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제우스 신상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6)

Que sais 2021. 1. 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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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신상 정보>

필론에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을 세계7대 불가사의로 포함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필론으로 하여금 놀라게 하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필론이 적은 제우스 신상은 다음과 같다.

 

크노소스가 천상에서 제우스의 아버지라면 페이디아스는 지상에서 제우스에게 영생을 준 어머니이다. 페이디아스만이 우주의 왕과 그의 손에서 내려치는 번개를 보게 할 수 있다.

제우스가 페이디아스의 아들이라는 말에 불쾌감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그의 재주만은 당연히 제우스의 어머니라 불릴만하다. 아프리카에는 초원에 살고 있는 코끼리들이 많이 있다. 페이디아스는 그가 갖고 있는 재료로 살아있는 것과 똑같은 야생 동물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

제우스 신상을 제외한 나머지 6개의 불가사의에 대해 찬양하지만 제우스신을 성스럽고 경외심이 가도록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재능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모든 이에게 영광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영원하며 당연히 찬사를 받을만하다.

그에게 손이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리스의 가장 커다란 자랑거리이다. 신들의 세계 안에서 그의 능력이야말로 후대에 어떤 민족이 만들 수 있는 모든 힘을 초월한다. 영원한 창조자인 예술가를 갖고 있으므로 신들이 인간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다른 시대에도 그와 비교할 수는 없다. 사실, 페이디아스는 올림픽의 챔피온이며 단순하게 생각하는 이상을 실현할 수 있고 또 공상적인 것을 실제로 현실화 할 수 있다.’

 

필론은 제우스 신상이 걸출한 조각가 페이디아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명에 무게를 주었지만 포사니아스는 제우스 신상의 조각 자체에 대해 세세한 면까지 기록했다. 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제우스신은 옥좌 위에 앉아 있는데 그의 머리에는 올리브 나무 형태의 왕관이 씌워져 있다. 그의 오른손에는 머리를 가는 끈으로 묶고 왕관을 쓴, 승리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있으며 왼손에는 황금을 박아 장식한 지팡이(왕홀)를 쥐고 있다. 지팡이 위에는 독수리가 앉아 있으며 그의 신발과 옷은 금으로 덧씌워져 있다(독수리는 제우스가 천상을 지배함을 상징한다). 상아로 만들어진 어깨에는 백합꽃과 동물이 새겨진 아름다운 망토가 걸쳐져 있다. 왕관은 금과 보석, 흑단과 상아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제우스 신상 앞에 두 개의 커다란 조각상이 있다. 옥좌 앞의 기둥에는 어린아이들을 납치하는 스핑크스가 그려져 있고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화살로 니오베의 아이들을 쏘아 죽이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옥좌 역시 화려한 색깔의 돌, 상아와 흑단으로 장식되었으며 금으로 덧발라져 있다. 구조적으로 볼 때 옥좌는 4부분으로 띠가 둘러져 있는데 입구에 면하는 첫 번째 하단부에는 7명의 선인들을 그린 조각이 있다. 그들 중에 한 명은 머리에 띠를 두른 젊은 판타르키스로 그는 86회 올림픽의 우승자. 다른 3개의 띠에는 아마존 전사들과 싸우는 헤라크레스를 돕고 있는 29명의 사람이 조각되어 있다.

옥좌의 상부의 한 쪽 면에는 세 명의 샤리트가 조각되었고 다른 세 면에는 외르가 조각되었다. 구전되는 시에 의할 경우 제우스의 딸들을 이들이 돌본다고 한다.’

 

옥좌의 받침대에도 조각들이 있는데 모두 금으로 칠해졌다. 전차 타고 있는 헬리오스, 제우스, 헤라가 조각되어 있고 헤르메스, 헤스티아, 에로스가 아프로디데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라클레스, 암피트리테(바다의 여신), 포세이돈, 말 위에 올라타는 셀레네(달의 여신)도 보인다.’

 

올림피아에서는 담장의 설치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정문의 앞에는 담장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에 파네노스가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에는 아틀라스가 땅과 하늘을 바치고 있으며 테세피리투스엘라스살라미스 등 네 마리의 사자와 싸우는 헤라클레스, 아이아스가 카산드라를 유혹하는 장면, 오에노마우스의 딸인 히포다메이아(오이노마이오스는 자기 딸에 대해 근친상간적인 사랑을 품어 딸의 구혼자를 13명이나 죽였으나 새로운 구혼자인 렐롭스와의 전차 경주에서 죽고 만다), 쇠사슬에 묶여 있는 프로메테우스가 그려져 있다. 파네노스는 페이디아스의 동생으로 아테네의 스토아 안에 마라톤의 전투도 그렸다.’

 

포사니아스는 재료의 사용 방법도 서술하였다. 딱딱한 상아를 연하게 만들고 원하는 형태로 성형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불, 맥주, 식초 등이 사용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페이디아스 시대에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된 방법이다. 얇은 박판으로 씌우거나 주물로 신발, , 오른 손과 왕관의 일부를 황금으로 장식했다고 적었다.

제우스 신상 앞에는 크고 작은 올리브유 못이 있어 방문객들이 신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신전의 출입구에서 비쳐든 햇빛이 연못에 반사되어 제우스의 얼굴을 비추었다. 못이 없었더라면 창문 하나 없는 신전 내부가 어두워 제우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연못은 또한 상아로 만든 제우스의 살갗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수분을 공급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는 기름 대신에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은 파르테논 신전이 건설된 아크로폴리스가 고지대여서 매우 건조하기 때문에 기름 대신 물을 사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제우스 신상을 완성한 후 페이디아스는 제우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작업을 인정했다는 신호를 보여 달라고 기도했다. 그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벼락이 그가 있는 부근에 떨어졌다. 제우스신이 페이디아스의 작업에 만족했다는 뜻이다.

제우스 신상을 본 2세기경의 그리스의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아리엔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도, 불행과 비극에 차 있는 사람도 우뚝 서 있는 제우스 상을 보게 된다면 고통과 절망을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제우스상에 대해 가장 경이로움을 표명한 사람은 필론이다. 그는 제우스 상이 불러일으키는 신성함을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여섯 개의 불가사의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끼지만 이 제우스 상 앞에서는 경외심에 무릎을 꿇는다. 제우스의 모습이 너무나 신성하고 또한 그것을 표현한 기술이 너무나 훌륭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우스 신상에 대해 찬양만 한 것은 아니다. 로마의 풍자작가 루키아노스는 다음과 같이 시니칼한 비평을 했다. 그는 속이 텅 빈 채 쥐가 들끓는 조각상의 숨겨진 받침대를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웅대한 모습 뒤에 숨겨진 왕이나 황제의 열등한 실제 존재에 비유했다. 고대라 하여 모두 집권층에게 아부하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우스 신전의 수난>

올림피아의 거대한 제우스 신전에 대해 비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스의 신전들이 남다르게 주목을 받은 것은 고대로부터 약탈할 만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신전 안에 보관되어 있는 수많은 보물들이 표적이다.

기원전 146년에 로마의 집정관인 루시우스 무미우스도 코린트를 점령하자 대부분의 건물을 파괴하고 약탈했다. 그러나 그가 올림피아를 점령했을 때 올림피아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더 화려하게 치장하도록 명령하는 괴상스러운 행동을 보였다. 이것은 무미우스가 올림픽을 존중하여 파괴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개인적인 명예욕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제우스 신전 전면의 프론톤은 오에노마우스와 펠롭스가 전차 경주(펠롭스가 오이노마오스의 딸을 얻기 위해 벌인 경주)를 준비하는 조각을 했지만 메토프(3개의 수직 홈으로 장식되어 있는 돌출된 부분)와 프리즈(고대 건축에서 주두에 의해 지지되는 가운데 것)엔 조각하지 않았다. 무미우스는 올림피아를 점령한 후 유명한 제우스 신전의 메토프에 아무런 장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승리한 전투를 기념하는 21개의 조각판을 설치하였다. 정복자에게 만족감을 주어 파괴를 면한 희안한 예였다.

제우스 신전이라는 특별한 명예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파괴를 모면한 신전이지만 그리스에 기독교가 들어오자 역시 수난을 면치 못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교도들의 신전에서 금을 떼어 내라는 포고를 내렸다.

이 명령에 따라 제우스 신상에서 금과 보석이 모두 벗겨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설상가상으로 393년에는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1가 그리스 반도에서 올림픽 경기를 완전히 금지시킨다. 그러나 올림피아에서의 올림픽 개최는 중지되었지만 제우스의 성소에 대한 숭배자들이 모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의 손자인 테오도시우스 2는 제우스 신전에 대한 보다 강력한 명령을 내린다. 신전을 완전히 파괴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테오도시우스의 한 환관이 예술품 수집광이었는데 그는 남아 있는 제우스 조각상을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자신의 갤러리로 옮겼다. 당시에 제우스 신상을 옮기기 위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생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러나 제우스 신상의 운명도 다른 불가사의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교도들이 숭상했던 모든 기념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파괴에서 다행히도 화를 모면했지만 콘스탄티노플에 옮겨진 후 얼마 되지 않은 475년에 화재 또는 532년 폭동의 여파로 제우스 신상은 한 줌의 재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