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영화 속의 뻥

영화속의 뻥 : 「타임머신」 (III)

Que sais 2020. 9. 1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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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갔다오기>

 

SF물에서 시간 지연은 물론 우주의 광대한 거리조차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를 공상과 아이디어로 점철된 영화라고 설명하면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무적인 면에서 시간 지연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지 은하철도 999를 기준으로 살펴본다.

마츠모토 레인지 원작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 999’를 타고 태양계로부터 약 23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먼 미래의 이야기이다. 그곳에서는 돈 많은 사람들은 기계인간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 가난한 사람들만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간다. 인간 사냥꾼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재료로 사용한다. 인간 사냥꾼에 의해 주인공인 철이(원명 호시노 데쓰로)의 어머니가 살해되자 메텔이 철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안드로메다로 갈 수 있는 은하철도 999’ 승차권을 준다. 두 사람의 베일에 싸인 여정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그려나가는 은하철도 999는 기차가 우연히, 혹은 예정된 역에 정차할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 흥미를 유도한다.

 

은하철도 999

수많은 별들을 지나며 철이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결국 안드로메다의 기계인간이 살고 있는 기계제국에 도착한다. 그러나 고생고생하여 안드로메다에 도착하였지만 철이는 감정이 없는 기계인간 즉 안드로이드(?)로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기를 원하며 다시 은하철도999호를 타고 지구로 향한다. 안드로이드로 예상되는 메텔이 철이와 헤어지면서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안녕, 나는 너의 소년 시절의 꿈에 있는 청춘의 환영일 뿐이야."

 

은하철도 999가 큰 반향을 얻은 것은 어린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비판하고 깨달으며 어린 시절의 꿈을 어른으로 거듭나며 재창조시킨다는 이야기인데 이곳에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안드로메다은하가 지구에서 무려 230만 광년의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하철도999는 간단하게 이 거리를 주파한다. 적어도 철이가 안드로메다까지 갔다가 지구로 귀환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화면으로만 보면 철이는 안드로메다를 갔다 오는데도 별로 나이를 먹지 않았다.

 

은하철도 999

그런데 실제 상황은 어떤가 확인해보자. 230만 광년이라면 광속으로 달리더라도 230만 년이 걸린다는 뜻인데 현재 인간들이 만든 매우 빠른 우주선 즉 초속 약 10킬로미터 정도의 우주선 속력으로 달린다면 약 690억 년이 걸린다. 누구라도 안드로메다까지의 여행은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거리를 은하철도 999는 기차로 왕복하는데 이처럼 기차로 달릴 수 있다면 그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작가의 아이디어에 놀랄 것이다. 또한 철이가 일단 안드로메타까지 갔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때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틀림없는데 작가가 공들여 철이의 나이를 조절했다는데 고마워야 할 것이다.

현 지구의 기술 수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영화라는 특성을 감안하여 지구상의 중력과 같은 1G로 계속 가속할 수 있는 우주선이 있다고 하자. 출발한 지 1년 만에 우주선은 광속의 77%, 2년 후에는 97%, 3년에는 99.6%에 도달하게 된다. 우주선으로 5년이 지나면 약 84광년의 거리에 도달하고 7년 정도 지나면 지구에서 800광년 떨어진 위치에 있는 북극성을 지날 수 있으며, 10년이면 약 15,000광년 거리가 된다. 우주인은 10년의 나이밖에 먹지 않았는데도 지구에서는 15,000년이 지났다는 뜻이다.

계속 우주선을 달려 약 28,000광년 거리에 있는 은하계 중심을 통과하려면 11년이면 충분하고, 12년이면 완전히 은하계 밖으로 나가게 된다. 14년이 지나면 23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를 근접비행(Flyby 또는 Swingby) 할 수 있다. 19년이 지나면 마침내 1억 광년, 20년이 지나면 4억 광년의 벽을 돌파하게 된다.

안드로메다 은하를 접근 통과하지 않고 광속의 99.99999999996452%에서 이번에는 1G로 감속하면 28161일에 230만 광년에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에 도착할 수 있다. 9라는 숫자가 수없이 써 있으므로 읽기 힘들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 역시 그런 숫자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면 되며 앞으로 나오게 되는 긴 숫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기 바란다. 여하튼 이런 속도를 내는 우주선을 타고 안드로메다 은하에 도착하여 1년을 어떤 행성에서 연구 조사를 마친 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여 지구로 돌아온다고 가정하자.

안드로메다를 여행해서 58년 후에 돌아온 우주비행사가 지구에 도착해보니 지구에 남겨둔 처와 두 살짜리 딸의 경우 그처럼 쉰여덟 살을 더 먹은 것이 아니라 무려 460만 년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460만년이라면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볼 때 무려 153333세대가 지났다고 볼 수 있다. 그와 가족의 접촉은 우주 여행을 떠나기 전 그를 배웅할 때가 마지막으로 이것은 우주 계획을 수립할 때 매우 심각한 실무적인 문제점을 야기한다. 즉 그가 가족을 놔두고 우주선을 타는 순간 가족과는 영원히 이별한다는 뜻으로 이런 것을 알면서도 굳이 장거리 우주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유도한다.

이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선 안에서 보낸 시간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58년 뒤에 돌아온 우주비행사는 지구에서 경과한 수백만 년이 아니라 단지 58년의 인생을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보냈을 뿐이다. 그가 25세에 출발하였다면 83세의 노인이 되어서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여하튼 장기간의 여행을 우주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므로 감독들은 이 면에서 휴머니즘을 발휘한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Lost in Space처럼 가족을 탐험대로 보내는 것으로 적어도 가족의 이별은 없다.

그러므로 안드로메다 은하를 여행하기 위해 가족이 함께 갔다 와야 하는데 이들이 앞에서 설명한 1G의 우주선을 타고 안드로메다를 여행하고 돌아왔다면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 지 상상해보자.

첫째는 현대의 과학자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공해나 핵전쟁 등으로 인해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결국 460만 년 후에 지구에 도착한 우주인 가족들은 황량한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새로운 동물이 태어났다는 것을 등록하고 인간들을 퍼뜨리기 위해 부단히 출산 장려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둘째는 지구인들이 지구가 망하기 전 다른 행성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다. 지구인들이 어느 행성으로 갔는지 연락이 안 된다면 일일이 행성마다 찾아다니면서 고생 좀 하겠지만 인간들은 멸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므로 다소 위안이 된다.

마지막으로 지구에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들의 지혜도 늘어나므로 지구의 문제는 지구인들이 풀어가면서 새로운 환경에 대처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주선을 타고 내린 우주인들이 미래의 지구에 내렸을 때 환영을 받을까? 십중팔구 정답은 아니올시다이다. 미래의 인간들은 460만 년 전 인간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놀란 나머지 동물원 등 특별시설에 가두고 철창 앞에 다음과 같은 안내판을 세울 것이다.

 

‘460만 년 전의 원시인류. 진화론에 따르면 현대인간은 460만 년 전의 원시인류에서 분리되었음. 원시인류도 두 발로 걸었으며 다소 지능이 있다는 것은 우주선이라는 유치한 물건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증명되었음. 우측에 그들이 만든 우주선이라는 장난감이 전시되어 있음.’

 

이런 가정은 미래의 인간들이 현대의 인간과 상당히 다를 것으로 예단하기 때문이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해 지능과 건강, 외모 모두 뛰어난 형질을 갖춘 슈퍼맨이 주류를 이룰지 모르므로 미래인들이 보기에 현재의 지구인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열등한사람일지도 모른다. 보다 상상력을 동원하면 팻말 옆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원시인류에게 음식을 주지 말 것

 

슈퍼맨에서도 위와 같은 다소 황당한 문제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슈퍼맨이 애인인 로이스 레인을 살리기 위해 초광속으로 달리는데 그가 몇 광년으로 얼마를 달렸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단 몇 분을 달렸다고 하더라도 그가 소위 과거의 지구로 돌아왔다면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광속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미 지구인들이 아는 시간 개념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구인이 아닌 외계인 슈퍼맨이라고 하더라도 슈퍼맨은 일단 사망한 로이스 레인을 어떤 경우라도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썰렁한 결론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슈퍼맨이 영화에서는 로이스 레인을 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구할 수 없다는 것은 과학적인 잣대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과학으로 대입해도 곧바로 오류임을 알 수 있는데도 슈퍼맨에서 이런 장면이 삽입되었다는데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슈퍼맨이 촬영될 때 이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자리를 확고하게 잡고 있었으므로 그 정도로 무식하게 시나리오를 작성하느냐인데 슈퍼맨이 초광속으로 달려 과거로 돌아간다는 아이디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굳이 깐깐하게 접목하지 않아도 된다는 감독의 결단에 의해서임이 틀림없다. 여하튼 슈퍼맨에서 리처드 도너 감독은 나름대로 루이스 레인을 살려내어 다음 편에서 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권한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는 것을 전제하므로 과학적 엄밀함을 반드시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과학적 사실에 어긋난다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감독이 아니라 영화를 본 시청자들의 몫이다. 이런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영화를 보는 묘미가 되는 동시에 과학 지식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됨은 물론이다. 그러나 타임머신이 실제로 제작된다면 매우 심각한 역설에 봉착한다. 다음 장에서 설명하는 백 투 더 퓨처가 바로 그런 모순을 그린 영화다.

 

참고문헌 :

[임원철의 맛있는과학] 영화속 명장면(6) 영화 `아바타`'노다지' 가능할까?, 임원철, 부산일보, 2012.05.03.

멋진 항해, 레로이 W. 두벡 외, 한승, 1996

시네마 사이언스, 정재승, 아카데미서적, 1998

미래 속으로, 에릭 뉴트, 이끌리오, 2001

해리포터 사이언스, 정창훈 외, 휘슬러, 2002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정재승, 동아시아, 2002

해리포터의 과학, 로저 하이필드, 해냄, 2003

지식의 원전, 존 캐리, 바다출판사, 2006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최무영, 책갈피, 2009

불가능은 없다, 미치오 카쿠, 김영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