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나오는 러시아 궁정은 정말로 화려하다.
궁정의 화려함은 물론 참석자들 모두 사치의 극치를 누리고 있는데 그것은 현재 박물관으로 개봉되고 있는 과거 러시아 제국의 궁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지구 영토의 10분의 1을 차지하고 있지만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없는 황무지 땅이 대부분인 제정 러시아가 이와 같이 사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시베리아가 그야말로 러시아의 보물창고이기 때문이다.
17세기말에 러시아의 계몽군주 피터 대왕이 시베리아에서 은광산을 발견했고 반세기 후에 시베리아 북서쪽 끝에 위치한 베르요조프에서 금광맥을 발견했다.
그런데 금은 100미터 깊이에 묻혀 있었다. 이것이 시베리아의 비극을 갖고 오게 한 요인이다. 곧바로 러시아의 농노들과 유배된 범죄자들이 금광석을 캐는데 동원되었는데 갱 안은 촛불을 켤 수 없을 정도로 산소가 부족했다. 그들의 상황이 어떠했을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9세기 초까지 러시아 제국은 황금의 일부분만 채굴했다. 채굴된 황금은 대부분 러시아 제국군을 유지하는데 소요되었는데 1828년 시베리아의 레나 강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 레나 강의 사금은 비교적 채굴 여건이 좋아 1미터 정도 깊이의 땅을 파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시베리아에서 생산되는 금과 은은 전 세계 생산량의 6분의 1이나 되었다. 더구나 시베리아는 서유럽의 상류층들이 좋아하는 모피가 무진장 있었다. 당시 모피의 무게는 금으로 환산해서 거래되었을 정도였다.
물론 광부들의 생활은 열악하기 이를데 없었다. 60,000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해마다 400만 톤에 달하는 흙을 퍼 날랐다. 노동자들은 창문도 굴뚝도 없는 원시적인 오두막에서 바닥에 습기를 막을 수 있는 깔개도 없이 지내야 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가 제위에 올랐을 때 제정러시아는 권력의 절정기였다. 러시아 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들 돈은 모두 러시아 황제의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1918년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가족과 함께 모두 처형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갖고 있던 엄청난 자금들은 어디에 있을까.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질문에 궁금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상속법에 의해 러시아 황제 가족이 모두 사망했다면 그 엄청난 자산은 친근 가족이 받게 마련이다. 그런데 당대에 황제의 친근 상당수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러시아의 정세가 심상치 않으므로 상당수가 러시아를 탈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니콜라이 2세의 가족 중 한 명의 공주와 알렉세이는 처형당하지 않고 무사히 탈출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더니 얼마 후 자신이 학살의 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아나스타샤(1901〜1918?) 공주라는 여자가 나타났다. 이것이야말로 당대 최고의 파괴력을 갖고 있는 내용으로 한마디로 러시아 황제의 엄청난 유산은 그녀가 진짜 아나스타샤라면 그녀 것이라는 뜻이다. 황제의 유산을 기대하던 모든 친척들에겐 악몽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련의 이야기가 미국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았다.
1956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스웨덴 출신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돌아갔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아나스타샤」는 작품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외국인 여배우로는 이례적으로 두 번 째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geulmoe.quesais
‘몰락한 러시아 황실의 궁정장교로 백군 출신인 부닌(율브린너)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살하려던 여자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막내딸 아나스타샤와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그 여자를 진짜 아나스타샤로 둔갑시키려고 한다. 그녀가 아나스타샤로 인정받으면 러시아가 해외에 갖고 있는 수많은 재산을 독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억상실증의 여자가 점점 기억을 찾아가면서 진짜 아나스타샤일지도 모른다는 뉴앙스를 주면서 부닌과 그녀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 두 사람은 덴마크로 가서 아나스타샤의 할머니 마리아 표도로브나 황태후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진짜 아나스타샤라고 인정받는다. 황태후는 옛 러시아 제국의 황족들과 귀족들을 모아 성대한 무도회를 열어, 아나스타샤를 러시아의 황녀로 공표하며 동시에 아나스타샤와 자기 조카와의 약혼 발표까지 하기로 한다. 그러나 황태후는 아나스타샤와 부닌이 서로 사랑한다는 걸 눈치채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부닌과 도망치게 도와준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잉그리드 버그만이 연기했던 여자가 진짜 아나스타샤인지 아닌지를 의문으로 남겨 놓는다. 이 영화는 자신이 러시아 혁명 와중에서 살아남은 아나스타샤 공주라며 유럽의 사교계에 나타나 세계를 흔들었던 한 여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이다. 그 여자는 진짜 아나스타샤와 여러 면에서 유사했으며 특히 러시아 황실의 일상생활에 대해 정통하여 진짜 아나스타샤일지도 모른다는 정황을 담았다.
여하튼 영화 「아나스타샤」는 당시의 화려한 궁정 의식과 의상 등을 정확하게 고증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잉그리드 버그만은 유럽의 왕실 가족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적격의 배우라고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매력이 더욱 더 아나스타샤 공주의 전설이 퍼져나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인데 주제는 당시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죽을 때까지 주장한 여자가 정말 아나스타샤 공주인가 하는 점이다.
<산업화가 제국의 멸망을 재촉>
제정러시아라고 하지만 러시아에서도 자유의 바람은 일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알려진 러시아가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자 국민들은 점점 더 가난의 고통으로 내 몰려졌고 봉기가 일어났다. 국가는 걷잡을 수 없는 혁명의 분위기에 휩싸여 1905년 유명한 ‘피의 일요일’이 일어났다.
러시아제국의 운명을 재촉한 것은 소요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수많은 스파이들이 노동자들을 감시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스파이들의 눈에 벗어난 사람들은 모두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1905년 이후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는 초만원으로, 약 30,000명의 사람들이 단 몇 년 안에 사망했다.
유배된 노동자들이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생활여건 때문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지만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면서 탄원하면 황제가 자신들의 상황을 알고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생각은 완전한 착오였다.
노동자들이 평화로운 데모행진을 벌일 때 군인들이 발포했고 이 학살 사태는 러시아 봉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1913년 로마노프 왕가의 300년 왕위기념식을 발단으로 러시아의 대도시에서 75만 명의 사람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곧바로 파업은 폭력적인 사건으로 꼬리를 물었고 1914년에는 사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1914년 6월 27일 세르비아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내외가 세르비아 비밀 결사대원의 습격을 받아 급사했고 이 사건이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빌미가 되었다.
1914년 7월 29일 러시아는 총동원령을 내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전쟁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참전했기 때문에 1915년 초, 러시아 병사 세 명 중에서 두 명이 총도 탄약도 군화도 없이 전선으로 보내졌다.
맨 몸으로 전선에 나선 러시아군의 사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 니콜라이 2세는 자신이 직접 러시아 총사령관이 되어 전쟁을 직접 지휘하겠다고 나섰다. 이것이 로마노프 왕조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몰락시키는 계기였다.
당시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에게 황제는 신비주의적 인물이었고 신과 같았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모든 것을 볼 수 있었고 교회의 판결보다 더 권위가 높았다. 러시아 는 2,24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지역에 1억 3천만 명의 인구가 있었는데 황제는 이들을 일일이 이끌어 줄 수 있는 신과 같았고 황제는 오직 신에 의해서만 임명될 수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군사령관으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투 상황에서 수많은 일들을 직접 결정해야 되는 상황이 되자 황제의 유약한 성격과 완고함, 그리고 비효율적인 결정 등이 곧바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선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황제가 직접 지휘했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500만 명이라는 많은 병사들이 사망하자 백성들은 그제서야 황제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니콜라이 2세에 대한 비난은 러시아군이 허망하게 패배하고 많은 사상자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니콜라이 2세가 적인 베를린 정부로부터 10억 루블이나 받고 보다 많은 병사들을 죽도록 방임했다는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루머가 나돌기 시작한 것은 황후가 독일 태생이기 때문이다.
황제가 직접 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전장으로 출정할 때에 니콜라이는 러시아의 내부 정치를 알렉산드리아 황후에게 전적으로 일임했다. 그런데 이 결정이 더욱 상황을 악화시켰다. 백성들은 알렉산드리아 황후가 독일과 결탁하여 러시아의 비밀을 넘겨주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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