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의 대명사가 된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 나아가 그리스의 영광과 치욕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파르테논은 한때 델로스 동맹의 맹주노릇을 했던 아테네에 모아둔 보물들의 창고이기도 하였지만 기원 500년경에 여신상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불타버렸다.
아테네의 가장 중요한 재산을 빼앗긴 파르테논은 그 후 참배의 장소가 되어 그리스도 교회, 이슬람 사원 등 다른 종교의 신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비교적 거의 손상 없이 내려왔다. 그러나 아테네를 지배하던 오스만 터키는 파르테논 신전을 화약고로 사용했는데, 1678년 폭발로 건물 중심부가 파괴되었다.
18세기 후반에 영국인 화가 제임스 스튜어트와 건축가 니콜라스 레베트에 의해 파르테논 신전이 재발견된 이후 파르테논 신전은 대 약탈의 중심이 된다.
1799년부터 1803년까지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영국 대사로 부임한 제7대 엘긴(Elgin) 백작 토머스 브루스는 당시 튀르크의 지배를 받고 있던 그리스의 파르테논 조각상들에 대해 조사했다. 엘긴은 투르크 당국의 허가를 얻어 신전을 스케치하고 실측했는데, 엘긴에 따르면 이 허가에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상을 일부 떼어 영국으로 가져가도 좋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엘긴(Elgin) 경은 이를 근거로 페이디아스가 조각한 박공부의 조각과 구조물의 대부분을 떼어내어 영국으로 가져갔고 영국 정부는 1816년 35,000파운드에 이 작품을 구입했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엘긴 마블’이라고 불리는 이 조각들이다. 모두 17개의 환조와 15개의 사각형의 부조 장식인 메토프, 75m 길이의 띠 부조인 프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알려지기는 엘긴이 70,000파운드를 소비했는데 대영박물관에서 절반 값만 지불했다는 뜻으로 엘긴이 엄청 손해 보았다는 뜻이다.
문제는 엘긴이 주장한 이 공문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의회가 영국박물관을 위해 이 작품을 구입할지 논의를 시작했을 때 엘긴은 의회에 이 문서의 영역본을 제출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문서 보관에 철저한 오스만 투르크 정부의 문서보관서에서 원문을 찾지 못했으므로 엘긴이 제출한 번역본이 진본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문을 받았다.
여하튼 엘긴 경의 행동이 당시에도 찬사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화재는 현장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게 원칙인데, 멋대로 분리한 것 자체가 야만적인 약탈 행위인데 그것도 그리스를 대표하는 파르테논 신전을 거의 파괴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비난이 쏟아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스를 사랑한 시인 바이런 경, 정치가 존 뉴포트 등은 그를 약탈자이며 신전 모독자라고 비난했다.
투르크의 지배가 1830년에 끝나고 최초의 그리스 왕인 바이에른의 오토를 위해 건축가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이 아크로폴리스 궁전을 건축하려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크로폴리스에 고대 이후에 건설된 건축물들은 모두 제거하고 최초에 건축된 명성 있는 건물에 대한 보호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1962년, 그리스의 영화배우이자 여성 정치가인 멜리나 메르쿠리 장관이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엘긴 마블들을 발견하고 파르테논 조각품들의 반환을 요구했다. 그리고 1975년 아크로폴리스 유적을 대대적으로 복원하기 시작하면서 파르테논에서 사라진 조각들에 대한 환수 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오스만 투르크의 압제 시절, 그리스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약탈된 예술품이므로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놓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 호소에 부응해 바티칸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박물관,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 등에서는 소장하고 있던 파르테논에 관련된 유물들을 모두 그리스로 돌려보냈다.
영국과 보조를 같이 할 것으로 보였던 일부 국가에서 유물들을 그리스에 반환했음에도 영국은 핵심 미술품인 ‘엘긴 마블’을 반환하지 않았다. 박물관 쪽에서 내세우는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영국박물관법’이 후손을 위해 소장품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약탈 문화재일지라도 반환과 같은 ‘도덕적 의무’로 쉽게 무시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한마디로 영국에 들어온 것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 일단 주인이 정해지면 반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설명은 본래 있던 파르테논 조각의 절반 이상이 다 망실된 마당에 ‘엘긴 마블’를 돌려준다 해도 완전한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아테네의 공해 등으로 인해 신전에 설치하는 것보다는 결국 인근 박물관에 수장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다면 런던에서 아테네로 수장처를 옮기는 것 외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영국의 궁색하기 짝이 없는 이유로 반환을 반대하는 것은 이것이 중요한 전례가 되어 전세계의 주요 박물관에서 소장품을, 출신 국가로 반환해달라고 요청할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실 대영박물관에서 중요 유물들을 모두 본국으로 반환한다면 소장품이 별것 없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대영박물관은 현재 세계의 문화유산 센터로 자부하고 있는데 이들 소장품이 사라진다면 세계 유산의 관리와 연구, 교육, 전시 모든 분야에서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국의 이러한 설명은 그리스나 이와 유사한 사례를 겪은 피해국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이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처럼 가해자 중심의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합리화를 엘긴의 이름을 따 ‘엘긴의 변명(Elgin Excuse)‘이라고 부르는데, 어쨌거나 문화재 반환 시비가 있는 모든 곳에서 이런 명분을 대면서 반환을 거절한다.
특히 미술품과 문화재의 약탈이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해 벌인 것 외에 제국주의 열강이 다투던 시절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빈번히 일어나 그들 사이에서조차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승자가 패자로부터 전리품을 약탈해 오는 것은 당연한 일로 간주되었다. 역사적으로 이런 약탈이 단순한 약탈에 그치지 않고 문화재와 예술품에 대한 애호를 토대로 체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되기 시작한 것은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나폴레옹은 미술품 약탈을 처음으로 제도화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약탈에 몰두했는지 이탈리아에 쳐들어갔을 때는 그 스스로 ‘토리노와 나폴리의 일부 명품을 제외하고는 전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물건이 이제 다 우리 차지가 될 것’이라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그의 이러한 공헌 즉 그가 정복한 국가에서 약탈한 미술품은 루브르 박물관은 물론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 밀라노의 브레라 갤러리,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마드리드의 프라도 박물관의 뼈대 소장품이 되었다.
물론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약탈품의 상당수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소장자가 바뀌어 약탈품임이 분명해도 반환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일례로 렘브란트의 대표적인 걸작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는 나폴레옹의 장군 라그랑주가 독일의 헤센카셀 제후로부터 약탈해 온 것으로, 조제핀이 소장했다가 나중에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1세에게 팔려나갔다. 1918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뒤 독일 쪽 협상가들이 러시아에 이 작품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나폴레옹을 약탈 전략의 스승으로 삼았다.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체계적인 약탈에 나섰는데, 특히 동유럽 국가들과 러시아의 소장품들을 체계적으로 약탈했다. 러시아 역시 전쟁 말기와 종전 직후에 독일에 광범위한 보복적 약탈을 자행해 무려 250만점의 미술품과 1,000만권의 책, 문서를 가져갔다. 이 가운데는 구텐베르크 성경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카테리나궁의 호화로운 호박방이 통째로 뜯긴 것도 이때의 일이다. 호박의 방은 2003년 복원되었다.
파르테논의 엘긴 마블이 워낙 세계적인 관심사를 보이는데 2002년 영국에서 이뤄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40%의 영국인이 ‘엘긴 마블’의 그리스 반환에 찬성, 반대 16% 였다고 한다. 자신들의 문화재를 약탈당한 국가에서 반환을 위해 끝없이 여론을 환기시켜온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상황이 복잡해지자 2019년 그리스는 엘긴 마블을 돌려주면 해외에서 한 번도 전시된 적이 없는 그리스 유물들을 영국 런던에서 전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자 영국은 엘긴 마블을 대여해주기는 하지만 소유권은 영국에 있다는 것을 보중해달라고 역제안했다. 그리스에서는 당연히 반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일본 등 해외로 반출된 약탈문화재 처리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어 앞으로 계속 세계적인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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