윌머트 박사는 자신이 반복 실험을 진행 중이므로 인내를 갖고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돌리에 대한 결과가 발표된 지 11개월밖에 안 됐는데 양의 임신기간이 5개월인 점에 비춰 볼 때 (다른 연구팀에서) 우리와 유사한 실험을 마치고 결과가 나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월머트 박사는 독립적인 제3의 연구기관에게 DNA 지문검사를 의뢰했다. 검사를 위해 돌리의 혈액과 조직세포, 돌리에 체세포를 제공한 암양의 세포를 제공했다. 돌리에 체세포를 제공한 암양은 이미 숨진 상태였으나 암양의 조직과 세포는 냉동 보관돼 있었으므로 검사에는 문제가 없었다.
검사의 결과는 월머트 박사의 주장이 옳음을 입증했다.
보관 중인 세포가 돌리에 체세포를 제공한 암양의 것임이 확인된 것이다. 월머트 박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지 6개월 만에 완전히 풀린 것으로 이 사건은 생명공학의 시비를 어떻게 가릴 수 있느냐를 보여준 실예가 되었다.
<끊이지 않는 논문조작>
논문 조작은 전세계에서 많은 학자들을 놀라게 하는데 줄기세포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줄기세포가 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서도 근래 일본의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晴子) 박사가 만든 스텝줄기세포로 벌어진 논문조작 사건은 그야말로 작품 중 작품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활용되는 줄기세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궁에 착상한 배아로부터 만드는 배아줄기세포로 우리 몸의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다. 한편 성체줄기세포는 골수 등에 들어 있는 줄기세포로 제한된 종류의 세포로만 분화할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유전자 공학의 발달로 인공적으로 만들수도 있다. 핵을 제거한 난자에 체세포 핵을 넣어 만든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다. 황우석 박사가 만들었다는 바로 그것이다.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가 인간의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분화가 잘 되고 면역거부반응이 없지만 난자를 이용해 생명윤리 문제가 있고 암이 발생할 위험도 크다고 알려졌다. 그 역시 황우석 박사와 마찬가지로 연구결과가 의심스럽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무사히 검증을 넘겼다.
가장 각광받는 줄기세포는 ‘유도만능줄기세포’다. 체세포에 4가지 외부 유전자(Oct4, Sox2, Klf4, c-Myc)를 넣어 만드는데 교토대 아마나가 신야 교수가 이 연구로 2012년 노벨생리학상을 받았다. 배아줄기세포만큼 다른 세포로 분화하기 쉽고 환자 체세포로 만들어 면역거부반응이 없다. 생명윤리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물론 몸에 주입하면 극소수의 미분화세포로 인해 암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오보카타 교수의 스텝줄기세포는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와 유도만능줄기세포의 장점만 합친 것으로 설명되었다. 난자를 사용하지 않아 윤리적 문제도 없고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아도 안전하다. 면역거부반응도 없는데 놀라운 것은 다른 줄기세포와 달리 분화가 끝난 세포를 약산성용액에 담그기만 하면 스텝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학자들이 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착상은 단순하다. 유도만능줄기세포의 문제는 외부 유전자를 도입해야만 하는데 유전자를 넣지 않고 간단한 자극만으로 만능줄기세포를 만들 수 없는가이다. 2014년 와세다 대학교 출신의 일본의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晴子) 박사가 이에 도전하여 성공한 것이 바로 ‘STAP 세포’다. 동물의 몸에서 떼어 낸 세포를 약산성 용액에 잠깐 담그는 자극만으로 간단하게 만능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획기적인 내용이 담긴 그녀의 논문은 곧바로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그녀는 무명의 젊은 여성 과학자였지만 1949년 일본에 첫 노벨상을 안겨준 일본 최고의 기초과학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RIKEN)> 소속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과학계 신데렐라’로 떠오른 오보카타 박사는 희대의 논문 사기극 주연이었음이 판명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논문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이화학연구소가 자체적으로 조사하여 발표한 「STAP 세포 연구논문 조사 보고서」는 그야말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선 이 문제가 제기된 후 논문이 게재된 지 5개월 후 <네이처>가 2편의 논문을 공식 철회했다. 또한 1차 조사에서 논문이 조작됐다며 발표의 수위를 낮췄던 <이화학연구소>는 보다 놀라운 내용을 발표했다. ‘STAP 세포는 존재하지 않으며 제3의 만능세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사진은 오보카타 박사의 논문을 꼼꼼히 검증한 결과 실험에 서로 다른 줄기세포주에서 확립된 배아줄기세포가 사용됐으며, 이들 배아줄기세포가 배양 중이던 세포에 의도적으로 섞인 정황이 발견했다.
특히 배아줄기세포와 STAP 세포의 증식률을 측정한 그래프에서는 3일마다 두 세포의 개수를 세어 점을 찍은 것으로 돼 있는데, 이 기간에 오보카타 박사는 출장으로 실험실을 비웠다는 것도 발견됐다. 실험실을 비운 날에는 손으로 점을 찍어 그래프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실험 자료를 ‘창작’에 가까운 그래프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오보카타 박사가 크게 부각된 것은 ‘오보카타 신드롬’을 일으켰기 때문인데 불똥은 공저자로 파급되어 사사이 요시키 박사가 자살하기도 했다. 사사이 박사는 일본 줄기세포 연구의 대가이자 최고의 석학으로 칭송받던 인물인데 공저자로 이름이 포함되어 불명예를 감수하고 자살한 것이다. 2015년에는 오보카타의 논문 조작으로 박사학위가 취소되었다.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는 많은 논란에 시달리는데 이는 그만큼 줄기세포가 매력있다는 것을 뜻한다. 참고적으로 한국에서 논문 조작 행위는 논문조작행위를 통해서 논문심사를 방해하는 것이므로 형법상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된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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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별 맞춤 약물 시대를 연다」, 신재국, 과학과 기술, 2004년 11월
「공룡시대에 오리도 함께 살았다」, 최재혁, 조선일보, 2005.1.22
「비윤리적 비판 해결할 연구 성과 줄이어」, 이영완, 조선일보, 2005.6.23.
「주기세포를 둘러싼 희망과 분열」, 릭 와이스, 내셔널지오그래픽, 2005년 7월
「'돌리' 의혹 땐 제3기관 검증으로 해소」, 박방주, 중앙일보, 2005.12.10
「황우석 논문 ‘과학적 논란과 검증’ 외국에서는」, 이근영, 한겨레, 2005.12.12
「황교수 압박감 풀려고 10년 거짓말」, 정형석, 머니투데이, 2005.12.15.
「황우석과 쇤의 공통점」, 전필수, 머니투데이, 2005.12.20
「조작의혹 횃불 밝힌 ‘anonymous', '아릉’은 누구」, 박진형, 연합뉴스, 2005.12.25
「'줄기세포' 희망의 줄기를 찾아서」, 송홍식, 서울경제, 2008.08.01.
「루게릭病환자 피부세포 이용 운동신경세포 만들었다」, 심은정, 문화일보, 2008.08.01.
「체세포 줄기세포로 난치병 치료 길 터」, 이용권, 문화일보, 2008.08.01.
「한국 줄기세포 연구, 세계 최고수준 회복」, 이강봉, 사이언스타임스, 2008
「논문 조작 정도가 아니라 창작에 가까워」, 신선미, 동아사이언스, 2015.01.30.
「줄기세포 혁명? 또 한 번의 악몽?」, 이민주, Chemistry Laboratory, 2016.11.29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나무위키
「황우석」, 나무위키
『영화 속의 철학』, 박병철, 서광사, 2001
'노벨상을 놓친 비운의 천재들 > 황우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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