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홀로코스트

731부대(2)

Que sais 2021. 1. 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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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잔악한 군의관

군사법정의 피의자로 체포된 이시이 시로(石井 四郎, 18921959)는 증거가 워낙 적나라하고 죄상이 극히 나쁘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된 도조 히데키 등 다른 피의자보다 먼저 예심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세균무기와 화학무기에 의한 피해가 워낙 심한데다가 각국에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었다.

이와 같이 당초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시이 시로1892년 치바현에서 출생했다. 22살에 교토대학 의학부 병리학과를 졸업하고 근위사단에서 2년간 군의관으로 복무한 후 육군성의 추천으로 독일에 유학하여 세균과 독가스 연구 제조에 관해 공부할 때 세균전만이 일본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년 후 귀국한 그는 도쿄에 육군성 소속의 방역 연구실또는 이시이세균연구실을 설립했다.

 

이시이 시로

19319월 선양 사변 직후, 일본육군참모본부는 일본관동군 소속의 세균연구소를 설립했다. 본부는 최초에 하얼빈시의 선화가 일대에 설립되었고 1936년 이후 하얼빈시 남쪽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평방진 지역으로 옮겼다.

이시이세균연구소 창립 당시부터 그의 세 형인 이시이 도라오, 이시이 다케오, 이시이 미쓰오를 참가시켰는데 이 부대를 731부대 또는 이시이부대라고 불렀으나 공식적으로는 <관동군방역급수부>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시이는 화학무기독가스를 주로 연구했으며 이 공으로 1942년 중장 의무관으로 승진했다.

이시이가 지휘한 부대731부대 뿐만 아니라 중국 뚱베이 지역의 무단쟝지부(643부대), 린커우지부(162부대), 쑨우지부(637부대), 하이라얼지부(543부대), 베이핑 지역의 1885부대, 난징 지역에 1644부대, 광쩌우 지역에 8604부대 등이다.

이 부대들은 다른 군사조직과는 달리 그 부대원의 85퍼센트가 연구원이었으며 나머지가 행정관리 직원과 후방 근무요원이었다. 총 부대원은 거의 1만 명에 달했는데 둘째 형인 이시이 다케오껍질이 벗겨진 통나무라는 뜻의 마루타 다시 말해서 각종 실험용으로 쓸 인간을 대기시키는 감옥의 간수이고 셋째 형인 이시이 미쓰오는 실험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 해부와 인유(人油)제련을 처리하는 총책임자였다. 도쿄 재판에서 인유를 어디에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이시이 시로는 일부는 일본으로 운송해 기계 윤활유로 사용했고 일부는 내용을 모르는 중국인들의 식용유로 제공했다 하여 심문관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시이가 만든 세균무기페스트, 콜레라, 괴저,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결핵, 파상풍, 우두역병균, 홍색맥수균10종류가 넘으며 독가스이페리트, 루이스가스, 포스겐6종류였다. 이시이는 자신이 개발한 세균을 실험하기 위해 3,850, 독가스를 실험하기 위해 2,450, 6,300여명의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했는데 이 중 562명이 러시아인이며 254명이 한국인, 나머지는 모두 중국인으로 중국인의 90퍼센트는 전쟁에서 잡힌 포로들이고 나머지는 일본군들이 체포한 불순분자들이라고 자백했다. 그는 6,300여 명 중에서 살아남은 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이시이가 세균무기와 화학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이시이의 주장대로라면 태평양전쟁의 실질적인 주도자로 볼 수 있는 도조 히데키의 지시 때문이었다. 도조는 육군대학을 졸업한 후 관동군 헌병사령관, 관동군 참모장, 육군차관 등을 역임하였다. 1940년 제2고노에[近衛] 내각의 육군대신이 되어 중국침략 확대를 주장하고 1941년 총리가 되어 육군내무대신도 겸임하면서 128일 하와이의 새벽 진주만(眞珠湾)에 있는 미국함대기지를 기습 공격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도쿄 재판의 도조 히데키

도조 히데키는 한국에 가장 큰 피해를 입혔는데 1943년 문부(文部)상공군수(軍需) 장관도 겸임하면서 한국에서는 징병제와 학도병 지원제를 실시하여 수많은 한국인들을 전쟁터에서 사망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1944년에는 참모총장까지 겸임하였지만 전황이 전면적 파국으로 빠져들자, 19447월 총사퇴하였고 군사법정에서 체포를 명하자 가슴을 쏘아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A급 전쟁범죄자극동국제군사법정에 회부되었다.

도조가 이시이에게 세균무기와 화학무기를 개발토록 촉구한 것은 세균무기를 사용할 경우 총과 대포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원가가 5분의 1정도이며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에도 5분의 1이 안되기 때문이다.

도조가 강조한 것은 일본에 크게 부족한 철강재를 대대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철강재로 제조한 폭탄이나 탄환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그 살상력도 크지 않아 경상을 입히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내 회복하여 다시 전투에 참가할 수 있다. 그러나 세균전의 경우 그 효과가 뛰어나고 타인에게 전염시킬 수도 있으며, 인체 내부에 병균이 침입하면 사망률이 높다. 그러나 세균무기는 일반적으로 전염병에 걸리더라도 열흘은 되어야 사망하므로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화학무기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31부대의 마루타 실험

큰 틀에서 이시이는 전쟁을 일으킨 조국 일본을 위해 가장 치명적인 전쟁무기를 만든 사람에 지나지 않는데 왜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비난받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특히 그에게는 도조가 명백하게 세균과 화학무기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은 명분도 있었다. 그러나 인륜을 저버리는 살인무기를 만든 장본인으로써 이시이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심한 비난을 받는 것은 다른 국가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인체실험을 자신이 직접 주도했고 또 이에 대해 전혀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고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자 이시이는 보다 야심적인 세균전을 제안했다. 대형 잠수함에서 출격시킨 수상 비행정을 이용하여 로스앤젤레스에 세균폭탄을 투하하자는 것이다.

이시이는 미국인들이 가공할 무기인 네이팜탄을 사용하여 참호 속에 있는 일본군 수비대 병사들을 숯덩이로 만들고 있으므로 일본이 공포의 무기를 사용하여 미국 본토에서 수백만의 미국인을 살상하는 작전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일본군 참모부의 한 장군이 미국을 상대로 세균전을 벌인다면 그 후환을 감당할 수 없다고 거부함으로써 추진되지 않았다. 이시이가 소위 의학적인 명분으로 731부대를 지휘했다는 명분조차 사라지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731부대에서의 진상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일단 끌려간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731부대에서 일어난 일은 계속 비밀에 붙여졌었는데 영원한 비밀은 없는 듯 731부대에 근무했던 직원들이 철저한 보안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자행되었던 잔혹한 실험에 대해 조금씩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리무라 세이치의 악마의 포식도 그 일환이다.

731부대에서 자행되었던 실험 분야는 워낙 많으므로 그 중 대표적인 것만 적지만 우선 순위는 전쟁에 투입되는 군인들을 위한 실험이다. 731부대에서 실험한 내용은 거의 대부분 독일에서도 실행되었다.

731부대의 인체실험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동상 실험이다. 일본이 남방에서도 전쟁을 벌렸지만 만주 등 추운 지방에서의 전투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추운 지방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동상에 대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731부대에서 실험된 내용에는 실외에 나체로 마루타를 세워 두고 물을 뿌렸을 때 온도별로 얼마나 빨리 온 몸이 얼고 동사하는 가하는 실험이 있었고 마루타의 손이나 발을 얼게 해서 뜨거운 물에 넣었더니 살이 터지면서 살점이 모두 흩어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는 설명도 있었다. 완전히 언 마루타의 팔을 때렸더니 얼음조각처럼 잘라졌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인종간의 추위에 대한 민감도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 민족을 분류하여 실험했다고 말했다.

 

731부대의 생체실험(마루타 영화 한장면)

생식기절개하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였다. 전쟁 와중에 위안부와 병사들의 접촉으로 성병이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자의 자궁을 잘라서 들어내고, 생식구조 일대를 완전히 오려내어 포르말린 액에 넣었으며 배와 가슴을 열어 지방질 사이에 있는 위와 장, 간장, 폐 등을 관찰한 후 적출했다는 설명도 있었다.

착혈실험(搾血實驗)도 중요한 연구 과제였다.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장병들에게 수혈할 피가 항상 모자랐기 때문에 희생자의 몸에서 단 한 방울의 피라도 모두 짜내기 위해서였는데 대형 원심분리기를 사용하면 몇 분 내로 온몸의 피를 빼낼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의 피가 얼마나 빠지면 생명이 위험에 초래하는가는 사람의 건강 상태와 체중에 따라 양이 다소 다르나 대부분 3분의 1이 빠져나가면 죽었다고 적었다. 혈관에 말의 피를 넣는가 하면, 인체의 70퍼센트가 수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루타를 한증막에 넣고 수분을 짜냈다. 정맥에 공기를 불어넣거나 거꾸로 매달아 몇 시간 만에 죽는지를 알아내는 기상천외한 실험들도 자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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