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박사의 이모저모>
황우석 박사는 서울대학교의 평범한 수의대 교수로 재직할 때 관련된 TV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았다. 그러므로 대중들에게 동물과 관련되어 매스컴을 자주 타는 교수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후반, 해외의 복제 동물 연구 활성화와 맞물려, 핵이식 복제 소 등을 성공시키며 이쪽 분야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에서 복제양 돌리를 만드는 데 성공하여 세계적인 관심이 고조되자 황박사는 줄기세포 연구로 1999년에 젖소 ‘영롱이’를 체세포 복제로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당시는 외환위기로 국가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던 때이므로 정부는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 사람을 ‘신지식인’이라고 선정할 때 복제동물을 만들었다는 황박사는 신기술 개발의 선구자로 국민적인 인기와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1999년 소 브루셀라 백신 파동 때 황우석 박사가 국정감사장에서 백병걸 전북대학교 교수의 백신이 엉터리라고 주장해 구속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백 교수는 이에 대해 자신이 만든 백신은 미국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것이며 당시 백신이 듣지 않은 것은 오염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추후 백병걸 교수의 말이 사실로 밝혀졌다. 서울고등법원이 백신 파동의 원인은 공무원에게 뇌물 공여와 잡균들로 오염된 불량 백신을 제조한 대전의 한 백신 제조회사에게 있으며 국가에 끼친 손해 역시 그 회사에서 보상하라는 구상권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한마디로 괜한 황우석 교수의 잘못된 주장으로 브루셀라 전염이 한창일 때 효용성이 있는 백신을 사용하지 못하게 돼서 대한민국에서는 브루셀라가 대 창궐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여하튼 황박사의 당시 처신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을 때 2004년 황박사는 <사이언스>지에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발표는 세계를 깜작 놀라게 했다.
한마디로 영롱이를 시작으로 전국민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았고 줄기세포 기술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의 기반이 될 기술로 각광받았으며 배아줄기세포로 전 세계의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줄 것이라고 설명되었다.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배아줄기세포는 더욱이 세계 최초라는 수식이 붙어 곧바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야말로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그에 대한 대우는 파격적으로 한 국회의원은 황우석에게 만큼은 특혜를 주어서 영수증 없이도 연구비를 지원하자고도 했으며, 2005년 최중요 인물로 대통령급 경호를 경찰에서 직접 할 정도였다.
<예상치 못한 파국>
그의 파국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부터 불거져 나왔다.
황 교수는 2005년 7월, KBS 열린음악회에서 ‘열린음악회에 출연해 휠체어 댄스를 선보인 강원래를 벌떡 일으켜 과거의 화려한 몸놀림을 다음 열린음악회에서는 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MBC의 PD수첩은 이 때의 황박사 말은 ‘내가 너를 일으켜 걷게 하겠다.’라는 영적 계시와 다름없는 발언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황박사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여론이 조성된 것은 황박사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들에게 단 몇 년 안에 배아복제를 통해 병을 치료하여 보통 사람처럼 활동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황박사 자신도 몇 년 안에 그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배아복제 연구의 초창기이므로 결실을 얻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황박사가 단 몇 년 안에 장애인들이 벌떡 일어설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은 장애인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면서 이를 연구비 확보 등에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몇몇 분야에서 그의 말대로 여러 사람들이 극적인 치료를 받는 사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하튼 당대의 정황을 볼 때 과학기술 연구에 종사하는 연구원으로서 많은 오해를 살 수 있는 문제라 는 지적은 계속되었다.
황우석이 스스로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이라는 비난까지 받았지만 장애인들의 반응은 종교계와는 전혀 달랐다. 보행 장애자들은 황교수가 자신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며 심지어 자신을 생체실험용 ‘마루타’로 써달라는 자원자가 있다는 언론기사로 나올 정도였다. 마루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중국 하르빈에 있는 731부대에서 수많은 포로들을 생체실험할 때 실험대상이 된 사람들을 뜻한다.
2005년 8월, 황박사가 스너피라는 아프간 하운드 종의 개를 복제하였다고 발표하면서 한국은 그야말로 황우석에 열광했다. 당시 한국은 바이오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우고 황우석 박사를 대표 이미지로 내세워 대대적인 홍보를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까지 직접 황우석의 연구실을 방문해 격려하는 등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추후에 황박사의 사건이 불거져 나와 심지어는 복제소 영롱이, 복제개 스너피도 거짓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정도이지만 영롱이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지만 스피너는 진짜로 복제에 성공한 것으로 인식한다. 황박사를 판단할 때 스피너가 중요한 지표가 되는데 이는 황박사의 복제는 사실이란 점이다.
황박사의 언론 플레이는 상당이 고수준임은 틀림없다. 그는 언론을 적절히 이용하여 자신의 유명세를 높였는데 특히 난치병, 불치병 환자의 가족들과 만나 자신이 연구한 줄기세포로 그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때 민주화 운동으로 얻은 후유증과 고령으로 건강이 안 좋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직접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하튼 황박사의 줄기세포 치료는 당시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초창기 상태임에도 황박사의 말은 거침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황박사를 향한 시선이 극찬과 비난으로 나뉘어지는 차에 핵폭탄은 그야말로 예상치 않은데서 터졌다. 황우석 박사에 대한 문제가 불거져 나오게 된 발단은 황박사와 공동 논문을 제출한 미국의 제럴드 새튼 박사가 황교수의 연구에 사용된 난자 취득 과정의 윤리적 문제를 들어 황 교수가 추진 중인 <세계줄기세포허브> 설립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발표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튼 박사는 공동 연구를 추진하던 사이임에도 매우 놀라운 공격을 했다.
‘황 교수가 나를 오도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정보를 갖고 있다, (황 교수에 대한) 나의 신뢰는 흔들렸고 마음이 아프며 이제 황 박사와 함께 일할 수 없다.’
새튼은 황박사와 함께 공동연구를 하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황 박사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그는 2004년 황박사가 체세포 복제에 성공했다고 하자 ‘세계 생명공학계에 어제까지 새튼의 태양이 떴다면 내일부터는 황우석의 태양이 뜰 것’이라며 황 교수를 치켜세웠던 인물이다.
비판의 핵심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윤리․법적 문제가 없었는가하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2004년 2월 황 교수팀이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한 뒤에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당시 황 교수팀은 <한양대임상시험윤리위원회>의 연구계획 승인을 받아 10여명의 자발적 난자 공여자로부터 총 242개의 난자를 받았으므로 문제점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여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2005년 5월 난치병 환자들을 위해 황 교수팀이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연구결과가 과학지 <사이언스>지에 실린 뒤 또 한 번의 의혹이 제기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밀드레드 조 교수팀이 황 교수팀 연구의 윤리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미국의 새튼 박사팀이 연구에 참여했지만 미국이나 한국 어느 곳에서도 연구에 대해 정부기관의 승인을 받지 않았고 둘째로 의학적 용도로 기증된 난자가 연구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제럴드 새튼이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여 황박사와 결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가 결별의 이유로 밝힌 것은 황교수팀의 여성 연구원 2명이 난자를 기증했다는 것이다. 생명연구를 하는 학계에서는 직접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원들의 난자기증은 연구책임자들의 유․무형 압력이 개제할 수 있으므로 금기사항이었다.
이 사건은 2005년 11월, MBC의 시사프로 MBC-TV <PD수첩>의 최승호 PD가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편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문의 보도로 그야말로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난자 채취 과정에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 과정에서 난자 제공자에게 금품이 전달되었고 난자 중 일부는 연구실의 여자 연구원들을 상대로 채집했다며 과학윤리 문제를 제기했다.
이것이 과학적인 측면에서 큰 문제거리를 유발시킨 것은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 시술을 위 난자를 여러 개 성숙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이 간단하지 않으므로 한 번에 많은 난자를 성숙시키기 위해 난소 자극 호르몬을 투여한다. 정상적인 여성의 경우 월 1개의 난자만 성숙시키지만 외부에서 호르몬이 투여될 경우 서너 개를 넘어 많게는 몇 십 개씩도 성숙시킨다.
문제는 황우석 박사 측이 시행한 난자 채취는 인공수정을 위한 채취보다 호르몬을 과하게 써서 심하면 난소 자체에 큰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난자는 태어날 무렵부터 그 총 개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정시기에만 월 1개씩 나오는 것을 억지로 당기면 당연히 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난자를 기증한 연구원들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연구 성과를 이루려고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연구원들이 난자를 기증한 시기는 한국에서 생명윤리법이 발효되기 전에 발생한 문제라서 법규정에 위배되지 않고 연구원의 윤리 문제를 규정한 헬싱키 선언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실 이러한 황 교수에 대한 비판은 국내에서도 계속돼 왔다.
특히 여성의 난자 채취 과정의 불투명성은 ‘여성의 몸을 대상화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일부 비판자들은 ‘배아복제, 대리모, 유전자 진단 등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거나 수단화하는 경향을 심화시킨다’며 ‘더 나아가 여성으로부터 출산능력을 빼앗고 성인 여성의 예속을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태가 여의치 않게 벌어지자 황박사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난자 채취사실을 시인하며 공직에서 사퇴했다.
이 정도로 끝날 사항인데도 불구하고 황우석 박사의 대중적 인기도와 연구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화살이 PD수첩으로 돌아가 여론을 극한으로 몰아갔다는 것이 사건의 판을 키웠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인재의 연구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순신 장군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로 황우석 박사 지지자들은 MBC 앞에서 촛불시위를 할 정도였다.
이 문제가 이상한 상황으로 흘러가자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줄기세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에 ‘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고 말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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