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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마스크(철가면)의 비밀(4)

Que sais 2020. 11. 2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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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철가면의 정체에 대해서 도전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인정되는 것은 루이13세와 왕비, 루이 14가 관여되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추론한 드제의 신원은 다음과 같다. 유스타슈 드제는 실명이라는 것이다.

1920년대 말 역사학자 모리스 뒤비비에는 철가면을 진찰한 의사가 60세 전후였다는 것을 근거로 1630년대 말에 출생한 기록을 국립도서관의 공문서에서 찾았다. 그는 마침내 루이 14세의 부관 중에 같은 이름을 가진 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관 일족의 성은 드제이지만 피카르디 지방에 소유하고 있던 영지의 이름을 따서 카부아라 불렀기 때문에 확인이 어려웠던 것이다.

리슐리에 추기경의 경비대 대장 격인 프랑수와 드 카부아에게는 아들이 넷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루이 14세의 비서실장으로 출세가도를 달렸고 철가면은 그의 형인 유스타슈 드제 드 카부아. 그는 1637년에 출생한 기록은 남아있지만 1668년부터의 기록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사망기록도 없다.

유스타슈는 싸움꾼으로 가족들을 애먹였고 왕궁 마당에서 술 때문에 유혈 소동을 일으켜 친위대 사관직에서 쫓겨나고 궁정 출입을 금지 당한다. 그런데 그가 어떤 비밀 일로 루이 14세를 협박해 막대한 돈을 요구하려다 체포되어 유배되었다는 것이다. 즉 유스타슈는 루이 14세의 배다른 형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이와 실종된 시기, 큰 키에 단단한 체격 등이 드제와 완전히 일치한다. 더구나 현재 남아 있는 유스타슈의 초상은 루이 14세와 상당히 흡사하다.

이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루이 14세

루이 14세의 아버지 루이 13세는 성불능으로 왕비와의 사이에서는 결혼 이후 줄곧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 22년째인 163712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왕비가 갑자기 임신했다. 이때 공식적으로 공표된 이야기는 루이 13세가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허둥지둥 근처의 루브르 궁전으로 몸을 피했다. 다소 이상한 일이지만 갑작스럽게 왕의 침실을 준비할 수 없으므로 루이 13세가 왕비의 침실에 머물렀고 그때 왕비가 임신했다는 것이다. 이때 임신한 사람이 루이 14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루이 14세는 아버지 13세와 전혀 공통점이 없다. 초라한 체격에 운동 신경도 둔했던 루이 13세와는 달리 루이 14세는 건장한 체격으로 승마와 사냥을 즐기는 스포츠맨이다.

그런데 루이 14세의 성격은 즉위한 후 완전 딴판이었다.

호위병을 일부러 외국인을 쓰고 스파이에게 고관들의 사생활을 엿보게 하고 편지를 뜯어보았다. 몇 안 되는 심복들과만 대화를 했는데 그들조차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점이 있으면 즉각 독살했다. 루이 13세에게 뒤를 이를 자식이 없었던 것을 걱정하던 추기경 리슐리에는 대리 아버지를 내세워 왕비를 임신시킬 것을 생각한다. 그 아버지 대역으로 뽑힌 사람이 바로 왕의 부관인 프랑수와 드 카부아. 카부아는 리슐리에의 안내로 왕비와 밀회를 갖고 이윽고 그의 아기를 임신한다. 그리고 국왕이 태어날 아기가 자신의 아기라고 믿게 만들기 위해 예의 폭풍우사건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공식적으로 루이 13세의 아들로 태어난 아이는 무사히 루이 14세로 즉위했다.

그런데 프랑수와 드 카부아의 아들과 루이 14세는 어려서 왕궁에서 형제처럼 자라면서 카부아 가의 삼남인 유스타슈가 이 중대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유스타슈가 왕궁에서 자란 것은 어머니인 마리 드 세리냥왕비의 시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는 1641년 전투에 참가하여 전사하지만 아내 마리의 지위로 아이들은 그대로 왕궁에서 루이 14세의 소꼽친구로 계속 자란다. 그런데 루이 14세와 유스타슈는 용모가 매우 닮았다고 알려진다.

 

유스타슈가 결국 철가면을 쓰게 되는 것은 23살인 1659년 매우 기이한 사건에 연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루아시의 성에서 거행된 흑미사에 참가해 돼지에게 세례를 하고 돼지를 먹었다. 이것은 매우 큰 스캔들로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관직을 박탈당했는데 유스타슈만은 처벌에서 제외되었다. 왕궁에서 모친의 영향력 때문으로 생각했는데 6년 후에 다시 묘한 사건에 걸려들어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쫓겨난다. 그가 왕이 거처하는 셍제르멩 왕궁의 농노와 시비를 벌여 살해했기 때문이다. 그의 직무가 1665년에 박탈당했다는 것은 정확하게 확인되는데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그를 제외하고 그의 동생 루이를 상속자로 지명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느 정도 상속재산을 물려주어 크게 궁핍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루이가 한 여자를 두고 그녀의 남편과 결투를 벌이다 체포되어 4년 동안 바스티유의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일어난다. 루이는 석방된 후 출세를 하지만 이때에 유스타슈피네롤로의 감옥에 있었다. 이는 당대에 독살사건에 관여되었기 때문인데 교회의 고해성사에서 여자들이 남편을 독살하려 했다는 것이다.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흑미사를 행하는 점장이와 신부가 주모자인데 루이 14세의 애첩인 퐁테스팡 부인도 연루되었다. 퐁테스팡 부인은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한 의도였는데 그만 너무 멀리나간 것으로 관련자는 거의 모두 처형되고 퐁테스팡 부인은 추방되었다.

 

퐁테스팡 후작부인

퐁테스팡(Marquise de Montespan, 16411707)부인은 당대의 유럽 사회를 풍미하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루이 14세와 6명의 아이도 낳은 실력자로 루이 왕 시대를 설명할 때 반드시 나오므로 약간 설명한다.

본명이 프랑수아즈 아테나이 드 로슈아르 드 모르트마르란 긴 이름을 가진 퐁테스팡루이 14세의 애첩으로 그려지는데 166322세의 나이로 몽테스팡 후작과 결혼했다. 남편은 군인이었으며 부부가 씀씀이가 헤퍼 빚이 많았는데 원정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 집에는 거의 머무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결혼한 이듬해 루이 14세의 왕비 마리 테레즈의 시녀로 뽑히게 되었고, 궁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왕의 첫 번째 정부였던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와 친분을 쌓은 그녀는 1667년 마침내 루이 14세의 두 번째 연인이 되는 데 성공한다. 왕의 총애를 확신한 그녀는 라 발리에르수녀원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 왕의 공식적인 정부가 되었다.

루이 14세의 공식적인 정부가 되었지만 그녀는 엄연히 유부녀이므로 퐁테스판 후작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소위 아내를 빼앗긴 퐁테스팡 후작은 주변 사람들에게 부인을 뺏긴 것에 대한 동정을 호소하고 다녔는데 그의 행동도 매끄럽지 못했다.

마차에 사슴뿔을 단 채 입궁하는 것은 물론 앞에서 칼을 부러뜨리는 기행 등을 벌이는 등 사사건건 사고를 일으키자 결국 1668년 루이 14세로부터 추방당하고 두 사람은 이혼한다.

퐁테스팡 부인이 남다른 것은 루이 14세와 무려 6명의 아이를 낳았고 10년 동안 사교계에서 화려하게 활약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세월은 그녀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자 왕의 총애를 잃을 것을 경계한 그녀는 미신에 매달리게 된다. 결국 1680년 경 라 부아쟁이라는 마녀가 검거당했을 때, 몽테스팡 부인이 그녀의 주요한 고객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아쟁의 증언에 따르면 퐁테스팡 부인은 그들과 함께 흑미사를 올리고, 왕의 총애를 되돌리기 위해서 가루약을 받아갔다고 한다. 이러한 내역을 알게 된 루이 14세가 퐁테스팡 부인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그의 총애는 퐁테스팡 부인의 자식들을 돌보던 유모 맹트농 부인에게로 옮겨가게 된다.

왕에게 버림받은 이후에도 퐁테스팡 부인은 10년이나 더 베르사유에 머물렀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자신이 쫓아 보낸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처럼 수녀원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한다. 그녀가 죽었을 때 퐁테스팡 부인이 루이 14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 가운데 4명이 생존해 있었는데 왕은 자녀들이 퐁테스팡 부인의 장례식참석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여하튼 기록에 의하면 유스타슈는 왕의 특명에 의해 덩케르크에서 체포된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가설이 생긴다.

유스타슈, 그의 동생 루이, 루이 14 세 명이 이복형제인데 루이는 루이14세에 충성을 맹세하고 승승장구한다. 반면에 유스타슈는 과거의 행적을 보더라도 100퍼센트 믿을 수는 없으므로 결국 철가면을 씌워 34년 동안 철저하게 유폐시켰다는 설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죽을 때까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도록 철가면을 씌였느냐인데 이것은 철가면의 얼굴루이 14세와 비슷했다면 충분한 이유가 된다.

 

용모 그 자체가 비밀의 열쇄가 아니라면 인간에게 항상 가면의 착용을 강제한다는 것은 상대가 비록 죄수였을지라도 납득이 잘 안 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루이 14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이복형제인 드제를 살해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교도소장 생마르가 이동할 때마다 옛 죄수를 동행한 이유도 충분히 설명된다. 루이14세의 아들인 루이 15가 섭정인 오를레앙 공에게서 철가면의 비밀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 분이 아직 생존해 계셨다면 짐은 자유를 주었을 것이오.”

 

이 말은 루이15가 자신의 할아버지가 리슐리에 경비대 대장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자기 가계의 진상이 어떠하든 자신의 왕위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루이 15는 철가면에 대해 남다른 정보를 갖고 있다는 뜻인데 슈아죌 공이 철가면에 대해 질문하자 루이 15는 대답을 거절하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억측은 모두 거짓이요. 더구나 그대가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소?”

루이 15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진상이 알려진다면 지금까지 철가면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전부 휴지가 된다. 그러나 학자들은 앞에 설명한 이야기 중 진실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낸 철가면에 대한 비밀이 밝혀질지 모른다는 뜻이다. 새로운 영화와 드라마가 등장할 것은 물론이다.

 

참고문헌 :

[이상한 옴니버스] 철가면 사나이의 정체, 메데이, 이상한 옵니버스, 20011.10.08

삼총사작가 뒤마 아버지, 유럽 최초 흑인 4성 장군 나폴레옹보다 더 존경받아, 김환영, 중앙선데이, 2018.02.18

"알렉상드르 뒤마", 대중소설을 고전으로 만들다, History2, 히스토리의역사산책, 2019.04.19.

루이 14세 시대 배경 '아이언 마스크', 철가면은 실제로 존재했을까?, 편지수, 경인일보, 2019.06.02.

몽테스팡 후작부인, 나무위키

세계의 불가사의 백과 (1), 콜린 윌슨, 하서, 1995

풀리지 않은 세계의 불가사의, 콜린 윌슨 외, 하서, 2003

뒤바뀐 세계사의 진실, 키류 미사오, 베텔스만, 2004

世界歷史49大迷, 시앙스신, 구경출판사복무유한공사, 2004

세계 역사 속의 49가지 미스터리, 시앙스신, 집사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