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한국인과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38) : 네안데르탈인 등장(2)

Que sais 2021. 2. 9. 16:06

youtu.be/THTxixtV_7w

<네안데르탈인은 인간류가 아니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이 고인류학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은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이 처음 발견될 때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 때문이다. 당시 다윈의 진화론으로 세계가 들썩거리고 있었는데 인간을 원숭이와 연결시키는 것신에 대한 중대한 모독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의 인골이 특이하기는 하지만 야만적인 것으로 인식했는데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과학자들도 호모사피엔스짐승과 연결하는 것종교적 혐오감으로 반발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정 관념1950년대까지 지속된 것은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슬랭 볼 박사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안데르탈인을 미개한 짐승으로 간주했다. 실제로 마슬랭 불복원한 네안데르탈인은 정말로 원숭이와 같은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은 발견된 시기도 다소 불우했다. 네안데르탈인이 발견된 지 10년이 조금 넘은 1869 프랑스 도르도뉴에서 크로마뇽인이 발견된 것이다.

불 박사크로마뇽을 인류의 조상으로 판단하고, 네안데르탈인은 이에 어떤 점도 비교할 바가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러므로 그는 1908년 크로마뇽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보다 훌륭한 체격, 제대로 된 머리 형태, 위쪽으로 곧게 난 넓은 이마, 그리고 그들이 살던 동굴에는 발달된 손기술과 함께 예술과 종교에 심취했고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던 증거들이 많이 남아 있어 이들이야말로 호모사피엔스라는 영광된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첫 번째 인류다.’

 

불 박사의 발표에 당대 학자들이 호감을 보인 것은 우리 인류가 야만적인 종에서 진화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종교계를 포함한 일각에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팽배했음에도 유인원과 현생 인류 사이에 중간적 위치를 차지하는 어떤 존재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잃어버린 고리.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당대 과학계의 화두가 되자 수많은 아마추어 지질학자들이 중요한 단서가 될 유골들을 찾아 나섰다. 한마디로 크로마뇽인 전 단계를 찾는 것인데 적어도 네안데르탈인은 아니었다.

이들은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이 혜성을 찾아 나선 것과 마찬가지로 각 지역들을 훑고 다녔다. 당대의 염원에 부응하듯 1912영국 서섹스 주의 필트다운 지방시골 변호사이며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찰스 도슨(Charles Dawson)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만한 증거물을 제시했다. 영국 루이스의 필트다운 코먼 자갈층에서 인간의 머리 형태를 하고 있지만 턱은 원숭이와 유사한 두개골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뼈 조각들이 아주 오래된 인간의 두개골 상반부, 원숭이와 흡사한 깨진 턱, 우리 종 특유의 어금니를 갖고 있어 인류의 조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틀림없다고 추정했다.

필트다운이라 불리는 그 두개골은 곧바로 세계를 강타했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의 입맛에 딱 알맞은 두개골이었다. 필트다운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인간이 원숭이와 관계 있을리 없다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해답이 되었고 확실한 잃어버린 고리에 해당했다.

그러나 이것이 고인류사상 최고의 사기극으로 전개된다. 이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이므로 보다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마추어 고고학자 도슨

아마추어 고고학자로 유골에 대해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도슨191212월 런던의 대영박물관 현재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관 책임자인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Arthur Smith Woodward)에게 자신의 발굴물에 관한 소식을 전하면서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에서 발견된 것보다 더 귀중한 인류의 화석이라고 말했다.

19136월 초에 도슨우드워드를 비롯한 고생물학자들과 필트다운의 자갈층을 재탐사했고 그 결과 동물들의 유골들이 출토되었다. 이들 두개골 파편과 이빨이 달린 턱뼈를 감정한 우드워드는 이것이 50만 년 전경의 인류의 조상인 원인(原人)의 뼈라고 확인했다. 함께 발굴된 동물의 화석들이 약 50만 년 전의 것이라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이 근처에서 석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유인원은 이미 돌을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유인원이 상당히 높은 지능지수에 도달했음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필트다운인이 특히 영국에서 환호를 받은 것은 당시의 고고학 연구 상황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네안데르탈 인이 독일에서 발견되었고 프랑스의 경우 크로마뇽인이 발견되었다. 또한 벨기에와 스페인에서도 발견되었는데 그들은 발견된 화석들을 각각 민족의 기원과 연관 지어 설명했다. 그런데 유럽국가들 중에서 위대하다고 자부심을 가진 영국에서 바로 자신들의 기원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간단하게 말해 영국에서 1900년대 초까지도 인류의 진화선상에서 그 어떤 주목을 받을만한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을 두고 프랑스인들은 영국잡종들의 집합이라고 비냥할 정도였다.

당시 학자들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지적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즉 우리가 서로 의사소통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사고능력 때문이며 이것이 우리의 사촌인 다른 동물로부터 아주 다르게 진화해 온 근본 요인이라고 보았다. 즉 이러한 능력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진화해온 결과로 인간의 두뇌와 지적 능력이 우선적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두개골의 크기가 우선 커지면서 신체 다른 부위가 뒤따라 현대인의 모습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원인을 보면 이들은 현대인과는 아주 다르게 끝이 뾰족한 원시적인 형태의 머리 모양을 갖고 있으며 지적 능력 또한 원시적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것은 인류의 육체가 변화함에 따라 두뇌의 크기와 기능뿐 아니라 인간의 지능도 함께 진화해 왔음을 의미했다. 한마디로 이러한 진화론적 설명은 많은 학자들이 기대하고 희망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런데 바로 도슨이 찾은 필트다운인이야말로 학자들이 찾고자하는 바로 그런 유형의 유골이었다. 더구나 그런 유골이 영국에서 발견된 것이다. 영국인들이 환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드워드의 발표에 따르면 필트다운인은 바로 인류의 초기 조상들이 갖고 있어야 할 모든 특징을 갖고 있었다. 2차 발굴에서 비록 턱뼈와 두개골이 인접하는 부분인 과상돌기(condyle) 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 비교적 잘 남아있는 아래턱뼈를 새롭게 발견했는데 이는 현대인의 턱뼈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전반적으로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의 것과 아주 유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턱뼈와 함께 발견된 두 개의 어금니는 현대인의 것과 아주 닮았고 유인원의 것보다 작은 송곳니는 자유롭게 좌우로 움직이며 음식물을 씹을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어금니가 좌우로 움직이면서 음식물을 씹을 수 있는 것은 원숭이나 영장류에게는 불가능한 인간만의 특징이다.

1924다트 교수남아프리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를 발견했는데 그 두개골은 실제 침팬지의 두개골처럼 작고 뇌의 용적도 현생인류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이런 차제에 뇌가 크고 아래턱이 발달한 필트다운인인류학자들의 자존심을 채워주는데 꼭 알맞은 화석이었다. 필트다운인은 과도기적인 동물순종 원숭이와 순종 인간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데 적격이었다. 턱이 원숭이류의 특성을 보이는 것도 그들의 추정과 맞아 떨어졌다. 당시 고생물학자들은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과도기적 동물은 턱이 인간과 흡사한 모양새를 갖추기 훨씬 이전에 뇌부터 먼저 진화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었는데 필트다운인이 바로 그 문제점을 증명시켜 주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곧바로 우드워드의 발표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이 발견한 턱뼈가 원인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원숭이의 것과 닮았고 특징이 있는 두 개의 닳아빠진 어금니는 그 아래 턱뼈가 인간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이 의혹을 제기하였지만 우드워드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1915도슨은 필트다운으로부터 3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니더홀 팜(Netherhall Farm)에서 또 한 벌의 두개골과 턱뼈를 발견했다고 발표했고 이를 필트다운 II로 부른다. 비록 턱뼈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이 현장에서 발견된 어금니는 마모된 상태와 모습이 첫 번째 것과 비슷했다. 그것은 첫 번째보다 더 온전한 형태이므로 첫 번째 발견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우드워드의 주장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도슨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발견자로 명성을 얻었고 원인의 명칭도 그의 이름을 따서 가장 오래된 인류라는 뜻의 에오안트로푸스 도스니(Eoanthropus Dawsoni)라고 명명되었고 발견지의 이름을 따서 필트다운인이라고 불려지기 시작했다.

필트다운인23간빙기에 살았던 가장 오래된 인류로 간주되었고 인류학, 지질학, 선사학의 권위자들이 앞다퉈 이를 보증했다. 도슨영국의 학계, 사회로부터 큰 지원을 받았고 필트다운에 관련된 논문200여 편이나 발표되었다.