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제우스 신상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7)

Que sais 2021. 1. 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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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의 발굴

제우스 신상목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화재로 모두 불타버려 현재 전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제우스 신상을 안치했던 제우스 신전의 폐허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1829년에 건축가 아벨 브루에가 신전의 유적지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테오도시우스 2에 의해 제우스 신전이 완전히 파괴된 지 거의 1500년이 지나서다. 이 당시의 발굴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상징성 때문에 이례적으로 그리스 의회의 승인을 받아 발굴에 착수했다. 이 때에 발견된 신전의 기둥, 지붕, 메도프의 파편은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1875년에 독일팀의 발굴이 시작되는데 그 책임자는 그리스의 역사의 저자인 에른스트 쿠르티우스이다. 그는 독일의 황제 프레데릭 3세의 가정교사로서 올림피아를 조직적으로 발굴했는데 이 때 발견된 프론톤의 오에노마우스와 펠롭스가 전차 경주를 준비하는 장식은 올림피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 조각들의 사실적 표현은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또한 1958년 제우스 신전 터의 서쪽에서 페이디아스의 작업장이 발견됨으로써 제우스 신상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히 밝혀졌다.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역시 426년에 테오도시우스 2세가 파괴를 명령했지만 그리스교도의 성당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파괴를 모면한 것이다.

이곳에서 고고학자들은 포도주를 저장하는 항아리를 발견했는데 그 항아리에는 페이디아스 소유라는 글도 써있어 페이디아스의 작업장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유물을 조사한 발굴 팀들은 제우스 신상이 완성된 후에도 신전의 의식을 위한 부자재들을 만드는 장소로 페이디아스의 작업장이 사용되었음을 알아냈다. 항아리, 횃불, 향수, 기름, 조각, 의식에 필요한 의복이나 휘장 등은 작업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이 가장 고대하는 제우스 신상에 대한 유물은 전혀 없었다.

 

<고대 올림픽에 관한 진실>

2012년 런던 올림픽은 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참가했는데 20세기 후반부터 독립한 국가가 많아 무려 204개국이나 참가했다. 2주일에 걸쳐 총 27개 스포츠 종목이 벌어져 302개의 금메달이 수여되었다. 올림픽의 인기가 얼마나 높다는 것은 전 세계에서 거의 40억 명이 TV를 시청했고 20,000여명의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렸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근래 올림픽에서 일부 선수들이 약물을 복용하여 대회의 이미지가 다소 손상되고 아마추어 정신이 퇴조하고 금전에만 선수들이 신경 쓴다고 하지만 아직도 고대올림픽은 사심 없는 스포츠의 귀감이므로 가능한 한 이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근래의 연구에 의하면 고대 올림픽은 소위 스포츠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고대 올림픽이 오늘날 일반인들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대부분이 진실이 아니거나 현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소위 고대 올림픽의 전통을 주로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쿠베르탱 남작 한 사람의 유산이라는데 기인한다. 올림픽에 대한 진상을 윌리엄 에센바거의 글에서 많이 참조한다.

우선 올림픽은 형제애와 평화의 분위기 속에서 국제적인 친선경기를 벌인다는 것인데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의 웬디 래슈키 교수는 말했다.

기원전 8세기경부터 5일간의 고대 올림픽 축제 기간 및 전후에 모든 도시국가들의 전쟁을 금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동안의 휴전협정은 박애주의적이라기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것이다. 그들은 운동선수들과 응원하는 관중들이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고 올림피아에 도착하기를 원했을 뿐이다.

올림픽 종목인 멀리뛰기, 창던지기, 갑옷을 입은 선수들의 달리기는 평화가 아닌 전쟁이 목적이었다. 특히 가장 인기가 높았던 판크라티온은 모든 공격 방법이 허용되었다. 단지 상대방의 눈을 물어뜯거나 파내는 행위만 금지되었다.

올림픽의 주요 목적은 대다수 도시 국가들 장병들에게 전투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도시국가에서 올림픽에 우승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의 전력이 튼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장병이 올림픽에 참가도 하지 못하고 전투에서 죽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 올림픽 휴전협정의 본 목적이었다.

쿠베르탱 남작은 올림픽을 주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경쟁이다. 본질적인 것은 승리의 쟁취가 아니라 공정하게 싸우는 것이다.”

 

캐나다 위니펙대학교의 마크 골든 교수는 근대 올림픽을 가장 잘 설명한다는 이 말이야말로 쿠베르탱 남작이 만든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승만 원했다. 올림픽에서 2위와 3위 선수에게는 상이 수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패배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하지만 승리하지 못한 모든 선수들은 불명예를 안고 남몰래 고향으로 돌아갔다. 핀다르가 이 상황을 정확하게 적었다.

 

그들은 패배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느끼면서 혼자 뒷골목을 도망치듯 걸어갔다.”

 

올림픽의 목적이 우승이었으므로 승리를 위해 부정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특히 뇌물제공이 만연했다. 테살리 출신의 권투선수 유폴로스는 경쟁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우승했다. 아테네의 칼리푸스5종경기의 경쟁자들에게 뇌물을 주었고 엘리스의 폴릭토르의 아버지는 경쟁자의 아버지에게 뇌물을 준 후 레슬링 경기에서 승리하도록 조작했다. 앞에서 설명한 부정행위를 방지하려는 노력 자체가 부정행위가 만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 올림픽의 아마추어 정신은 고대 올림픽 정신을 이어 받은 것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에게 금전적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올림픽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선 아테네 올림픽 경기 우승자들은 근로자 한 사람의 5년치 급료에 해당하는 현찰을 받았다. 또한 우승자는 다른 축제행사에서 돈을 받고 출연했다. 이와 같은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경기자(athlete)'라는 단어의 의미다. 이 단어는 상을 타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근대올림픽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올림픽 정신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놀랍게도 그것은 올림픽을 창시한 쿠베르탱 남작의 작품이다.

귀족 중에 귀족인 쿠베르탱은 사회의 하층계급 출신 선수들이 귀족과 함께 경기에 참가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귀족이 아닌 사람들이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 중에 한 가지는 올림픽에서 어떠한 보상도 해 주지 않는 것이다. 유한계급 엘리트만이 경기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즉 부유한 사람들만이 경기에 참여하도록 유도한 것이 바로 근대올림픽의 정신이란 것이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데이비드 길먼 로마노 박사도 이 견해에 동조한다.

 

“19세기에 개발된 아마추어 경기자란 개념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소중하고 명예로운 상을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경기자의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올림픽은 피에르 쿠베르탱의 주도 아래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대회부터 새롭게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현대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마라톤 전투에서 생긴 일을 기념하여 탄생했다.

기원전 490년 아테네 북동쪽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 별사들이 밀티아데스의 지휘 하에 페르시아와 전투를 벌렸는데 당시 상황은 다소 복잡하다. 1만 여명의 아테네 병사들과 여러 도시국가의 지원군이 합류했지만 정작 가장 강력한 스파르타만월절 기간에는 전투를 할 수 없다는 종교적인 금기 때문에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이러한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리스군은 페르시아군을 물리쳤다.

여기에서 그리스의 민족적 신화가 탄생했다. 아테네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 또는 테르시포스(Thersippos)라는 전령이 기쁜 소식을 고국에 알리기 위해 달려갔다. 그는 갑옷을 입고 샌들을 신은 채 창을 들고 아테네까지 42킬로미터 거리를 달려갔다. 플루타크(Plutarch)는 전령이 아테네에 도착하여 승리했다는 말을 전하고 지쳐 쓰러져 숨이 끊어졌다고 한다.

1896년 아테네에서 재개된 현대 올림픽 마라톤 경기는 바로 이 전설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거리는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 중심지까지의 거리인 40킬로미터로 정해졌으며 1924년 오늘날의 완주 거리 42.195킬로미터로 확정되었다. 그런데 학자들은 목동의 신화를 단연코 거부한다. 여기에는 강력한 두 가지 반론이 제시된다.

첫째헤로도토스가 마라톤 전투에 대해 상세하게 적었는데 상당히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전령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는 그리스인들이 강력한 페르시아 제국을 상대로 대승리를 거둔 사실을 몹시 자랑스럽게 기록했는데 전령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적어도 헤로도토스가 전령에 대해 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지적이다.

둘째는 매우 평범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다.

당시 전령이 아테네까지 굳이 달려가서 소식을 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오래전부터 신호로 소식을 전하는 통신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테네 시민들은 전령이 목숨을 걸고 달려오기 훨씬 전에 승리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는 뜻이다.

 

여하튼 한국은 올림픽에서 마라톤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그것은 근대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서 최초로 우승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달고 최초로 참가한 대회는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이었다. 금메달은 차지하지 못했으나 역도에서 김성집, 복싱에서 한수안 선수가 각각 동메달을 획득했다.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대회에서 레슬링에 출전한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최를 개최하여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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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올림픽에 관한 통념과 진실, 윌리엄 에센바거, 리더스다이제스트, 20049

파르테논 신전, 황기원, 어린이동아, 2003.9.25.

파르테논 신전 조각상이 영국에 간 사연은?, 이주헌, 한겨레, 2009.03.25.

신들이 내 작품을 보고 있다, 정지환, 감사나눔 Media, 2012.07.15.

제우스, 절대적 위용을 지닌 최고의 신, 유형종, 객석, 2016.02.01.

제우스는 왜 천하의 바람둥이일까?, 주현성, 채널예스

제우스, 나무위키

그리스로마 신화, 나무위키

올림피아고고유적, 네이버지식백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페이디아스, 위키백과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하지 않았다, 게르하르트 프라우제, 한길사, 1994

세계를 간다 그리스와 에게해의 섬들, 중앙M&B, 1997

클락시커 50 고고학, 볼프강 코른, 해냄, 2004

세계의 불가사의 대탐험, YBM si-sa, 2004

세상을 바꾼 건축, 클라우스 라이홀트 외, 예담, 2006

일리아스, 천병희 역, 도서출판 솔, 2007

교과서에 나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이형준, 시공주니어,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