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제우스 신상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4)

Que sais 2021. 1. 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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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의 수치

그리스인들이 올림픽의 주관자제우스를 내세웠으므로 이를 위해 올림피아에 제우스 신상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올림피아에서 제우스 신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경기 첫날에 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들이 제우스 신전의 제우스상 앞에서 선서를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과 그 가족 및 코치들은 희생으로 바친 돼지 앞에서 부정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선서를 했으며 심판들도 뇌물을 거부하고 떳떳한 판정을 내리겠다고 맹세했다. 이것은 제우스가 번개의 신이므로 선서를 어기고 부정을 저지르면 제우스신으로부터 벼락을 맞을 줄 알라는 경고였다.

그리스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죽음벼락을 맞아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림픽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일은 제우스신으로부터 벼락을 맞아 죽는 일에 버금갈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임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였다.

그리스 신화에도 벼락을 맞는 일화는 많이 있다. 쿠레테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멧돼지 사냥을 돕는 전사들)은 헤라의 사주를 받고 제우스와 이오의 아들을 훔쳤다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 포세이돈을 기른 케아 섬의 주민들도 제우스를 박대한 죄로 번개를 맞아 죽었으며 제우스의 번개는 무섭지 않다고 허풍을 떤 카파네우스는 테바이 성벽을 오르다가 역시 벼락을 맞아 죽었다.

그러므로 올림픽을 개최하는 엘리스에서 올림픽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경고하는 묘안으로 내 놓은 것이 바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제우스신을 보다 가까이 참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한 목적으로 엘리스에서 올림피아에 그리스 반도에서 가장 돋보이는 제우스 신상을 건립한 것이다.

 

페이디아스의 제우스 신상

엘리스인들은 제일 먼저 올림피아의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제우스를 위해 거대한 제우스 신전을 건축했다. 신전은 엘리스의 건축가 리본 설계했고 신전의 건설은 기원전 470년에 시작되어 10 후인 기원전 460년에 완성되었다.

신전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회석으로 건설되었는데 하얀 색의 치장 회반죽을 외피에 발랐다. 파르테논과 같이 조화와 균형이 잡힌 도리아 식으로 길이는 64.12미터, 폭은 27.68미터로 건물 앞뒤로  6좌우 13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규모 면에서 파르테논 신전에 비해 약간 작지만 기원전 5세기 무렵 그리스 세계에서는 가장 크고 중요한 건축물이었다. 파르테논은 길이가 69.50미터, 폭이 30.80미터다.

제우스 신전의 놀라운 점은 인간의 착시현상을 고려해 건축했다는 것이다. 이점은 제우스 신전과 규모가 비슷한 파르테논 신전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눈을 통한 외부 세계의 물체나 그 변화를 탐지하는 과정을 시지각(視知)이라고 한다. 지각 과정에는 언제나 대상물이 존재한다. 대상물이 없는데도 지각이 된다면 흔히 말하는 환각이 된다. 이와 달리 실제 지각되는 대상이 있지만 사람의 눈으로 느낄 때 실제의 대상과 오차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바로 '착시'. 환각과 달리 외부 세계에 자극이 존재하는 것, 객관적인 성질과는 현저하게 다른 것,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착시의 조건이다. 얼마간의 주의를 기울이거나 지각이 잘못됐음을 알더라도 계속 잘못된 채로 지각된다는 뜻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우뚝 솟은 파르테논을 얼핏 보면 동일한 굵기의 기둥이 동일한 간격으로 배치된 직사각형의 '반듯한' 건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지어진 건물은 이와 매우 다르다.

우선 가장자리 기둥은 가운데 있는 기둥보다 좁은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즉 가장자리는 180센티미터, 가운데는 240센티미터 간격이다. 이와 같이 불균형하게 건설한 것은 만일 동일한 굵기로 만든 기둥을 동일한 간격으로 세웠다면 건물의 모양은 우리들의 눈에 직사각형이 아니라 위나 옆으로 퍼져 보이기 때문이다. 63빌딩 앞에서 꼭대기를 쳐다 볼 때 건물이 넘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과 비슷하다. 우리 나라의 숭례문이나 궁전의 건물도 이러한 구도로 건설되었다.

대들보의 중앙 부분도 위로 볼록하게 휘어져 올라와 있으며 가장자리의 기둥은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다. 기둥은 위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바닥 부분의 지름은 약 180센티미터이지만 꼭대기 부분의 지름은 120센티미터 밖에 안 된다. 수치적으로 정확하게 건설된 수평선은 실제로는 중앙 부분이 처진 듯이 보이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거대한 돌들을 맞추어 나가면서 중앙부를 약간 들어 올린 것이다. 고대 그리스 화가나 건축가들이 착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이를 작품에 응용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엘리스는 제우스 신전 건물이 완성되자 제우스 상을 페이디아스에게 주문했다. 페이디아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로 기원전 490년경에 아테네에서 차르미데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대의 최고 조각가인 아젤라다스의 제자로 들어가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지만 그보단 타고난 조각가였다.

기원전 470년에 피라테에서 8미터나 되는 대형 아테나 신상을 만들었는데 주재료는 나무였지만 손과 머리를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이 너무나 완벽하여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같다는 평을 듣자 그에게 조각을 의뢰하는 주문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의 명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져 기원전 447년 아테네의 실권자이자 친구인 페리클레스파르테논 신전 건설을 의뢰했다.

그가 총감독이 되고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의 지도 아래, 공사는 기원전 448년에 착공되어 기원전 432년에 완성되었다. 그는 아테나 여신상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 동시에 신전의 장식 조각을 지도했다.

신전의 동서 양박공의 동편에 아테나의 탄생, 서편에 아테나와 포세이돈의 전쟁을 조각했고 외벽 상부를 장식하는 94면의 메토프에는 라피타인과 켄타우로스의 전쟁이 조각되었고 천장 160미터를 걸친 본당 바깥쪽 상부(上部)의 큰 프리즈에는 여신 아테나로 불리는 판아테나이의 대제사의 행려 부조되었다.

이들 장식 조각의 대부분은 사방으로 흩어져 파괴되었는데 잔존하는 주요 부분은 파르테논 신전에서 통째로 절취하여 오늘날 대영박물관엘긴 마블로 이것이 현재 그리스와 영국간의 가장 첨예한 분쟁의 원인이다. 이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재 약탈 문제와도 관련되므로 아래에서 별도로 설명한다.

페이디아스의 주력은 거대 동상 제작이므로 크리세레판티노스 방식 즉 인체는 상아로 만들고 옷은 금으로 입힌 인체 조각의 한 유형을 사용하여 10미터 크기의 아테나 여신상을 완성했다. 아테네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으며 파르테논이라는 이름도 그 신전이 아테나 파르테노스(처녀신 아테나)에게 바쳐졌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파르테논의 아테나상은 현재는 로마 시대 모조품이 남아있어 개략을 알 수 있다.

페이디아스가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가에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그가 파르테논 신전을 위해 아테나 여신을 비롯하여 수많은 조각상을 만들었는데 정작 아테네의 재무관이 페이디아스에게 작품료 지불을 거절했다. 재무관은 거절 사유를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조각 작품은 신전의 지붕 위에 세워져 있고, 신전은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소. 따라서 사람들은 작품의 전면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오. 그런데도 당신은 우리에게 아무도 볼 수 없는 조각의 뒷면 작업에 들어간 비용까지 부당하게 청구했소.’

페이디아스가 곧바로 답변했다.

당신이 틀렸소.’

내가 틀린 근거를 제시해 보시오.’

당신은 내 작품의 뒷면을 아무도 볼 수 없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소.’

누가 보고 있다는 거요?’

하늘의 신들이 내 작품을 보고 있소!’

 

재무관이 아얏소리하지 못하고 페이디아스가 청구한 작품료를 지불했음은 물론이다. 신앞에서 꺼릴길것이 없다는 자부심이 충만한 페이디아스는 아테나 신상을 비롯하여 파르테논의 조각 등으로 그리스가 배출한 최고의 조각가로 자리 매김했다. 그러나 이런 명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테나 신전을 만들 때 지급된 금과 상아의 일부분을 횡령한 죄433년에 도시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세출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아테네에서 추방되자 올림픽을 개최하는 엘리스에서는 곧바로 그를 초청한다. 이미 건축해 놓은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에 안치할 거대한 제우스 신상의 제작을 부탁하기 위해서이다.

엘리스인들은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나 여신과 비견되는 조각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신상을 조각하는데 필요한 모든 예산을 무제한적으로 후원하겠지만 제작 장소와 형태만은 아테나 여신 것과 달리 해달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제우스 신상을 신전 안에서 제작하는 것이다. 제우스 신전의 높이가 그리 높지 않으므로 외부에서 신상을 제작할 경우에는 신전 안에 거상을 안치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페이디아스는 8년여의 작업 끝에 제우스 상을 완성했다. 이것이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나 여신상과 함께 페이디아스의 2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제우스 신상도 아테나 여신상과 마찬가지로 크리셀레판티노스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13미터나 되는 제우스상은 높이가 90센티미터, 길이 10미터, 폭이 6.65미터 크기의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옥좌에 앉아 있는데 거의 천장에 맞닿을 정도였다. 제우스를 서있는 형태로 조각했다면 거의 18미터나 달하는 거인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거대한 신상임에도 불구하고 페이디아스는 제우스의 신성한 위엄과 너그러움을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들었다.

아테나와 제우스 신상을 조각한 페이디아스는 뛰어난 실력과 별개로 말년은 그리 좋지 못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조각상을 만드는 데 쓰인 황금을 횡령한 죄로 기소된 뒤 그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자신과 페리클레스를 부조에 새겨 넣은 신성모독죄를 적용받아 감옥에서 죽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현재는 페리클레스의 정적들이 페리클레스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페이디아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에선 그가 제우스 상을 완성하자 그에게 주문 제작을 의뢰한 엘리스 사람들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페이디아스를 죽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