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홀로코스트

731부대(1)

Que sais 2021. 1. 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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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990년에 개봉된 중국 모돈불 감독마루타는 원제목이 黑太陽 731(Men Behind The Sun)인데 그야말로 충격적인 역사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모든 전선에서 일본군이 패하고 있을 무렵 뇌물수수로 예편 당한 의학박사 이시이 시로 박사731 부대장으로 부임한다. 동시에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일본인 소년병들을 모집, 731 부대의 특수임무 수행을 위한 엄격한 훈련이 시작된다. 소년병들의 교육 과정은 냉동 실험, 세균 실험, 독가스 실험, 폭파 실험 등 살아있는 인간 마루타를 대상으로 온갖 잔혹한 실험을 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비인간적이고 변태적인 소장의 명령에 따르면서 소년병들은 내심의 갈등을 계속하고, 세균폭탄 투하실험에서 그 잔인성은 극에 이른다. 드디어 완성된 세균폭탄을 전선에 싣고 가기만 하면 되는 순간, 일본의 항복과 퇴각명령이 내려진다. 세균폭탄의 비밀유지를 위해 살아남은 중국인들은 모두 사살되고 비밀서류와 시설은 불태운 후 731부대는 퇴각한다. 마지막으로 생존한 마루타였던 중국인 소년이 이시이 부대장에게 칼을 휘두르지만 결국 죽음을 당한다.’

 

제목 마루타는 당시의 실험 대상이었던 중국 한국인들을 가리킨다. 만주 731부대의 만행을 그린 충격적인 장면에 관객들은 일본인의 전쟁에 대한 광기와 잔학성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으며 특히 생체 실험 장면이 소름끼친다고 답변했다. 물론 18세 이하 관람 불가다.

 

「 마루타 」  원제목 :  「黑太陽  731(Men Behind The Sun) 」

영화는 그야말로 제작비가 거저인 약 20만 달러를 투입했는데 이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제작을 지원하여 인민해방군 병사엑스트라로 출연하는 등 여러 면에서 제작비가 절감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예상치 못한 흥행에 성공하자 3편까지 제작되었다. 감독이 잔인한 인체 실험을 여과 없이 보여준 것이 효과를 본 것이다.

이 영화에서 유명한 장면은 동상실험벙어리 소년을 해부하는 장면 등이 있다.

동상 실험10시간 동안 영하의 온도에서 손과 팔에다 계속 차가운 물을 부어 손을 동상에 걸리게 한 다음 미지근한 물에 잠시 담가서 급속 해동을 하고 피부 이식용 칼로 손, 팔가죽과 살을 통째로 벗겨버려 뼈가 드러나는 장면이 담겨있다.

 

마루타 동결실험(마루타 한 장면)

그러나 이 영화가 추후 구설수 대상이 된 것은 벙어리 소년 해부 장면으로 다른 인체실험 장면은 모형이나 소품 등을 이용해 처리했지만 이 부분은 진짜로 소년의 시체를 찾아 해부했기 때문이다.

모돈불 감독이 경찰에게 사고나 질병으로 죽은 소년의 시체를 촬영용으로 부탁했는데 경찰이 죽은 소년의 시체를 곧 의사들이 부검할 것이니 촬영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곧바로 촬영진이 해부실에 도착하여 실제 의사들의 부검 장면을 촬영했으며 죽은 소년의 부모들도 영화가 731부대의 참상을 다루는 것이므로 시체 촬영을 허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사람의 해부장면을 적나라하게 촬영하고 영화 장면으로 방영되어 일부학자들이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2차 세계대전1945년에 종식되었음에도 731부대의 진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1981 비로소 세상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무려 35이나 지나서이다.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시모사토 마사키하바롭스크 전범 재판에서 드러난 731부대와 일본군의 생체실험 등 취재한 내용을 작가 모리무라 세이치가 논픽션으로 악마의 포식으로 연재했다. 2편에 걸쳐 연재했는데 곧바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글에 실린 731부대에 대한 내용을 공산당 소속 의원이 국회에서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일본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731부대의 존재를 비롯하여 그 부대에서 있었던 만행은 대략적으로 1981년 전부터 알려진 것은 사실이다. 관동군이나 대본영에서 731 부대의 실험을 참관하거나 당대에 근무한 사람들의 숫자들이 적지 않으며 일본군 내에서는 731부대 말고도 관동군 제100부대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생체실험을 진행했으므로 생체실험 자체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마의 포식이 본격적인 논쟁의 장으로 가는 물꼬를 튼 것이다.

여하튼 한국에서는 1982<동아일보><경향신문>에서 이 내용을 다루었고 1998 <KBS 일요스페셜>에서 731부대는 살아있다방영해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더구나 이 방영에서 주목받은 것은 731부대 부대장 이시이 시로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요청으로 한국에 들어와 일본에서 싼값에 거둬들인 혈액을 미군에게 비싸게 팔아서 많은 이득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미국 <히스토리> 채널의 731부대 다큐멘터리에서 이시이 시로는 독일의 나치 의사 요제프 멩겔레조차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악랄한 인물이라고 평가되었다. 아우슈비츠와 비견될만한 시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었음은 물론이다. 대체 이시이 시로가 누구인지 의문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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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재판은 짜고치는 고스톱>

영화를 비롯하여 언론에서 731부대와 같은 잔혹한 내용을 다룬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끔찍한 행동을 자행한 사람에 대한 전후 처리 결과가 그야말로 상상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일명 세기의 재판으로 독일에서는 뉘른베르크군사재판, 일본의 도쿄에서는 극동국제군사법정이 열렸다. 세계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한 채 두 재판에서 인류의 이름과 국제 평화의 이름으로 일본과 독일의 전쟁지도자들을 법정에 세워 전범으로 처단했다. 침략전쟁과 그로 인한 인류의 참화에 대해 전쟁을 일으킨 개인의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것이다.

전쟁범죄는 전쟁규칙을 어기는 행위로서, 이 규칙은 원래 전쟁의 참혹함과 전쟁으로 인한 파괴 행위를 제한하자는 것을 기본 취지로 하고 있다. 전쟁규칙은 가장 오래된 형태의 국제법이라 할 수 있으며 대개 다음 네 가지 범주로 나눠진다.

 

전투병의 지위

적대 행위

점령 기간의 행위

정전이나 휴전 기간의 행위, 혹은 중립국에 대한 행위 등이다.

 

전쟁규칙이라 함은 전쟁으로 인해 가해지는 피해의 정도와 유형, 고통의 정도, 전투나 기타 군사 활동에 참가하는 자들의 신분 등을 규정한다.

예를 들어 군인은 합법적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인명을 살상할 수 있지만 전쟁포로나 민간인을 살상할 수는 없다. 탈주했다가 체포된 포로도 벌줄 수 없다. 적의 민간인이나 민간인으로 위장한 군인들은 전투 중이라 할지라도 살상할 수 없다.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약탈은 불법이며 사유재산을 마음대로 몰수할 수는 없다. 무방비 상태의 마을이나 도시, 건물, 거주지를 공격하거나 폭격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며 독가스나 생화학 무기의 사용도 금지된다.

전쟁규칙에 의해 적이라 할지라도 모든 전범 혐의자에 대해 재판할 권리가 있다. 바로 이 조항에 의거 <극동국제군사법정>이 설치된 것이다. 이를 '도쿄법정'이라고도 하는데 이 법정은 19461, 극동국제군사법정의 설립에 관한 연합국 최고사령관의 특별성명서극동국제군사법정 조례를 근거로 (A) 평화에 관한 죄, (B) 통상적인 전쟁범죄, (C) 인도(人道)에 관한 죄(A)에 관련되어 기소된 중대 전쟁범죄자에 대해서만 심리처벌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극동국제군사법정

또한 평화에 관한 죄를 '침략전쟁 또는 국제법조약을 위배한 전쟁'을 계획개시수행하는 과정에서 범한 죄 또는 그 계획모의에 참가한 개인단체구성원이 범한 죄로 규정함으로써 이들 중대 전범자를 A급 전범자로 규정하였다.

도쿄법정19462, 연합국 최고사령관인 D.맥아더에 의하여 오스트레일리아인인 W. F. 웹 재판장을 비롯하여 미국영국프랑스소련중국인도네덜란드필리핀뉴질랜드에서 각 1명과 미국의 J.B.키낸수석검사로 하는 30여 명의 검사가 임명되어 기소를 담당했다. 이들은 19464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이하 28명의 피고를 A급 전범자로 정식 기소했고 5월부터 이에 대한 심리(審理)가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각 피고인이 선정한 28명의 일본인 변호인단과 2명의 미국 측 변호인단이 참가하였다.

이 재판이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 졌는가는 4,019명의 증인이 증언대에 섰고 4,336부의 문서가 증거로 제출되었으며 그 과정을 기록한 공판조서가 49,858페이지, 재판에 사용된 종이만 해도 100이 넘었다.

법정은 4811, 심리하는 도중에 사망한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나가노 오사미(永野修身)와 정신이상을 일으킨 오카와 슈메이(大川周明)를 제외한 25에 대하여 전원 유죄를 인정하여, 교수형 7, 종신형 16, 금고 201, 금고 71명의 형을 선고하였다.

그런데 당초에 A급 전범으로 지목되어 어느 누구도 사형을 언도받으리라고 예상하던 악명 높은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 중장면죄 석방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악랄하고 잔인한 행위를 자행한 이시이 시로의 무죄석방은 그야말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철저한 악당이 세계를 지배하고 칭송받는다고 하지만 이시이와 같은 악당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들의 이해타산이 얼마나 빠른가를 증명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