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형제의 역설>
타임머신이 실용화된다면 아마 한국인들이 가장 반가워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은 매년 설날이나 추석날 차례나 성묘를 위해 고향에 내려가면서 귀중한 시간 대부분을 교통체증으로 도로 위에서 보내게 된다. 그러니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굳이 조상의 무덤을 찾아 성묘길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살아 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혼이라는 단어도 사전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수많은 장애물을 헤치고 결혼한 연인들이 막상 결혼한 후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이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기 이전에 사랑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임머신이 있으면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뜨거운 사랑 현장도 목격할 수 있고, 그 유명한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 사이에 벌어졌던 악티움 해전도 관전할 수 있다. 한국인과 친연성(親緣性)을 갖고 있다고 알려지는 훈족의 수장으로 게르만민족 대이동을 촉발시켜 현재 유럽의 판세를 만들게 한 아틸라(Attila, 395〜453)와 서로마 최후의 백작으로 알려진 아에티우스(Aetius)간의 유명한 살롱전투도 볼 수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과 학익진(鶴翼陣)을 사용하여 일본에게 철저한 패배를 안긴 명량대첩의 스펙타클도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 간에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은 물론 미드웨이 해상에서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는 직접 장면도 볼 수 있다.
타임머신처럼 흥미있는 장면을 만들 수 있는 소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트랙」은 타임머신을 통해 그야말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인류 역사상 천재 중의 천재라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미래로 데려와 발달된 과학문명을 보여주고 다시 자신의 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데 어찌 아랴. 잘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부터 직접 사인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타임머신을 이용한 기발한 아이디어로는 「엑셀런트 어드벤처 Bill & Ted's Excellent Adventure」도 빠지지 않는다. 빌과 테드는 장난이 심한 고등학생들로서 ‘와일드 스탈린즈’라는 세계적 수퍼 로콘롤 그룹을 꿈꾸는 몽상가들이다. 당연히 공부보다 노는 것에 열중하여 학교 공부가 엉망인데, 역사 과목에서 낙제를 면해야 한다. 만약 낙제하면 테드는 아버지에 의해 알래스카의 군사학교에 보내질 처지다. 다행하게도 역사 선생은 빌과 테드에게 마지막 시험 기회로 구술시험을 주지만 합격할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수 백 년 후의 미래인이 그들의 구원자로 등장한다. 700살이나 된 루퍼스인데 그는 공중전화 박스 모양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하면서 역사 공부를 몸소 체험하고 돌아오면 구술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고 한다. 루퍼스가 이들에게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것은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아야만 미래에 훌륭한 음악가가 될 수 있고 이들의 음악으로 인해 전쟁과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명은 타임머신을 통해 고대 그리스로부터 황야의 서부까지 소크라테스, 징기스칸, 쟌다르크, 나폴레옹, 베토벤, 아브라함 링컨, 빌리 더 키드, 프로이드 박사 등을 직접 만나는데 놀라운 것은 자신들의 역사 시험을 위해 이들을 타임머신에 태워 현대로 데리고 온다.
문제는 이들 저명인사들이 현대문명에 놀라 갖가지 사고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베토벤은 쇼핑 센터의 전자악기에 매료되어 몇 시간씩 연주를 하고, 쟌 다르크는 에어로빅 강사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소크라테스와 프로이드는 여자를 사귀는 데 여념이 없고, 링컨은 멋진 턱수염으로 사진 모델이 되는 등 사고를 친다. 이들이 소란을 벌이자 형사인 테드의 아버지는 이들을 체포하여 구치장에 수감시킨다. 물론 빌과 테드가 이들을 탈출시키고 역사 구술 시험에서 역사상의 인물들을 총동원한 버라리어티 쇼를 벌려 결국 구술시험에 통과한다. 두 명은 자신들에게 엄청난 잠재력 즉 훌륭한 음악가의 소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 음악가로 길을 잡아 루퍼스를 만족하게 만드는 것이 결말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올라가는 것은 물론 역사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유명 인사를 현재로 데려온다는 아이디어는 신선하지 않을 수 없다.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도 흥미있는 소재를 제공한다. 영화에서는 마법학교의 학생에 지나지 않지만 그녀는 일반 사람들과 달리 마법사이다. 헤르미온느는 미네르바 맥고나걸 교수로부터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시계(Time-Turner)’를 받는다. 작은 모래시계처럼 생긴 이 시계는 그야말로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한 번 돌리면 한 시간 전으로 돌아가고, 세 바퀴를 돌리면 세 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소형 액서서리 시계가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돌아가는데 시계 태협만 조종하면 된다.
타임머신이 손목시계 크기로 가능하겠느냐는 지적도 있겠지만 여하튼 공부벌레인 헤르미온느는 이 시계를 이용하여 동시에 여러 가지 수업을 듣는다. 한마디로 타임머신과 공간이동 능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인데 공부벌레들에게 이 시계처럼 유용한 물건은 없을 것이다.
<사망한 애인 살리기>
타임머신을 등장시키면 과거, 미래, 현재를 마음껏 이동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을 만들 수 있는데 타임머신으로 매우 유명한 논란을 제기한 「슈퍼맨」부터 설명한다. 「슈퍼맨」에서 슈퍼맨은 자신이 근무하는 신문사의 동료이자 애인인 로이스 레인이 핵폭발의 여파로 흙 속에 묻혀 사망하자 인류의 역사를 간섭하지 말라는 아버지 조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살려낸다.
슈퍼맨이 로이스 레인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는 초광속으로 지구의 자전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달려서 시간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놓는 것이다. 한쪽 방향의 운동이 앞으로 흐르는 시간과 동등하면 반대방향의 운동은 거꾸로 흐르는 시간과 동등하다는 것으로 시간이 선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타임머신이라는 아이디어가 세상에 태어난 초창기에 가장 합리적인 아이디어로 인정된 것은 지구의 자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경우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생각은 빛보다 빠르게 이른바 초광속으로 움직이면 시간이 거꾸로 되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아더 불러(Arthur Buller)는 다음과 같은 오행시를 지었다.
‘예전에 빛남이란 이름을 가진 앳된 처녀가 있었지요.
빛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던
어느 날 처녀가 출발하였답니다.
상대성의 방식으로 말예요.
그랬더니 떠난 전날 밤에 돌아왔지 뭡니까.‘
바로 이런 생각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초광속으로 달려 일단 사망한 로이스 레인을 살려낸 것이 영화 「슈퍼맨」이다. 영화 장면으로만 볼 때 레인이 죽기 직전에 슈퍼맨이 영화에서 구출하였던 사람들은 슈퍼맨이 레인을 구하려고 역사를 바꾸었기 때문에 죽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기 때문에 그보다 전에 극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모두 죽어야 한다는 것은 썰렁하기 그지없는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독자들은 안심해도 된다. 두 물리적 현상인 회전의 방향과 시간의 흐름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즉 과학적으로 오류 중 오류다.
「슈퍼맨」에서 사용한 논리는 천체의 운동이 시간을 흐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천체가 운동하니까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므로 천체가 운동한다. 슈퍼맨이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여 초광속여행으로 달리더라도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광속보다 빨리 달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초광속으로 달릴 능력을 슈퍼맨이 지녔더라도 여하튼 슈퍼맨은 레인을 만나지 못하고 지쳐서 달리기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스타트랙」시리즈 ‘귀환’에서 엔터프라이즈호의 승무원들은 거대한 외계의 우주탐사선에서 고래의 울음소리를 검출한다. 그리고 지구에서 살고 있는 향유고래의 울음소리로 우주탐사선에 화답하지 못한다면 지구는 외계인이 볼 때 존재할 가치가 없는 행성으로 판단되어 파괴될 것이라는 정보를 알고 20세기에 살아 있던 향유고래를 미래로 갖고 오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므로 태양의 중력장을 이용하여 매우 빠른 속력으로 가속해 수백 년 전의 과거인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수족관에서 사육비 문제로 바다로 방류된 고래가 수렵꾼들에게 살해되려는 순간 아슬아슬하게 구해내어 23세기로 돌아간다. 외계인 우주탐사선은 그들의 신호에 엔터프라이즈호에 있는 향유고래가 응답하는 것을 듣고 태양계를 떠난다. 지구는 마침내 살아남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엔터프라이즈호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슈퍼맨」의 아이디어와 다름없다. 이것이 오류라는 것은 「스타트랙」에서 속력과 시간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태양의 중력장을 이용하여 우주선의 속도를 빠르게 가속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단순히 훨씬 더 빠른 우주선이지 수백 년 전에 존재하는 우주선일 수는 없다.
「슈퍼맨」에서 슈퍼맨이 로이스 레인을 살리는 장면을 두고 앞에 해석한 것에서 다소 업그레이된 아이디어를 접목하여 로이스 레인을 살려냈다는 설명도 있다. 시간 차원에서만 여행을 하고 공간이라는 3차원은 바뀌지 않아야 하는데 지구는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3차원을 통하여 움직이고 있다. 타임머신이 놓인 지면상의 한 점은 지구 축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지구, 태양, 태양계, 우리의 은하도 운동을 하고 있으므로 초광속으로 달려가더라도 지구는 자신이 출발했던 장소에 존재하지 않는다. 광속보다 빠른 우주선을 타고 갔다 해도 그곳은 지구가 아닌 컴컴한 우주 공간일 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타임머신」의 조지가 802,701년의 엘로이 족인 위나를 다시 찾기 위해 타임머신을 위나와 헤어졌던 시점으로 되돌리지만 설사 그 역시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하면 자신의 집이 아니라 우주공간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슈퍼맨이 초광속으로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거꾸로 돌려 과거로 가게 한다. 지구를 거꾸로 돌릴 정도의 능력을 가졌으므로 슈퍼맨이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는데 이 경우 그녀가 살아나는 것은 슈퍼맨이 지구를 거꾸로 돌려 시간도 거꾸로 흐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장면만 보면 슈퍼맨이 초광속으로 지구를 돌리자 지구의 자전이 서서히 느려지다가 멈춘 후 자전방향이 바뀌면서 과거로 거슬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슈퍼맨의 활약으로 해변에서는 파도가 거꾸로 일고 무너진 댐이 기적적으로 복구되며 결국은 그가 원하는 대로 로이스 레인은 살아난다. 두 방법 모두 슈퍼맨이 초광속으로 달리지만 후자는 지구를 돌릴 능력까지 갖고 있다는데 감독의 아이디어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를 돌려 지구의 자전이 거꾸로 바뀐다는 발상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엄밀하게 말한다면 슈퍼맨이 광속보다 빨리 지구를 돌린다고 하더라도 이 역시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광속보다 빨리 지구를 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역시 첫째 아이디어인 한쪽 방향의 운동이 앞으로 흐르는 시간과 동등하면 반대방향의 운동이 거꾸로 흐르는 시간과 동등하다고 상정했기 때문이다.
더욱 낭패인 것은 광속보다 빨리 달린 슈퍼맨이 지구로 돌아오면 그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지구를 초광속으로 돌리는 동안 골머리 아픈 아인슈타인이 지적한 시간지연 현상이 일어나 지구에서는 수많은 시간이 흘러 그가 만났던 사람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다시 신문사로 가도 동료 직원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결론은 타임머신이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실망스러운 결론에 도달하는데 이것이 유명한 논리인 ‘쌍둥이 형제의 패러독스’이다. 쌍둥이 패러독스의 답은 매우 빠른 우주선을 타고 출발한 형이 우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아우보다 형 쪽이 젊다는 것으로 이런 생각은 만화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관찰자와 관찰되는 대상 사이의 운동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하면 관찰자에 대해 광속의 절반으로 움직이는 시계가 100번 똑딱거렸다면, 동일한 시계를 자신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있는 관찰자가 보기에는 115번 똑딱거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시간 늘어남(time dila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시간 늘어남’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하는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인들에게 더욱 극적인 효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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