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공주 맞다>
질리아르와 올가 여대공의 가짜 판정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진짜 아나스타샤라는 주장도 끊이지 않았다.
이 당시 아나스타샤를 올가 여대공보다 훨씬 잘 알 만한 인물로 안드레이 대공이 있었다. 아나스타샤의 숙부인 안드레이 대공은 차이코프스키 부인이 자기의 조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안드레이 대공 이외에도 많은 친척들이 차이코프스키 부인을 진짜 아나스타샤 공주라고 생각했다.
아나스타샤는 안드레이 대공이 1916년 러시아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드레이 대공은 이 방문을 극구 부인했고 시릴대공은 그녀를 ‘뻔뻔스러운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1949년에 전 러시아근위연대 연대장이었던 라르스키 대령이 아나스타샤가 주장한 바로 그 시기에 그가 비밀리에 러시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 사실이 추후 안드레이 대공 이외에도 많은 친척들이 차이코프스키부인을 진짜 아나스타샤 공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 중에 하나였다. 유명한 인류학자인 오토 레헤는 그녀와 아나스타샤의 사진을 판독하고 두 여자가 동일인이거나 일란성 쌍둥이가 틀림없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1927년 차이코프스키 부인은 로마노프 왕가의 사촌인 게오쥬 드 류흐텐베르 공작의 집인 제온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휄릭스 다셀 대위를 만났다. 다셀은 황제의 세 번 째 딸인 마리아가 사령관이었던 드래공 부대의 기병대 장교였다. 그는 갈리시에에서 부상하여 짜르스코이에세로에 있는 작은 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그곳의 관리자로 임명된 사람은 바로 마리아와 아나스타샤였다. 두 공주가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다셀 대위를 자주 찾아와 여러 달 동안 만났기 때문에 다셀도 아나스타샤 공주를 잘 알고 있었다. 다셀은 차이코프스키 부인을 만났을 때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손수건 때문에 그녀의 입은 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창백한 긴 손가락을 보았을 때 제가 알고 있는 공주의 손과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셀이 사진 한 장을 보여 주면서 이 남자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나의 친구인 세르귀이에프 대령이에요. 그 포켓 말이죠.”
세르귀이에프 대령은 포켓에 손을 넣은 채 공주들과 자주 만났기 때문에 아나스타샤 공주가 그에게 포켓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 대령의 별명이 포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나스타샤 자신 밖에는 없었다.
“우리 아빠가 하셨듯이 옷을 벗기겠어요.”
의사 보투킨의 딸이 이렇게 말했을 때도 그녀는 아나스타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알겠어요. 홍역 때였죠.”
의사 보투킨이 아나스타샤와 함께 있었던 시절은 공주들이 홍역에 걸렸을 때였다. 또한 보투킨의 딸이 그린 스케치를 보여 주자 챠이코프스키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베리아에서 그린 그림이군요.”
그들은 차이코프스키 부인이 아나스타샤 공주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아나스타샤가 페름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다시 체포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스웨덴의 적십자 사절단장 칼 본데 자작은 그의 저서에서 자기가 탄 특별열차가 아나스타샤의 수색을 위해 급정거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나스타샤가 정말로 체포되었다면 그 후 그녀가 베를린으로 도망쳤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나스타샤는 최초에 자기가 에카테린부르크의 학살 현장에서 챠이코프스키라는 병사에게 구출되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챠이코프스키 부인이 아나스타샤 공주라는 반론은 계속 이어졌다. 황제와 황후, 의사 보투킨과 두 명의 하인은 살해된 것이 분명하지만 나머지 가족은 페름으로 연행되어 살해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러시아의 임시정부가 영국 및 독일과의 교섭에 이용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였다.
양국의 왕실은 러시아 황제와 친척이 되기 때문에 독일이 러시아를 공격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독일이 러시아를 공격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알자 러시아 임시정부는 베를린에 억류되어 있는 사회주의자 레오 요기체스와 황제 일가의 교환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 계획은 영국에서 당시 수상인 로이드 조지가 러시아 황제 일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여론을 발판으로 강력히 반대했다. 그 대신 영국 정부는 프랑스가 그들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했지만, 오히려 프랑스는 더욱 더 그들을 적대시했다. 독일은 1918년 연합군과 교전을 벌였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했기 때문에 러시아에 있는 그의 사촌을 도울 형편이 되지 못했다.
어쨌든 알렉산드라 황후와 네 공주가 학살 현장에서 이송되었더라도 그들이 러시아를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붉은 군대가 러시아 내전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으므로 황제 일가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더라도 나중에 모두 사살됐으리라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실제로 1919년 1월 네 명의 러시아 대공이 페트로그라드의 감옥에서 사살되기도 했다.
이런 상반된 의견들이 계속 나타나자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러시아 황제 일가의 비극적인 생애는 일반인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으므로 세계의 언론은 그녀가 진짜냐 가짜냐를 두고 연일 기사를 쏟아냈다. 수많은 책이 발간되고 영화도 만들어졌다.
1933년 베를린 법정은 아나스타샤가 사망한 것을 인정하여 독일 내에 있는 황제의 재산을 생존해 있는 6명의 연고자들에게 상속시키는 증서를 인정했다. 1938년이 되자 챠이코프스키 부인은 독일의 법률가에게 의뢰하여 자신의 권리를 찾는 작업에 착수했다. 자신이 아나스타샤 공주이고 외국의 은행에 맡겨둔 러시아 황실 재산의 잔액에 대한 그녀의 몫을 찾자는 것이었다. 러시아를 탈출한 황제 인척들은 당연히 그녀가 가짜라며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소송에 대비했다.
그녀에게 유리한 점도 나타났다.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X레이 검사에서 총 개머리판으로 맞아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타박상이 머리 부분에서 발견되었다. 발에는 황제의 딸과 똑같은 장소에 티눈들이 있었다. 그리고 사마귀를 빼낸 오른쪽 어깨에 있는 흉터도 아나스타샤의 의료기록에 기재되어 있는 것과 같았다.
그녀에게 다소 유리한 점이 발견되자 이 사건은 러시아 황제가 과연 얼마만큼의 재산을 해외에 예치했을까 하는 점과 황실 가족끼리 재산 때문에 그녀가 진짜 아나스타샤 공주일지라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여론을 업고 세상의 흥미를 보다 크게 모았다.
1938년이 되자 챠이코프스키 부인은 뉴욕의 변호사인 에드워즈 펠로우즈에게 의뢰하여 자신의 권리를 찾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동안 그녀는 미국에서 아나스타샤의 본명인 안나 앤더슨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버지니아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존 맥나한과 결혼까지 했다. 영화 「아나스타샤」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도 앤더슨이다.
그녀는 니콜라이 2세가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4명의 딸들을 위해 각각 500만 루블을 런던에 있는 어떤 은행에 예치했다고도 주장했다. 펠로우즈는 황제의 보물을 찾기 위한 재정적 후원을 위해 ‘그랜드아너’라는 단체를 구성했다. 그는 앤더슨이 자금을 찾으면 1퍼센트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20년이 넘게 걸린 이 권리 회복에 대한 소송은 모두 그녀가 패소했다. 1961년 5월 15일 독일 함부루크에서 내려진 판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안나 앤더슨은 아나스타샤 공주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① 그녀는 재판정에서 요구한 신체검사와 언어 검사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② 그녀로부터 받은 재판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러시아를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③ 1926년까지 그녀는 독일어밖에 구사할 줄 몰랐다. 그 후에 영어를 배웠다. 특히 그녀는 러시아 황실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들과도 독일어로만 언어 소통이 가능했다.
④ 아나스타샤를 보았던 많은 증인들이 앤더슨 부인을 아나스타샤로 알아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앤더슨 부인 역시 그 증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꼼꼼하기로 유명한 독일 법원의 판결은 간단하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공주가 러시아어를 모른다는 것은 원초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 법원의 판결은 차이코프스키 부인의 주장을 거론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다소 유리한 증언도 나왔다. 아나스타샤가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언이다.
1965년 하인리히 클라인베첼은 총살이 집행된 지 몇 시간 후 심한 부상을 입은 아나스탸샤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황제 일가를 감시하던 경비병의 군복을 만드는 재단사 밑에서 견습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처형이 있던 날 밤 재단사 가게에서 이파티예프 저택으로 군복을 배달하러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총성과 비명소리를 들었다.
그날 밤 늦게 집에 돌아와 보니 안주인이 물을 끌이면서 그에게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안주인은 아나스타샤가 큰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채 그의 방에 누워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주인을 도와 피투성이의 소녀를 보살펴주었는데 그가 이파티에프 자택에 배달하러 다니면서 마주친 여자 중 하나가 그의 방에 누워 있는 소녀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피투성이가 된 턱 부분을 씻어줄 때 소녀가 비명을 지른 것으로 보아 턱이 부러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병사들이 재단사의 집에 들이닥쳐 아나스타샤의 행방을 물었지만 방을 일일이 수색하지는 않았다. 3일 후 소녀를 데려왔던 병사가 와서 소녀를 데려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안나 앤더슨과 전혀 달랐고 시간 순서도 뒤죽박죽이었다. 한마디로 누군가가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날 것 같던 아나스타샤공주의 진위 여부는 이어서 벌어지는 제3막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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