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노벨상이 만든 세상/우주

우리 우주는 세 가지 중 하나(2)

Que sais 2020. 9. 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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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팽창을 거부한 아인슈타인>

천문학이 본격적인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와중에 전직외교관인 베스토 슬라이퍼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 있는 로웰천문대에서 지름 1미터짜리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 성운의 분광사진을 찍었다. 1912의 일인데 이때는 안드로메다외부은하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이다.

베스토 슬라이퍼(1875~1969)

당시 먼 우주까지의 거리는 크리스티안 도플러(Christian Johann Doppler, 18031853)도플러 효과로 측정할 수 있는데 슬라이퍼는 어렵게 찍은 스펙트럼을 분석하던 중 매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리스티안 도플러(1803~1853)

안드로메다 성운청색 편이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를 정확하게 계산하면 안드로메다 성운이 1초에 300킬로미터씩 지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당시에는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에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렇게 빨리 지구 쪽으로 다가 온다면 곧 충돌할 것이 분명했다.

슬라이퍼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5년 동안 다른 성운 25를 골라 분광사진을 찍었다. 그가 성운이라 생각한 것은 추후 모두 외부은하로 밝혀졌지만 그중 21개는 적색편이를 보이고 4곳은 청색편이를 보이고 있었다. 21개의 성운은 지구를 피해 멀리 날아가고 있었고 4태양계를 향하고 있었다.

기매 효과의 원리. 광원이 접근하면 파장이 짧아 보여 푸른빛으로, 멀어지면 파장이 길어 보여 붉은빛으로 보이는 현상

파란색과 빨간색을 비교하면 파란색의 파장더 짧다. 그래서 파장이 짧아진다는 것파란색 쪽으로 옮겨간다는 뜻으로 청색 편이’, 파장이 길어진다는 것은 빨간색 쪽으로 옮겨간다는 뜻으로 적색편이라 부른다. 빛을 내는 물체가 우리에게 가까이 오면 그 빛은 청색 편이를 일으켰다고 말하고 멀어져 가면 그 빛은 적색 편이를 일으켰다고 한다.

이것은 우주의 모든 천체가 고정되어 있다는 믿음과 맞지 않았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떤 종류의 도플러효과도 보이지 않아야 했다. 적어도 도플러 효과가 보이려면 절반은 청색 편이, 절반은 적색 편이를 보여 평형을 이루어야 했다. 이후에도 슬라이퍼는 약 20개의 성운을 관찰했는데 모두 지구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이때 르메트르10여 년 전 슬라이퍼성운의 분광사진에서 적색 편이를 발견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초에 1,000킬로미터나 멀어져 가는 성운우리 은하 밖에 있는 천체라 생각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었다. 슬라이퍼관측한 성운들은 모두 우리 은하 밖에 있는 외부 은하임이 분명한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르메트르는 유럽에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풀 때 이 방정식이 팽창하는 우주를 설명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슬라이퍼의 관측을 공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팽창하는 우주. 르메트르1925년 벨기에로 다시 돌아왔는데 그의 머리에는 팽창하는 우주뿐이었다. 그는 벨기에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우주 모형을 적은 논문을 발표했다.

 

공 모양의 우주가 안정된 상태에 있다가 빠르게 팽창하고 어느 순간에 별과 은하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무렵 팽창이 멈추었다가 다시 빠르게 팽창하여 결국 물질이 없는 우주에 도달한다.

 

그의 논문은 가만히 있는 고정된 우주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하는 역동적인 우주. 사실 이 논문아인슈타인의 우주드 지터의 우주를 합쳐 놓은 것과 유사하다. 공 모양의 폐쇄적이고 들이 고르게 퍼져 있는 우주아인슈타인의 우주 모형이고 뒤이어 우주가 팽창해 결국은 물질이 없는 우주로 변하는 것은 드 지터의 우주 모형이다. 드 지터의 우주 모형팽창하는 우주라는 것이 비로소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르메트르의 불운이 닥친다. 그는 1927년 천문계의 폭탄을 당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벨기에<브뤼셀과학협회 연보>에 기고한 후 스승인 에딩턴에게 보냈다. 르메트르가 당대의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이 거의 읽지 않는 벨기에 학술지에 발표했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논문이 벨기에어발표되어 영어나 독일어를 쓰는 대다수 과학자들이 논문을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의 논문을 스승인 에딩턴이 읽지 않고 그냥 서랍 속에 넣어둔 후 잊어버렸다는 점이다. 1927년 르메트르아인슈타인을 만나기 위해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열리는 <솔베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마리 퀴리, 슈뢰딩거파울리하이젠베르크디랙콤프턴보어 등 당대의 최고 학자들이 모두 모였다.

피카르, 앙리오트, 에렌페스트, 헤르젠, 드 동데르, 슈뢰딩거, 버샤펠트, 파울리, 하이젠베르크, 파울러, 브릴루앵디바이, 크누센, 브래그, 크라머르스, 디랙, 콤프턴, 드 브로이, 보른, 보어랭뮤어, 플랑크, 퀴리, 로런츠, 아인슈타인, 랑주뱅, 샤를 게이(영어판), 윌슨, 리처드슨 1927년 국제 물리학 솔베이 학회 다섯 번째 회의 참석자. 레오폴드 공원.

르메트르자신의 논문아인슈타인이 읽게 해달라고 지인을 통해 이야기한 후 회의장 밖에서 아인슈타인을 기다렸다. 아인슈타인르메트르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팽창하는 우주를 거론하는 그와 우주를 논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는 프리드만의 팽창하는 우주를 가혹하게 비평한 당사자로 결론적으로 두 사람이 만나기는 했지만 아인슈타인르메트르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알려지기는 아인슈타인르메트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당신의 수학적 계산은 아주 정확하지만 당신의 물리학은 지겹다.’

 

이 말은 당시에도 아인슈타인팽창하는 우주인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사건은 아인슈타인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만든 상대성이론팽창하는 우주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우주상수를 넣어 우주를 억지로 고정했고 이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이를 거부했다. 한마디로 아인슈타인도 진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학자들은 이 당시 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지만 젊은이들의 우주론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또한 당시의 최대의 화두인 양자론에 대해서도 찬동하지 않았다.

 

<팽창하는 우주의 증거>

1927만 해도 우주팽창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빈약하여 아인슈타인도 꿈쩍하지 않았는데 1929 대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결정적인 증거발표되었다. 당사자는 헐리우드 스타와 다름없는 에드윈 허블이었다. 그는 사교성도 좋았지만 논문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1925년 르메트르의 팽창하는 우주에 대해 공감하면서 윌슨산천문대에서 우주의 모습을 관측하고 있었다.

은하 대신에 떠오르는 빵 덩어리의 건포도를 사용하여 허블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

허블의 노고는 헛되지 않아 수많은 천문관측 자료를 통해 매우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외부은하들이 아무렇게나 우리로부터 멀어져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은하가 다른 은하보다 2배 멀리 있다면 멀어지는 속도2나 빨랐고 3배 멀리 있는 외부은하멀어지는 속도가 3 빨랐다. 외부은하의 거리멀어지는 속도수학적인 규칙이 발견된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허블 상수이다. 이는 우주가 분명히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부 은하가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주의 시작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구 멀어지는 외부은하들을 다시 모이게 하면 되는데 이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된다. 허블1929은하-외부 성운들의 거리와 시선속도 사이의 관계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한 후 2년 후1931 보다 많은 자료를 통해 허블의 법칙을 보완했다.

1931 허블이 발표한 허블상수558km//Mpc(메가 파섹 : 300만 광년)이었다. 이들 허블상수에 의하면 외부은하들은 300만 광년 멀어질 때마다 초속 558킬로미터씩 빨리 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허블상수는 현재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70km//Mpc로 설명된다.

허블 상수로 가는 3단계

르메트르허블의 발표를 보고 에딩턴자신의 논문을 읽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는 곧바로 에딩턴에게 자신의 논문을 보냈는데 논문을 받아본 에딩턴은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우주팽창을 설명한 우주모형르메트르에 의해 이미 세상에 발표되었고 허블은 그 이론을 관측으로 확인해 준 것이다. 에딩턴은 곧바로 <네이처>지에 이 사실을 알렸고 19306월 게재되었다. 이로써 우주론의 중심아인슈타인이나 드 지터가 아니라 르메트르로 옮겨 갔다. 허블의 발표를 보고 물리학자들은 당혹스러운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전 역사는 우주가 고정돼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전개되어왔는데 이것이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우주는 곧 모든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진화의 길을 걸을 수 있단 말인가?’

 

최초의 인류가 지구상을 걸어다닌 이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런데 허블하늘조차도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그러나 정작 허블의 발표에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는 1931년 윌슨산천문대를 방문했다. 허블 아인슈타인 부부를 초청한 것으로 거대한 망원경을 보고 자신의 우주에 대한 집착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허블의 관측기록을 받아들이며 프리드만과 르메트르의 팽창하는 우주 모형이 합당하다고 말하며 우주상수를 도입한 것이 일생일대의 최대 실수였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 말에는 다소 이론의 여지가 있다. 최근에 이 우주상수암흑물질, 암흑에너지와 관련되므로 아인슈타인의 최대의 실수는 사실 실수가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만 이 말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암흑 에너지로 인한 우주의 가속 팽창을 나타내는 다이어그램

이스라엘의 갈리 웨인슈타인 박사아인슈타인이 생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아인슈타인과 서먹서먹한 사이인 가모프 박사자서전에 딱 한 번 등장하는데 여러 정황을 보았을 때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실수를 적어도 가모프에게 말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사망 직전인 195411월 라이너스 폴링에게 나의 한가지 가장 큰 실수는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원자폭탄을 만들라고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우주상수보다 원자폭탄이 그의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는 것이다.

여하튼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 철회르메트르를 단번에 스타로 만들었다. 르메트르가 지적한 것은 아인슈타인의 정적이고 둥근 우주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팽창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팽창을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시작이 있어야 한다. 르메트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압축된 양자 하나로부터 우주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최초의 양자를 원시 원자라 불렀다.

L'Hypothèse de l'Atome primitif (원시 원자 – 우주론에 대한 에세이) (1946)

그는 태양계 크기만 한 원시 원자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원시 원자의 평형 상태가 깨지자 그때부터 방사성원소가 붕괴하듯이 분열을 계속했고 그때마다 물질이 늘어나고 공간도 동시에 커져 오늘날 우주의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원시 원자의 평형이 깨진 순간부터 이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우주의 시작점과거가 없는 지금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어제가 없는 오늘이라고도 말한다.

 

참고문헌 :

20세기 천재 아인슈타인의 인생 최대의 실수, 대중과학, 20194

처음 읽는 우주의 역사, 이지유, 휴커니스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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