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홀로코스트

세기의 재판 아돌프 아이히만(3)

Que sais 2021. 1. 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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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 재판의 교훈>

아이히만 재판은 세계에 인간의 본성을 놓고 아직까지 끊이지 않는 화두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1963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제대로 된 비판정신 없이 상부의 명령에 맹종하면 어떻게 된다는 걸 보여준 중요한 표본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역사학자들이 발끈했다.

아이히만은 언제나 유대인을 독일의 적으로 간주했으며 유대인을 전부 죽여야 한다는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나치당원이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러자 아렌트가 이에 반격을 가했다.

아렌트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성격 파탄자이거나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멀쩡하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도취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칸트를 들먹이며 자기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검찰 심문에서 자신은 이상주의자이며 자신의 이상을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도 말을 했다. 아렌트는 이런 경찰심문과 재판과정에서 보인 아이히만의 행동을 보고 그의 과거까지 면밀하게 탐지해 그가 스스럼없이 자행한 악행의 원인을 설명했다.

그녀는 아이히만의 악행의 원인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사유할 능력이 없는 데서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복종칸트의무를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상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능력이 없는 그는 자신의 이상에만 충실해 그것이 타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이히만은 타인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 능력도 부재했다.

그가 쓰는 말들은 나치가 만들어 낸 상투어였다. 그러한 언어현실을 호도하고, 자기가 하는 일과 현실에 대해 눈감게 해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살이라는 말 대신에 '최종 해결책', 유대인 이송작업을 재정착과 같은 말을 쓰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는 스스로를 기만하고,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한다.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으로 뭉쳐진 스스로 사유할 능력이 없는 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는 자기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자 한 정상적인 한 관료이자 책상 앞의 살인자라는 것이다.

그녀의 주장은 간단하다. 악의 평범성이 사고의 무능성 즉 '무사유(sheer thoughtless)' 또는 '사고력 결여'에서 비롯되었으며 아이히만의 전력이 이런 맥락에서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옳든지 옳지 않든지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거짓말을 단순한 책임 면피를 위한 거짓말이라기보다는 현실감각을 없앤 사고와 언어의 무능에서 온 상투어로 보았다.

 

한나 아렌트

다소 어려운 설명으로 보이는데 아렌트아이히만이 권력욕이 강하며 명예에 집착하는 인간이었으며 그의 반유대주의 사상이나 나치즘은 이러한 명예욕을 실현시킬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라는데 동조했다.

그런데 그녀는 아이히만이 유대인 이주정책을 맡았던 1938년은 나치의 최종 해결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던 1941년 이전이었으며, 1938년 당시에는 시온주의자들과의 모종의 협력을 통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독일계 유대인들도 수천 명이나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아이히만이 동정 때문에 유대인들을 유럽 바깥으로 이주시킨 것이 아니었으며, 이후 최종 해결책이 시행됐을 때에도 역시 유대인에 대한 증오 때문에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녀의 말은 명쾌하다.

 

아이히만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아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결심하는 것은 그의 마음과는 동떨어진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중략)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순전한 무사유사고력 결여였다.’

 

무사유 또는 사고력의 결여는 전쟁에서 보편적인 용어다.

전투에 참여하기 전에 가장 먼저 듣는 것은 충성과 명예. 명예는 충성이고 충성은 곧 명예라는 것이다. 전장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역사적이고 웅대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전쟁이 참혹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정의와 이에 따른 결과가 비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나치의 행동에만 국한한다면 히틀러는 병사들에게 2000년 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시대적 사건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주입시켰다. 병사들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내 어깨에 걸린 역사적 책무가 참으로 무거운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라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경우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 즉 기술적으로 유태인을 죽이는데만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인간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전쟁터에서 어떤 명령이 내릴지라도 일단 명령을 받은 담당자는 전쟁의 근본 목표 즉 승리를 위해 맡은 역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질 뿐이며 이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히만의 유태인 학살은 그가 악마이기 때문이 아니라 악의 근원이 평범한 곳에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아이히만은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의 의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 그는 평소에 매우 착한 사람이었으며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수행 과정에서 어떤 잘못도 느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아이히만학살 책임자로 수백만 명을 살해할 당시 독일에서 법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던 히틀러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재판에서 자신이 히틀러로부터 받은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았다면 아마 독일인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이히만에 대한 아렌트의 주장에 반대측은 벌떼와 같이 일어섰다. 우선 유대인들은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으며 유대인 수 백 만 명을 학살한 악을 사소하고 평범한 일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온주의 학자 숄렘도 그녀에게 유대인의 사랑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 그녀가 악의 평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는 마치 마지막 순간에 아이히만이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뜻한다.’

그녀의 주장에 데이비드 세자라니는 아이히만은 결코 ‘진부한 인간이 아니었고매일 자신의 명령에만 충실한하위 관료가 아니었다고 반격을 가했다그는 반유대주의에 대한 확신에 넘치는급진적인 나치였고책임있는 사람이었고인종적 정화에 집착했으며현장 관리자였고, 1933년 독일로 이주하기 이전부터열성적인 오스트리아 친위대 행동가였다는 것이다그가 강제이주를 통한 ‘유대인 문제’ 해결을 추진한 특수조직의 전문가가 되었고, 1942년에대량학살의 주요 설계자가 되었다는 것이 결코 무사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그녀의 주장은 1975년 그녀가 사망했음에도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철학자 칼 포퍼1982악의 평범성이라는 아렌트의 개념은 무의식적으로 하이데거와 낭만주의를 옹호하고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월간역사2011년 3월호(제326호)

그녀가 제기한 아이히만에 대한 논제20113, 즉 아이히만이 처형된지 거의 50, 그리고 아렌트의 사망 35년 후 다시 벌어졌다. 프랑스 월간지 <역사(L'Historie)>에 이 재판에 대해 특집을 게재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이히만은 전체주의 체제와 관료제 기계를 상징하는 존재로이같은 체제하에서각 개인은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에 불과하고열정도 도덕도 없고관료적 범죄 집단인 상위 권력이 지시하는 명령들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악의 진부함이다.’

 

사실 아렌트의 주장은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복종실험에서도 증명된 바 있었다. 그의 실험에 따르면직업적 혹은 정치적 복종체제에 노출되었을 때 누구라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양심의 가책없이범죄적 행동으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아렌트는 이를 증빙하듯 아이히만자신의 행동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인간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철학자답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서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적으로도 사유해 보고, 나에게 대입을 시켜서도 사유를 해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사유를 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판단을 내리는 것에 있어서 사유없이 쉽게 결정하고,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결정하는 등의 수동적인 자세는 피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히만 사건은 외형적으로 착한 사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매우 성실하다고 평가되는 한 인간이 저지른 악독한 범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가는 커다란 의문점을 남겨주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학살의 정교한 분업 시스템을 지적한다. 크게 나누어 명령을 내리는 자, 세뇌를 하는 자, 집행하는 자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해 자기 나름의 '심리적 방어 기제를 갖는다는 뜻이다. 명령을 내리는 자와 세뇌를 하는 자는 사람을 죽이는 일의 끔찍한 현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직접 살인을 하는 병사들도 그 순간 명예와 충성, 역사적 책무와 국가의 영광이라는 주문에 걸려 악독한 살인 행위도 단지 목표를 위한 한 괴정이므로 죄책감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집단 학살을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실이 독일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는데 더욱 심각성이 있다. 독일을 극구 비난하던 미국1968월남 미라이에서 노인여자어린아이 등 민간이 347명을 학살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병사가 베트공들의 시체 수를 확인하기 위해 시체로부터 귀를 잘랐다는 것은 애교로 보일 정도다. 한마디로 아이히만을 비난하던 미국인 중에서도 수많은 아이히만이 존재했다는 뜻과 다름아니다.

사실 독일인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은 유태인의 학살의 경우 전체주의적 지배독일인들을 타락시킨 것이지 독일인들이 원래 그런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태인 학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독일 병사에게도 책임을 묻긴 어려우며 전쟁이란 다소 규모의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인 비정한 학살이라는 것이다.

이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 지적될 일이지만 관료주의에 대한 경고는 경청할만 하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주장이다. 즉 그동안 세계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문제점들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관료주의와 휴머니즘 사이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이 지적도 관료주의와 휴머니즘이 과연 현실적인 양자택일의 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결국아이히만은 단순한 한 개인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 그의 범죄는 전체주의라는 오염된 물속에서 희석될 수 없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학자들은 아이히만이 주는 교훈은 명쾌하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들에 책임이 있다!’

 

참고문헌 :

악은 평범하다, 이동희, 시민사회신문, 2010.01.11.

작은 나치는 살인을 선택했다, 이동기, 한겨레. 2015.08.06

19614,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의 첫 재판 열리다, 이풍진세상에, ㅍㅍㅅㅅ, 2018.04.18.

[기억할 오늘] 아돌프 아이히만(5.11), 최윤필, 한국일보, 2018.05.11.

아돌프 아이히만, 나무위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31337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11777

https://qq9447.tistory.com/745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om799847&logNo=50131367012&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http://egloos.zum.com/kk1234ang/v/2738613

한국인을 위한 교양 사전,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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