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속인 거짓말/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 공주(3)

Que sais 2020. 11. 1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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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죽지 않았다>

1970영국의 BBC-TV앤소니 섬머즈와 톰 맨골드를 조사위원으로 위촉하여 이 사건에 대한 집중적인 밀착 취재에 나섰다. 그들은 소콜로프조사 목적으로 촬영했다는 사진 자료파리의 골동품상 다락방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는 소문을 우연히 듣고 추적하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조사 끝에 사본 중 한 벌이 영국 <타임스>사의 로버트 윌턴이라는 저널리스트에게 맡겨졌음을 확인했다. 그들은 윌턴의 미망인1937서류를 경매에 내놓았고 그 서류는 메이페어가의 한 고서적상에 들어갔다는 것도 파악했다. 고서적상은 다시 벨 전화 회사의 임원에게 팔았고 그는 모든 자료를 하버드 대학의 호크톤 도서관에 기증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소콜로프의 자료를 조사하던 두 사람은 백러시아군이 사건 내용과 관계없이 황제 일가공산군에 의해 학살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공산군과의 전투에서 유리한 입장이 되기 때문에 소콜로프가 자료를 임의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황제 일가의 몰살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선택하고 황제 일가의 생존 증거를 고의로 묵살했다는 것이다. 소콜로프는 황제 일가의 몰살설 증거로 다음 네 가지를 제시했다.

 

볼셰비키황제 일가 몰살을 보고하는 전보를 백러시아군이 압수했다.

황제 일가가 처형되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증인이 있다.

황제 일가의 것으로 보이는 대량의 유물과 두발이 학살현장에서 발견되었다.

사건 후 황제 일가를 목격한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소콜로프의 이런 설명은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다. 우선 첫 번째 증거인 우랄소비에트의장 벨로보로도프전 러시아소비에트집행위원회장 스벨도로프에게 보내는 전보는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전보는 볼셰비키예카테린부르크를 철퇴할 때 전신국에 남아 있던 것으로 발신자인 벨로보로도프의 서명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서명과 필적이 다를뿐더러 전신국의 발신 장부에도 기록이 남지 않았다. 고의적으로 적군이 발견토록 조작했다는 것이다.

 

니콜라이2세 가족

둘째 증거목격자 메드베데프증언 후 사망했는데 그가 고문 받은 후 강제로 자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되었다. 뿐만 아니라 학살 현장에서 발견된 황제 일가의 유품과 두발도 일가가 다른 장소로 옮겨질 때 변장을 위해 머리를 자르고 옷을 갈아입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또한 폐광에서 발견되었다는 뼈 조각 42를 조사한 병리학자 캠스 교수는 인간의 뼈인지도 확실하지 않으며 열한 명은 커녕 한 명의 뼈로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사체는 모두 근처의 네 형제라는 탄광으로 운반되어 거기서 부분적으로 절단되어 황산액 통에 넣어졌다가 그 후 대량의 석유로 3일 동안 불태워졌다.”

 

이 설명에도 미국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리치 박사3일에 열한 구 유체를 해결하는 것은 무리다. 표피나 모발 같은 인체의 외형을 짓무르는 정도는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열한 명이라면 치아가 몇 백 개는 되는데도 불구하고 불에 타지 않은 치아가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비상식적이라는 것이다. 한편 당시에 황제의 시의였던 보토킨의 의치발견되었다고 알려졌다.

섬머스와 맨골드는 또 다른 조사에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살해된 것은 황제와 호아태자, 그리고 하인들을 합해 총 5뿐이고 황후와 네 황녀는 기차를 이용 페름으로 옮겨졌다고 판단했다는 것도 발견했다.

사건 당시 영국에서 특파된 엘리엇 주러시아고등변무관은 영국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717일 블라인드를 치고 예카테린부르크를 출발한 기차에 황제 가족이 타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황후와 네 황녀는 살해되지 않고 다음날 서쪽으로 이송되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들 증언에 황태자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후계자이기 때문에 황제와 함께 처형되었거나 혹은 혈우병이 악화되어 도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 다른 자료에는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즉 함락 전 페름에서 감금되어 있던 황후와 네 명의 황녀를 보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한 페름 유폐 중의 황녀 가운데 한 명이 도망치려다 잡혔다는 증언도 있다.

1918921 상처를 입은 한 여자가 붙잡혀 페름으로 연행되었는데 그녀를 진찰한 우트킨 의사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온몸에 멍이 들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데 짧은 머리에 통통한 체격, 그리고 곧은 손가락 등은 분명 자신이 과거에 본 적이 있는 아나스타샤 그대로였다고 발표되었다. 이것이 추후 세계의 사건으로 비화되는 단초.

여하튼 이들 자료를 근거로 두 사람은 볼셰비키황제 몰살을 날조하려 했다고 판단하고 자신들의 조사 결과를 정리한 로마노프 가의 최후 The File on the Tsar를 출판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데 볼셰비키의 발표대로 황제 일가가 살해되지 않았다는 소문이 재빠르게 퍼져 나갔다. 공주들은 모두 머리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었다. 행방불명이 되기 이틀 전까지도 머리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네 다발의 머리카락이 살해 추정 장소인 이파트예프관에서 발견되었고 이것은 네 공주의 머리카락으로 감정되었다. 또한 황제의 수염도 발견되었다.

살해할 작정이라면 무엇 때문에 머리나 수염을 자르겠는가? 일부 학자들은 황제의 수염은 매우 독특하여 만약 그들을 다른 장소로 이송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면 외모를 바꾸는 일은 큰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제는 사살되었을지 모르지만 황후를 비롯한 가족들은 다른 곳으로 이송되었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뜻이다.

더구나 그들의 유체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황태자와 황녀 중 한 사람은 살아남았다는 등 다양한 설이 그럴 듯하게 이야기되어 왔고 가장 유명한 것이 황제의 막내딸인 아나스타샤 공주의 미스터리.

니콜라이 2 가족이 모두 처형되었다고 알려진 지 몇 년 후 한 여자가 나타나 자신이 아나스타샤 공주라고 주장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그녀의 얼굴을 보면 아나스타샤 공주와 다름아니다. 특히 우트긴 의사아나스타샤를 만났다고 하여 더욱 세상을 혼동스럽게 만들었다.

 

 

<전설의 제2, 아나스타샤 공주의 미스터리>

전설의 제2은 바로 황제의 막내딸인 아나스타샤 공주의 미스터리.

본명이 아나스타샤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로 주로 아나스타샤로 불리는데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14녀 중 넷째이다. 갈색빛 도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소녀로 알려진다.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넷째를 임신했을 때, 이미 위로 황녀가 3이나 있는 반면 황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황제 부부는 물론 온 국민들이 황자의 탄생을 간절히 열망했다. 황후는 이번에는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으나, 결과는 또 다시 딸이었다.

 

황후와 4공주

아나스타샤 위로 이미 딸 셋이 있었고 아들을 기다리던 러시아 황실이었지만, 니콜라이2는 자식들을 사랑하고 구김살 없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바로 위의 언니 마리아와 방을 같이 썼는데 방을 항상 정갈히 정돈하고 자수에 능력이 있어 자신이 만든 것을 자선사업에 팔았다.

다른 형제자매처럼 8살부터 가정 교육을 받아 여러 언어, 역사, 지리학, 과학, 그림, 문법, 춤과 음악을 배웠는데 문법을 특히 싫어하여 일기장에 오자가 많았다고 한다. 취미사진 촬영으로 아나스타샤가 찍은 사진집은 후에 정리되어 책으로 발간되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짖궃고 활기찬 말썽쟁이였으며, 연기하는 재능이 배우처럼 뛰어나면서도 재치가 있었다고 한다. 황실 의사는 아나스타샤말썽 부리는 분야에선 천재적이였다고 말했으며, 하인들을 넘어뜨리고 교사들에게 장난을 치는 일은 일상이였으며 나무 위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부지런하고 마음씨 착하여 언니들과 동생인 황태자 알렉세이와 매우 사이가 좋아 화목한 생활을 했다고 알려지지만 결론적으로 모두 집단 처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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